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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 나의 가상 현실
프롤로그 / 기억의 순례자 바나나 팬터마임 / 나의 선악과 / 그림자들 / 악기와 사상가 / 네 잎의 클로버 / 수의 비극 / 싸움의 의미 / 꽃의 빛깔은 향기로워도 / 잃어버린 물건들 / 도시의 미로 / 도화 시간과 왕자 / 식민지의 아이들 / 동요가 아니라 군가를 / '빅터' 상표의 개 / 그것은 빈 상자다 / 별들의 오해 / 밀레의 「만종」 / 잠자리 전쟁 / 겨울 이야기 에필로그 /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
李御寧, 호:凌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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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순례지에 다다른다. 어두운 밀실로 한 줄기 광선이 새어들어오면 여지껏 눈에 보이지 않던 먼지들이 분명하게, 그리고 갑자기 움직인다. 그것들은 작은 은빛 벌레들처럼 이상한 광채를 번득이면서 난무한다.
그러나 그 먼지와 같은 많은 과거의 기억들을 망각의 암실(暗室) 속에 묻어둔 채 살고 있다. 어쩌다가 의식의 광망(光芒)이 스치면 그것들은 하나의 ‘전달 현상(現象)’을 일으킨다. 시간의 폐사원 앞에서 나는 햇살처럼 문틈으로 기어든다. 그리하여 나의 순례지는 기억의 유적지(遺跡地)다. 과거가 오히려 미래처럼 싱싱하게 머리 들고 일어나는 기억의 유적지다. --- 프롤로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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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물리적 공간을 벗어나 자유로운 시공을 넘나드는 가상현실
1956년 문학평론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며 등단해 50여 년간 파격적인 문학평론가, 당대의 문장가, 박학다식한 교수, 창의적인 문화 기획자 등으로 불리며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 대한민국의 대표 지식인 이어령. 1990년 초대 문화부 장관, 1999년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한 그의 언어와 문체는 복잡한 수식을 동원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어령의 글에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애정과 삶의 미학, 지혜가 녹아 있다. 20세기 젊은이들이 외우고 다녔던 명문집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는 저자가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느꼈던 감정과 에피소드가 잘 살아나 있어서, 독자들에게 어린시절에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_유년 시절의 추억을 감성적 언어로 풀어낸 이어령의 자전적 에세이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에는 저자의 어린 시절 추억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저자의 나이 열한 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서울에서 온 소녀에게 자랑하려고 수박 서리를 하던 일, 누나와 네 잎 클로버를 찾던 일 등, 이 책에는 암울했던 일제시대와 그 시절을 보내던 자신의 모습들, 부모님의 배려, 형제자매들의 이야기가 순수하게 녹아 있다.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아이의 이야기 속에서, 저자는 섣불리 변명이나 교훈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소중하고 순수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유년 시절의 추억을 감성적 언어로 그려낸 이 책 속에서 독자들은 삶의(혹은 인간의) 한 측면을 바라보는 저자의 날카로운 관찰력을 느낄 수 있다. _몸뚱이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쓰는 글 이어령은 “나는 언제나 타자로부터 그리고 역사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글을 쓴다. 마지막에는 내 몸뚱이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글을 쓴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유일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평생에 내 의식의 동굴 하나를 소요해도 모자랄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저자의 어릴 적 이야기들이 20년 뒤에 발효되어 나온 글로, 어릴 적의 육체의 윤곽은 모두 소멸되었지만 그때의 향내와 주정(酒精)은 남아 자유로운 시공을 넘나든다. “나의 육체는 다시 젊어질 수가 없다. 아무리 몸부림치고 애원하고 탄식해도, 내 얼굴의 주름살 하나도 펼 수는 없다. 하지만 나의 옛 책들은 이렇게 새로운 얼굴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가.” 우리는 이 책에서 물리적 공간을 벗어난 이어령의 가상현실을 느낀다. 그리고 그의 가상현실 속에서 우리 또한 자신의 유년 시절로 돌아가, 감성 풍부했던 자신만의 유년 시절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