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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강수돌(고려대 교수, 조치원 마을 이장)
10주년 기념판 서문 서문 1부 교육이라는 문제 1장 교육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2장 교육의 위험성 3장 교육의 문제 4장 교육 사업 2부 첫째 원칙들 5장 사랑 6장 지능 7장 물과 석유 8장 덕 9장 숲과 나무 10장 정치 11장 경제 12장 판결: 파스칼의 내기와 더 뜨거운 시대의 경제학 3부 교육을 다시 생각하다 13장 대학 순위 매기기 14장 학문 분야의 문제와 문제의 학문 분야 15장 전문직주의와 인간의 전망 16장 마음 설계 17장 교육학으로서의 건축 18장 농업과 교양 과목 19장 긴 안목의 유권자 교육 4부 목적 20장 사랑하지 않으면 잃는다: 바이오필리아 혁명의 도래 21장 환경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세상 22장 가격과 교환된 생명: 미국 식품 체계의 비용 23장 피난민인가 귀국자인가? 미국 시골의 미래에 관한 추측들 24장 어려운 시기의 희망 결론: 지구를 생각하며 감사의 말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
David W. O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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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 책의 편집자입니다.
2009-06-23
이 책에 숟가락 하나 딸랑 올려놓은 편집자입니다.
우리나라는 교육과 숨바꼭질하는 나라가 아닐까 합니다. 교육이 모든 사회문제의 열쇠로 여겨져서 모두가 술래가 되어 교육을 찾아나섭니다(여기서 술래란 학생, 학부모, 교육자, 교육행정가뿐 아니라 정말 우리 모두입니다). 아직 그 술래들이 교육을 찾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찾을 수 있네, 없네” 티격태격만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는 동안 사회는 학교를 잃어버리고, 교육은 사회를 잊어만 갑니다. 이 책은 교육과 숨바꼭질하는 술래들을 위한 책입니다. ‘데이비드 오어는 경제, 환경, 교육을 다 이해하는 보기 드문 저자’라는, 《통섭》의 저자 데이비드 윌슨의 찬사가 거짓이 아니라는 점, 책 속 ‘미국, 미국인’을 ‘한국, 한국인’으로 바꾸어놓아도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 누구나 밑줄을 많이 치며 읽게 될 거라는 점. 이 세 가지만큼은 편집자로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책을 만들면서 늘 제 머릿속에 맴돌았던 소설과 노래 한 토막씩 소개하면서, 스포일러 혹은 만병통치약을 판다는 싸구려 약장수가 되기 전에, 글을 마칠까 합니다. “차차 알게 되겠지만 인간의 지식은 터무니없이 간사한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 제군은 이제 대학에 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제군은 결코 제군의 지식이 제군이 입을 이익에 맞추어 쓰여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뫼비우스의 띠〉, 조세희. 학생들이 유일하게 신뢰하는, 수학교사가 고3 마지막 수업시간에 “형들이 모이면 술 마시며 밤새도록/ 하던 얘기 되풀이해도 싫증이 나질 않는데/ 형들도 듣기만 했다는 먼 얘기도 아닌/ 10여 년 전에 바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안에 어떤 곳에/ 많은 사람들이 머리에 꽃을/ 머리에 꽃을 꽂았다고/ 거리에 비둘기 날고/ 사람들이 머리에 꽃을/ 그건 정말 멋진 얘기야 그러나 지금은 지난 얘길 뿐이라고/ 지금은 달라 될 수가 없다고/ 왜 지금은 왜 지금은/ 난 보고 싶은데/ 머리에 꽃을 머리에 꽃을” -〈머리에 꽃을〉, 들국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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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권정치 국가로 변해 가는 나라에서 어떻게 해야 민주주의를 가르칠 수 있을까? 경제정책과 조세체계가 부자를 위한 것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어떻게 공정성과 직업윤리를 가르칠 수 있을까? 식견을 갖춘 시민의 책임 있는 행동을 평가절하 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아이들에게 사회에 봉사하라고 가르칠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땅과 공동체보다 개인주의와 소비에 가치를 더 두고 있는데, 어떻게 아이들에게 땅과 공동체를 사랑하라고 가르칠 수 있을까? --- p.15
하지만, 교육기준과 교육개혁에 관한 현재 논쟁의 상당 부분은 우리가 오로지 젊은이들을 세계경제에서 효율적으로 경쟁할 수 있게 준비시키기만 하면 된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그렇게 한다면 만사 다 잘될 터다. 아니, 그렇다고 간주된다. 그러나 교육을 개혁할 더 좋은 이유들이 있으며, 그 이유들은 지구 거주 가능성의 급격한 감소와 관련이 있다. --- p.20 마지막으로, 우리 문화가 인간 성취의 정점을 나타낸다는 신화가 있다. 물론 이는 최악의 문화적 오만이자 역사와 인류학을 전적으로 오독한 것이다. 최근에 이 견해는 우리가 냉전에서 이겼다는 형태를 취해 왔다. 공산주의는 너무 많은 비용으로 너무 적게 생산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하지만 자본주의도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에게 너무 많은 비용을 부담시키면서 너무 많이 생산하고 너무 적게 공유하기 때문에 실패해 왔다. 공산주의는 금욕적 도덕으로서 실패했다. 자본주의는 도덕을 전면적으로 파괴해서 실패해 왔다. --- p.33 영리학교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교육이 더 많은 기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기술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들은 교육을 마치 이익과 손실의 문제인 양, ‘투자’, ‘위험 부담’, ‘기업가 정신’, ‘경쟁’, ‘실적’ 같은 경제용어로 이야기한다. 손실이 너무 클 때 기업은 손실을 줄이지만, 공동체와 사회는 그럴 수 없다. 영리학교를 세우려는 사람들은 민영화가 공공 문제의 해답이라는 새로운 일반 통념의 산물이다. 그것이 해답인 경우도 있긴 하겠지만, 교육에서는 아니다. --- p.74 우리 자신의 산물을 직시하려면,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할까? 나는 영어의 교육(education)이라는 단어의 어원(educe)에 답이 암시되어 있다고 본다. 그 말은 ‘이끌어내다’라는 뜻이다. 이끌어내는 데 필요한 것은 우리의 생명 애호심이다. 이 애호심은 성장하고 번성할 기회가 필요하며, 보장할 필요가 있고, 가르치고 훈련시킬 필요가 있으며, 인간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건설한다는 목표에 맞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생명 애호심에 토대를 둔 교육은 산업적-실용주의적 정신에서 대체로 쓰이지 않은 채 잠자고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깨우는 각성제 역할을 할 것이다. 따라서 교육이라는 과제는 데이브 포어먼이 말한 것처럼, ‘이 눈부시고 풍부하고 활기에 찬 행성을 사랑하게끔 우리의 영혼을 일깨우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 p.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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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많이 받을수록 좋은 것인가? 우리가 받는 교육 그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라면 어떨까? 현대의 교육은 시장 원리 속에서 나 혼자만이 살아남는 ‘경쟁의 기술’에 매여 성공만을 열만하며 세계경제에서 경쟁력만을 갖춘 호모사피엔스를 양산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원리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동거의 기술’은 꿈꿀 수 없는가? 교육의 문제를 교육의 문제로만 풀려고 해서는 안 되며, 교육과 더불어 경제, 생명(환경), 노동, 정치, 문화 등 모든 영역의 총체적 관계에서 풀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우리 종의 장기 생존에 필요한 근본적인 성찰을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저자는 교육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현대 교육의 신화’와 ‘학교교육 혹은 정규교육의 위험’에 대한 지적에서 시작해 ‘현대 교육에서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들’, 교육기관의 표준과 교과과정까지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밝히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현 한국사회에서도 한창 민감한 시비거리가 되는 ‘영리학교’, ‘대학 순위 매기기’, ‘교수의 사회적 노릇’의 문제와, ‘농업이 단순히 전문 분야가 아니라 교양교육의 일부가 되었어야 한다’는 ‘교양교육으로서의 농업’의 문제, ‘인간의 장기 전망을 위해 싸울 수 있고 그럴 의지도 지닌 유권자 교육’의 필요성을 다룬다. ‘학교 건물의 설계, 건축, 운영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지적은 그동안 우리가 간과해 온 ‘교육학으로서의 학교 건축’이 갖는 문제를 짚어보게 하는 저자의 혜안으로 읽힌다. 1. ‘학교를 잃은 사회’ ‘사회를 잊은 교육’ : 고삐 풀린 사회, 그 사회 속 교육과 숨바꼭질하는 사람들 “어린쥐와 오렌지, 일제고사와 체험학습, ‘진보’ 교육감과 ‘보수’ 교육감, 사교육과 공교육, 시국선언 교수와 시국선언 반박 교수, 그리고 대치동 이데올로기의 이편과 저편……” 현 한국사회에서 ‘촛불’ 혹은 ‘서울광장’을 둘러싼 문제만큼이나 풀리지 않는, 교육을 둘러싼 이편과 저편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들이다. 한국사회에서 교육은 모든 사회문제의 해결책으로 다루어진다. 숨바꼭질이란 ‘술래가 영원히 자기를 찾아내지 못하기를 바라는 놀이가 아니라, 술래가 자기를 찾아주기를 바라는 놀이’일 터, 학생과 학부모, 교육자, 교육행정가 및 정부 등 ‘술래’가 ‘교육’을 두고 잡았네 못 잡았네, 잡을 수 있네 잡을 수 없네 하고 갈수록 옥신각신하는 우리 사회는 점점 더 고삐가 풀려가고 있다. 『학교를 잃은 사회 사회를 잊은 교육』은 겉과 안의 구분 없이, 원래는 동거와 공존의 징표이어야 할 뫼비우스의 띠 같은 ‘교육과 사회’의 문제가 왜 ‘출구 없는 미로’ 혹은 ‘꼬여만 가는 고리’가 되는지를 다룬다. 교육과 사회가 ‘한통속’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사회가 교육을 받은 개인이 그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 나가는 공동체 터전이라면, 교육은 그 개인과 사회를 연결해 주는 고리 노릇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교육은 사람들을 그저 지구를 더 효과적으로 파괴하는 자로 만들 수 있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들 주위에 현재 전개되는 전 지구적인 비상사태는 ‘기술’의 위기가 아니라 ‘사고, 가치, 지각, 사상, 판단’의 위기라고 말한다. 아울러 이 위기는 ‘사고, 가치, 지각, 사상, 판단’을 개선할 목적으로 존재하는 기구의 위기, 즉 ‘교육의 위기’라고 진단한다. 저자는 이러한 위기가 교육 어느 한 분야가 아니라 교육 그 자체의 위기라고 보면서, 지금 교육을 받는 세대들이 인간적이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 사회를 건설하는 전 지구적 목표에 맞는 호모사피엔스들로 출현할 수 있게끔 현재 교육에 대해 전면적으로 다시 사고하자고 말한다. 저자는 교육의 문제를 교육의 문제로만 풀려고 해서는 안 되며, 교육과 더불어 경제, 생명, 노동, 정치, 문화 등 모든 영역의 총체적 관계 속에서 풀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우리 종의 장기 생존에 필요한 혁신적인 신조를 설파한다. 저자는 ‘교육은 많이 받을수록 좋다’거나 ‘교육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현대 교육의 신화’와 ‘현재 학교교육 혹은 정규교육의 위험’에 대한 지적(1부)에서 시작해 ‘현대 교육에서 새롭게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들’(2부), 교육기관의 표준과 교과과정(3부)까지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밝히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현 한국사회에서도 한창 민감한 시비거리가 되는 ‘영리학교’(1부 4장), ‘대학 순위 매기기’(3부 13장)’, ‘교수의 사회적 노릇’(3부 15장)의 문제와, ‘농업이 단순히 전문 분야가 아니라 교양교육의 일부가 되었어야 한다’는 ‘교양교육으로서의 농업’의 문제(3부 18장), ‘인간의 장기 전망을 위해 싸울 수 있고 그럴 의지도 지닌 유권자 교육’의 필요성(3부 19장)을 다룬다. ‘정규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학교 건물)의 설계, 건축, 운영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지적은 그동안 우리가 간과해 온 탓에 공론화하지 못한 ‘교육학으로서의 학교 건축’(3부 17장)이 갖는 문제를 새로이 짚어보게 하는 저자의 혜안으로 읽힌다. 2. “근면” 성실”에서 “옆반 정복” “우주정복”에 이르기까지 : 급훈의 진화, 혹은 1020세대의 ‘신국민교육헌장’ 내지는 ‘시국선언’ “엄마가 보고 있다”(그 옆으로 “아빠는 무시하냐”가 붙기도 한다), “30분 더 공부하면 내 남편 직업이[내 마누라 몸매가] 바뀐다”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 할래?” “티코 탈래? BMW 탈래?” “지금 이 순간에도 적들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 “한국은 16강 진출, 우리는 수도권 진출” “지하철 2호선을 타자(지하철 2호선에는 서울대입구역과 이대역 등 대학으로 가는 출구가 많다)” “1인자를 찬양하라” “옆반 정복” “우주정복(우리는 주말에 정석을 복습한다)”……. 인터넷에서, 아니 실제 우리 교실 현장에서 ‘재기 발랄’한 급훈이라고 떠도는 것들이다. ‘근면’, ‘성실’ 같은 국민교육헌장식의 급훈을 보며/따르며 지냈던 세대에게는 이러한 급훈이 ‘비교육적’이라거나 ‘반사회적’이라며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들은 “우릴 이렇게 ‘비교육적’이고 ‘반사회적’으로 만든 게 누군데?”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연필을 총 삼고 참고서를 방패 삼아 이 학원 저 학원을 옮겨다니며 진지를 구축해야 하는 요즘의 아이들에게 ‘옆반 정복’과 ‘우주정복’의 급훈은 “우리는 국가경쟁력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라는 1020세대식 ‘신국민교육헌장’이거나, “한국에서 가장 치열한 계급투쟁은 노동운동이 아니라 대학입시 전쟁”(강준만)이라는 그들만의 ‘시국선언’인 셈이다(실제로 이런 급훈에는 반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낸 게 많다). 저자는, 지금까지 교육이 학생들에게 ‘가치’ 대신에 ‘이론’을, ‘인간’보다 ‘개념’을, ‘의식’보다 ‘추상’을, ‘질문’ 대신에 ‘대답’을, ‘양심’보다 ‘이념과 효율’을 강조하는 오류를 저질러왔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교육이 학생들을 생태학적 문맹인으로, 성공만을 열망하는 그리고 세계경제에서 경쟁력만을 우선하는 호모사피엔스로 만들어버렸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교육이 우리의 아이들로 하여금 기술에 의한 자연정복과 ‘우주정복’, 경쟁력을 통한 ‘옆반 정복’이 아니라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하고 열린 공동체와 사회질서를 세울 수 있게끔 준비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장 원리 속 나 혼자만이 살아나는 ‘경쟁의 기술’이 아니라 공동체 원리 속 나와 타인이 함께 살아가는 ‘동거의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3. “사랑하지 않으면 잃는다”, “우리가 곧 지구이며, 우리의 살은 풀이다” : 호모사피엔스의 교육 희망 보고서, 지구 희망 보고서 저자 데이비드 W. 오어는 우리가 세계에 대해 저지른 잘못된 짓의 상당수가 인간의 지배라는 미명 아래 우리를 생명과 멀어지게 하고, 통합 대신 분열을 부추기고, 성공과 경력을 과장하고, 지성과 감정을 떼어내고 이론과 실무를 분리하고,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모르는 정신의 소유자들을 세계에 풀어놓게 만들어온 교육의 결과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행성을 지배하라는 명령에 복종한 이전 세대들이 보여준 것에 맞먹는 열의와 독창성’을 가지고 생명 공동체의 원리, 공존의 원리를 중심으로 하는 ‘인류의 재교육’에 나서야 지속 가능한 사회, 우리 종의 장기 생존이 가능한 사회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시스템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일, 사랑과 지혜와 미덕 같은 참된 인간의 가치, 생명의 가치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하는 일, 그러한 새 디자인 위에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차분히 해야 할 과제라고 말한다. 인간이 잠재의식적으로 추구하는 다른 생명체와의 연대성, 생명에 대한 사랑(생명친화력)을 기초로 한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는 혁명을 강조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곧 지구이며, 우리의 살은 풀”이라는 인식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최선이 희망이기에 교육을 통해 ‘생물권을 갖춘 행성에 위험을 끼치지 않도록 우리들의 마음과 인식을 바꾸어나가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4. “Please read this book, President Obama” : 한국의 교육열을 칭찬했다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미국 독자가 띄우는 전언 저자는 미국인으로서 미국사회 속 미국교육의 문제를 얘기하고 있지만, 책을 따라가다 보면 “어쩜 이렇게 우리(한국) 상황과 똑같지?”하는 생각을 저절로 들게 한다. 먹고살아가는 문제에서 미국을 롤모델로 따르는 한국사회에서 책 속 ‘미국’, ‘미국인’이라는 말을 ‘한국’, 꺡한국인’으로 바꾸어놓아도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저자의 미국 교육 비판에서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한 반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3월 10일 워싱턴D.C 히스패닉상공회의소에서 “새로운 세기의 도전은 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이 더 많은 시간 동안 공부할 것을 요구한다. 한국에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도 바로 여기 미국에서 할 수 있다”며 한국의 교육열을 칭찬했다는 기사가 국내 매체에 빠짐없이 소개되었다. 오바마 대통령 발언의 그 진의 해석 차이는 잠시 접어두고, 한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칭찬한 바로 그 높은 교육열 때문에 우리 사회의 빨간불이 더 빨갛게 켜지고 있는 건 아닐까.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방향지시등’, 엉뚱한 길을 지시하는 ‘네비게이션’ 때문에 빨간 ‘교육열’차의 브레이크 없는 무단질주는 그 차뿐만이 아니라 다른 차들까지 교통사고에 빠트릴 것이다. “Please read this book, President Obama” - 아마존 독자 서평, 2009. 3. 12 “데이비드 W. 오어는 대부분의 교육행정가들이 침몰하는 타이태닉호에서 갑판의자 배치를 바꾸는 것 같은 시늉을 하지 않습니다. 오어는 교육을 통해 우리의 병든 세계를 치료하고 치유하는 일에 관해 실제적으로 사고하고 깊이 성찰하면서 독자, 가족, 교육자들에게 대단히 통찰력 있는 시각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 대통령께서 교육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환경과 아이들의 미래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이 책을 보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 책을 읽게 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