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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서문 - 야마니를 알면 중동이 보인다
야마니가 보는 2003년의 석유전쟁 1. 평민출신 야마니, 족장이 되다 2. 정치의 축소판, 석유시장 3. 사우디 최초의 국제변호사 4. OPEC의 탄생, 야마니의 부상 5. 아람코와 한판 승부 6. 제1차 석유파동 7. 석유 수출금지 조치 8. 야마니의 줄타기 외교 9. 키신저, 중동에서 몰락하다 10. 중동 시대의 개막 11. 파이잘 왕의 암살 12. 카를로스의 야마니 납치 13. 성골 수다이리 파의 음모 14. 미디어의 스타, 야마니 15. 제2차 석유파동 16. 미국의 견제 17. 뛰어난 협상능력 18. 검은 그림자 19. 면직, 그리고 숨은 이야기 20. 석유의 미래를 논하다 감사의 말 야마니 연보 사우디아라비아 왕족 가계도 주요 산유국별 원유 매장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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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석유시장이 공급과잉에 휩싸여 있을 때 항공장관 겸 사우디 항공 회장으로 있던 술탄 왕자는 롤스로이스 엔진을 부착한 신형 보잉747 점보기 10대를 구입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주간 석유정보》는 '파드 왕이 야마니에게 이 비행기 구입 가격 10억 파운드를 지불하기 위해 사우디에게 배정된 할당량을 초과해서 원유를 퍼내라는 명령을 했다'고 보도했다. 《주간 석유정보》는 또 파드 왕이 야마니에게 'OPEC에는 비공개로 하라'라고 엄명했다는 이야기까지 파헤쳤다.
파드 왕은 점보 여객기 구입 자금으로 현찰 대신 땅 속의 기름을 퍼주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야마니는 원유 3천450만 배럴을 추가로 팔면 시장은 공급과잉으로 신음하게 될 것이며, 유가는 한참 더 내려갈 것이라는 이유에서 반대했다. --- p.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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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니의 우려는 한치도 빗나가지 않아 1979~80년 사이 현물시장에서 과다하게 사들였던 원유가 1981~86년 사이 석유시장에 다시 쏟아져 나와 유가 인하를 촉발시켰다. 유가는 폭락했고 이런 현상은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반복됐다. 이런 현상들을 누구보다 먼저 간파하고 위험성을 경고했던 야마니는 지금 어떤 충고를 해주고 싶을까?
"서방세계의 에너지 절약과 석유 소비형태에 획기적인 변화가 없고, 대체에너지 개발에도 적극적인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소비국 모두가 석유 비축제도에 강력하고도 신중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편, 미국이 종전의 태도를 유지한다면 1980년대 중반의 일시적인 석유 공급과잉 사태는 또 다시 생산감축, 정치적인 불안, 고유가를 거치면서 과거와 유사한 석유파동을 계속 불러올 것입니다." --- p.3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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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논쟁이 불러온 '미국의 이란 지지설'은 미국의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고유가를 싫어할 이유가 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맺어졌다. 유가가 무리 없이 인상되면 이란의 수입 또한 늘어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연유로 거대한 경제세력이었던 미국의 메이저 석유회사들은 워싱턴과 테헤란의 고위직에 있던 사람들을 동원하여 고유가를 위한 로비를 펼치기도 했다. 이러한 주장은 "키신저는 록펠러의 문하생이었고, 록펠러의 재산은 석유가 키웠다"고 회자되는 소문에 충분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었다. "미국은 유가가 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평론가들의 지적에 야마니도 동의했다.
--- p.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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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에서 열린 아랍산유국회의는 석유판매의 완전 금지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야마니는 강경한 주장에 동조하지 않았다. 동료 산유국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완전한 봉쇄는 불가능하고 부분적인 봉쇄는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야마니의 주장에 시리아 대표가 즉각 반발했다. 야마니의 미온적인 태도에 분노한 시리아 수석대표는 "당신은 제거되어야 할 사람"이라고 소리쳤다. --- p.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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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니를 알면 석유전쟁의 실체가 보인다
석유의 발원지는 중동이고, 그곳에는 여러 가지 사연이 얽혀 있지만 석유와 관련하여 우리의 뇌리를 떠나지 않은 한 사람의 '신사'가 있다.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타고난 협상가', '뛰어난 정치감각', '미디어의 스타'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흔들림 없는 자세로 약 20여 년에 걸쳐 태동기의 세계 석유산업을 탁월하게 통제했던 '미스터 오일' 자키 야마니가 주인공이다. 1930년 사우디의 메카에서 태어난 베두인 족 야마니는 뉴욕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법률학을 공부한 사우디 최초의 국제 변호사로서 사우디 현대법 체계를 세웠을 뿐더러 OPEC이란 말썽 많은 석유수출국기구를 통해 '알라 신이 준 선물'인 검은 물, 석유를 마술사처럼 다루었다. 1967년의 '6일 전쟁', 1973년의 1차 석유 파동, 1978년의 호메이니 혁명을 슬기롭게 극복했고, 6명의 미국 대통령(케네디, 존슨, 닉슨, 포드, 카터, 레이건)과 키신저에게는 아랍의 존재를 선명하게 부각시켰으며, 3명의 사우디 왕(파이잘, 칼리드, 파드)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이라크 전쟁 가능성 때문에 세인의 관심이 중동으로 쏠리고 있으며, 원유가 또한 고공행진을 해 간다. 최근 봇물을 이루면서 출간되는 중동 관련서들은 대부분 개괄적인 면만을 들추고 있다. 아랍과 이스라엘간의 갈등, 미국이 아랍의 석유에 어떻게 개입하고 있는지의 진상, OPEC 회원국간의 암투 등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다. 그러나 이 책 한 권이면 중동국가들의 역학관계, 미국과 중동의 갈등, 유가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석유과 관련한 이 책 이상의 생생한 증언은 아마도 더 이상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저자는 야마니와 세계 유력인사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석유시장의 이면사를 리얼하게 보여준다. 이 책 한 권이면 석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알 수 있다. 석유 시장을 움직이는 원심력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흥미 있는 책이다. 유가 안정과 아랍 결집에 일생 바쳐 야마니의 일생은 '석유의 현대사' 그 자체다. 1939년 사우디 사막에서 석유가 발견된 이후 서방세계의 석유 재벌들은 아람코(ARAMCO)란 카르텔을 결성해서 석유라는 천혜자원을 지배해 나갔다. 야마니가 석유라는 '천부의 자원'을 국유화시킨 첫 걸음은 '테헤란 협약서'였다. 단일 상품으로서는 규모가 가장 큰 석유를 중동에 돌려 달라는 무언의 시위였다. OPEC 사무총장이라는 중책을 떠맡은 야마니는 거대국가 미국을 상대로 힘겨운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협상의 중심에는 야마니가 신조로 삼았던 '세계 속의 아랍'이라는 명분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지금의 원유 저장량으로는 50년밖에 쓸 수 없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 원유가격을 인플레율만큼 올리면 분명 대체 에너지 개발에 힘을 쏟게 될 것이고, 완만한 원유가격 상승은 기술개발로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대국 미국은 야마니의 권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원확보를 위해 원유 저장량은 많으나 국력이 약한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왕족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회유책을 내미는 한편 강경파 이란, 이라크, 리비아에게는 올가미를 씌웠다. 왕족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공산주의의 침투와 이란과 같은 회교원리주의 혁명이라는 점을 잘 활용했다. 미국은 비협조적이라고 야마니를 미워했으며, 한편으론 아랍 강경파들은 그를 '미국의 앞잡이'라고 매도했다.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야마니는 세계경제가 붕괴하면 아랍 또한 살아 남을 길이 없다는 신념으로 유가안정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이라크와 시리아의 살해 위협, 국제 테러리스트 카를로스의 납치, 사우디 왕족들의 시기 등 시련이 끝없이 이어졌다. 미국의 변하지 않는 목표, 석유와 이스라엘 미국은 아랍에서 두 가지 목표를 확실하게 추구하고 있다. 석유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과 아랍간의 불협화음이 현실화되어 석유시장이 들썩일 때마다 파이잘 왕과 야마니는 미국에게 이렇게 간청했다. "우리도 유가 안정에 이바지하고 싶다. 사우디는 세계 석유 매장량의 3분의 1을 가지고 있고, 돈도 벌 만큼 벌었다. 아랍세계의 일원으로서 활동할 공간을 마련해 달라. 미국의 주문만 따를 수는 없다. 조그마한 공간만 마련되면 당신들이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세계경제 성장에 이바지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미국의 정책을 무조건 따를 수는 없다. 석유, 이스라엘 중에서 한 가지는 조금 양보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존 없이는 중동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피붙이를 배신할 수는 없다. 알라신의 뜻이 아니다." 야마니의 설득이 없었더라면 OPEC은 진작 파탄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이란의 샤 왕과 호메이니, 리비아의 카다피, 알제리, 이라크 등 강경파는 사사건건 야마니를 못살게 굴었다.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키신저는 간계로 사우디의 파이잘 왕을 분노케 만들었고, 아랍의 유정을 무력으로 점령하겠다는 음흉한 책략까지 꾸미게 된다. 당시 파이잘 왕과 야마니의 대응이 인상적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아랍의 유정을 덮어 버릴 것이다.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유정을 재개발하려면 10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것도 현지인들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2차 석유파동이 있었던 1974년 야마니는 유가 안정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키신저는 간계를 멈추지 않았다. 고유가 정책을 은밀하게 추진했던 것이다. 미국 석유재벌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한편, 베트남 전쟁으로 형편이 어려워진 미국경제를 수입원유 의존도가 높은 일본과 서독이 앞지르고 있기 때문에 두 나라에 충격을 주고, 이란을 아랍의 맹주로 키우기 위해서는 군비를 증강해야 하는 데 유가인상밖에 방법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미국의 정가에는 이런 소문이 은밀하게 떠돌았다. "키신저는 록펠러의 문하생이고, 록펠러의 재산은 석유 속에서 큰다." 20세기 중동이 배출한 최고의 기린아 부정에 찌들고, 시기심 많고, 무지한 사우디 왕족들 사이에서 야마니는 왕족의 반열에까지 오른 사람이다. 파드 왕은 동복(同腹)형제로 '수다이리(Sudairi) 7형제'를 결성하여 석유이권을 자기들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갖은 음모를 꾸미지만 미수에 그친 것이 부지기수였다. 유가가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86년, 야마니는 탐욕스러운 왕족들에게 다시 한번 시달렸다. 석유 시장이 공급 과잉으로 유가 폭락 사태에 직면했다. 호메이니 후유증으로 유가가 40달러까지 치솟았지만 야마니는 OPEC 회원국들을 설득하여 29달러로 묶었다. 그러나 고유가에 맛을 들인 산유국들은 오일 달러 수입이 떨어지자 양으로 보충하겠다는 생각에 더 퍼내어 암시장에서 팔기 시작했다. 말이 왕족이지 경제의 기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간단한 산술조차 몰랐고 실제로 고등교육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85년에는 18달러로, 86년에는 9달러로까지 폭락했다. 여기에 더하여 부정부패의 화신인 파드 왕은 16살 먹은 자기 아들(압둘 아지즈 왕자)에게 돈을 물려주려고 영국으로부터 전투기 150대, 미국으로부터 점보 여객기 10대를 사들였다. 거래대금의 10%가 넘는 커미션이 목적이었다. 야마니에게는 이렇게 명령했다. "OPEC으로부터 배정 받은 양 이외에 더 퍼내라. 유가도 18달러를 고수해야 한다. OPEC으로부터의 배정량도 더 늘리도록 하라." 야마니에게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능력이 없었고, 재정에는 단 1달러의 도움도 되지 않은 채 3,450억 배럴의 원유를 암시장에서 파는 일에는 더더욱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왕의 명령을 단호하게 거부한 며칠 후, 사우디 왕궁에서 야마니를 면직시켰다는 뉴스가 흘러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