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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파일
프레드 제롬 저 / 강경신 역
EJB(이제이북스) 200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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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FBI가 작성한 <아인슈타인 파일>로 새롭게 드러나는 아인슈타인의 면모

목차

이 책을 쓰면서
머리말 : '아인슈타인 파일이라구요?'

1부 '민족주의'를 찾아서
귀하의 정치적 신념은 무엇입니까?
반전주의자로서의 첫걸음
미국 시민이 되다
원폭 개발의 비밀

2부 우익의 시대
'왜 당신은 원폭개발에 협력했습니까?'
또 하나의 전쟁, 인종 차별주의
FBI, 쓰레기통을 뒤지다
매카시 광풍의 전야

3부 FBI와 애드거 후버
그는 공산당 조직에 가입했는가?
'공공의 적들'과의 우정
간첩 로젠버그를 위하여

4부 아인슈타인 제거 작전
모든 것은 엘러너 루스벨트와 함께 시작됬다
폭스 간첩 사건 : 후버의 음모
마녀 사냥
'반(反)상대성이론 주식회사'
유태인을 추방하라!

5부 수사는 끝났지만
썰물 때가 되다
은폐
아인슈타인은 간첩이었나?

맺음말 : 되살아나는 매카시즘의 망령

주석
자료출처
아인슈타인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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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프레드 제롬
시러큐스 대학의 뉴 하우스 언론학회 산하, 진 미디어 포럼Gene Media Forum의 수석 자문위원이다. 그는 1960년대 초반 미국 남부 지역에서 기자로 활약하면서, 인권 운동의 분출 현장을 취재하였다. 최근에는 뉴욕 주립대학교와 뉴욕 주의 여러 대학에서 언론학을 가르치면서, <뉴스위크>와 <뉴욕 타임스> 등 여러 신문과 잡지에 사설과 특집 기사들을 기고하고 있다.

지은이는 1983년 9월 9일자 <뉴욕 타임스>에서 FBI가 아인슈타인을 간첩 행위 공모자로 조사한 보고서를 제출했다는 기사를 발견하고 이 파일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그는 1990년대에 들어서 자료요청을 했고 3년 뒤에 아인슈타인 파일의 일부를 입수할 수 있었다. 지은이는 계속해서 추가 자료 입수를 시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FBI는 2000년 2월, 1937년부터 1955년까지 아인슈타인의 공산당 관련성을 조사한 아인슈타인 파일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그러나 저자가 입수한 아인슈타인 파일에서 담당 수사관과 정보제공자들의 이름은 검은 잉크로 덧칠해 그 정보가 감춰져 있었다.

매카시 광풍이 불던 시대에 “빨간 기저귀를 찬 아기”로 태어난 지은이는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투옥된 아버지 때문에 FBI 요원들의 감시를 받으며 성장했다. 이런 그에게 아인슈타인 파일은 역사의 진실을 찾을 수 있는 오래된 보물지도와도 같았다. 지은이는 아인슈타인 파일에서 오직 국가 안보란 강박에 사로잡혀 많은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해 온 미국의 어두운 과거사를 발견했다. 지은이는 엄청난 분량의 FBI 기록을 꼼꼼히 살피고, 당시의 신문들을 뒤져 역사적 사건들과 치밀하게 대조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책이 출간된 뒤, 미국의 여러 대학과 시민운동 단체에서 아인슈타인 파일을 소개하고, 오늘날 미국 사회에 다시 불기 시작한 매카시즘을 경고하는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역자 : 강경신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홍익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현재는 인터넷 사업을 하면서 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03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487쪽 | 770g | 153*224*30mm
ISBN13
9788956440200

줄거리

“귀하의 정치적 신념은 무엇입니까?”
1932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몰락하고 히틀러의 나치당이 득세하면서, 독일의 정치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세계적인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기로 했지만 그 여행은 출발부터 순조롭지 못했다. 미국의 우익단체인 여성애국단이 유태인이며 무정부주의자인 아인슈타인을 비방하는 문서를 미 국무부에 보내 그의 입국 금지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비방 문서에 따라 베를린의 미 영사관에서는 아인슈타인의 비자 승인 여부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귀하의 정치적 신념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그와 미국 우익 세력과의 전쟁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독일의 군국주의를 피해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으며, 혁명주의자들의 도시 취리히에서 국제주의자, 무정부주의자들과 교류하였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이미 반전 성명을 발표하는 등 평화주의자로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제2제국의 몰락과 볼셰비키 혁명을 목도하면서 “사회-경제적인 요소가 정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임을 깨닫고 적극적인 행동주의자가 되었다. 미국을 방문하던 1933년, 나치당의 정권 획득 소식을 듣고, 아인슈타인 일가는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나치 독일을 탈출하는 수많은 망명자들이 미국에 입국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원자폭탄을 개발해 히틀러와 파시스트들을 저지하도록 촉구했다. 그는 순진한 평화주의자가 아니라, 평화를 위한 전쟁에 헌신하는 투사였으며, 미국이야말로 세계 평화와 자유를 수호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원폭 개발의 비밀
미국 정부는 아인슈타인의 요청에 따라 맨해튼 계획을 추진했다. 맨해튼 계획에는 나치에 맞선다는 대의명분 아래 여러 유태인 과학자들이 참여했다. 과학자들은 원자폭탄으로 히틀러를 위협해 전쟁을 중단시키려고 했지만, 미국의 생각은 달랐다. 실제로 독일이 원폭개발을 중단한 뒤에도 그들은 계속 원폭개발을 추진했다. 원폭은 소련이 태평양전쟁에 개입하기 전에 전쟁을 끝장내기 위해 일본에 투하됐다. 만약 아인슈타인이 원폭개발에 참여했다면 상황은 바뀌었을 것이다. 그는 원폭개발에 대한 여론을 바꾸고, 개발자들을 중단시킬 수 있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군 당국은 그를 맨해튼 계획에서 제외했다.

냉전 시대와 반핵운동, 그리고 후버-매커시즘
원폭개발을 촉구했던 아인슈타인이나 개발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은 끔찍한 양심의 가책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원자력과학자 비상위원회를 결성하여 미국인들에게 핵무기의 위험을 경고하고, 평화를 위한 원자력 기술 이용을 홍보하는 반핵운동을 펼쳤다. 아인슈타인과 미국의 진보진영은 소련의 핵개발은 제지하면서도, 핵보유를 포기하지 않는 미국의 정책을 위선적이라고 비난했다.
미국의 정치가들은 아인슈타인의 이런 발언을 “정치적으로 순진한” 인물의 허튼소리쯤으로 여겼지만, FBI는 달랐다. FBI의 국장 후버는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신념을 위해 원폭기밀을 소련에 넘길 수 있는 위험인물이라고 판단, 끈질기게 아인슈타인을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그들은 아인슈타인에게 전화를 건 친러시아 인사들의 명단을 확보하고, 아인슈타인에게 보내진 생일 축하 전보를 가로채고, 심지어 쓰레기통까지 뒤져가면서 아인슈타인과 주변인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반체제 인사”들과의 연대
아인슈타인은 반핵운동뿐만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여러 운동을 열성적으로 지지했다.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에 반대하는 시민 연합군을 후원했고, 1946년 미국에 인종차별 폭력이 만연했을 때에도 폭력 근절법을 제정하라고 트루먼에게 편지를 보냈다. 또한 여러 반전 단체의 핵심인사로 활약했다. 당시 폴 로브슨, W. E. B. 두 보이스처럼 유명한 진보 인사들과의 연대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이에 개의치 않았다. FBI는 그의 이런 활동을 모두 체제전복적인 공산당 전위 조직 활동에 가담한 것이라고 규정하며 그가 가입한 단체 목록을 작성해 아인슈타인 파일에 포함시켰다.

나치와 FBI가 손을 잡다 ― 아인슈타인 간첩 사건
1950년 2월, 아인슈타인은 전 영부인이자 진보 인사인 엘러너 루스벨트가 진행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 수소폭탄의 개발은 인류 전체의 파멸을 초래할 뿐이라면서 트루먼 대통령과 미국 정부를 비난했다. 후버에게 아인슈타인의 이런 발언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체제전복적인 발언이었다. 그때부터 1955년 아인슈타인이 죽을 때까지 후버는 아인슈타인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추방하려는 작전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FBI는 아인슈타인의 아들이 소련에 인질로 잡혀 있어서 그가 소련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거나, 아인슈타인은 공산주의자로서 과거 독일에서 소련 간첩 조직의 중간 연결책 노릇을 했다는 허위 정보를 이용했다. 그들은 그것을 입증할 증거를 “만들어 내기” 위해 몇 년간 수사를 벌였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FBI도 아인슈타인의 명예를 훼손시킬 결정적인 증거를 잡을 때까지는 공개를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사전에 이 작전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간다면 FBI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까지 아인슈타인을 지지하는 수많은 대중의 비난을 받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인슈타인 파일은 FBI내에서 최고위층에게도 비밀로 지켜질 만큼 철저한 보안 속에서 작성되었다.
그러나 결국 FBI의 “아인슈타인 간첩 사건”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들이 얻었던 아인슈타인 간첩 관련 사건에 관한 정보는 나치의 패망 이후 미국 정보기관으로 자리를 옮긴 나치 전력자들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CIA는 이런 나치 정보기관원들을 주축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이미 1930년대에 나치는 유태인 아인슈타인을 제거하기 위해 그의 간첩 혐의를 조사하고 있었고, 그 정보가 전후 미국으로 흘러들었던 것이다.

매카시즘의 퇴조 ― “증언을 거부하라”
1950년대 냉전이 심화되면서 매카시즘의 광풍이 미국에 몰아치자 FBI와 비미활동 위원회(주로 ‘빨갱이 토벌’을 목적으로 하던 미 하원 조사위원회)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미국의 우익 보수 세력은 이들 기관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많은 공산주의자들뿐만 아니라 노조운동이나 인권운동을 돕던 비판적 지식인들마저 직장을 빼앗고, 투옥시켰다. 공포에 휩싸인 미국인들은 동지를 고발하거나 침묵을 지키며 사태를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달랐다. 종교재판을 연상시키는 매카시즘 선풍이 아인슈타인에게는 나치가 벌였던 인권탄압과 다를 바가 없었다. (실제로 FBI 국장 후버를 비롯해 많은 우익 인사들은 독일 나치정권과 깊은 유대 관계를 갖고 있었다.) 빨갱이 재판의 “심문관들”에 맞서서 아인슈타인은 시민 불복종 운동을 전개했다. “공산당의 위협”과 국가 안보라는 명분을 내세워 공포정치를 정당화하던 미국 정부에 정면으로 도전했던 것이다. “청문회에 소환된 증인들에게 증언을 거부하라”는 발언을 신문 지면에 발표하는 등 그의 공공연한 저항 운동은 50년대 미국 시민운동의 불씨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출판사 리뷰

은폐됐던 아인슈타인의 정치적 활동이 밝혀지다
20세기 최고의 천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아인슈타인에 관한 책이라면 이미 많이 나와 있다. 평범한 위인전 형식으로 아인슈타인을 다룬 책도 있고, 그의 여성 편력을 다뤘거나 그가 쓴 에세이와 편지를 모아 인간적인 면모를 엿보게 한 책도 있다. 또 그의 과학이론을 대중들에게 쉽게 설명하려는 책들도 많이 나와 있다. 이 책들은 대부분, 아인슈타인의 과학 업적들에 대해 다루며, 과학자로서의 아인슈타인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FBI 파일에 기록된 아인슈타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로서, 양차 세계대전과 매카시 광풍이 몰아친 냉전시대의 미국에서, 나치즘과 인종차별정책에 반대하고, 사회주의자든 공산주의자든 가리지 않고 양심을 지키려는 모든 사람들을 후원했던 아인슈타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48년 동안 미국 최고의 수사기관 FBI를 쥐고 흔들었던 후버는 아인슈타인을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고 그를 미국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아인슈타인 파일을 작성했지만,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가 작성한 파일은 오히려 우리에게 과학자가 아닌 아인슈타인의 정치적인 행동들과 음모와 공작으로 인권을 탄압했던 미국의 어두운 과거를 말해 주는 증거로 남았다.

찰리 채플린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매카시즘에 희생됐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아인슈타인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국은 상대성이론으로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과학자가 된 아인슈타인이 반미국적인 운동을 벌였다는 사실이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를 간첩으로 조작하려던 음모마저 실패하자, 20세기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과학기술을 신봉하던 미국에서는 오히려 아인슈타인을 “과학의 성인(聖人)”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살아 있을 때는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와 같이 중요한 언론매체에서 크게 보도됐던 그의 정치 활동이 사후에는 철저하게 지워지고 각색됐다. 미국의 우익 세력들은 아인슈타인의 이미지를 정치적으로 “무균 처리”해 버린 것이다.

왜 지금 아인슈타인 파일인가?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는 “미국의 새로운 전쟁”과 “본토 방위”라는 말이 반체제적인 주장을 침묵시키는 암호처럼 통용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인권탄압(특히 아랍계에게!)과 인종차별, 그리고 그것을 빌미로 국민들이 국가 정책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안보 우선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정치 공작들을 공공연하게 벌이고 있다. 미국의 몇몇 보수적인 역사가들은 매카시즘을 재평가하여 역사에서 정당한 자리를 찾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오히려 매카시가 주도했던 우익 시대는 체제전복적 위험인물들을 제거해서 미국의 정치를 정화했기 때문에 미국에 유익했다는 것이다. 영원히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매카시즘의 망령이 다시 되돌아온 것이다. 지금 미국의 정치적 풍조는 명백히 매카시 시대의 추악한 이면을 상기시키고 있으며 지은이는 이런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길 바라며 이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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