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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 4
제1부 봄꽃 / 14 부화 / 16 일벌들의 반란 / 18 들꽃 / 20 거목의 역사 / 22 눈 감은 세상 / 24 몸의 중심 / 26 꿈꿔온 사랑 / 28 정점頂點 / 30 풀뿌리 / 31 잡초 / 32 제2부 안전망이 될 수 있을까 / 36 비정규직 노동자 / 38 생소한 꽃 / 41 허허벌판 울타리 / 42 종탑 위의 둥지 / 44 통화 살해 / 46 비정규직 노동자, 세월호여! / 48 대한문광장 / 52 태풍 / 54 나는 더 아파야 한다 / 56 현장 / 58 대한민국 / 62 제3부 부평4공단 / 64 4.5톤 트럭의 잠 / 66 택배 노동자 김 씨 / 69 씨수소 / 72 위장된 꽃향기 / 74 저 헌 기계 울고 있네 / 76 기계소리 / 78 핏빛 낙조 / 79 통곡의 방 / 80 양성중학교 / 82 하늘은 너무 맑은데 / 84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 / 85 제4부 자본의 시간 / 88 나에게 묻는다 / 90 시를 쓰지 말아야겠다 / 92 나의 시여, 무기가 되어라 / 94 노동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게나 / 96 지구적 보편성 / 98 밥 먹는 법 / 101 단절당한 노동 / 102 길고양이에게 밥을 건넨다 / 104 싸도 너무 싸다 / 106 갸륵한 방 / 108 장작더미 / 110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 / 112 해설_더불어, 말없이, 고이 울려주는 시들 | 정우영/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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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송보송한 땅에서만 살아간다면
봄꽃이 아니지 따뜻한 곳에서만 피어난다면 봄꽃이 아니지 때로는 꽁꽁 얼어붙기도 하고 때로는 겨울 찬바람 불기도 하는 그런 곳에서 살아 그런 곳에서 피는 거지 겨울이 지났다고 혼자서만 피어난다면 봄꽃이 아니지 봄꽃이 아니지 메마른 들녘 여기저기 서로서로 더불어 한마음으로 흐드러지게 피는 거지 봄이 왔다고 마냥 피어 있는 것은 봄꽃이 아니지 천지에 푸른 들녘 포근히 깔아놓고서 홀연히 사라지는 거지 홀연히 사라지는 거지 ---「봄꽃」중에서 몸의 중심으로 마음이 간다 아프지 말라고 어루만진다 몸의 중심은 생각하는 뇌가 아니다 숨 쉬는 폐가 아니다 피 끓는 심장이 아니다 아픈 곳!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처난 곳 그곳으로 온몸이 움직인다 ---「몸의 중심」중에서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 잘난 꽃 되지 말고 못난 꽃 되자 함부로 남의 밥줄 끊어놓지 않는 이 세상의 가장 못난 꽃 되자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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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춥고, 그늘지고, 아픈 곳에서 만났다. 가깝지 않은 김포에서 달려와 그런 자리를 지키는 정세훈 시인에게선 겨울나무 냄새가 났다. 언 땅에 뿌리를 박고, 비로소 드러나는 나목의 견정함이야말로 만화방창의 꽃나무보다 아름답다. “따뜻한 곳에서만 피어난다면/ 봄꽃이 아니”며, 몸의 중심은 뇌도, 폐도, 심장도 아닌 “아픈 곳!”이라는 시인의 시편들은 북풍한설이 빚어낸 상고대이다. 혹한 속에서 더욱 옹골지고, 단단해져 “결단코/ 베어버릴 수/ 없는/ 역사”의 나이테이다.
_이시백(소설가) 아픈 곳이 몸의 중심 정세훈의 여덟 번째 시집 『몸의 중심』은 뚜렷한 노동시집이다. 시인의 노동 체험에서 직접 길어올린 시편들은 아니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가 강요한 노동자의 처지와 노동의 가치에 대한 치열한 사유와 실천을 수행하고 있다. 직접 체험에서 길어 올린 시편이 아니라고 해서 체험이 결여됐다는 뜻은 아니다. 노동자의 처지와 노동의 가치에 대한 시적 해석은 시인이 이미 청소년 시절부터 몸에 밴 노동자적 감성형식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즉 제3자적 관찰을 통해 노동의 현실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겪은 노동 체험이 여전히 그의 시에 꿈틀대고 있다는 말이다. 그 가장 강력한 예는 표제작인 「몸의 중심」이다. 시인에게 “몸의 중심”은 바로 “아픈 곳”인데, 시인 자신이 고된 노동을 통해 얻은 병마를 지나왔기 때문에 이런 통렬한 인식은 가능했다. 이번 시집에는 투쟁 현장에서 낭송한 시편들이 적지 않지만, 단순한 행사시를 뛰어넘는 울림의 정체는 시인 자신이 겪은 노동과 그 노동으로 몸이 크게 휘청댔던 경험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상처난 곳”은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는”이라고 말한다. “상처난 곳”을 어루만져 주는 일이 바로 이번 시집의 주제이며, 정세훈 시인이 노동자의 처지와 노동의 가치를 위해 싸우는 실천의 동력이기도 하다. 죽음이 삶보다 가까운 현실 부평4공단 드넓은 벌판에 삶이 죽음보다 가까운, 순풍인 듯 불던 산업화 바람 멈추고 사각형의 공장들이 하나둘 떠난 자리 원격조정 중앙시스템 장비가 갖추어진 화려한 빌딩들이 어지럽게 들어서고 떠난 공장에 버림받은 소년 소녀들 속절없이 불던 산업화 바람처럼 어느 사이 훌쩍 나이만 들어 기웃거리네 배회하네 죽음이 삶보다 가까운 부평4공단 드넓은 벌판을 _「부평4공단」 부분 시인에게 우리가 사는 삶은 차라리 죽음보다 못하다. 「부평4공단」이라는 시에는 ‘부평4공단’의 서사를 통해 노동자들이 근대문명에 소모되고 버려진 존재들이라는 문명사적 통찰이 담겨져 있다. 자본주의체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사각형의 공장들이 하나둘 떠난 자리/ 원격조정 중앙시스템 장비가 갖추어진/ 화려한 빌딩들이 어지럽게 들어서”는 현실을 ‘시장의 자기조정’ 같은 수식어로 현실을 은폐하지만 정세훈 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단지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뒤바꿔놓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삶을 지속시킬 권리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싸운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서로가 믿는 것이고 서로가 소망하는 것이고 서로가 사랑하는 것이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이라고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삶이라고 단언하지만, 종탑에 아득한 둥지를 틀어야 하는 삶 보듬지 못하는 이들로 가득한 날 _「종탑 위의 둥지」 부분 “종탑 위의 둥지”란 표현은 삶을 위해 극단적인 공간에 투쟁하는 삶을 꾸린 일에 대한 가장 리얼한 표현이기도 하면서 “종탑” 위에서도 “둥지” 같은 삶은 지속되고 있다는 역설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아니면 “공장을 허물어버린 자본”이 “울타리를 친” “허허벌판”에서 “목적 같은 시를 낭송하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허허벌판 울타리」) 자본이 버리고 간 공간에서 공장을 돌리려는 이 무모한 행동은 왜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일까. 그것은 “죽음이 삶보다 가까운”(「부평4공단」) 현실을 다시 되돌려 놓기 위해서이다. 이 시집에서 숨 막히는 현실에 대한 묘사가 반복되는 것은 바로 지금-여기의 삶이 그것을 계속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시는 무엇인가? 이런 현실에 대한 해법을 시에서 찾는 것은 물론 어리석다. 시는 오로지 이런 현실에 대해 우리가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주문을 노래로 표현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더 아파야 한다」는 주목을 요한다. “죽음이 삶보다 가까운” 노동자의 현실 속에서 시인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더 아파야 한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작품의 마지막 연에서 정세훈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더 아파야 한다 그 아픔 속으로 투신하여 내 목을 매어야 한다 정세훈의 이번 시집에서 일반적으로 회자되는 ‘문학성’은 할 말을 잃는다. 시인부터가 “있는 그대로만 써내도/ 아프고 눈물겨운/ 시가 되는 노동 이야기”(「노동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게나」)가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도리어 현실이 시인에게 과연 시를 계속 쓸 것이냐고 묻는다.(「시를 쓰지 말아야겠다」) 시가 현실의 이런 물음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인 걸까. 정세훈은 이번 시집에서 시인들에게 그것을 묻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