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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고조선의 성립
- 하늘을 열고 홍익인간을 외치다 건국 신화의 탄생 │겨레를 연 단군신화 │문명의 흔적이 증명하는 고조선 - 위만조선 최후의 전쟁 요동과 만주의 지배자, 고조선 │위만조선과 한제국 │한반도의 역사를 바꾼 조한전쟁 - 한국사 속의 역사 : 고조선의 수도는 과연 어디였을까? 2부 삼국 시대와 남북국 시대 - 동명성왕, 고구려 역사의 문을 열다 초기 국가 형성의 태동 │천제의 아들과 지신 유화 │주몽의 등장과 고구려의 건국 - 동북아시아의 패자, 고구려 한중일 역사의 열쇠, 광개토대왕릉비 │천하의 중심, 고구려 │백년간 대륙을 지배한 고구려 - 신라 전성기와 황룡사에 담긴 꿈 사로국 시대 │정복 군주 진흥왕 │불국토와 통일의 꿈을 담은 황룡사 - 천도로 본 백제의 역사 백제의 태동 │전성기를 구가하다 │웅진 백제 시대 │사비 백제 시대 - 고ㆍ당 전쟁과 신라의 삼국 통일 영류왕, 당에 화해를 청하다 │연개소문의 집권과 고당 전쟁의 신호탄 │나당 연합과 백제의 멸망 │2차 고당 전쟁과 고구려의 멸망 │나당 전쟁과 삼국 통일 - 또 다른 고구려의 역사, 발해 시대 고구려의 재건, 진국 │북방의 해동성국 │무너지는 발해, 멀어져간 요동과 만주 - 견훤과 궁예의 등장 천년 신라의 균열 │새로운 세력, 호족의 등장 │견훤과 궁예, 나라를 세우다 │후삼국 시대 - 한국사 속의 역사 : 한국사에는 신라에만 3명의 여왕이 있었다 3부 고려 시대 - 후삼국 통일을 달성한 태조 왕건 예언된 영웅의 탄생 │태조의 즉위와 후삼국 통일 │태조의 정치 개혁 - 동북아시아의 패자 요ㆍ금과 고려 고구려의 북진 정책을 계승하다 │‘고려, 거란, 송’의 삼각 구도 │금나라의 성장 - 고려 시대의 호국 불교 108 선종의 등장과 사찰 창건 │호국 염원을 담은 《팔만대장경》│불교의 재정비 - 유학과 의례 정비 최승로의 개혁정책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 │유학의 활성화 │과거 제도의 도입 - 무인들의 백년 세상 왕권에 대한 도전 │무인들의 세상을 열다 │최씨 정권의 등장 - 고려, 원나라의 지배를 받다 고려를 정복한 몽고 │몽고의 사위국이 되다 │백년의 원 간섭기가 남긴 잔재들 - 공민왕, 반원 자주 개혁을 펼치다 대원자 강릉대군 │공민왕의 자주 개혁 정치 │권왕 신돈 - 요동 정벌과 위화도회군 우왕은 누구의 아들일까? │위화도회군 │고려 왕조의 몰락 - 한국사 속의 역사 : 고려왕조가 내란에 시달리면서도 500년의 왕조사를 유지한 비결 4부 조선 시대 - 역성혁명과 태종의 개혁 역성혁명으로 새 왕조를 열다 │두 차례의 ‘왕자의 난’ │강력한 왕권 중심의 개혁 정치 - 세종이 꿈꾼 예치국가 충녕대군에서 국왕으로 │새로운 군주상을 확립하다 - 세조, 나라의 근간을 다시 세우다 수양대군의 집권 │세조의 업보 │나라를 다스리는 근간 《경국대전》 - ‘사화 → 반정 → 개혁 → 사화’의 시대 사화와 반정으로 얼룩진 연산군 시대 │중종과 조광조의 만남 │‘주초위왕’과 기묘사화 - 외척정치에서 군신정치의 시대로 외척 세력의 집권 │윤원형의 26가지 죄상 │붕당정치의 서막 - 조선왕조 개국 200주년, 일본의 침략 임진왜란 발발 │난세의 영웅들 │정유재란 발발 -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광해군의 즉위 │누르하치의 등장 │인조반정 │병자호란 - 북학의 수용과 실학 독자적인 문화 트렌드를 지향하다 │신흥 부자들의 출현 │실학의 대두와 전제 개혁 - 당쟁과 여인 천하 연잉군의 즉위와 노론의 장악 │정조의 비극 │여인 천하 시대와 세도정치 개막 - 한국사 속의 역사 : 조선의 왕조문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주목받다 5부 대한제국 시대 - 쇄국과 개항, 그 갈림길 서학과 천주교 박해 │이양선의 출몰과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 │개항의 물꼬를 튼 운요호 사건 - 민중 봉기와 동학농민전쟁 삼정의 문란 │농민 항쟁의 전개와 지배층의 무능 │삼례 집회와 복합 상소 │일본과 서양을 물리치고 대의를 세운다 - 근대화 개혁 근대 세계를 향하여 │임오군란과 갑신정변│갑오개혁과 을미사변 -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 대한제국 대한으로 국호를 정하다 │잊혀진 대한의 기적, 광무개혁 │고종황제와 독립협회의 동상이몽 - 대한제국의 주권 상실 러일전쟁의 승리와 대륙 진출의 교두보 │일본의 보호국이 된 대한제국 │대한제국의 종점 - 영원한 지배를 꿈꾼 조선총독부 정한론의 완성과 강제 병합 │조선총독부 운영과 참혹한 수탈 │민족혼을 말살하는 식민지 지배 정책 - 항일 민족해방운동 근대 민족과 국가의 탄생 │항일 민족해방운동과 근대화의 추진 │한국사 비극의 시작, 분단 - 한국사 속의 역사 : 조선은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 정책을 어떻게 이겨냈는가 국보 목록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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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어느 날 개간을 하던 한 농부가 거대한 돌을 발견하고, 현의 지사 장월에게 신고했다. 그 밑에 있던 관리 관월산이 탁본 작업을 했는데, 그 일부분이 북경 학계에도 알려져 관심을 끌었다. 비석이 발견된 후부터 청과 일본에서는 탁본을 해석?연구하여 이것이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의 일생과 업적이 담겨진 광개토대왕릉비라는 것을 밝혀냈다. 비문의 기록을 통해 5세기에 중국과 만주, 한반도, 일본을 아우르는 국제 관계가 고구려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음을 알아냈다. -‘한중일 역사의 열쇠, 광개토대왕릉비’ --- p.45
원 황실과의 혼인으로 세계 제국을 지배하기 시작한 원 제국 내에서 고려의 지위는 격상되었다. 이는 결국 30년에 걸쳤던 대몽 항쟁의 결과이기도 하다. 원 황실 내에서 고려의 지위를 잘 보여주는 내용이 「고려사」에 실려 있다. 충렬왕 20년 정월 원세조의 국상 때의 일이었다. “원나라 조정의 상제喪制에는 그 나라 사람이 아니면 감히 황제의 빈전에 가까이 가지 못하는 법이었는데 다만 고려 국왕만이 참여하는 특전을 얻었다. 그러므로 왕을 따라 간 신하라면 비록 가마꾼과 같은 천한 사람들도 출입을 금지하지 아니했다.”- ‘몽고의 사위국이 되다’ --- p.132 최초의 붕당은 이조 전랑의 자리를 놓고 시비가 붙은 데서부터였는데, 1575년(선조 8년) 심의겸과 김효원 간의 갈등이 불거지면서였다. 왕실의 외척인 심의겸이 신진 사림 김효원은 윤원형의 집에 기숙한 바 있어 행실을 잃었다며 이조 전랑에 있을 수 없다고 반대했다. 이에 대해 김효원은 사실이긴 하나 따로 이익을 탐해서는 아니었다고 해명하면서 자신의 강직함을 주장했다. 이 논란이 팽팽해지고 조정의 문제로 불거지자 이이는 조정자로 나섰다. 그는 선조에게 심의겸을 개성 유수로, 김효원을 함경북도 경흥 부사로 보낼 것을 청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율곡 이이에 대한 시비로 발전해 이이가 심의겸의 편을 든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게 되었다. 결국 사림들은 심의겸을 지지하는 쪽과 김효원을 지지하는 쪽으로 나뉘었다. -‘붕당정치의 서막’ --- p.187 인조와 대신들은 청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두드리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라는 치욕의 패전 의식을 행하게 되었다. 병자호란 후 청은 전쟁에서 이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삼전도비라고 불리는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를 세운다. 하지만 조선왕조에서는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고 한 점과 청에 대한 주전론을 편 자들을 높이 기렸다. 또 인조의 숭명배청의 정신을 높이 칭송하면서 친청주의에 빠진 소현세자를 비판하고 효종의 북벌론을 높이 평가했다. - ‘병자호란’ --- p.203 한국의 세계문화유산은 총 18점으로 문화(8점)ㆍ기록(6점)ㆍ무형(3점)ㆍ자연(1점)이 있다. 현재 조선왕조 문화와 관련된 세계문화유산은 다음과 같다. 문화유산에는 종묘ㆍ창덕궁ㆍ수원 화성ㆍ조선 왕릉이 있고, 기록유산에는 「훈민정음」ㆍ「조선왕조실록」ㆍ「승정원일기」ㆍ「조선왕조의궤」가 있고, 무형유산에는 종묘제례ㆍ종묘제례악ㆍ판소리ㆍ강릉단오제 등이 있다. - ‘조선의 왕조문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주목받다’ --- p.218 1871년(고종 8년) 4월 25일, 강화도에서 양요가 계속되는 가운데 흥선대원군은 “이 오랑캐들이 화친하려고 하는 것이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수천 년 동안 예의의 나라로 이름난 우리가 어찌 금수 같은 놈들과 화친할 수 있단 말인가? 설사 몇 해가 지나게 될지라도 단연 거절하고야 말 것이다. 만일 화친하자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나라를 팔아먹은 율律을 시행하라” 하고, 종로와 각도의 도회지에 척화비를 세우게 했다. 12자로 된 비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랑캐들이 침범하니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이로써 조선은 위정척사쭗를 위한 쇄국정책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 ‘이양선의 출물과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 --- p.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