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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 지평선 인간과 동물_ 기원전 31,000년 이전의 미술 횃불_ 기원전 31,000~10,000년 서유럽 미술 막연한 느낌_ 기원전 10,000년 이후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서남아시아의 미술 다양한 선택_ 기원전 5000년 이후 중앙아프리카, 멜라네시아, 일본, 유럽의 미술 말을 잃다_ 기원전 4000년 이후 폴리네시아와 스코틀랜드의 미술 2 문명의 형성 안개 속의 바위_ 기원전 3000년 이후 멕시코, 페루, 중국, 인도의 미술 흙 위에 그린 선_ 기원전 3100~2200년 이라크와 이집트의 미술 금속과 상인, 그리고 ‘마트(Maat)’_ 기원전 2000년~1350년 중앙아시아, 중국, 그리스, 이집트의 미술 완전한 원_ 기원전 1200~800년 멕시코 미술 3 고전주의의 전형 은밀한 암시와 사실적 표현_ 기원전 800~600년 북아시아, 시리아, 이라크의 미술 인간과 미술_ 기원전 650~330년 그리스와 이란의 미술 바람과 산_ 기원전 320년~기원후 100년 그리스, 인도, 중앙아시아, 중국의 미술 인용 부호_ 기원전 50년~기원후 150년 이탈리아 미술 4 중세시대 상이한 조각들_ 기원전 500년~기원후 500년 나이지리아, 페루, 유럽의 미술 노동과 기도_ 1~750년 북아프리카, 인도, 이탈리아, 시리아, 영국의 미술 밀림과 동굴_ 300~900년 중앙아메리카, 인도네시아, 인도, 중국의 미술 글과 형상, 그리고 빛_ 950~1250년 이슬람교, 기독교, 인도의 미술 근대 초기, 고대 후기_ 1000~1250년 중국, 일본, 캄보디아, 나이지리아의 미술 5 창과 문 연회와 앙상한 나무_ 970년대~1370년대 중국 미술 자연의 색깔_ 1240~1350년 독일과 이탈리아의 미술 텍스트와 텍스처_ 1330~1420년 이란,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의 미술 창을 열다_ 1390~1460년 북유럽과 이탈리아의 미술 개인의 열정_ 1440~1520년 플랑드르, 이탈리아, 프랑스, 이란, 인도네시아의 미술 6 세상을 재창조하다 탄생의 고통_ 1490~1520년대 멕시코와 북유럽의 미술 심상(心像)_ 1480~1520년 이탈리아 미술 고난_ 1520년대~1550년대 서유럽과 아프리카의 미술 철학의 정점_ 1540년대~1600년 네덜란드, 인도, 이탈리아, 스페인의 미술 7 극적인 현실 다른 시대_ 1530~1630년 중국, 남인도, 아메리카, 이탈리아의 미술 절정기_ 1600~1650년대 로마, 북유럽, 인도, 이란의 미술 시장과 표식_ 1600~1660년대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의 미술 더 풍요롭게, 더 선명하게_ 1620~1670년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의 미술 8 정착과 계몽 평화의 효과_ 1660년대~1700년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미술 서로 다른 꿈_ 1650~1750년 말리, 일본, 중국, 한국의 미술 웅장한 직조 예술_ 1710년대~1750년대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미술 대중_ 1730년대~1770년대 일본과 영국의 미술 고삐 당기기_ 1750년대~1780년대 인도, 프랑스, 러시아의 미술 9 달라진 진실 모더니티_ 1780~1805년 프랑스, 브라질, 일본의 미술 이상과 육체_ 1780년대~1820년대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의 미술 시각과 풍경_ 1790~1840년대 영국과 독일의 미술 새로운 체제_ 1800년대~1840년대 이란, 프랑스, 덴마크의 미술 교외로_ 1810년대~1850년대 프랑스와 일본의 미술 10 산업의 힘 소재와 현실_1840~1860년 프랑스, 독일, 영국의 미술 구경꾼_ 1840년대~1860년대 미국, 인도, 뉴질랜드, 서아프리카, 중국의 미술 자유와 의무_ 1860년대~1880년대 프랑스, 러시아, 영국의 미술 가속_ 1880년대~1900년 미국과 프랑스의 미술 고의성_ 1890년대~1900년 덴마크, 노르웨이, 프랑스, 멕시코의 미술 11 발전과 좌절 생명력_ 1900~1910년대 아프리카와 유럽의 미술 의문과 결합_ 1909~1914년 유럽 미술 기계_ 1915~1925년 미국, 독일, 러시아, 일본의 미술 보이지 않는 세계, 볼 수 없는 세계_ 1920년대~1930년대 유럽과 미국의 미술 철저한 계급_ 1929~1945년 멕시코, 미국, 유럽, 쿠바의 미술 12 전경 폭격과 폐허_ 1945~1955년 미국, 영국, 프랑스 미술 잘 차려입은 상인_ 1955~1964년 미국,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탄자니아의 미술 냉전_ 1965~1973년 중국, 독일, 영국, 미국의 미술 다중 사회와 탈근대_ 1969~1989년 미국, 독일, 캐나다, 인도, 호주의 미술 세계를 놀라게 하다_ 1980년대 이후의 미술 거기와 여기 연대표 참고 문헌 도판 목록(영문) 인명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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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남부의 홀렌슈타인-슈타델 동굴에서 발견된 이 작은 입상은 맘모스의 상아를 재료로 만든 팔뚝만 한 크기의 조각이다. 머리는 사자와 비슷하고, 인간처럼 두 발로 서 있다. 인류가 자연물에 형체를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 이맘때인 기원전 31,000년경일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갈겐베르크에서 발견된 춤추는 날씬한 여인상이나 근처 독일의 동굴에서 발견된 몇 점의 손바닥만 한 말과 들소, 새 조각상은 이 사자상만큼 오래된 것들이다. 이것들은 모두 대담하면서도 정교한 솜씨로 제작됐다. 인간이 도끼를 만들 때 발휘한 형태감과 세밀함은 인체 형태를 한 작품이라는 새로운 결과를 낳았다. 대칭, 비율, 팔을 새긴 부분의 균일한 공간감, 두상의 부드러운 표현 등 조각의 기본적인 기준이 마련됐다. 또한 홀렌슈타인-슈타델 동굴 안에서 이 모든 요소는 상상력을 위해 존재한다. 이 테리안스로프(Therianthrope), 즉 반인반수는 눈으로 관찰 가능한 자연물이 아닌 초자연적 신화에서 그 의미를 따왔음이 틀림없다. --- p.12, 「1. 지평선」 중에서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문명을 이룩하려 할까? 역사라는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라고 하면 답이 될지 모르겠다. 미술만으로 판단해 보자면, 우리가 막 선사시대 유물로 분류한 이스터 섬의 '모아이' 같은 거대 석상은 '올메크' 두상이나 '엘 란손' 기둥과 그리 먼 관계가 아니다(덧붙여 말하자면, 이것들이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없다). 우리는 아마도 겉모양보다는 막연한 느낌을 기준으로 사물을 분류하는지 모른다. 모아이는 어느 한 역사의 종점이었다. 하지만 산 로렌초와 차빈데완타르의 석상은 이후에 나타날 문화를 위한 선례를 제공했다. 올메크 두상에서 느껴지는 탄탄하고 세속적이며 치밀한 힘은 앞으로 중앙아메리카에 나타나게 될 조각 미술, 즉 마야와 아스텍 문명의 건축을 꽃피울 씨앗을 보여주는 듯하다. 안데스 산맥의 잉카제국과 스페인 정복 시대에 관심을 쏟는 디자이너들은 엘 란손 기둥에서 보이는, 조밀한 나선을 따라 거의 추상에 가까운 모양으로 새겨진 암호 같은 언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고대 석상을 고도로 복잡한 현대사회로 이행하는 멀고 먼 사전 단계로 이해한다. 그런 석상을 만드는 행위에 내재된 공포, 즉 현무암 덩어리인 '엘 란손'의 부자연스럽고 강압적이며 잔뜩 찌푸린 얼굴에서 보이는 원시적 전체주의는 우리를 움찔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모여 살았을까? 그렇다면 문명은 여러 뒤섞인 감정들을 내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 pp.35-36, 「2. 문명의 형성」 중에서 틀라졸테오틀(Tlazolteotl)은 아스텍의 '부정(不貞)의 여신'으로, 여신의 상징물인 달과 함께 나타나 불결한 욕망에 귀 기울이고 어두운 생각을 끌어들여 광기를 부추기는 존재였다. 게다가 부정한 틀라졸테오틀은 자신의 남자 형제를 유혹했음에도 건강한 옥수수 신(神)을 낳았다. 주먹보다 좀더 큰, 달빛처럼 창백한 이 돌조각은 후기 아스텍 미술의 야만적이면서도 단호한 정서적 요소를 모두 함축하고 있다. 이 조각상의 이면에는 시간과 자연, 인간 행동의 모든 측면이 서로 맞물려 있으며, 각각의 측면마다 완전히 상반되는 면이 부수적으로 따른다는 관념이 자리한다. 이 원칙이 봄의 신, 시페 토텍(Xipe Totec)같이 더욱 거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시페 토텍은 제물로 바쳐진 인간에게서 벗겨낸 피부를 둘러쓰고 기뻐하며 노래하는 신이다. 그 노래의 내용은, 수천 명의 포로들이 테노치티틀란 대사원에 목숨을 바쳐야 태양이 계속 빛나리라는 것이었다. 이런 엄청난 규모의 숭배 의식으로 섬겨지는 도자기 조각상들은 잔혹하게 피가 뒤엉키는 광경을 굉장한 구경거리로 여기며 한껏 즐겼다. 하지만 보다 개인적인 단계에서는, 비록 수확의 신인 옥수수 신처럼 인간의 아이가 갑작스레 모체 밖으로 튀어나오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일종의 냉정한 사실주의가 지배했다. 그것은 비극적인 지혜인 셈이다. 존재는 생을 갈망한다. 그리고 이는 또 다른 삶을 고통 속으로 빠뜨린다. --- p.181, 「6. 세상을 재창조하다」 중에서 상상컨대, 동서 교역은 이웃의 한국에 더 강력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1700년 이전의 동아시아 미술에서는 윤두서의 「자화상」 같은 작품을 발견하기 힘들다. 서양 문헌을 접하면서 한국의 유교를 근대화하려는 개혁의 움직임에 연루된, 이 박학한 양반은 알브레히트 뒤러처럼 내면에 대한 정밀한 탐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 위엄 있는 '나'의 뒤에 숨어 있는 동기를 찾으려면 15세기에 지적인 르네상스를 경험한 나라의 역사 속으로 깊숙이 들어서야 한다. 이 나라의 르네상스는 서양 못지않게 인간중심적이었다. --- p.268, 「8. 정착과 계몽」 중에서 에드워드 번존스의 「황금 계단」에서는 어떤 것도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그림에서 나온 것 같은 처녀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은 마치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번존스는 어떤 구체적인 해석을 이끌어낼 만한 단서를 전혀 남기지 않았다. 그보다, 계단을 내려오는 이 장면의 강조점은 1873년 영국의 학구적인 월터 페이터가 묘사한 감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그는 "모든 예술은 항상 음악적인 상태를 동경한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페이터가 이상주의에 새로운 양식을 불어넣는 데 일조한 르네상스 화가들에 대해 연구하면서 언급한 이야기다. 파리에서는 인상주의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사회사실주의가 유행하던 1870년대에, 런던에서는 모든 예술 분야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는 심미주의가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이는 오스카 와일드 같은 작가들과 오브리 비어즐리(Aubrey Beardsley) 같은 삽화가들에 의해 1890년대로 이어진다. 「황금 계단」은 니콜라 푸생이나 인도 화가들이 신봉했던 음악의 나른한 변주곡 같기도 하다. 이것은 훗날 추상회화의 부상에 영향을 미치게 될 공감각적인 주제이기도 했다. --- p.346, 「10. 산업의 힘」 중에서 1944년, 펠릭스 누스바움은 브뤼셀을 떠나 아우슈비츠로 가는 마지막 열차에 타고 있었다. 필자는 처음에는 직감적으로 여기에 '사진' 몇 장을 끼워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러시아의 드미트리 발테르만츠(Dmitri Baltermants), 초현실주의 파리를 떠나온 리 밀러(Lee Miller), 로버트 카파(Robert Capa), 그리고 카파와 함께 1947년에 매그넘(Magnum) 에이전시를 만든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처럼 용감하고 인정 많은 누군가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자행된 잔학 행위를 사진으로 기록해 놓았을 것이기 때문이다〔이중 가장 유명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은 전쟁 기간의 대부분을 독일군의 전쟁 포로로 보냈다〕. 그런 사진들은 또한 우리에게 참혹한 전쟁을 반성할 기회를 줄 수 있다. 그리고 기념물들이 그렇듯이 단순히 보는 행위만으로도 존엄과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림보다는 사진이 더 나은 방법일 수도 있다. 이 작품에서는 '유럽 문명'을 대표해 왔던 바로 그 매체와 기법이 우리를 수치심과 과도한 감상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 그림은 달리의 도전적인 시도와는 거리가 먼(하지만 그렇게 멀지는 않은) 방식으로 그려졌다. 한 남자가 용변을 보고 있고, 또 한 남자는 시커먼 모포를 뒤집어쓰고 구부정하게 앉아 있으며, 나머지 한 남자는 뒤를 닦고 있다. 어떤 방식에 더 신뢰가 가는가? 어떤 예술 방식인가? 사진인가, 그림인가? --- p.411, 「11. 발전과 좌절」 중에서 애나 멘디에타(Ana Mendieta)는 1970년대 중반에 뉴욕 페미니스트 그룹과 만나면서, 풍경 속에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 사진으로 찍는 작업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이를 '실루엣(Silueta)'이라고 불렀다. 1981년의 「섬」 같은 작품을 통해, 멘디에타는 신석기시대의 「파자르지크 여인상」에서 구체화된 이후 문명 체계에서 추방된, 진흙으로 만들어진 물질적 다산의 원형을 내세웠다. 이런 상징물은 페미니즘에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전형이 되었다. 하지만 멘디에타가 선택한 제목이 암시하듯, 초라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는 투쟁의 또 다른 영역과 연결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자기 몸을 대신한 이 작품에 '섬'이라는 제목을 붙임으로써 그녀는 열두 살이었던 자신을 추방한 조국 쿠바를 암시했다. 그녀는 망명과 고립이 미술계에 몸담은 여성으로서뿐 아니라, 미국이 오랫동안 억압하려 한 나라의 라틴계 여성으로서 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런 처지에서 느끼는 것은 분노로 인한 자극이기도 했고 비애감이기도 했다. 바로 그 비애감 때문에, 그리고 그런 이미지가 내향적인 여성 초상의 오랜 전통을 지속시키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는 '여성'에 대한 일종의 본질적인 진술이 되었다. --- pp.439-440, 「12. 전경」 중에서 1970년대 초, 도쿄의 급진파 대부분이 당시 체제에 더 많은 작품을 내주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있었을 때, 한국 출신의 이우환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선택을 했다. 그림을 그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우리는 창조를 멈추고 보기 시작해야 한다"라고 '모노하〔物派, 물파〕'의 동료인 세키네 노부오〔關根伸夫〕는 썼다. 이우환은 이를 안료와 캔버스에 적용하여 약간 바꾸었다. "인간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는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해 왔으며, 폰타나와 애니쉬 카푸어(Anish Kapoor)에 대해 감탄하는 글을 남겼다. 카푸어는 인도계 영국인 조각가로, 그 역시 공간을 실현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동아시아 관객들의 눈에는, 이우환의 그림이 강요된 예술 문화에 어쩔 수 없이 따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서양인들이라면, 목계 같은 화가들이 700여 년 전에 탐구한 젠〔禪〕 양식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이들은 모두 이제 거의 끝에 다다른 이 책에서 슬그머니 다뤄온 존재와 부재, 유(有)와 무(無)의 주제를 향해 열린 창이다. 「바람과 함께」라는 제목의 연작 중 한 점인 1990년 작품은 흔적들 외에 다른 것도 존재함을, 그리고 그것을 표현해 주는 말 외에 다른 것도 있음을 보여준다. --- p.466, 「12. 전경」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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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넘나들며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간을 매혹한 세계 미술사
지금까지 거시 미술사는 주로 서양ㆍ유럽 중심으로 르네상스부터 근대 미술에 비중을 두어 전개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예술가이자 비평가인 쿠엔틴 벨의 아들이자 화가 바네사 벨의 손자, 그리고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조카손자로 예술가 집안에서 성장하여 자신도 화가이자 미술비평가로 명망이 높은 줄리언 벨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 미술』에서 기존 서양미술사의 지역적,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여 독보적인 세계 미술사를 펼쳐 보인다. 손도끼, 동굴 벽화, 암벽화 등의 원시미술부터 잭슨 폴록, 로버트 라우셴버그, 게르하르트 리히터, 신디 셔먼, 리처드 세라, 모나 하툼, 백남준, 이우환 등 가장 최근의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미술부터 이스터 섬의 모아이, 멕시코의 올메크, 한국의 「윤두서 자화상」, 일본의 우키요에, 인도의 세밀화 등에 이르기까지 특정 시대, 어느 공간에 치우침 없이 세계 미술사를 거시적으로 통찰한다. 줄리언 벨은 미술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시간순, 공간별로 칼로 자른 듯 명쾌하게 구분하여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일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지만, 독자의 쉽고 편한 읽기를 배려하여 연대기적 순서를 유지하되 세계의 공간(나라, 혹은 문화)을 넘나들면서 "세계 미술의 다양성에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뿐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서 일어나는 흥미진진한 공감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같은 페이지, 같은 단락에 동서양이 함께 언급되곤 하는 것은 이 같은 저자의 의지 덕분이다. 무엇보다 영문학을 전공한 줄리언 벨의 열린 사유가 깃든 문학적인 글쓰기는 기존의 건조하고 현학적인 글쓰기와 달리 인간을 매혹해 온, 그리고 앞으로도 매혹할 세계 미술사의 아름다운 오솔길들로 독자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초대한다. 시공을 초월한 세계의 미술을 교직하여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그림을 그린다!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대표하는 352점의 매혹적인 예술작품을 통해 서양ㆍ유럽 중심의 미술사를 극복하여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서양을 종횡무진하면서 그를 관통하는 미술의 원류와 흐름, 발달, 영향을 자유롭게 통찰한다. 또한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이 한자리에 어우러지는 미술의 향연은 태초 이래 인류가 지구에 남긴 다채로운 궤적까지 불러들여 거울처럼 선명하게 되비춘다. 줄리언 벨은 이 책의 제목 '세상을 비추는 거울(Mirror of The World)'에 자기 신념을 담았다고 서문에서 이야기한다. "필자는 미술사가 어떤 독립적인 미적 영역을 향해 열린 창이라기보다는 세계의 역사를 우리에게 되비춰주는 하나의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술적 변화의 기록들은 아무리 방향이 뒤바뀌고 그 내용이 변해도 어떻게든지 사회적, 기술적, 정치적, 종교적 변화의 기록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거울은 어떤 형태로든 빛이 있어야 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모든 사물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필자는 이 책의 제목을 정하면서 그 안에 필자의 신념을 담고자 했다. 그것은 바로 미술작품을 통해 영원히 감춰질 수도 있었던 현실, 또한 진실을 담는 틀이 될 현실을 엿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다." 이처럼 줄리언 벨은 세계 미술의 역사를 올올이 풀어 나가지만 단순히 '아티스트(Artist)'와 '아트(Art)'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인류가 남긴 세계의 문명과 그 역사에 대한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과 세상과 시대를 반영하는 세계의 미술을 교직한다. 줄리언 벨의 『세상을 비추는 거울, 미술』을 읽는 것은 미술사를 개관하는 것뿐 아니라 인류의 역사를 조망하는 것과 같다. 미술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줄리언 벨은 "특별한 오브제와 그 오브제를 만든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통로로 '미술사'를 선택했다. 그래서 『세상을 비추는 거울, 미술』에는 거시적인 시각을 견지하지만 구체적인 미술작품을 언급할 때는 섬세한 감성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 자유로운 사유, 시대와의 공명을 통찰하는 식견이 빛난다. '미술이란 무엇인가? 그 시작은 어디인가?', '인간은 왜 미술을 하는가? 미술은 인간에게 어떤 만족을 주는가?'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여정 속에서 줄리언 벨이 선택한 352점의 미술작품은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준다. 줄리언 벨은 자신만의 언어를 이용해 현대인의 시선이 아니라 그 미술작품이 만들어진 당대의 눈높이로 독자의 상상력을 부추기며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 이야기들은 각각 별개처럼 보이지만, 줄리언 벨은 예술과 인문,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탁월한 통찰력, 번득이는 영감으로 인류 공통의 경험과 문화를 거울처럼 반영하는 연결 고리를 찾아내어 포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