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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미국
전우경 노스이스트 사이딩 사장 - ‘마이너리티 특혜’ 거부하며 사업 이근선 JG그룹 회장 - 디지털과 아날로그 접목, 광고 미디어로 차세대 승부 조일환 코만 스포츠웨어 회장 - 35년 전 보따리 장사로 시작해 연매출 2,500만 달러 의류회사 일궈 이덕선 얼라이드 테크놀로지 회장 - 미국 정부 IT공사 도맡아 소수인종 100대 기업인에 조규승 시카고 CNA인터내셔널 회장 - 미국 주재원 경험 살려 매출 2억 달러 가전유통 강자로 최정범 IL크리에이션 사장 - 미국 연방정부 구내식당 운영 내 손에 브라이언 김 터보에어 사장 - 냉장고 수리공서 매출 1억 달러 냉장고 업체 오너로 김병택 푸코 회장 - 무더운 텍사스주에 불가마 사우나 세운 괴짜 스테판 하 로킹햄 애셋 매니지먼트 회장 - 사업 24년 만에 미국 LA 간판급 부동산개발사 회장으로 최상오 상오 디벨롭먼트 회장 - 제철소 노동자서 워싱턴DC 재개발 주역으로 남기영 T-3 모션 대표 - 전기 3륜차 개발… 미국 경찰 패트롤카 휩쓸어 제이 리 바이디자인 사장 - 여자 혼자 미국 가 쟁쟁한 의류업체 CEO로 안창호 렉산 대표 - 우울증 치료 신약개발 도전… 글로벌 기업 꿈꾼다 알렉스 한 한 디벨롭먼트 회장 - 식료품가게로 종자돈 모아 미국서 알아주는 땅부자로 김광석?김희석 셰이크앤고 사장?부사장 - 미국 벼룩시장서 시작해 연매출 1억 5,000만 달러로 키워 장정헌 웰위시그룹 회장 - 회사 부도로 실직… 세탁소로 성공 첫걸음 뗐죠 김대원 위키드패션 사장 - 헐렁한 티셔츠, 늘어진 청바지로 미국 젊은이 사로잡아 대니얼 김 레드망고 북미 CEO - 한국 먹을거리·패션… 미국서 돈 될 게 너무 많죠 이희숙 북창동순두부 사장 - 한 우물 정성이 통했지요 PART 2 일본 김인원 선트래블 사장 - 고객과 가장 가까운 여행사 최종식 KJC커뮤니케이션 사장 - 눈물 젖은 빵 10년, 유아 젓가락으로 우뚝 서 심재철 신비재팬 사장 - 한방비누로 일본女心 사로잡아 이순배 거산재팬 사장 - 위기를 기회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도전정신 박태문 다이고 사장 - 가난한 유학생에서 한·중·일 유학사업 CEO로 김효섭 이동재팬 사장 - 한국 막걸리로 일본 애주가 사로잡아… 다음 타깃은 중국 장영식 에이산 면세점 회장 - 일본서 찾아낸 사업소질… 면세점 1위 밑천됐죠 PART 3 중국 온대성 대장금 대표 - 비빔밥에 한국문화를 비벼 팔아요 함홍만 극동해운항공 사장 - 한·중 이삿짐 60%는 제 손 거쳐가죠 오수종 천해공업 회장 - 대기오염 심한 베이징서 ‘무공해 車 가스통’ 대박 유기선 AIT 사장 - 짝퉁천국 중국에서 인사·물류관리 SW로 우뚝 이숙순 대일국제종묘 사장 - 중국 농산물시장에 우수한 한국품종 보급 대성공 이춘우 카라카라 사장 - 삼성 지역전문가로 중국과 인연… 유통시장 틈새 개척 도성배 우가네 사장 - 처음 온 손님에 쇠고기 강연… 결국 단골 돼 또 오죠 PART 4 기타 이철호 미스터 리 전 사장 - ‘미스터 리 라면’ 덕에 총리보다 유명 안평국 초원유통 사장 - 성실로 일군 ‘캐나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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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중소기업 지원 탄탄, 대기업과 동등히 경쟁
이근선 회장의 중소기업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본인 스스로 중소기업인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상대를 평가하는 잣대로도 이를 활용한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그의 관점도 이와 연결돼 있다. 그는 협정 체결 후 한국 중소기업들의 경쟁력과 설 땅에 대한 인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미국 중소기업들은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정부(카운티) 등의 다양한 지원을 통해 튼튼한 자생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조달 분야 등에서 미국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 손잡고 대등한 위치에 서서 참여할 수 있다. --- 'Part 1. 미국' 중에서 중저가 전략 중국서 통했죠 이춘우 사장의 성공 전략은 우선 ‘고가 브랜드로 승부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라’로 출발한다. 대다수 한국인은 중국에서 고급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쌓기 위해 처음부터 무리한 투자를 하는데 이는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설명이다. 이 사장은 “좋은 브랜드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며 “돈을 버는 브랜드가 좋은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우선 비용을 적게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현재 5%의 고소득층과 95%의 저소득층으로 양분돼 있지만 앞으로 저소득층 가운데 30~40%는 중산층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이러한 변화에 대비한 중저가 전략이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 'Part 3. 중국' 중에서 “노르웨이에서 라면이 먹고 싶다면 미스터 리(Mr. Lee)를 찾으세요.” 노르웨이 라면계의 전설 이철호(72) 씨는 ‘미스터 리’가 노르웨이에서는 라면을 뜻하는 고유명사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가 만든 라면 브랜드 미스터 리가 무려 20년이 넘도록 노르웨이 라면 시장 점유율 80% 이상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노르웨이에서 ‘라면왕’으로 불리며 총리보다 더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지난 2000년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시상식 때는 김대중 대통령을 두고 ‘미스터 리 조국의 대통령’이라 소개할 정도였다. --- 'Part 4. 기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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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국땅에서 부를 만들어낸 한국상인들
그들에겐 ‘세계’를 상대하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 한 때는 평범했던 이들이 ‘한상(韓商)’이란 또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스케일이 큰 돈벌이를 위해, 남달리 강한 모험심을 시험해 보기 위해… 저마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지고 세계라는 무대 위에 겁 없이 올라선 그들. 때로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때문에 바보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고비를 맞기도 했다. 이들의 체험담은 세계화를 부르짖고 있는 이 시대 한국인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말할 수 없이 소중한 자산이다. 한국에서 히트친 아이템은 외국에서도 잘 팔릴까. 한국에서의 사업노하우가 과연 세계에도 통할까. 외국에서 큰 실패 없이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세계를 무대로 성공했다는 이들이 자주 언급하는 두 개의 단어가 있다. ‘시행착오’ 및 ‘현지화’다. 실제로 굴지의 기업들조차 현지화에 실패해 주저앉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토대로 현지에 녹아들어 성공을 일궈낸 한국상인들이 있다. 매일경제는 2002년부터 재외동포재단과 공동으로 매년 10월 ‘세계한상대회’를 열고 있다. 이에 더해 해외 한상들의 귀중한 경험을 보다 생생하게 공유할 수 있도록 2008년 3월부터 미국, 일본, 중국 특파원들을 비롯한 중견 기자들의 현지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 ‘한상 성공 스토리’를 연재해왔고, 이제 이를 책으로 펴내게 되었다. 국내에선 듣기 힘든 한상들의 수많은 경험과 사연, 조언들을 엄선해 이 책 《한상》에 담았다. 여기엔 세계 각 나라들의 독특한 제도나 문화에 대한 설명도 녹아들어 있어, 세계를 상대로 사업을 준비하고 있거나 이미 사업 전선에 뛰어든 독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흥미진진한 사연과 함께 한상들 저마다의 특별한 사업노하우를 수록 1960년대 홀트 아동복지회를 통해 외국으로 입양되는 한국 아이들을 데려다 주던 대학생이 아예 미국에서 창업해 성공한 스토리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는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해 회사를 차렸고, 그의 기업은 미국 연방정부에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고 관리하는 어엿한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 연방정부 건물 10여 곳의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기업인도 있다. 상무부와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주요 연방정부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식사를 그가 책임지고 있다. 그는 한때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꿨던 음악도였지만 지금은 기업인으로서, 또 종군위안부 문제나 한국·일본 간 영유권 분쟁의 대상이 돼버린 독도를 지키려는 시민운동을 주도하는 사회운동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시장 진입이 어렵기로 소문난 일본에서 사전지식이 많지 않거나 일본어가 유창하지 않았음에 불구하고 성공한 한상도 있다. 그는 “거래처와의 신용을 생명처럼 소중하게 지키고 처음부터 배운다는 자세로 밑바닥부터 몸을 사리지 않았기 때문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며 “고객 한 명 한 명을 위해 수시로 한국을 드나들며 맞춤형 상품을 개발했다”고 말한다. 한국 막걸리를 일본에 유행시킨 한상이나 한국 유학생들에게 각종 정보를 제공하면서 학원과 잡지 사업을 확장시킨 한상처럼, 이국땅에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적절하게 사업에 접목한 사연도 많다. 중국은 1992년에야 국교가 수립된 만큼 한상들의 성공 신화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편이다. 생산원가를 낮출 목적으로 공장을 옮긴 기업들이 대부분이라 개인사업가들의 성공 스토리가 시작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사회주의 경험을 지닌 중국은 동일한 동양권임에도 사업환경이나 제도가 한국과는 천양지차다. 유대인 뺨치는 중국인의 상술과 근면성, 짝퉁, 술 문화, 관료들의 부패 등도 한상들을 위협하는 요소다. 중국에서 성공한 어느 운송회사 사장은 “사업하기 위해 중국으로 진출한 한국인 10명 중 9명은 망하고 1명만 살아남는다”며 “중국에서는 미리 1~2년간 언어와 제도, 문화를 배운 뒤 사업에 나서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수차례 힘든 고비를 넘겼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삼아 내놓은 생생한 비즈니스 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