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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Shakespe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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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리노
설마 그가 약속을 못 지킨다고 그의 살점을 떼어가지는 않겠지.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샤일록 물고기 밥으로 쓰지요. 아무 소용이 없다 하더라도 내 복수심은 채워줄 것이오. 그는 내게 모욕을 주었고……. 왜 그랬을까요? 내가 유대인이기 때문이죠. 유대인은 눈이 없습니까? 유대인은 손과 장기와 육신과 감각과 애정과 격정이 없습니까? 기독교인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무기로 상처를 입고, 같은 병에 걸리고, 같은 방식으로 치료를 받고, 똑같이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추워하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우리를 간지럼 태우면 우리도 웃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우리들에게 독약을 먹이면, 우리들은 죽지 않습니까?……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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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하여
요즘 고금리 사채를 잘못 쓴 채권자들이 사지(死地)로 몰리고 있다. 그와 같은 사건을 소재로 16세기의 극작가 셰익스피어가 쓴 극이 있으니 바로 「베니스의 상인」이다. 이 작품은 경제적 난관에 봉착하여 고리대금을 빌려 쓰고, 그 빚을 갚지 못해 생명의 위협까지 당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현대적이고 동시대적으로 느껴진다. 아울러 베니스의 법정이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간청하는 자비의 문제는 현대의 비인간적인 사채업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 가능한 담론이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극은 여기에 인종차별 문제라는 또 다른 문제를 첨부하여 작품을 좀더 복잡하게 끌어가고 있지만 말이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은 그의 4대 비극과 더불어 국내에 가장 많이 소개된 작품이다. 하지만 원본 그대로의 희곡으로 번역된 작품은 많지 않다. 대부분 소설로 번안된 어린이용 책이다. 명작을 어린 시절에 접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으나 문제는 번안물 자체가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처음 만난 그 작품 그대로 셰익스피어를 기억하게 된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번안물은 번안한 사람의 정치, 사회적 의도에 따라 원작을 개작할 가능성이 있어 받아들이는 독자들은 훼손품을 그대로 진품이라 믿을 위험성을 내재한다. 우리는 「베니스의 상인」을 그동안 권선징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 안에서 수용하고 해석해왔다. 샤일록은 「춘향전」의 변사또와 같이 악의 화신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샤일록이 마지막에 무대 뒤로 사라지며 길게 던지는 검은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인종적 편견이나 종교적 위선, 그리고 초기 자본주의 사회가 필연적으로 잉태하고 있는 고리대금업과 같은 사회적 문제들은 외면되어 왔다. 그러나 「베니스의 상인」은 읽는 방법에 따라서 여러 가지 해석의 길을 열어둔 작품이다. 샤일록에 대한 이중적 태도나 극의 이중구성과 마찬가지로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에서 주제적으로도 이항대립을 제시하다 종국에는 이를 흐트러뜨려 모호하게 만든다. 이 작품에는 사랑과 우정, 베니스와 벨몬트, 기독교와 유대교, 백인과 유대인, 문자와 정신 등이 상호 배타적으로 작품에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샤일록이 “육체적 고통이나 보편적인 인간 정서에 있어서 기독교인이나 유대인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듯 이러한 이항대립적인 주제들은 이들 대립항들의 본질적인 차이를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경계를 흩트리는 쪽으로 작용해 작품의 이면을 탐구하는 탐구자들에게는 다시 한 번 생각할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샤일록이 부채의 대가로 요구하는 앤토니오의 살 일 파운드가 샤일록의 잔인한 취미나 고약한 성미 때문이 아니라 그가 오랜 세월 느꼈던 모멸감의 표현임을 명시하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경계의 중간지대에 서서 양쪽을 넘나들며 대립의 장벽을 해체하고 대립의 양면이 지닌 문제점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