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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지하지만 야망을 가진 사나이들
2. 무지를 넘어서 행동으로 3. 마음의 변화 4. 밑바닥 5. 집으로 6. 두 번의 비극과 한 번의 승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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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는 성공했지만, 지질학자들이 북반구 전체가 빙하로 덮여 있었다는 빙하시대 이론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가시는 샤르팡티에의 견해에 대해서만 논의했다. 아가시에게 설득당한 사람들은 고대 빙하를 '샤르팡티에의 빙하'라고 말했다. 샤르팡티에 자신은 아가시의 빙하시대 이론을 믿지 않았다. 그는 대륙빙 이후에 비로소 알프스 산맥이 나타났다는 아가시의 견해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빙하시대 이론을 거부했다. 샤르팡티에도 대빙하 때문에 스위스의 기온이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온 하락에 따라 빙하가 더 켜졌다는 아가시의 반대 제안은 거부했다.
아가시의 빙하시대 이론에 따르면 제네바 호수 같은 스위스 호수들은 한때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그러나 현재 제네바 호수는 온통 얼어붙지 않는다. 호숫가 주변에 약간 얼음이 생길 뿐이다. 샤르팡티에는 제네바 호수가 밑바닥까지 얼어붙을 만큼 스위스가 추웠다고는 믿지 않았다. 호수가 얼어붙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혹독한 추위 속에서 비든 눈이든 거대한 빙하를 형성하고 유지할 만큼 많은 물이 생길 수 있다고도 믿지 않았다. 빙하시대 이론에 대한 샤르팡티에의 마지막 두 가지 반대 의견은 자신의 이론이 특정 지역 또는 스위스 빙하시대를 제안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경고하는 말이었다. 오늘날의 독자들은 당연히 샤르팡티에의 생각이 우리와 비슷하다고 가정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스위스가 북극처럼 추운 시기를 겪었다는 제안은 하지 않았다. 대빙하가 생기기 위해 반드시 극도의 추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대혹한의 시대 동안 거대한 대륙빙이 물리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도 믿디 않았다. 샤르팡티에가 보기에 훔볼트 빙하에서 또는 멜빈 만으로 쏟아져 나오는 빙하와 같이 끝없이 흐르는 빙하는 기상학적으로 불가능한 현상처럼 보였다. ---pp. 134~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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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한 과학사
『아이스 파인더』는 세사람의 엇갈린 운명을 극적으로 대비해 보여준다. 세 사라므이 이야기가 병렬구조로 진행되어 각 국면에서 그들이 느꼈던 성공과 실패, 보람과 좌절, 갈등과 화해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빙하가 그저 알프스 산 위의 고요한 눈더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빙하는 일종의 얼음의 강으로, 끊임없이 흐른다. 그 운동이 알프스의 깊은 계곡들을 깎고, 나이아가라 폭포와 슈페리어 호를 만들고, 수십 수백 톤의 해안 바위들을 저 내륙 깊숙이까지 옮겨 놓는 것이다. 타이타닉 호를 침몰시킨 거대한 빙산은 이런 빙하로부터 떨어져나온 조각일 뿐이다. 『아이스 파인더』를 읽고 있노라면, 거대한 빙하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우리의 눈앞에 선명히 다가온다. 그러나 저자의 일관된 문제의식은 '과학은 어떻게 진보하는가'이다. 아가시도, 라이엘도, 켄트도 모두 틀린 가정과 선입견에서 출발했다. 아가시는 알프스 지근에 살면서도 오랫동안 빙하에 주목하지 못했으며, 라이엘은 지질학적 힘으로서 빙하의 역할을 부정했고, 켄트는 얼지 않는 북극해를 믿었다. 하지만 그들의 무지에서 결국 전혀 새로운 지식, 빙하시대라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거대한 진실이 드러났다. 과학은 사실의 축적을 통해 점진적으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고정관념은 명확한 사실 앞에서도 가끔 완강히 저항한다는 것, 우리의 인식의 틀을 바꿀 수 있는 어떤 사건이 따르지 않는 한 새로운 이론이 정착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바로 이런 점에서 현재의 사실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도, 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