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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화의 주변을 읽다
2. 만화, 새롭게 탈바꿈하다 3. 만화, 다른 매체와 대화하다 4. 만화, 컴퓨터와 가까워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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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페르나 멕케이의 경우와는 달리 전통적인 만화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변형하는 데에 대단히 수동적이었다. 땡땡의 경우가 제일 그러했다. 에르제는 만화와 관련해서는 대단한 완벽주의자였지만, 만화를 둘러싸고 파생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내 일이 아니라는 듯 무관심하게 미뤄두었다. 앞서 광고에 대한 에르제의 태도에 대해 말한 바 있지만, 영화적인 각색에서도 그의 태도는 비슷했다.
에르제도 어린 시절에 영화를 매우 좋아했지만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계획들, 자신의 인물들로 작품을 만드는 일에는 늘 거리를 두었다. 어쩌면 스스로 능력이 없다고 여겼을 수도 있고, 모든 역량을 만화에만 쏟고 싶었을 수도 있다. 따라서 그는 각색 작업에 다른 사람을 고용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남에게 작성하도록 시키기도 했다. 에르제가 시나리오에 주석을 붙이는 경우가 있었다면, 이는 오로지 자기 만화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매체의 표현능력을 이용하려는 것도, 이야기 서술 구조에 변화를 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다만 만화와의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영화나 텔레비전 덕에 에르제는 만화 앨범을 더 많이 팔았고, 인쇄매체가 아닌 다른 분야에 적용가능한 요소들을 부차적으로 검토하게 되기도 했다. 가장 놀라운 점은 시청각매체로 변형하는 과정 자체가 다른 것을 파생시킨다는 것이다. 앨범도 그 중 하나다. 만약 에르제가 시청각매체와 앨범의 재료가 매우 유사하다는 점, 영화 '땡땡의 모험'의 제작이 그다지 어렵지 않을 정도로 두 장르가 인접하다는 점 등을 상기했더라면, 이 새로운 매체에 좀더 특벼한 관심을 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르제는 모든 것에 무관심했다. 장-피에르 탈보가 영화화했던 앨범들은 일종의 '영화소설'인데, 여기에서는 에르제식의 어더한 이야기 코드도 도입되지 않았으며 어떤 경우는 흑백, 어떤 경우는 컬러 사진이 첨가되었다. 『땡땡과 상어가 잇는 호수』의 경우 더 놀라운 것은 만화와 유사한 이 책의 이미지들을 애니메이션 필름에서 가져왔다는 점이다. 선명도와 완성도가 뒤떨어지는 이미지에다 아무렇게나 사용된 글들로 등장인물들까지 우스꽝스럽게 변하고 말았다. 하지만 에르제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작품들 간에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앨범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간주해버렸다.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 이런 새악이 오판으로 보이는 까닭은, 파생된 모든 결과물이 결국은 작품 자체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땡땡과 피카로스』에서 땡땡이 다른 작품에서 늘 입었던 상징적인 골프 바지 대신 청바지르 ㄹ입은 것은 애니메이션을 흉내내려던 결과가 아니었을까? --- pp.47~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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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슈이텐과 브누아 피터스는 프랑스와 베네룩스 국가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매우 높은 지명도와 인기를 얻고 있는 만화가들이다. 이들이 공동 작업으로 발표한 만화작품들은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에서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 두 젊은 작가는 만화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그들의 작업을 여러 장르로 확대시키고 있다. 말 그대로 "이미지의 모험"인 셈이다.
인기 있는 만화 주인공들을 살려 컴퓨터 게임을 만든다거나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동시에 출시한다는 일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화제가 되곤 한다. 그렇지만 문화산업의 부가가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마땅한 해답은 아직 찾이 못한 듯하다. 사실 이제까지는 만화 주인공들을 본떠 완구를 만들거나 각종 상품에 그 캐릭터의 모습을 찍는 데 그치는 것이 캐릭터 산업이라 불리곤 했다. 그 주인공이 원작에서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무슨 활약을 했는지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지, 모험을 떠나다 - 만화에서 멀티미디어까지』의 저자인 프랑수아 슈이텐과 브누와 피터스는 만화 캐릭터들이 상업적인 측면에서만, 원작에서 가졌던 신비감과 의미를 상실한 채 보품없이 이용되는 현실에 우려를 표하였다. 그리고 과연 만화의 이미지를 활용하면서도 그 이미지들의 개성을 존중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다양한 매체에서 많화의 이미지가 어떻게 나름의 형식을 띠고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두 작가는 개념 자체를 바꾸는 것에서 해결 방법을 찾고자 했다. 그들은 만화 작품의 이미지와 그 상상 세계를 영화와 설치, 공연으로 넓혀갔다. 각 형식과 매체를 만나 애초의 이미지는 다양한 형태로 변했다. 영화, 설치, 공연 형식 무대, 강연, 광고에서 그리고 시디롬과 인터넷에서, 각 매체 및 분야에 맍는 형식과 내용을 모색한 것이다. 이제 '퓨전'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음악 · 미술 · 문학 등 모든 학문과 장르에서 근본적인 사고체계의 전환을 반영하는 것이 되었다. 『이미지, 모험을 떠나다 - 만화에서 멀티미디어까지』는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 자원을 어떻게 생산적으로 활용해나갈 수 있는지 새로운 각도에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이제는 대중예술과 순수예술, 시각과 청각을 비롯한 모든 감각들 그리고 매체들 간에 경계를 짓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지, 모험을 떠나다 - 만화에서 멀티미디어까지』는 슈이텐과 피터스의 공동 작품인 『모호한 도시들』 시리즈를 중심으로 만화의 이미지가 종이에서 빠져나와 겪게 되는 사건들을 흥미롭게 펼친다. '모호한 도시들'은 픽션과 실재를 넘나드는 비현실적이고 불가해한 세계다. 탄탄한 묘사력과 공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집요하게 그려낸 건축적 공간과 분명하게 감지할 수 없도록 미묘하게 변화하는 색채를 통해, 독자들은 신비한 수수께끼의 도시로 빠져든다. 두 작가는 도처에 상징을 깔고 문학작품들을 교묘히 참조하면서, 이 기이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한다. 1983년 『사마리스의 거대한 벽들』로 시작해 현재까지 13권이 제작된 이 시리즈는 각각 다른 배경과 인물들이 펼치는 독립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을 그린 프랑수아 슈이텐은 이 시리즈로 2002년 앙굴렘 만화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미지, 모험을 떠나다 - 만화에서 멀티미디어까지』가 다루는 형식과 주제들은, 시대상을 반영함과 동시에 이미지를 둘러싼 여러 변화에 민감하다. 만화계를 둘러싼 사회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 만화 이미지가 인접 분야(포스터, 광고 등)에 사용되는 경우, 다른 표현매체와 교차되는 경우(강연, 전시 - 스펙터클, 박물관 전시, 사진, 포토 로망, 영화 등), 컴퓨터 분야에서 사용되는 이미지(멀티미디어, 시디롬, 인터넷) 등에 대한 설명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말에 이르는 이미지 관련 매체들의 다양한 양상들을 반영하고 있다. 슈이텐과 피터스는 만화책을 애니메이션으로 바꾸는 실험들을 일별한 후, 만화책 자체의 형식 전환, 영상과 음향을 동원한 강연을 소개하면서 이미지 변형의 여정을 시작한다. 두 저자는 자신의 많화세계를 설명하는 강연장에서 청중들과 교감하는 법을 배운다. 이 과정에서 미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내용과 인물들을 재발견하고 그 새로운 요소들을 중심으로 또 다른 창작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들은 이미지만 있는 만화책을 소리만 있는 소리극 형식으로 바꾸기도 하고, 사진에 이야기를 붙여 의미를 전달하는 포토 로망 형식에서 가능성을 찾아보기도 한다. 이런 경험ㅇ르 토대로 기획한 일련의 세노그라피들은 두 저자의 의도가 집약된 형식이다. 세트, 의상, 조명, 움직임, 음향, 관객의 반응까지 포괄한 공간 설치 작업인 세노그라피는, 만화책에 담겼던 이미지를 하나의 환경으로 조성하여 시각을 포함한 관람자의 오감을 총체적으로 자극한다. 컴퓨터에 기반한 멀티미디어로 눈을 도린 두 저자는 이제, 복잡하고 용량이 큰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시디롬과 진정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인터넷으 결합시킬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세노그라피나 시디롬처럼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데 여러 가지 분야들이 결부되면서 필연적으로 '작가'의 개념이 재정리보딘다. 작가가 절대적인 존재였던 만화 작업과는 다르게, 세노그라피와 멀티미디어 작업에서는 가 분야를 담당하는 전문가들이 모두 작가로 차여하게 된다. 이미지는 모험을 떠나면서 만화의 개념도 작가의 개념도 그리고 이미지 자신의 개념도 바꾸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