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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개정판의 출간에 부쳐
I. 서언 II. 안견의 시대와 화단의 조류 1. 세종조의 문화적 배경 1) 고전주의적 성향과 풍류 2) 후대의 귀감이 된 서화 2. 세종조 화단의 조류 1) 전대문화의 계승 2) 세종조 예단을 이끈 안평대군 3) 안평대군에 버금간 영응대군 4) 세종조의 화가들 5) 실경화 및 화론 6) 중국 및 일본과의 교류 III. 안견의 생애와 평가 1. 생애 1) 생존 연대 2) 충남 서산과의 관계 3) 정4품의 화원 4) 청산백운도 5) 시와의 만남 2. 평가 1) 15~16세기의 평가 2) 17~18세기의 평가 IV. 「몽유도원도」의 체일내력 V. 「몽유도원도」의 현상 1. 뒤바뀐 찬시의 순서 2. 재료 VI. 「몽유도원도」의 사상적 배경 VII. 「몽유도원도」의 화풍 1. 화풍의 특징 2. 화풍의 비교 VIII. 안견의 전칭작품 1. 「사시팔경도」 2. 「소상팔경도」 3. 「적벽도」 IX. 안견화풍의 영향 1. 국내 회화에 미친 영향 2. 일본 회화에 미친 영향 X. 결어 주석 참고문헌 그림목록 찾아보기 부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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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는 세종대왕의 셋째아들인 안평대군이 1447년 4월 20일(음력) 밤에 꿈꾸었던 도원(桃源)을 표현한 것으로 당시 최고의 화가였던 안견이 그림을 그리고, 가장 뛰어난 서예가였던 안평대군이 제기(題記)를 썼으며, 정인지, 김종서, 박팽년, 성삼문, 이개, 신숙주 등 21명의 명경(名卿) 문사(文士)들이 각기 시문(詩文)을 짓고 써서 그야말로 시(詩)?서(書)?화(畵) 삼절(三絶)의 경지를 구현한 작품이다. 그러므로 「몽유도원도」는 하나의 뛰어난 미술작품일 뿐만 아니라 세종조의 문화의 성격과 수준을 복합적으로 말해 주는 문화적 업적인 동시에 한 시대의 역사적 현상을 대변하는 막중한 사료(史料)인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단일 회화작품으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제일 널리 알려져 있으며, 또한 현존의 작품으로는 단연 가장 대표적인 걸작이라 하겠다. --- pp.16-17
「몽유도원도」가 현 소장처인 텐리대학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1950년대 초로 믿어진다. 텐리대학은 대금을 분할하여 지불했는데 그것이 완료된 것은 1955년이었다. 텐리대학으로 이 걸작이 넘어가기 전에 우리나라에 왔었던 일이 있다고 한다. 문화재 관계자들에 의하면 1950년에 장석구(張錫九)라는 우리나라 사람이 이 작품을 국내에서 팔기 위해 부산에 가져왔었으며, 당시에 고 손재형(故 孫在馨), 고 길용배(故 吉勇培), 이영섭[李英燮, 재미(在美)] 제씨가 실견(實見)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이 점에 관하여는 신기한 씨도 그의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장석구 씨가 8?15 후, 5년에 접어드는 어느 날 「몽유도원도」를 가지고 찾아와 “아우님, 내게 일본으로부터 가져온 우리나라 보배 중의 보배가 하나가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한국인에게 처분할 길이 없겠소.”하고 요청하므로 국립박물관, ‘모호한 수장가’, 중간 상인인 한용우, 유종염 등과도 교섭하였으나 모두 허사였다고 한다. --- p.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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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나라 3대 화가로 손꼽히는 안견, 그리고 그가 그린 「몽유도원도」에 대한 종합적인 해설서로, 조선 전기 회화사와 안견에 대한 연구를 필두로 한국회화사의 체계를 정립한 안휘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의 『안견과 몽유도원도』의 개정신판이다.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화가 안견의 생애와 삶, 안평대군과의 관계, 작품 활동, 주요 작품 등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역사적 사실과 여러 학자들의 연구에 기초해 분석하여 조선 전기 그의 작품 활동이 조선과 일본의 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 「몽유도원도」의 탄생배경과 화풍, 작품의 특징, 일본 소장배경, 작품에 담긴 사상적 배경 등을 서술해 「몽유도원도」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하고 있다. 이번 개정신판은 더욱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읽고 안견과 「몽유도원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글화 작업을 하고, 칼라 도판으로 최대한 교체 하였다. 그리고 새롭게 구성한 부록에서는 수십여 년 간 일간지 및 잡지 등에 게재했던 안견과 「몽유도원도」를 관련 단문을 비롯해 미술사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지 오리엔탈 아트(ORIENTAL ART)에 게재했던 영문 논문을 원문 그대로 수록하였다. 특히 이 영문 논문은 한국회화사를 국제학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는 중요한 논문인데, 특히 미술사를 공부하는 학생들과 한국미술문화 애호가들에게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따라서 개정신판 『안견과 몽유도원도』는 나라의 보배 중의 보배로 일컬어지는 「몽유도원도」를 폭넓고 심도 있게 이해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안견과 「몽유도원도」 에 모든 것’을 바친 노학자의 학문적 열정을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 최고의 미술사학자를 통해 다시 만나는 「몽유도원도」 일제강점기 고유섭 선생을 필두로 한국미술사가 이 땅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이래, 한국미술사학계는 당시의 열악한 환경을 딛고 독자적 연구를 위해 전문연구자의 탄생을 고대하였다. 미술사 연구 선진국에서 연구방법론을 습득함과 동시, 동?서양의 다양한 미술문화에 대한 폭넓은 안목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미술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할 연구자들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러한 학계의 요구에 부응한 미술사학자 중 한 명이며, 한국회화사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다. 미국 하버드대학과 프린스턴대학에서 존 M. 로젠필드, 막스 뢰어, 벤자민 로울랜드, 시마다 슈지로, 원퐁 등 당대 최고의 학자들에게 사사 받은 그는 동양미술사에서 한국미술사의 위치를 격상시키는 데 평생을 바쳤다. 또, 그가 국내에서 길러낸 제자들 역시, 현재 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들로 성장했다. 학계와 문화계에서 활발한 활동으로 대중에게도 익숙한 홍선표, 유홍준, 이주형 교수 등 수많은 후학들이 미술사학계 전반에 걸쳐 포진해 있다. 젊은 시절 인류학을 공부하려고 했던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김재원 박사의 권유와 당시 대표적 미개척 분야였던 한국회화사 연구의 절실함이 한국회화사 연구의 계기였다고 회고한다. 이 때 그가 처음 선택한 주제가 ‘조선 전기의 화단과 안견’이다. 이 연구에서 그는 흩어진 수많은 회화자료들을 수집 정리하고, 각종 사료 고증, 동아시아 삼국의 회화의 비교 분석으로 화가 안견과 그의 걸작 「몽유도원도」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업적을 남겼다. 게다가 이 연구는 학계의 모범적인 사례로 남아 많은 미술사학자들의 화가 및 작품 연구에 본보기가 되고 있다. 1. 조선의 화성(畵聖) 안견, 조선의 메디치 안평대군을 만나다 안견 혹은 「몽유도원도」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세종대왕의 셋째아들 안평대군이다. 그가 꾼 꿈이 모티프가 된 「몽유도원도」의 탄생에 얽힌 일화나, 안견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안평대군에 대한 이야기나, 뛰어난 서예가였다는 일화들은 너무나 유명하다. 하지만 조선의 왕자로 조선 최고의 예술가이자 후원자였던 안평대군의 삶은 실로 드라마틱하다. 당대 최고의 문사들과 함께 예림(藝林)의 총수로 불렸던 안평대군의 비참한 죽음은 현실 정치와 그의 예술적 감수성과 대비되는 아이러니를 보여 주기도 한다. 『안견과 몽유도원도』에서는 조선 전기 문화를 이해하는 핵심코드인 안평대군을 통해 독자들이 안평대군 개인을 넘어 조선 전기 문화적 양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리고 안견의 생몰년, 출생지 문제, 화가로서의 활동, 여러 작품에 대한 기록 등은 안평대군과의 관계 문제를 넘어 작가 안견의 삶과 작품 세계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2. 「몽유도원도」의 탄생부터 작품 분석까지 일본 텐리대학 중앙도서관에 소장된 「몽유도원도」의 국내 공개는 2009년 9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전’까지 총 3회 뿐이다. 게다가 소장처의 뜻을 존중해 공개기간 역시 극히 짧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몽유도원도」를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고 그 가치를 느끼는 것은 극히 불가능하다. 『안견과 몽유도원도』에서는 「몽유도원도」의 탄생부터 일본 소장 배경, 「몽유도원도」의 정확한 제원 및 작품 변형양상, 작품의 사상적 배경, 중국?한국?일본의 작품 비교를 통한 「몽유도원도」만의 특징, 일본 수묵화단에 미친 안견의 영향력 등등, 「몽유도원도」를 주제별로 완전히 해부해 꼼꼼히 기술하고 있어 작품관람의 아쉬움을 대신해준다.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몽유도원도」의 일본 소장 과정에 관한 부분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정리해 줄 수 있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는 미약했던 국력때문에 국보급 유물을 되찾을 수 없었던 안타까움도 함께 전하고 있다. 그리고 「몽유도원도」의 중심주제인 ‘도원’에 대한 고찰은 우리가 작품 속에 내재된 사상적 맥락을 이해하는 첩경이 된다. 조선시대 수많은 지식인들이 바라본 ‘도원’을 통해 우리는 「몽유도원도」가 어떤 그림인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작품의 표면적 이해를 넘어, 시대와 문화를 함께 읽어내는 한층 더 높은 안목을 가질 수 있다. 이렇듯『안견과 몽유도원도』에서는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이나 작품에 대한 상식적인 이야기들만이 아닌, 한 작가와 작품을 통해 조선 전기 전체를 통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하고 있다. 3. 새로운 연구 성과의 반영, 칼라 도판 사용, 영문 논문 게재 『안견과 몽유도원도』는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1987년 초판 발행 이후, 1991년, 1993년 두 차례 개정되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흐른 만큼 『안견과 몽유도원도』는 시대의 변화와 새로운 연구 성과에 따라 새로운 개정신판의 출간이 필요했다. 이번 개정신판에서는 먼저 한글세대 독자들에 눈높이를 맞춰 한글화 작업을 진행했다. 낯설고 어려운 한자어들을 한글화하여 독자들이 한층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두 번째, 칼라 도판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기존에는 칼라 도판이 제한적으로 사용되어 독자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칼라 도판 사용을 최대화하여 독자들이 한층 더 쉽게 작품을 이해하고 생생하게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세 번째,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의 안견과 「몽유도원도」 주제의 각종 글들을 모아 부록으로 구성했다. 이로써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수십 년간 쓴 안견에 대한 대부분의 글들이 『안견과 몽유도원도』, 이 한 권에 집약되어 나름의 기념비적인 의미도 부여되었다. 이중 오리엔탈 아트(ORIENTAL ART)에 실, 영문 논문은 미술사학계의 중요한 연구 성과 중 성과로, 지금껏 그 어떤 한국어판 도서에는 게재된 바 없었던 글이다. 이 논문은 특히 미술사를 공부하는 많은 학생들과 연구자들에게는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