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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Joan Baez, Mercedes Sosa & Konstantin Wecker - Three World, Three Voices, One Vision (1988년 독일 실황)
존 바에즈, 메르세데스 소사, 콘스탄틴 베커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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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출연진 소개 3

노래Joan Ba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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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안 바에즈 ,Joan Chandos Ba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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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Mercedes S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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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 소사

15세의 나이로 라디오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소사는 59년 최초의 레코딩을 했으나 가수의 길을 걷지 않았다. 하지만 60년대 초반 "새로운 노래" 운동, 즉 "누에바 칸시오네로" 대열에 참여했으며 65년에는 한 페스티벌에서 우승하면서 필립스와 음반 계약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 때가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67년에 최초로 유럽/북미 무대에서 공연을 했으며, 69년에는 아리엘 라미레즈와 "아르헨티나의 여인들"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군사 독재 때문에 이 무렵 소사의 곡은 라디오 방송이 금지되었으나 그녀는 꾸준히 자신의 앨범을 발표했고, 몇몇 영화에 출연하기도
15세의 나이로 라디오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소사는 59년 최초의 레코딩을 했으나 가수의 길을 걷지 않았다. 하지만 60년대 초반 "새로운 노래" 운동, 즉 "누에바 칸시오네로" 대열에 참여했으며 65년에는 한 페스티벌에서 우승하면서 필립스와 음반 계약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 때가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67년에 최초로 유럽/북미 무대에서 공연을 했으며, 69년에는 아리엘 라미레즈와 "아르헨티나의 여인들"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군사 독재 때문에 이 무렵 소사의 곡은 라디오 방송이 금지되었으나 그녀는 꾸준히 자신의 앨범을 발표했고, 몇몇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71년에 발표된 비올레타 파라에 대한 헌정 앨범 "Homenaje a Violeta Parra" 은 오늘날까지도 그녀의 대표곡 중 하나로 남아 있는 "삶에 감사하며(Gracias A La Vida)"라는 유명한 레코딩을 남겼다. 76년, 아르헨티나 최고의 암흑기라 할 수 있는 군사독재가 다시 시작되면서 (83년 군정이 종식되기까지 무려 3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소사는 감시는 물론 목숨까지 위협 받는 처지가 되었으나 계속해서 노래를 부른다.

1979년. 처참한 현실을 노래한 이유로 관객 300여명과 함께 공연장에서 체포. 결국 조국을 떠나 파리를 거쳐 80년 마드리드로 망명을 떠난다. 이 무렵 소사는 인생의 버팀목이었던 남편을 잃었을 뿐더러 지병인 심장병을 얻었다. 군정이 종식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1982년 아르헨티나로 컴백한 그녀는 끊이지 않던 기립박수로 유명한 82년 오페라 극장 공연을 가지며 아르헨티나 민중의 희망이 되었다.

"나는 전세계 민중을 위해 노래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건 나를 지지하고 지원해주는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니까요. 노래는 변합니다. 투쟁과 단결의 노래도 있고 인간의 고통에 대해 호소하는 것도 있습니다. 내가 1982년 아르헨티나로 돌아왔을 때, 나는 무대 위에서 국민들에게 새롭게 표현해야 할 방식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건 국민들에게 용기를 잃지 않게 해주는 것이었어요. 왜냐구요? 아르헨티나에 산다는 게 투쟁이거든요. 아니, 라틴 아메리카에 산다는 게 그렇지요. 나는 국민들에게 무슨 문제제기를 하고 싶진 않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에너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80년대에는 유럽과 북미/남미를 끊임 없이 순회하는 공연을 펼치며, 전세계적으로 그녀의 이름을 알렸고, 밀톤 나시멘투, 레온 히에코 등 남미를 대표하는 가수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를 벌이기도 했다. 89년에는 프랑스 문화부에서 그녀에게 메달을 수여하기도 했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 카네기 홀, 이태리 콜로세움 등 유명 공연장에서 매진 공연을 펼쳤고, 밥 딜런, 해리 벨라폰테, 스팅, 파바로티, 존 바에즈, 루치오 달라, 안드레아 보첼리 등 그녀를 극찬하고 함께 교류한 가수들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더욱 많은 팬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유니세프 인권 대사, 문화 사절 등으로 사회적 활동을 펼쳤으며, 유럽 망명 시절에 얻은 지병과 과로 등으로 인해 97년에는 병상에서 생사를 오가는 사투를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98년에 다시 재기. 컴백 공연과 앨범을 발표했고, 2000년에 신설된 라틴 그래미에서 수차례 상을 수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다시 보여줬지만 여전히 좋지 않은 건강 상태는 간혹 휴지기를 요구 했다. 일례로, 2003년 엘지아트센터에서 최초이자 아마도 마지막이었을 내한 공연이 예정 되어 있었으나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면서 공연이 취소되었고 소사가 타계한 오늘날까지도 많은 팬들에겐 진한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소사는 2009년 앨범"Cantora"가 발매되고 난 직후인 9월 18일, 신장과 폐 질환으로 인해 다시금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이미 수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겼던 그녀는 결국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시신은 국회로 옮겨져 일반인들의 조문을 받고 있으며, "의심할 바 없는 아르헨티나 음악계의 아이콘"이라는 말로 그녀를 기린 아르헨티나 정부와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3일간의 국가적 애도 기간을 선포함과 동시에 모든 빌딩이 조기를 게양하도록 조치했다. 남미의 각국 정부는 물론, 프랑스 정부에서도 그녀를 애도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전세계 수많은 뮤지션들과 그녀의 팬들이 메르세데스 소사를 추억하고 애도하는 글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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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Konstantin We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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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틴 베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매일
2009년 10월 22일
시간/무게/크기
130g | 크기확인중
KC인증

줄거리

[수록곡]

1. Wieder Dahoam (귀향)
2. Como Pajaros en el Aire (하늘의 새들처럼)
3. Der Himmel Brennt (하늘이 불타오르네)
4. Be Bop Rock
5. Farewell Angelina
6. Ellas Danzan Solas (그녀들은 홀로 춤을 추네)
7. Potpouri: Polleritas (포예리타 메들리)
a) Pollerita Coloro (선홍색 치마)
b) Carnavalito del Duende (요정의 사육제)
c) Pollerita (치마)
8. Wenn der Sommer Nicht Mehr Weit Ist (여름이 멀지 않을 때)
9. Maria, Maria
10. Anna Blume
11. Gracias a la Vida (인생에 대한 감사)
12. Yo Canto Porque Tengo Vida / Ich Singe, Weil Ich Lied Hab (살아있기에 나는 노래하네)

제작사 리뷰

Three World, Three Voices, One Vision

지난 10월 4일, 74세의 나이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뜬 '라 네그라(검은 여인)' 메르세데스 소사! 이제는 샤카리타 묘지에 누운 그녀의 생전 모습을 영상으로 추모하게 되다니... 이 영상물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비보를 접하고 순간 눈앞이 먹먹해지는 걸 애써 눌러 참느라 혼났다. 소사의 하늘길에 경의를 다한 배웅의 한가지로 이 영상물을 추가해도 될 것이라 믿는다. 멀디 먼 나라 한국에서 인디오의 혼불이 되어 타오른 소사께 머리숙여 명복을 비나리 한다.

우리나라엔 한때 김민기와 양희은이 '거치른 들판에 솔잎되어' 걸어온 시절이 있었다면, 멀리 북미에는 밥 딜런과 존 바에즈가 '솔숲 사이 흐르는 강물처럼' 멀고 긴 진보의 강을 푸르게 흘러왔다. 부럽게도, 그들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는 행진들이다. 한편 지구의 반대편, 아르헨티나엔 포크의 전사 빅토르 하라와 인디오의 어머니 메르세데스 소사가 있다. 소사의 노래는 혁명의 전야를 밝히는 등불이었고, 수천 수 만년 장엄한 인디오들의 응전과 해방의 역사를 추동해 내는 신령스러운 주문이 되어 무지한 세계를 일깨워왔다. 짙은 잿빛의 땅 유럽의 독일에는 콘스탄틴 베커가 있다.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 가수, 게다가 영화배우, 영화음악가, 뿐만 아니라 녹색 환경운동의 중추신경으로 독일 지성의 한축을 이루는 그는, 1947년 뮌헨에서 태어났다. 그는 평화, 생명, 지성의 사회참여에 눈을 뜨고 음악의 역할을 찾아 헌신적으로 투쟁했다. 20여장이 되어가는 음반을 발매했고, 독일 말로 노래하는 가수 '리더마허 (Liedermacher)'의 권위는, 차곡차곡 그이의 명성위로 쌓여져 독일에서 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오롯이 보이는 탁월한 예술가로 사랑받고 있다.

1988년, 독일의 한적한 소도시 크산텐에서 존 바에즈, 메르세데스 소사, 콘스탄틴 베커가 극적으로 만나 공연을 펼쳤다. 이들은 여기에서 '인생에 대한 감사', '살아있기에 나는 노래하네' 등의 성가와 비등한 노래들을 낭랑히 부른다. 오늘 그대가 듣고 보게 될 영상물은 바로 그날의 감격어린 기록물이다. 존 바에즈는 인권운동과 반전 평화운동을 상징하는 포크 가수다. 그녀는 1941년 뉴욕의 스테이튼 아일랜드에서 멕시코계 아버지와 스코틀랜드에서 건너온 어머니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물리학자였는데, 핵무기에 반대하는 과학자로 널리 알려진 분이었고, 어머니는 꽤 명성을 누리던 희곡작가였다. 아버지를 따라 캘리포니아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보스턴 대학에 진학했으나, 음악활동을 위해 결국 중퇴하였다. 존 바에즈는 정신적 동지이며 연인이기도 했던 밥 딜런과 함께 전국투어를 통해 인종차별 반대, 반전운동을 전개하다 일시 구금되기까지 했다. 1935년 아르헨티나 투쿠만이 고향인 소사는 15세 때 한 라디오 방송국의 노래대회에 입상하였을 때는, 그녀가 저항 노래 운동 '누에바 칸시온'의 한 획을 긋는 운명으로 자리하리라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모든 노랫말들이 불경하다는 죄목으로, 1975년 콘서트 도중 체포되어 심문을 당하고, 이후 칩거와 스페인 망명 생활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조국의 슬픈 현실을 끝내 외면하지 못하고 처형을 두려워않으며 귀국길에 오른 용기와 국민적 환대는 군부독재도 어떻게 대처할 길을 찾지 못할 정도였다. 소사의 감동적인 귀국 콘서트 는 라이브 앨범으로 발매되기도 했다. 군부는 몰락하고 소사는 민중들의 연인이며 어머니로 복권되었으며, 그의 노래는 아르헨티나는 물론 세계로 뻗어나갔다.

이처럼 비슷하면서도 또다른 이력을 자랑하는 세 가수가 1988년 독일에서 만나, 평화콘서트를 연다. 작센 시민들과 유럽 각지에서 몰려온 팬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로 이 세 사람의 놀라운 만남에 감격 또 감격한다. 특히, 베커가 군중 속에 뛰어들어 노래할 때 바에즈는 나이를 잊은 듯 개구지게 어깨춤을 들썩이며 춤을 추는 장면(조금 민망하기까지), 소사가 베커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태양의 힘살 같은 목청으로 굵게 노래하는 장면, 바에즈와 소사가 두눈을 마주하며 생을 감사하고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는, 이 3장면은 다시없을 이들 3인 콘서트의 빅 하이라이트이자 천계여행의 일순 같은 감흥까지 갖게 되더라면, 내가 심각한 허풍쟁이인가?

글/ 임의진 '여행자의 노래' 선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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