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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 - 자기사례 통해 한국남자 분석한 재미있고 의미있는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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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며 : 나는 누구인가
1장 두 개의 공간, 두 개의 자아 2장 집 - 두 공간의 결합 원리 3장 욕망을 달성한 오이디푸스 4장 신분에 기초한 커뮤니케이션 5장 세 얼굴을 가진 어머니 6장 동굴 속 황제 7장 아름답고 성스러운 질서 8장 재떨이 고고학 9장 아버지 위의 아버지들 10장 아버지 살해의 논리 구조 11장 선택이 아닌 진급하는 삶 12장 마음이 비천한 아이들 13장 두 가지 성 이야기 글을 맺으며 : 네 안의 아버지를 살해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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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아버지에게는 절대 복종하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는 아버지의 권력을 내 것으로 만든 후 권위와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구조는, 개인 차원의 성향이나 선악을 넘어서는 보다 근본적인 정치 문제를 포함한다. 그것은 개인과 단체,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규정하는 문제와 관련을 맺는다. … 우리 나라의 모든 하부 기관은 상부기관에 대해 사적인 존재로 전락하고, 최종적으로 육군 참모총장이나 국무총리조차 대통령에 대해 사적인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 … 이와 같은 우리 사회의 연쇄적·중층적 권위 구조가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그것은 한 개인의 평범한 삶조차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영위될 수 없다는 것이다.
--- pp. 206∼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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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는 왜 서로 다른 세 얼굴을 가지고 세 아들을 그처럼 극진하게 사랑했을까, 그런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는 듯하다. 물론 그것은 자식에 대한 본능적 사랑, 모정(母情)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 얼굴 현상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전달되는 한국적 방식이 있는 것 같다. … 어머니의 '세 얼굴 현상'은 19살에 시집 오 새댁을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았던 가부장제도에 대한 적응이자 응전이었다. … 세 얼굴 현상은 이래저래 우리의 슬픈 역사를 대변한다. 그것은 30년 동안 한 번도 자기 자신의 얼굴은 내세우지 못한 채, 자식들을 위해 살아온 한 여인의 자화상이다.
--- pp. 119 ~ 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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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공간에서 서로 다른 두 개의 언어를 배웠다. 하나는 아버지를 대할 때 사용하는 존댓말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를 대할 때 사용하는 반말이었다. … 나는 아버지, 은사님들, 선배, 직장의 상사, 공무원, 손님을 대할 때는 아버지 공간에서 배운 언어를 사용한다. 이때 사용하는 언어에는 어떤 정답이 있다. … 어머니, 내가 사랑하는 형과 동생, 친구, 후배, 직장의 부하를 대할 때 나는 '어머니 공간'에서 배운 언어를 사용한다. 이 언어는 내 마음의 진실에 보다 가깝고 내 느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소통과 지배의 언어이지만, 아버지가 나타나면 일순간에 거두어들여야 하는 말이다.
--- pp.32 ~ 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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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얼굴의 어머니, 유리벽 너머의 아버지 '나'를 형성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특징
이 책은 특정한 이론을 세우거나 결론을 내리는 유형의 책은 아니다. 개인의 입장에서 자신이 5∼12살까지 가족과 학교 안에서 겪은 사건들 중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사건들을 경험적·감각적 방법에 의존해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자 방법론이었다. 그 과정에서 부각된 인간형이 바로 '동굴 속 황제'였다. 동굴 속 황제는 모성(母性)의 동굴에서 양육되고 아버지의 질서에 의해 완성된, 한국 특유의 가족문화가 낳은 인간형이다. 황제를 만드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떤 사람들인가?
어머니는 전혀 다른 세 얼굴을 가지고 세 아들을 각각 극진히 사랑했다. 세 얼굴이란 세 아들을 대하는 각기 전혀 다른 태도를 말한다. 첫째, 어머니는 건달 기질이 다분했던 동생에 대해서는, 느끼한 남성미와 건달들이 때때로 보여주는 화끈함에 신뢰를 표하는, 얼굴이 잘 생긴 남자 가수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여자가 되었다. 둘째, 섬세하고 생명에 대한 민감한 감각의 소유자이지만 자본주의적 생존경쟁에 어울리지 않았던 형에 대해서는 현모양처형 여인으로 변신하여 그의 하루하루를 보살피려 했다. 셋째, 공부나 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나에게는 지적 허영심과 도덕적 자만심에 박수를 쳤다. 게다가 어머니는 세 아들 모두에게 '나는 자식들 중 너를 가장 사랑한다.'는 식의 애정 표현을 하곤 했다. 그 결과, 아들들은 각각 어머니가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고 착각하면서 살아왔다. 그것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머니가 나름대로 터득한 슬픈 생존의 방식이었다. 세 얼굴을 가진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 안에서 아들은 자신이 누구보다 뛰어난 존재라고 생각하는 황제의 기질을 갖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떤가? 아버지는 언제나 아버지의 길만 고집했다. 가장의 의무와 책임감을 생각할 뿐, 가족들과 사귀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기분이 좋으면 헛기침을 하고 일이 안 풀려서 벼랑으로 떨어질 것 같은 순간에도 마음을 드러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결국 아버지와 아들은 같은 집에서 살았지만 완전히 딴 세상에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대등한 인간이 아닌 '자식'의 관점에서만 대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윗사람, 아랫사람을 따지는 동굴 속 황제의 모습은 바로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동굴 속 황제가 어머니의 품에서 태어났다면, 그가 사회적 존재로 성장한 곳은 바로 아버지의 공간이었다.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는 국가와 세계 질서의 대변자였으며, 아들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첫 번째 통로였다. 아버지의 권위와 의미는 시시때때로 확인된다. 동굴 속 황제는 입으로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민주주의와 진보, 자유 등 근대적 가치를 말하면서도, 정작 몸은 봉건적인 권위주의와 신분질서에 물들어 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그는 20세기 한국사회가 겪은 혼란, 즉 근대와 전근대가 급격하게 교체되면서 빚어진 혼란을 몸으로 증명하고 있는지 모른다. 동굴 속 황제의 기질은 다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해롭다. 그는, 비록 겉으로 내세우진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허영심을 가지고 있다. 제대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스스로 위대한 그는 스스로 불행에 빠질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