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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보고 - 병 속의 악마
괴사(壞死) 물고기들 사형 집행 중 패치워크 바바 예투 그랑기뇰 감상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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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형 소설은 『그랑기뇰(Grand Guignol)』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어른을 위한 B급 호러이며 그 호러의 서사화이다. 그러나 그의 단편들은 B급 호러물의 분명한 선악 구도를 벗어나 있으며 소설 내부적 A급 서사를 워딩(wording)하고 있다. 『그랑기뇰(Grand Guignol)』 첫 번째 단편 「질병 보고」의 전염병은 세계보건기구(WHO) 전염병 등급 6단계이다. 6등급은 전세계적 경보인 판데믹(pandemic) 경보이다. 판데믹 상황에서, 즉 생존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상황에서 그야말로 어찌어찌하여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소년’의 이야기로 읽힌다. 그러나 시종 모든 단편에 등장하는 ‘소년’의 가치 판단은 2분법적 선악 구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소년은 집단 따돌림으로부터 굶주림으로부터 아버지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선악적 판단에 자신을 가둘 수 없는 호러적 서사 진행을 보인다.
「질병 보고」에서 자신의 창작 기법조차 노출하는, 이미 활자화된 부분을 지우는 방식을 택한다. 그러나 그 내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이태형의 소설적 살아남기는 각 단편 속 소년의 살아남기와 흡사하다. 「질병 보고」의 소년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괴사」의 단계를 밟게 되고, 불타거나 파손되지 않은 푸른 벽돌 저택 또한 뒤따르는 두 번째 단편 「괴사」로 이동해 이어진다. 습하고 축축하고 어두운, 저택 지하에 갇힌 소년은 파충류와 조류, 특히 ‘메기’라고 명명되는 어류들에 둘러싸인다. 소년의 몸 또한 인간의 모습으로 보기는 어려운, 파충류나 일종의 어류군으로 변해 있음은 「그랑기뇰」의 기본적 등장인물 변화의 모습이다. 온전한 모습으로 묘사 진술된 인물들은 대개가 침략자들이거나 사냥꾼 정도이다.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판데믹에서 동물적 감각으로 살아남았으니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그 소년의 모습은 사람의 모습이라 보기 어렵다. ‘팔 다리 있는 물고기’(p.54)에 이르면, 그 괴기스러움 혹은 키치적 상상력은 B급 호러물을 넘어선다. 그 팔 다리는 역 진화의 과정을 겪는 인간의 팔 다리일 수 있다. 그 팔 다리가 퇴화 혹은 용불용설로 제거된 매끈한 어종으로의 변신을 보여주는 이태형의 소설들은 인간의 진보나 진화를 전혀 믿지 않는 소설이다. ‘걸어다니는 파충류’ (p.55) 또한 같은 맥락이다. 세 번째 단편 「물고기」에도 ‘소년’이 등장한다. 그 단편은 제목조차 그 의도를 전혀 숨기지 않는다. ‘100여명의 노예’(p.77) 아이들을 급기야 물속 생물로 돌려보내는 즉 포유류로의 진화 역 방향 단계로 돌려보내고 만다. 아이들은 곧 물고기들이거나 물고기들이 된 것이다. 아이들의 모습은 눈에 띄게 변해갔다. 아이들의 눈은 이제 더 이상 포유류의 것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중략) 그 큰 입은 쉬지 않고 뻐끔거렸다. 피부는 점액질로 뒤덮여 미끈거렸다.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얇은 물갈퀴가 언뜻 보였다.(p.83) 위 인용문의 내용은 어화(漁化)된 아이들의 모습이다. 은근슬쩍 ‘망상’이 아닐까 의심해 보지만 그것은 진술을 위한 진술일 뿐이다. 앞선 3편의 단편이 일정 부분 내용적 연결고리가 있다면 4번째 단편인 「사형 집행 중」은 어류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뱀 혹은 파충류가 대신한다. 사형 집행인이었던 소년의 아버지 피부는 ‘마치 파충류의 비늘 같이 갈라져 있는 끈적끈적하고도 매끄럽게 반사되던 감촉’(p.96)이었으며 소년이 운신하는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양각 문양은 뱀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태, 두 마리의 뱀이 꽈배기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이다. 족장이자 사형집행인이었던 아버지가 아들의 괴기스런 성장 모습에 ‘모욕감’을 느끼고 아들의 돌칼로 자살하고 그 아들은 누군가에게 끌려 5층 대저택에 도달한다. 소년은 거기서 열쇠꾸러미를 발견하고 잠긴 두 개의 방 중 어떤 방을 먼저 공개할지를 전제한, 두 가지 경우의 서사를 노출한다. 저장 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p.103) 말하자면 소설 102쪽까지의 내용을 저장하겠느냐는 말이다. ‘예’를 선택하고 이어 어떤 방문을 열지, 방문을 열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순간부터 이 소설은 필연적으로 두 가지 결말을 보인다. 첫 번째 1층의 지하실을 여는 것으로 시작된 첫 번째 경우의 결말이 ‘단 한 권의 책’을 품에 안고 먼 길을 떠나는 ‘normal ending’으로 기표화 되었다면, 두 번째 경우의 결말을 전제하는 기표 시작은 아래와 내용으로 시작된다. 로딩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p.112) 위와 같이 시작된 결말은 ‘기억’이라는 핵심어로 종결된다. 아버지가 나고, 내가 아버지였던 그래서 내 기억이 누구의 기억인지 불확실한 ‘나’는 결국 자신의 양 발을 잘라 자살하고 만다. 어떠한가? 두 가지 결말에서 다른 미학이 보이는가? 이태형의 소설은 비정상과 괴물, 어류와 파충류 그리고 네 발 포유류로의 끝없는 환각적 환원을 보이며 종결된다. 왜 그러한가? 진화의 방향이 포유류인 인간에게로 집중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어른들만의 은밀한 죄의식이 그 환원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역 방향으로의 퇴화 혹은 진화의 진술을 보여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모욕당하고 폄훼되며 또한 혐오스러운(애초에 혐오스러웠던) 본래 모습, 다듬어지지 않았던 초기 인류, 네안데르탈인 혹은 호모 사피엔스 쯤으로 되돌려진다. 이태형이 자기 존재를 정립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기표이자 기의는 ‘그랑기뇰’이다. 그랑기뇰을 내포한 기표들은 하나의 커다란 명사 집합체이다. 살인, 방화, 동물적 외피로의 변환, 폭력, 자살 등이 그 기표들이다. 인류 전체의 육체를 대신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태형은 산업 사회의 특정 소비 계층을 향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태형은 본격소설과 장르소설 사이의 아슬아슬한 어떤 지점에 숨어 두 눈만 드러낸 체, 자신을 훔쳐보는 독자의 시선을 즐기는지도 모른다. 그 즐김이 반복적 주이상스로 끝나지 않으려면 그는 독자와 정면으로 당당하게 마주서 눈 맞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작가의 말 1 어제 저녁 우리는 어느 이름 모를 섬에서 헤매고 있었다. 우리는 보다 멀리 가기 위해 차를 빌려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은 이곳에서 떠나지 않기로 결심했고 바다로 나갔다. 그날은 평소와 달리 소금기가 거북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약간의 고민 뒤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름조차 서로 묻지 않은 물고기들과 바다에서 한참을 놀았고, 밤이 되자 우리는 그 물고기들이 먼저 잡아 놓은 ‘무한 호텔’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허름한 숙소에 묵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지금도 그 방의 번호가 27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바다에서 우리와 함께 놀았던 물고기들은 29에 묵었는데, 당연한 일이지만 물고기들의 밤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우리는 끝없는 복도를 오랫동안 헤매었지만,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마치 복도를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듯 태연히 옆의 문을 열고 우리의 밤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우리는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다시 바다로 나갔다. 어제와 달리 우리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볼 수 없었다. 우리는 걸려올 리 없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 속 목소리는 우리에게 휴가가 어제까지였다는 것을 알려 주었고, 우리는 모든 돈과 원고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오늘의 출근과 내일의 마감을 모두 잃어버린 우리는 서로 정반대의 방향으로 목적 없이 뛰기 시작했다. 어느덧 바다는 사라졌고, 우리는 꿈에서 깨어나 침대에서 안도했다. 2 너는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흐르는 시간을 죽였고, 한 낮에 잠을 청했다. 꿈속의 꿈에서 소년이 너를 비웃었고, 너는 소년을 꿈꾸길 멈췄다. 소년은 사라졌고, 이제 지금까지와 다른 시간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네 여행은 머릿속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했고, 너는 찰나도 앞으로 가지 못했다. 너는 아직도 너를 어딘가 존재했던 탄광촌의 소년으로 기억하지만, 남들에게 그런 네 모습은 전혀 남아있지 못했다. 3 소년은 사람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아무도 소년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소년 역시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소년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온전히 홀로 존재했기에 소년은 완성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소년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남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카트리지를 갈아 끼우면 다른 게임이 실행되듯, 그때그때 다른 사람으로 살았다. 소년은 각각의 상황마다 나름 연기를 잘 해냈지만, 그럴수록 더욱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소년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소년은 잠이 들었고, 그 잠은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다. 시간은 흐르거나 흐르지 않았다. 그 속에서 소년은 자신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소년은 잠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여전히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조금은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 행복은 진짜였을까. 잠든 소년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 눈물조차도 연기였을지 모른다. 4 마지막으로, 이 끝나지 않는 소년의 꿈을 함께 봐준 당신에게 감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