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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서 있다
일렬로 행진해 쇠붙이들 토마토 레드 전봇대 네트 그녀는 떡볶이를 좋아해 붉은 강 건너다 코끼리 한 마리는 어디에 있나 해설_아웃사이더의 눈에 비친 우울한 카니발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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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쯧, 오래 살기는 틀린 녀석이군. 흐흐 잘했어. 자 이리 오렴.”
코끼리는 그를 향하여 느릿느릿 걸어 나왔다. 그러나 박의 손이 닿자 녀석은 긴 코를 휘저으며 쏜살같이 컨테이너를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와 사육사는 입만 벌리고 서서 어둠 속의 도시를 향해 질주하는 녀석의 뒷모습만 좇을 뿐이었다. 한참동안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던 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봐, 이거 말이야, 원래 없었던 녀석이 생긴 거나, 있는 녀석을 없다고 하는 거나 뭐 다를까? 사실 저 녀석은 가짜잖아.” “그럼 가짜가 진짜가 된 건가요?” “아니지, 없었던 진짜가 실체를 가진 가짜가 되는 거지. 되게 헷갈리는군. 하지만 그건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우리는 떠돌아다니는 말들이나 주워들으면 되지. 그것들을 엮는 것은 배운 학자들이나 떠들고 싶어 환장하는 시민들이 할 일이고. 아무튼 앞으로 진짜 양치기 소년들이 나타나게 생겼어. 바빠지게 생겼군. 그나저나 녀석이 심한 난동이나 부리지 말아야 할 텐데. 우리 손에 금방 잡히겠지만 말이야, 당분간 잠자코 있게. 또 원장이 연락을 해올 테지. 이제야말로 진짜 사냥을 하게 생겼네. 헌데 코끼리 한 마리가 도시를 돌아다닌다고 뭔 일이 나겠어?”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멀리서 코끼리의 울음소리가 나팔소리처럼 들려왔다. ---'코끼리 한 마리는 어디에 있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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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서 있다
주인공인 ‘나’는 여고생이다. ‘나’는 오랜 기간 아빠에게 성추행을 당해오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올 것이 온다.’ 엄마가 그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아빠는 병에 걸리는 천벌을 받지만 이 가족은 회복될 길이 없어 보인다. 어느 날 친구들과 하천의 가운데에 며칠이 지나도록 서 있는 한 마리 새를 발견하고 ‘나’는 친구들과 함께 그 새가 서 있는 까닭을 확인하기 위해 하천으로 뛰어든다. 철사에 옭매어 있는 새. ‘나’는 친구들과 그 새를 구하려고 노력하지만, 끝내 구하지 못하고 새의 사체만을 꺼내어온다. 그러나 ‘나’와 친구들은 하나도 슬프지 않다. 노래방으로 간 ‘나’는 친구들의 성기를 꺼내어 하나씩 입에 물고 그동안 상상해왔던 일들을 벌인다. 일렬로 행진해 ‘나’는 한 지역 케이블 방송국에서 일하는 계약직 직원이다. 재계약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회사에게 불법에 가까운 방식의 재계약을 종용받고 있는 중이다.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꽉 막힌 현실 속에서 일탈을 꿈꾸는 ‘나’.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비둘기를 수족처럼 부리는 노숙자를 만난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나’는 그에게 비둘기를 데리고 공사장 골리앗 크레인 위로 올라가보라고 꼬신다. 그를 통해 해방감을 맛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번번히 거절하는 노숙자. ‘나’는 그런 그가 야속할 뿐이다. 어느 날 비정규직들끼리의 모임에 참석한 나는 꽉 막힌 현실만을 재확인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오다가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선 노숙자를 발견하게 된다. 과연 일대 소란을 겪게 되는 주변.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현실임을 깨닫게 되는 ‘나’. 크레인 위로 집결했던 비둘기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고 모여 있던 인근 사람들에게 똥 세례를 퍼붓는다. 쇠붙이들 기승하던 고철 도둑들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고철 값이 폭락하고, 자신들의 일터를 빼앗긴 영주와 성철, 준태. 그들은 하나뿐인 자신들의 트럭을 몰고 고철 도둑질을 자행 중이다. 자신들의 파라다이스인 고물상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하다. 성철, 준태가 믿고 있는 만큼의 돈이 영주에게는 없다. 결국 점점 쌓여만 가는 고철들. 빗길 위를 헤매던 그들은 바닷가에 공사 중인 빈 집을 발견하고 하루를 묵는다. 아침이 밝아오고 모랫길 위를 신나게 달려보는 그들. 순간 트럭이 모래에 빠지게 되고 다투던 그들은 트럭을 가볍게 하기 위해 자신들의 훔친 고철들을 모래 위에 내려놓는다. 일순 그들만의 성역으로 변하는 그곳. 영주는 성철, 준태 들과 함께 잠시 행복하지만, 차를 빼기위해 트럭에 타는 순간 현실을 깨닫는다. 그들을 버리고 도주하는 영주. 그녀는 한마디를 할 뿐이다. “잘 가라. 쇠붙이들아,”라고. 네게 ‘나’는 40대 여자 직장인이다. 승진 심사에서 누락된 어느 날 그녀는 될대로 되란 식으로 술자리에 참여하고 그날의 술자리는 동영상에까지 찍혀 급속도로 회사 내에 퍼져나간다. 그날의 계기로 점점 분열증에 빠지게 되는 그녀. 그런 그녀는 자신의 남편으로부터 버림받고 어릴 적 한 사건과 조우한다. 자신의 친구였던 문둥병 소녀의 죽음이 그것이다. 이인칭 시점으로 인간의 내면을 냉정하게 파고든 수작이다. 토마토 레드 돌이킬 수 없는 경제 공황 이후, 폐허가 된 미래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장은 정부가 제공한 사어버 세계와 난민수용소에서 동시에 살고 있다. 사이버 속 삶에는 집도 있고 사랑도 있지만 현실은 암담할 뿐이다. 어느 날 사랑했던 그녀마저 사라져버린다. 그 고통에 몸부림치는 장은 배급이 있던 어느 날, 버려진 차를 습격하는 동료들을 본다. 고통스런 현실과 사이버 속 고통 속에서 허덕이는 장에게 친구 단은 권력자 조가 여자를 숨겨놓고 있을 거라는 추측을 전한다. 문득 사라져버린 그녀가 잡혀 있는 여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는 장은 몰래 조의 숙소를 찾아간다. 전봇대 네트 얼마 전 있었던 대통령의 규제 완화 정책을 희화화한 소설이다. 집안의 답답한 현실을 집 앞 전봇대에 전가하는 가족의 모습이 유머러스하게 표현되어 있다. 박은 가장으로 번번히 승진에서 누락되는 공무원이다. 그는 어느 날부터 유행처럼 나붙기 시작한 전봇대 위 부적 해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편 그의 아내 김 여사는 남편의 승진과 재수를 하고 있는 돌머리 문제 아들 성훈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당을 찾아간다. 무당은 그녀에게 부적을 건네어주며 집 앞 전봇대에 붙이라고 명한다. 그들의 아들 성훈은 인터넷을 통해 사이비 교주 ‘검은 독수리’를 만난다. 그는 전봇대 네트의 해체를 설파한다. 포복절도할 아이러니적 상황을 통해 집 앞 전봇대에 모이게 된 가족들. 교주와 퓇께 전봇대에 매달려 있던 성훈이를 구하기 위해 박은 뛰쳐나가다 나동그라진다. 그녀는 떡볶이를 좋아해 ‘나’는 성실하지만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평범한 공무원이다. 별정직 상사로 그녀의 고등학교 동창 김주연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김주연과 ‘나’는 고등학교 시절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어느 날 ‘투스타’의 딸이었던 동급생의 학업 비리를 고발하기 위해 언론사 배포용 편지를 쓴 ‘나’와 김주연. 그러나 ‘나’는 겁에 질려 이에 대한 실행을 포기하고 만다. 우연인지, 그녀와 거리가 생긴 ‘나’. 김주연과의 갈림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잘 살던 집안의 몰락과 가출 그리고 운동권 출신으로 삶을 선택한 김주연과 평범하게 살아온 ‘나’의 간극은 이제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다. 떡볶이 집 앞에서 재회하게 된 그들. 문득 비가 쏟아지고 ‘나’와 주연은 힘을 합쳐 떡볶이 집 아줌마를 돕는다. 화해가 이뤄진 것이다. 붉은 강 건너다 소설의 시점에 대한 실험적 형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임시직인 해주는 유부남이자, 정규직인 태호와의 정당하지 못한 관계를 통해 정규직이 된 작은 케이블 방송국의 직원이다. 그러나 태호와 함께 감사에 적발된 해주는 둘 중 한 사람의 퇴직을 종용받고 있다. 갑자기 등을 돌려버린 태호. 해주는 그런 현실에서 도망치듯 갑작스런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 여행길에서 만나게 된 남자와 그 남자의 아이. 그들은 한 민박집에 들게 된다. 함께 술을 마시게 된 남자와 해주는 익명성을 통해 인간 내부에 있는 욕망을 발현하게 되고 남자는 혜주를 교살하게 이른다.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의 경계마저 모호하게 만드는 욕망의 언저리를 잔인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코끼리 한 마리는 어디에 있나 어린이대공원에서 있었던 코끼리 탈주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온 소설. 어느 날 한 대공원에서 코끼리가 탈주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사건은 이내 수습되지만, 다음 날 코끼리를 목격했다는 제보에 따라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대공원 측에서는 탈주된 모든 코끼리를 포획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만, 이미 사람들에게는 그 코끼리의 실체는 중요하지 않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급격히 유포되는 허위 사실에 대공원측은 분노하지만, 어느새 그들마저 이 소동에 참여하고 심지어는 그 중심에 서게 된다. 한편 이러한 소동의 끝이 두려운 대공원장은 실제 코끼리를 풀고 포획해 이 소동을 마무리 지으려 하지만 코끼리를 놓치게 된다. 없던 코끼리가 생기고, 있던 코끼리가 사라지는 이 순간이 이 작전을 수행하려던 밀렵꾼은 아리송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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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웃사이더 눈에 비친 ‘이상한’ 세계의 ‘우울한’ 카니발
‘그런 세계’의 경계 너머에 있는 ‘그렇지 않은 세계’ 그곳에서 펼쳐지는 박혜상만의 상상! “강렬한 제재”와 “이를 떠받치는 구성”으로 서사적 잠재력을 인정받으며 ‘제6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소설 부문)’을 수상한 박혜상의 첫번째 소설집 『새들이 서 있다』(문학과지성사, 2009)가 출간되었다. 당선작이자 표제작인 「새들이 서 있다」를 비롯해 9편의 소설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집은 현재에 대한 톡톡 튀는 소설적 상상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문장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새들이 서 있다』는 너무나 익숙한, 그저 ‘그런 세계’인 일상에 새롭고 신기한 ‘그렇지 않은 세계’를 선보이며 ‘젊은소설’ 씬의 깊고 넒은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2000년대 소설’ ‘그리고’ 혹은 ‘그런데’ ‘과도한 일상성’ 혹은 ‘서사의 부재’라는 비난 속에서도 새로움을 확장하는 세계관으로 젊은 평론가-독자층에 지지를 받으며 자라난 2000년대 소설들은 이제 자신들의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에 그야말로 혜성같이 아니 어쩌면, 필연적으로 등장한 이 ‘괴물 신인들’의 성공적 연착륙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소설과 그들의 소설의 가독 독자 층의 격차는 점점 본격화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젊은 감수성들이 전 연령층의 지지를 받는 길은 묘연해 보인다. 그런데, 한편에서 언뜻 불가능해 보임 사이 그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소설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들’은 분류상 기성세대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곳으로부터 탈주하여 거침없는 상상력을 선보인다. 그들의 그런 거침없는 상상력은 일견 거칠어 보이면서도 꾸준한 독서와 사유-통찰력으로부터 기인하는 문장력으로 안정성을 확보한다. 김나정, 명지현 등 2000년 후반 앞서거니 뒤서거니 소설을 발표한 이 세대는 자칫 ‘끼인 세대’로 분류될 수 있는 불리한 조건에도 자신들의 자리를 공고히 하며 조용히 그리고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 박혜상의 소설집 『새들이 서 있다』는 그 모색의 중심 가까이에 놓여 있다. ‘200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박혜상은 등단작 「새들이 서 있다」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새로운 방식으로 전복하며 익숙하고도 새로운 서사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익숙함-새로움이라는 모순되기 그지없는 명제 속에서, 또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읽히기도 하는 소설‘판’ 변화 속에 자신만의 문법으로 균형을 잡으며 탈-구조적 서사의 새로운 방식의 모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새들이 서 있다?! 『새들이 서 있다』에는 다양한 군(群)의 형상이 교차되어 나타난다. 그 안에는 코끼리, 봄머(Boomer), 여고생, 네트net 위의 사람들과 386세대의 회색인 공무원, 만년 과장, 고철주이들, 꽉막힌 현실에 분열증에 걸린 40대 여직장인이 혼재되어 있다. 이들은 절대 그 균형을 부수지 않는다. 외려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은 상호 조화를 이루며 한 세계를 구축한다. 이 부조리한 균형을 이루는 소설적 세계가 박혜상의 세계이다. 그리고 이 범상치 않은 틈바구니에서 생기는 사건들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있어서도 안 되는 일들의, 일종의 증후군들이다. 그다음의 사건들 박혜상 소설의 특징은 ‘그다음’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소설은 이미 하나 이상의 사건이 전개된 이후의 일들을 다루고 있다. 전사(前史)에 속하는 일들은 대개 어마어마한 것들이다. 자신의 딸을 성적으로 취하려던 아비와 그 가족들, 고철 값이 폭락한 이후, 자신들의 사업장을 잃게된 고철주이들, 정권이 바뀌어 온갖 부조리한 일들에 직면하게된 공무원, 코끼리들의 탈주 난동 등이 그것이다. 이미 이것만으로도 완성된 하나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박혜상은 이 모든 사건들은 이전의 것으로 미뤄두고 그후 남겨진 이들을 데리고 이야기의 성을 쌓기 시작한다. 이렇게 쌓인 이야기들은 자생적이다. 기존의 서사들이 자기결핍hamartia에 의해 발생한 운명과 우연의 놀음에서 놀아나고, 이를 자신의 의지로 극복하는 것이라면, 박혜상의 이야기들은 이와 달리 자신의 의지로 사건을 조립/재조립해나간다. 이는 극복의 의지로부터 시작해 새로운 사건을 발생시키는 박혜상만의 문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로 이러한 ‘박혜상의 문법’이다. 이 문법은 소외로부터 발생한다. 어떤 사건에 휘말려 떨어지게 된 이들은 ‘패배자looser’들이다. 더는 남아 있을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 변화된 삶은 이른바 ‘기묘한 풍경’을 낳기 시작한다. 이건 꿈일 거야. 술에 취해서 이상한 꿈을 꾸고 있는 걸 거야. 아주 더러운 꿈. 그래 이건 술에 취해 꾸는 더러운 꿈이야. 내일 아침이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을 거야. 빌어먹을, 근데 별빛은 왜 이렇게 밝아. _「붉은 강 건너다」 에서 여기 한 가정의 식탁이 있다. 그 식탁에는 구안와사라는 특이한 질병을 걸린 아빠와 무표정한 엄마, 이들의 딸이 앉아 있다. 딸은 이 불쌍한 부모를 동정하기는커녕 짜증과 조소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 까닭에는 반인륜적 상황이 전제되어 있다. 아비가 딸을 성적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이 패륜적인 근친상간의 정황/오이디푸스적 정황(실상 이제는 너무 빈번하여 별다른 뉴스거리도 되지 못하는)은 이 이야기의 전사에 불과하다. 등단작이자 표제작인 「새들이 서 있다」에서 박혜상은 이렇게 이후 남겨진 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오이디푸스처럼 자신의 눈을 찌른 비장함도, 이오카스테의 현실 도피적 선택도 없다. 어미는 아비와의 현재적 삶을 택하고 딸은 대가로서의 유학 제안을 거절하고 그들과 어울려 산다. 이 이해 불가한 상황은 한 마리 묶인 새를 발견하는 사건을 통해 확장된다. 그러나 이 ‘묶인 새’라는 일견 구태의연해 보이는 상징은 박혜상이 소설을 통해 발화하려는 것의 핵심이 아니다. 인간의 욕망과 욕망으로부터 탈주의 불가능성을 잔인할 정도로 집요하게 파고든다. 딸은 욕망의 피해자 아니다. 아니 소설 속 모두는 욕망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 이처럼 냉정한 시각으로 욕망과 그것을 둘러싼 인간들을 바라보는 박혜상의 문법은 여기-지금의 이면을 바라보게 만든다. 여기 또 하나의 모두 잃은 자들이 있다. 이들은 고철 값이 폭락할 대로 폭락한 시대의 고철주이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신적/물질적 지주를 잃었고 그와 동시에 사기를 당해 자신들의 일터를 잃었다. 그러나 이 역시 소설의 전사에 불과하다. 이야기는 본의 아니게 이들의 좌장이 된 주인공 영주가 이제 남은 유일한 재산인 트럭에 고철주이들을 싣고, 고철 강도짓에 나서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트럭이 더 나아갈 수 없을 때까지 고철을 훔친다. 그러나 이제는 똥값이 되어버린 고철들을 최선을 다해 훔치는 그들의 모습은 비극인 동시에 코미디이다. 이번 소설집의 세번째 소설 「쇠붙이들」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극한 환상을 보여주지만 여지없이 그 환상으로부터 현실로 복귀한다. 그들에게 남은 건 사랑마저 소용없는 배반과 절망뿐이다. 그러나 이번 소설집에는 「새들이 서 있다」 「쇠붙이들」 「토마토 레드」처럼 거대한 사건 이후 폐혀처럼 남은 현실-그 속, 희망의 환상-그 환상 밖에 여전히 존재하는 잔인한 현실로의 되돌림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사실은 이번 소설집에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화해와 화해를 통한 현실의 의미를 되찾기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박해상 소설의 주된 축이다. 그 과정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단편 「그녀는 떡볶이를 좋아해」는 공무원인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 다룬다. 지루하고 지긋지긋한 반복적 일상에 떡볶이를 먹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은, 입빠른 소리를 잘해 사회적인 성공과 거리가 먼 ‘나’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진다. 고등학교 동창생 ‘김주연’이 별정직 공무원 신분으로 상사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나’는 김주연과의 과거를 떠올리고, 같은 점에서 출발해, 평범한 학생과 운동권이라는 다른 갈래를 통해 같지만 다른 지점에 도착해 있는 주연과의 내적 갈등을 통해 한 세대 사이의 화해를 청하고 있다. 그 화해의 지점이 떡볶이라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보다 386이라는 역동적 세대의 새로운 인식과 그 결과가 흥미롭다. 이 소설의 해설을 쓴 평론가 이수형 씨는 이러한 박혜상의 문법을 “카니발적 상상”이라고 명명한다. 필자는 이 명명을 풀어 “기성의 가치 체계가 구획해놓은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이라고 정의한 뒤, 그러나 이 상상의 카니발화가 “자발적으로 수행된다기보다는 받아들이기 힘든 삶을 견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행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그것은 웃음이나 해방감을 유발하기보다는 애처로움이나 나아가 우울함을 전달한다”고 말한다. 이수형 씨는 이에 덧붙여 “이런 정조”는 “자기 세대로부터 떨어져 나온 작가의 개인적 상황 때문일까, 아니면 젊음(젊은 감각)이 더 이상 권리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불안을 가중시키는 시대상황 때문일까?”라고 물으며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박혜상이 “이 시대의 작가”가 분명함을 밝힌다. 이처럼 『새들이 서 있다』는 현실의 이면에 위치한 현실을 드러낸다. 이는 폭로와는 다른 차원에서 진행된다. 그리고 그 진행의 과정에는 일견 패배한 자들의 각각의 판타지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이 현실이 아닐지라도, 뒤에 더 큰 실망을 하게 될지라도 꿈을 꾸고 그속에서나마 갈등의 해소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 아니었던가. 또 다른 편에 가지고 있는 작가 자신의 소설적 해소 역시 같은 층위에서 진행된다. 소설이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적 상상력은 그것이 마냥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것은 꺡허구적’이며 또한 상상이지 않겠는가. 그 상상이 현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미 그 이야기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희망 혹은 화해라는 긍정성을 띄고 있는 것이다. 현실의 부정의 부정, 이를 통해 밝혀내는 소설적 긍정성은 소설이라서 가능한 어떤 것이 아닌, 실제적 가능함이다. 이것이 ‘이 시대의 작가’로 명명된 박혜상의 힘이며 그녀의 처녀 소설집 『새들이 서 있다』의 힘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 2006년 봄 이후,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팔자 늘어진 것’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이었다. 더 들어줄 수가 없어 울컥 심정을 토로하면 엄살이 심하다고 쥐어박히곤 했다. 책이 나온다니 그동안의 억울함을 조금 벗은 것도 같다. 부족하고, 넘치고, 서툰 이야기들이다. 염치 불구하고 첫 작품집이라는 것에 기대어 부족한 대로 묶었다. 분명 다음 작품들은 나아질 것이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왜 네 글에는 사랑이 없니? 그 말에, 요즘 누가 사랑 따위를 쓰냐고 대꾸했는데, 문득 ‘사랑 따위’가 내 글의 문제이자 해결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단짝들이 보고 싶다. 내가 지어낸 이야기들을 성실하게 들어주던 단짝들. 그들은 마치 지들끼리 순번이라도 매겨놓은 듯, 차례차례 내 곁에서 사라졌다. 내 이야기가 더 이상 흥미롭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착한 사람, 조는 아직 곁에 남아 있다. 그 까닭을 듣고 싶다. 이제 내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차례다. 고맙다. 남편. 신인문학상에 뽑아주시고, 지면을 주시고, 책을 내주신 문학과지성사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글쓰기와 평생 마주하고 있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개를 숙인다. 십여 년간의 직장생활을 하느라 출발이 늦었다. 이제 겨우 첫발을 뗀다. 견딘다는 생각을 하며 지나온 시간은 고작 4년도 되지 않는다. 무엇을 견디었을까. 생각해보니 부끄럽게도 내가 견뎌낸 것은 쓰지 않은 게으름의 시간이었다.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세월이 남아 있다. 조금 더 힘을 내보겠다. 여태껏 만지작거리던 열정과 허무, 양면의 동전을 버리고 성실만으로 채워진 동전을 주머니 깊숙한 곳에 넣어두어야겠다. 어지간해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지만, 적어도 변한 척이라도 해봐야겠다.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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