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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제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 소개 1

저베르톨트 브레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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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tolt Brecht

1898년 2월 10일 독일 아우구스부르크(Augsburg)에서 종이 공장에서 일하던 아버지 베르톨트 프리드리히 브레히트(Berthold Friedrich Brecht)와 브레칭(Brezing)에서 태어난 어머니 조피(Sofie) 사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거쳐 1908년 아우크스부르크 김나지움에 입학한 그는 이미 15세 때부터 시 작업을 시작해 학생 잡지 [추수]를 발행하는 등 친구들과 문학 동아리를 만들었고 이 활동을 통해 그의 문체는 도발적이 된다. 이때 같이 활동하던 판첼트, 카스파르 네어, 뮌스테러 등과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교류했다. 특히 카스파르 네어는 망명에서
1898년 2월 10일 독일 아우구스부르크(Augsburg)에서 종이 공장에서 일하던 아버지 베르톨트 프리드리히 브레히트(Berthold Friedrich Brecht)와 브레칭(Brezing)에서 태어난 어머니 조피(Sofie) 사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거쳐 1908년 아우크스부르크 김나지움에 입학한 그는 이미 15세 때부터 시 작업을 시작해 학생 잡지 [추수]를 발행하는 등 친구들과 문학 동아리를 만들었고 이 활동을 통해 그의 문체는 도발적이 된다. 이때 같이 활동하던 판첼트, 카스파르 네어, 뮌스테러 등과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교류했다. 특히 카스파르 네어는 망명에서 귀국한 브레히트의 무대를 만들었다. 1928년에는 [서푼짜리 오페라]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둠으로써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나치 집권기인 1933년 2월 28일 망명길에 오른 뒤,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그리고 미국을 전전하면서 15년간 독일 외부에서 활동했다. 1948년 동베를린으로 귀환한 뒤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1949)을 공연하여 과거의 명성을 되찾았다. 부인 헬레네 바이겔과 함께 베를린 앙상블을 창단하여 연극 작업에 몰두하다가 1956년 8월 14일 베를린에서 사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한밤의 북소리』, 『남자는 남자다』, 『서푼짜리 오페라』, 『마하고니 시의 흥망』, 『어머니』, 『제삼제국의 공포와 참상』,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사천의 착한 사람』, 『갈릴레이의 생애』, 『푼틸라 나리와 그의 하인 마티』, 『코카서스의 분필 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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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이재진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1898년 2월 10일 독일 아우구스부르크에서 태어난다. 1917년 10월 2일 뮌헨 대학에 입학한다. 이듬해 뮌헨의 ‘카머슈필렌’ 극장에서 그라베의 <고독한 사람>이라는 공연을 보고, 이 작품에 대한 응답으로 5월 1일 <절반은 희극인 바알>을 완성한다. 1920년에 <바알>을 고쳐서 게오르크 뮐러 출판사에서 출판하고자 했으나 거절당한다. 1922년 9월 29일 ‘카머슈필렌’ 극장에서 <한밤의 북소리>를 초연한다. 같은 해 11월 3일에는 마리아네 초프와 결혼한다. 1928년 8월 31일 ‘쉬프바우어담’ 극장에서, 에리히 엥겔 연출로 <서푼짜리 오페라>를 초연한다. 이듬해 4월 10일 헬레네 바이겔과 재혼한 브레히트는 1933년 가족과 함께 프라하로 이주한다. 이후 나치를 피해 브레히트는 가족과 함께 헬싱키 등을 거쳐 미국 산타 모니카에 거주하기 시작한다. 1947년 10월 30일 ‘반미활동조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브레히트는 미국에서도 추방당한다. 10월 31일 파리로 출발한 브레히트는 11월 5일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한다. 1956년 5월 초 감기 증상이 나타난다. 8월 10일 마지막으로 ‘베를리너 앙상블’ 극단 연습장에 나타난 뒤, 8월 14일에 사망한다.


이재진은 한국외국어대학과 독일 쾰른대학에서 독문학, 연극학을 전공했다. 단국대학에서 독문학을 가르쳤으며 현재 단국대학 명예교수다. 한국 브레히트학회 회장을 지냈다. 레싱, 실러, 클라이스트, 뷔히너, 헤벨, 베데킨트, 브레히트, 뒤렌마트 등의 희곡 작품과 작품 세계가 전공 분야이며, 어린이·청소년 극의 수용과 활용에도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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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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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17.21MB ?
ISBN13
9791128823213
KC인증

출판사 리뷰

숱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개선한 로마 장군 코리올라누스는 원로원의 지지에 힘입어 집정관 후보로 나선다. 하지만 코리올라누스는 득표를 위해 시민들에게 아부하길 거부한다. 되려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호민관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노한 시민들이 그를 추방한다. 코리올라누스는 곧장 로마와 적대 관계인 볼스키에 투항하고 볼스키군을 몰아 로마를 공격한다. 지난날 로마 수성의 일등공신이던 코리올라누스가 로마에 가장 위협적인 적으로 돌변한 순간이다. 로마 원로원은 코리올라누스의 가족을 내세워 그의 마음을 되돌리려 한다. 결국 로마 공격을 중단한 코리올라누스는 볼스키에 배반자로 낙인찍혀 죽는다.
셰익스피어는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기록을 바탕으로 〈코리올라누스〉라는 비극을 썼다. 그는 코리올라누스를 비범한 영웅적 기질을 가진 인물로 묘사했다. 브레히트는 플루타르크, 셰익스피어와는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그는 〈코리올란〉에서 코리올라누스를 오만 때문에 몰락한 독재자로 그리는 대신 로마 시민의 역할을 부각했다. 코리올라누스를 나치와 같은 독재정치의 씨앗으로 보고 민중에 의해 그가 몰락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브레히트는 〈코리올란〉에서 묻는다. “역사책에는 왜 영웅의 이름만 등장하는가? 참전한 병사들, 성을 쌓은 석공들, 승리의 만찬을 준비한 요리사들의 이름은 왜 없을까?” 그에 대한 답변은 분명하다. 역사는 지배자의 관점으로 기술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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