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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사람
다시 쓰는 경제 위기의 역사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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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2

애미티 슐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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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ity Shlaes

'블룸버그'의 경제 칼럼니스트이자 미국외교협회 경제사 자문위원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기사를 기고했으며, '월스트리트저널'의 편집위원을 지냈다. '뉴요커'와 '포춘', '내셔널 리뷰', '뉴리퍼블릭', '포린어페어'에 기고하고 있다. 2003년 슐래스는 베를린의 미국 아카데미에서 J.P.모건 펠로십으로 지명되었다. 현재 뉴욕 브루클린에서 남편 및 세 자녀와 거주하고 있다. 저서로는 《탐욕스러운 손 The Greedy Hand》이 있다.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영국 워릭대학교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와 (주)파라다이스 등에서 일했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잊혀진 사람』『2010 세계 경제 전망』『잭 니클러스 Golf My Way』『자본주의 4.0』『아시아 미래 대예측』『고마워, 너를 보내줄게: 당신의 반려동물과 행복하게 이별하는 법』, 『불평등 민주주의』『리바운더스』『린 스타트업』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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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 이상돈
서울대학교 법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고 뉴올리언스에 위치한 툴레인대학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부터 중앙대학교 법과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2001~2003년 동안에는 같은 대학의 학장을 지냈다.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방문학자 및 로욜라 로스쿨 교환교수를 지냈다. 『세계의 트렌드를 읽는 100권의 책』 등의 저서를 펴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2월 2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648쪽 | 1090g | 160*234*35mm
ISBN13
9788901105130

책 속으로

그럼 대공황의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한편으로는 주가 대폭락 자체도 문제였다. 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연방정부와 은행은 통화 및 신용 문제를 겪고 있었다. 1930년대 중반에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이 큰 문제였다. 후버와 루스벨트 둘 다 언급했듯이, 국제 무역 규모가 줄어든 것도 큰 역할을 했다. 만약 미국이 1930년대 초에 관세를 올리지 않고 1930년대에 유럽이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미국은 무역을 통해 자국 경제를 지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농업 경제에서 공업 경제로 전환하는 과도기에 발생하는 문제들이 있었다. 이상 기후도 원인을 제공했다. 홍수와 이상한 모래 폭풍 때문에 국민의 위기의식이 더 강해졌다. 통화와 기후 문제가 발생하면서 미국 국민은 신이 자신들을 저버렸다고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신을 믿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시장을 불신하고 개입했다는 것이다.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정부의 개입은 경제에 타격을 주었다. 후버와 루스벨트 둘 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오류를 저질렀다. 후버는 임금을 인하해야 할 상황인데도 기업들에게 임금을 인상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막대한 피해를 초래한 스무트-홀리 관세법 제정을 막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법을 입법화했다. 또 시민 개인이나 기업 전반이 감당할 수 없는데도 세금을 인상했다. 1932년 이후 뉴질랜드, 일본, 그리스, 루마니아, 칠레, 덴마크, 핀란드 및 스웨덴은 산업생산 수준이 다시 상승했지만 미국은 예외였다. ---pp.44-45

루스벨트 버전의 잊혀진 사람을 위한 정치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었다. 잊혀진 사람에게 구호의 손길을 제공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권은 희생양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업인들과 기업체가 표적이 되었다. 루스벨트의 오랜 멘토였던 민주당의 앨 스미스는 격노했다. 케인스마저 걱정했다. 1938년에 그는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써서 유틸리티 업계를 국유화하거나 아니면 아예 개입하지 말 것이며, 어떤 경우든 유틸리티 업계를 대상으로 한 주기적이고 정치화된 공격을 중단하라고 조언했다. 케인스는 ‘격주로 유틸리티 업계를 추적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루스벨트와 측근들은 국민들이 서로 반목하도록 만들었다. 대립 때문에 대공황은 더 견디기 힘들게 느껴졌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잊혀진 사람, 즉 유권자 X는 섬너의 원래 정의인 잊혀진 사람 C와 영원히 싸우게 되었다.
이 책은 A, 즉 좋은 의도로 미국에 열정을 불어넣었던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C, 즉 고려받지 못했던 미국인들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깝다. C는 어떤 정치 계층에도 속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 시기의 부정적인 일들을 경험한 대공황기의 사람이었다. 또한 C는 대규모 프로젝트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하고, 진짜 일 대신 실직 대책으로 임시로 창출된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을 경제 성장을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1936년 인디애나 주의 한 논설위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먼시에서 잊혀진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잊혀진 사람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는 공공 구호금을 받지 않고 살아가려고 애쓰며, 대공황이 닥친 이래로 계속 이렇게 살려고 노력해온 사람이다.” ---p.52

유동성이 부족하므로, 손실을 메우려 해도 돈을 빌리기가 더 힘들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이 때문에 경제 성장이 둔화된다는 점이었다. 호시절에는 주택 산업과 일반 가계가 서로 상승 작용을 한다. 이제 사람들은 악몽과 같은 반대 사이클을 경험하고 있었다. 주택 건설이 줄어들자 미국 가계는 타격을 받았다. 미국 가계의 경제 상황이 나빠지자 주택 건설이 타격을 받았다. 예를 들어 주택 순자산(주택 가격에서 대출 잔액을 뺀 잔여 자산 가치 ― 옮긴이)은 건설업체들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자금을 조달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였다.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없게 되자 건설업체들은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되었다. 소기업을 운영하려던 사람이 겪은 일에 대한 목격담도 있었다. “그는 대출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일반적으로 은행들이 어떤 조건에서도 모기지 대출을 해주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담보 대상 주택 가치의 20퍼센트 정도 규모의 모기지도 불가능했다. 이것은 건축업자, 건축 산업, 노동자 및 건축 관련 다른 모든 것의 목을 죄는 조치다. 그들은 지금 질식사하고 있다.” 은행이 집을 모기지 대상으로 받아들여주지 않는 마당에 물물교환 화폐가 주택 소유자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불경기의 다른 요소들 때문에 디플레이션은 더 악화되었다. 불행한 사태를 예언한 경제학자들의 말이 옳다는 것이 매일 새롭게 입증되?다. 후버의 스무트-홀리 법안이 통과된 지 2년이 지나자 미국의 수입 규모는 40퍼센트 이상 줄어들었다. 비록 당시에는 사람들이 그 변화를 정량화하지 못했지만, 훗날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감소가 부분적으로 관세법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다른 국가들의 보복 때문에 미국이 피해를 입기 시작했다. 1930년에는 실업률이 증가했다. 1931년이 되자 미국의 전체 실업률은 16퍼센트 정도로 추정되었고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5) 뉴욕에만 1만 4,000-1만 5,000명의 집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공식적으로 홈리스는 아니었지만 저녁마다 거리를 배회했다. ---p.195

그는 “많은 사람들이 더 이윤이 높은, 사과 파는 일을 하려고 직장을 그만 두었다”고 썼다. 해외에 사는 외국인들은 미국인들이 굶주리고 있거나, 그보다 더 나쁜 상황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해 아프리카 카메룬의 기부자들이 ‘굶주린 사람들’을 도우려고 3.77달러를 미국으로 보냈다. ---p.195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사촌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스퀘어딜(Square Deal, 공평한 분배 정책 ― 옮긴이)’보다 더 나은 뭔가를 제시해야 했다. 이제 루스벨트가 진보적인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스튜어트 체이스는 '뉴 리퍼블릭'에 개혁과 새로운 실험의 중요성에 대한 기사를 썼다. 또한 그는 책을 출판했는데, 러시아 여행 때부터 구상해오던 책이었다. 그는 터그웰과 여행하면서 품게 된 질문을 계속 간직하고 있었다. 왜 러시아인들만 재미를 누려야 하는가? 제목을 궁리하던 그는 루스벨트의 정황 및 다른 정황에 관련된 표현으로 결정했다. 제목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스퀘어딜’의 표현을 살짝 바꾸는 장난을 친 《뉴딜(The New Deal)》이었다. ---p.214

같은 해 9월, 재무장관 오그던 밀스는 의회 및 주지사 선거가 열리는 중요한 주인 메인 주를 2개월 먼저 방문했다. 밀스는 루스벨트처럼 하버드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유권자들에게 ‘잊혀진 사람’의 다른 정의를 상기시키며 표심을 잡으려 했다. 섬너의 원래 에세이를 읽으며 밀스는 섬너의 ‘잊혀진 사람’을 상기시키면서 원래 ‘잊혀진 사람’은 루스벨트의 정의와 다르다는 것을 지적했다. 진정한 잊혀진 사람은 ‘자생력이 없고 무기력한 사람’이 아니라 ‘나라의 중추’이며, 분명 ‘산업의 총알받이’는 아니라고 했다. 그런 다음 밀스는 유권자들에게 나라가 폭풍우를 헤쳐 나가고 있는 이때 말을 갈아타지는 말라고 부탁했다. 그의 연설은 성공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메인 주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민주당원들은 루스벨트가 당선될지 여부가 아니라 표를 얼마나 많이 얻을지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p.228

5월 하순인 28일,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는 대통령을 방문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가 된 인물과 미국 지도자 간의 회담은 58분 동안 이어졌지만 전적으로 성공적이지는 못했으며, 나중에 케인스를 만난 프랜시스 퍼킨스는 그가 회담의 성과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했다고 회상했다. 루스벨트도 비슷한 의견이었는데, 퍼킨스에게 케인스가 실망스럽게도 ‘시시한 숫자’들을 늘어놓으면서 자리를 떴다고 하면서 “케인스는 정치경제학자라기보다는 수학자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케인스는 퍼킨스를 포함한 다른 뉴딜 관련자들에게 뉴딜 프로그램들을 통해 지출을 늘리는 것은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현금 지출을 통해 일반인들이 구매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조나 공공사업 또는 다른 어떤 것을 통해 지불된 1달러는 4달러에 해당하는 국가 수입을 창출합니다.”
이제 모겐소와 함께 재무부에서 일하던 매리너 에클스는 자신이 이미 직관적으로 믿고 있던 것을 케인스가 이론적인 측면에서도 정당화시켜주었음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루스벨트가 추진하는 일을 설명해줄 틀이 거의 없었던 반면, 이제는 신뢰할 만한 틀이 생겼다. 정부의 규모가 충분한 재정지출을 감당할 만하다면 재정지출은 경제 성장을 촉진한다는 것이었다. ---p.318

뉴딜 프로젝트가 일정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었지만, 경제는 적어도 예전 상황과 비교해볼 때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늦은 봄 미국노동총연맹은 전국부흥청이 1933년 가을에 재고용했던 78만 명의 노동자들이 1934년 봄이 되자 다시 실직 상태가 되었다고 발표했다. 미국노동총연맹의 지도자 윌리엄 그린은 실업 관련 수치를 두고 전국부흥청의 리치버그와 싸우기 시작했다. 미국총연맹은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제 기관이 아니라 산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산업이 육성되어야 하고 이 일은 부분적으로 리치버그의 책임이었는데, 그린은 “우리는 미래에 거둘 세금을 담보로 차입한 돈으로 인구의 6분의 1을 무한정 지원할 수는 없다”고 공격했다. 여전히 거의 1,1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실직 상태였다. 그리고 다우존스지수는 떨어지고 있었다. 다우존스지수는 여름 내내 이전 겨울 수준인 100 부근에 도달하지 못했다. 상황이 개선되리라 생각하던 뉴딜 추진자들은 크게 당황했다. “대공황이 버티고 있었다”고 터그웰은 그 시기에 대해 기술했다. ---p.321

이 계획을 추진하면서 루스벨트는 또한 자신의 잊혀진 사람의 정의를 다듬었다. 예전에 잊혀진 사람이란 (비록 항상 가난한 사람을 지칭하기는 했지만) 일반적인 개인의 성격을 가졌다. 전국부흥청 같은, 그리고 아서 모건 같은 원대한 기획자가 있는 프로젝트에서는 적어도 미국 전체가 다 하나라는 태도가 있었다. 이제 잊혀진 사람이라는 개념을 루스벨트 자신이 지원하는 특정 그룹으로 정의함으로써, 루스벨트는 사실상 새로운 잊혀진 사람을 만든 동시에 그 나머지 사람들은 잊어버렸다. 미국은 루스벨트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로 갈라졌다. 이 분열은 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대통령은 점점 법조계 실용주의자들과 예스맨들을 가까이했다. 프랭크퍼터와 그의 측근들, TVA의 릴리엔솔, 재무부의 헨리 모겐소, 농무부의 헨리 월러스 등이었다. ---p.386

먼시의 한 신문 사설은 모스크바가 아니라 스페인 혁명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현재 스페인에서 진행 중인 것과 같은 혁명이 미국에서는 불가능한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스페인에는 중산층이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에는 여전히 중산층이 있었다. 이 신문은 또한 에이브러햄 링컨도 인용했다. “우리 중 아무도 영원히 고용된 노동자 계급으로 머물러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25년 전에는 나도 고용된 노동자였습니다.” 먼시의 한 신문 사설주간은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부자에 대한 증오를 가르치는 것은 정직한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고 선동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지적했다. 요점은 분명했다. 미들타운은 현재의 분열이 영구적으로 고착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특히 이들 두 작가가 관찰했던 것은 먼시 시민들이 정부가 두 가지 상반되는 주장을 펴는 데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첫 번째 교훈은 ‘저축은 민간인의 유일한 보호자’였다. 두 번째 교훈은 ‘소비는 나라의 희망’이었다. 시민들은 이 두 가지 생각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했고 그 모순 때문에 갈등했다. 게다가 “정부의 정책 때문에 미래 투자가 불안하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주식과 채권도 이제 매우 불확실했다.” 그러나 린드 부부가 수집한 자료 중 메시지를 가장 확실하게 전하는 것은 먼시 신문의 다른 논설이었다. 이것은 ‘잊혀진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이 신문은 “먼시에서 잊혀진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나는 잊혀진 사람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는 공공 구호금을 받지 않고도 생계를 꾸려나가려고 노력하는 우리의 동료다. … 그러는 와중에 납세자들은, 직장이 있는데도 (파업이나 일삼으면서 ― 옮긴이) 일하지 않으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을 계속 지원하고 있다.” ---p.386

엘우드에서 윌키는 최근에 너무나 개념이 모호해진 잊혀진 사람의 원래 의미를 미국 시민들에게 일깨웠다. (루스벨트의 잊혀진 사람뿐만 아니라) 섬너의 이론에 나오며 옛 자유주의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바로 그 ‘잊혀진 사람’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며 잊혀진 사람에게는 소속 정당이 없다고 했다. 그런 다음 윌키는 질문을 던졌다. 정부가 도움을 준다고 해서, 잊혀진 사람이 우리로 하여금 기억하기 원하는 것은 정부란 말인가? 아니었다. 정부는 필요한 경우 도와줄 수는 있지만 결국 부차적인 존재였다.
윌키는 “잊혀진 사람이 우리로 하여금 기억하기 원하는 것은 위대한 미국의 모험에 자신이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이제 항상 알고 있었던 사실을 다시 한 번 떠올리는 것 같았다. 그것은 바로 모험을 무릅쓰는 사람들이말로 미국을 발전시키는 힘이라는 사실이었다. 곧 닥칠 전쟁에서 군인들이 방어할 나라도 모험가들의 미국이었다. 그리고 잊혀진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미국을 위해 싸우고자 했다.

---p.386

출판사 리뷰

“불황의 끝은 어디인가?
과거는 눈앞에 있고 미래는 등 뒤에 있다!”
초유의 더블딥을 경험한, 대공황기 미국 경제사에서 배우는 불황의 미래

경제위기의 진정한 희생양을 찾는, 블룸버그 칼럼니스트의 통찰력 있는 분석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제 칼럼니스트 중 하나인 애미티 슐래스는 『잊혀진 사람』에서 대공황에 대한 전형적인 역사관에 이의를 제기하며 놀라운 재해석을 시도한다. 미국 연방정부가 1929년부터 1940년까지의 기간 동안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들’은 고려하지 않고 지나친 개입을 통해 대공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저자는 후버 대통령과 루스벨트 대통령이 1920년대의 경제 번영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뉴딜 프로그램의 효과를 상쇄하는 큰 부담을 미국에 지우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이 책은 지금은 잊혀진 보통 사람들의 분투와 당시 정치적 희생양들에 대한 신선한 관점과 뉴딜 추진자들의 점증하는 고뇌를 다룬다. 아울러 오늘날 ‘미국적’이라고 불리는 국민성이 이 시기에 어떻게 수립되어 갔는지를 개개인의 감동적인 이야기와 함께 풀어낸다. 오늘날 경제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한 거의 모든 실험은 대공황기에 이미 시도되었다. 초유의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다양한 노력들을 객관적이고도 냉정한 시선으로 담고 있는 이 책은 작금의 현실과 절묘하게 중첩되며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제공한다.

우리가 몰랐던 역사, 대공황기 미국의 ‘잊혀진 사람’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

A라는 사람이 부당하게 고통 받는 X의 일을 발견한다. A는 여기에 대해 B와 이야기를 나누고, 이들은 X를 돕기 위한 법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이 법은 항상 C가 X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혹은 이보다 나은 경우라면 A, B, C가 X를 위해 무슨 일을 할지를 명시한다. 나는 C를 ‘잊혀진 사람(The forgotten man)’이라고 부르겠다. 아마도 이 호칭이 완전히 정확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사실 잊혔다기보다는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하고 투표하며 기도한다. 그리고 항상 비용을 부담한다.
- 윌리엄 그레이엄 섬너, 예일대학교 교수, 1883년

대공황이 시작되기 약 50년 전, 윌리엄 그레이엄 섬너라는 예일대학교 철학 교수는 전통적인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잊혀진 사람The Forgotten Man'이라는 논문을 작성했다. 섬너는 진보주의자들이(비록 좋은 의도를 가졌다 하나) 이를 인식하지도 못하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사회적 프로젝트의 비용을 부담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1932년 뉴욕 주지사였던 루스벨트는 만약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경제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있는 ’잊혀진 사람’을 위한 정치를 펴겠다고 약속했다. 섬너의 이론에서는 C가 잊혀진 사람이었던 반면 루스벨트는 X, 곧 가난하고 정부의 도움이 필요한, 사회안전망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잊혀진 사람으로 만들었다. 루스벨트는 브레인트러스트들과 함께 ‘잊혀진 사람’을 위한 뉴딜(New Deal)을 약속했지만, 그는 누가 경제위기의 진정한 희생양인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섬너가 말한 ‘잊혀진 사람’은 일자리가 없어 구호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구호금을 받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애쓰며 스스로 노력하는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잊혀진 사람』의 저자 애미티 슐래스는 미국의 대공황기 즉, 1929년부터 1940년까지의 기간을 선한 세력(루스벨트 정권)과 악한 세력(루스벨트 반대 세력) 간의 도덕성의 싸움으로 보는 기존의 시각을 부정한다. 이 시기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두 경제 부문 간의 세력다툼기라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즉 미국의 대공황기는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간의 치열한 공방의 시기이며, 이 싸움의 밑바닥에는 누가 ‘잊혀진 사람’인가에 대한 상반된 시각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루스벨트 버전의 ‘잊혀진 사람’을 위한 정치는 필연적으로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 결국 기업인들과 기업체가 표적이 되었다. 이처럼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은 국민들이 서로 반목하게 만들었으며 이 대립 때문에 미국의 대공황은 더 힘들고 오래도록 지속되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 책을 설명한다. “이 책은 A, 즉 좋은 의도로 미국에 열정을 불어넣은 진보주의자들(뉴딜 추진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C, 즉 고려 받지 못한 미국인들의 이야기에 더 가깝다. C는 어떤 정치 계층에도 속하지 않음으로써 대공황기의 부정적인 일들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또한 이들은 대규모 프로젝트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하고, 진짜 일 대신 실직 대책으로 임시로 창출된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을 경제 성장을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대공황과 뉴딜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는 틀렸다!
“경제위기 상황의 초법? 조치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애미티 슐래스
“뉴딜이 대공황을 해결했다는 명제는 허구다.” - 이상돈(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루즈벨트 대통령과 뉴딜 정책에 대해 균형 감각이 부족한 찬사만 쏟아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이를 신중하고 냉정하게 바로잡고 있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대공황기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추진된 뉴딜 정책은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가 찬양해 마지않는 위업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애미티 슐래스는 이러한 전형적인 역사관에 이의를 제기하며, 뉴딜 정책의 허와 실을 낱낱이 파헤친다. 뉴딜이야말로 자유주의 경제를 제재하고 지나친 개입으로 대공황을 더욱 악화시킨 주범이라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대공황의 가장 큰 원인은 주가 대폭락 자체와 국제무역의 감소에 있지만, 시장을 불신한 정부의 개입으로 불황이 더욱 악화되고 불필요하게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당시의 뉴딜 추진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 대신 ‘유익한 손’을 옹호했다. 다시 말해, 자유방임주의 경제를 비도덕적으로 여기며 유권자를 중요시하는 경제 정책을 펼쳤고, ‘이제껏 상상도 못하던 권력’을 추구하며 ‘과감하고 지속적인 실험’을 펼쳐나갔다. 그러나 소련의 집산주의 모델에서 영향을 받은 전국부흥청이나 테네시계곡개발공사(TVA) 등의 규제?원조?구호 기관을 통한 대규모 프로젝트는 미국 경제에 치명적인 손실을 초래했다. 물론 일부 기관들의 활동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를 내기도 했지만, 거기에 투입된 정부 지출을 감안해볼 때 완벽하게 효과적이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경제 회복에 기여하는 민간 부문의 활동을 억누르는 다양한 법제와 세금을 계속 신설함으로써 기업을 압박했고, 덕분에 기업 활동은 점점 더 위축되었다. 결국 뉴딜 정책은 대공황을 더욱 깊고 오래 유지시키는 데 일조한 셈이라는 것이다.
그럼 뉴딜 시대의 정치적 희생양은 누구인가? 우선 당시의 앨런 그린스펀이라 할 수 있는 앤드루 멜런을 들 수 있다. 그는 하딩과 쿨리지 및 후버 정권에서 재무장관을 지내며 시장주의를 고수했지만, 정부는 대공황의 원인을 멜런 같은 재벌들 탓으로 돌리며 그를 기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국을 위해 멜런연구소를 세우고 자신의 모든 소장품을 기증해 만든 내셔널갤러리오브아트를 세우기도 했다. 또 다른 마녀사냥의 희생자는 뉴딜 추진자들이 대폭락의 책임을 전가한 유틸리티 업계의 거물 새뮤얼 인설과, TVA의 전력산업 국유화에 대항해 싸운 민간회사 커먼웰스앤드서던의 웬델 윌키가 있었다.
그리고 뉴딜 시대의 진정한 희생양들은, 굶어죽는 사람이 넘치던 시기에 농업조정법의 가격 유지 정책 때문에 새끼돼지를 죽여야 했던 농민, 뉴딜 정책에 맞서 소송에까지 이른 스켁터라는 양계업자 집안, 신흥종파의 흑인 지도자 파더 디바인,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모임을 창설하여 새로운 종류의 자립적 공동체를 만들어 활동한 빌 윌슨 등 유명무명의 사람들이었다. 이들이야말로 뉴딜 시대의 ‘잊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책 전체를 통해 소개된다. 저자는 이들 ‘잊혀진 사람’을 ‘거시경제적 집단들 틈에 끼여 잊혀져버린 미시경제적 주체’라고 설명한다. 케인스주의가 비록 유용하지만 케인스주의로 운용할 수 있는 경제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 ‘잊혀진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반박하고 있다고 말한다. 도대체 자신들은 어디에 속한 것이냐고, 경제위기 상황의 초법적 조치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이냐고.

지금껏 대공황을 다룬 책 중 가장 뛰어난 책 - 「내셔널 리뷰」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와 밀턴 프리드먼이 한두 세기 동안 그들의 입장을 재조정하여 대공황에 대한 명쾌한 견해에 도달한다면 아마 이 책과 같은 의견일 것이다. - 마크 헬프린Mark Helprin

슐레이스는 대다수 뉴딜 프로그램들이 돌출적이고 부적절했음을 입증하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뉴딜 정책은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리는 경고성 사례로 보아야 함을 일깨워 주는 책이다. - 「뉴욕 선」

『잊혀진 사람』에 등장하는 이야기와 인물들을 보면 뉴딜 추진자들이 많은 부분에서 도를 넘어섰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권력과 자유의 관계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던져주는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대 최고 수준의 대중 역사서라고 평가할 만하다.
- 「커멘터리」

매우 공정한 책. 중요한 시기에 대해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매우 독창적이고 세밀하게 쓰인 역사서이다. 시장, 경제, 정치 혹은 개인의 이니셔티브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 「아메리칸 스펙테이터」

대공황기에 대한 방대한 저술 작업이다. 슐레이스는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경제 회복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힘없는 사람들에 대해 신선한 관점을 제쎽한다. - 「시카고 선타임즈」

독자를 고무시키는 훌륭한 책이다. - 「월스트리트저널」

슐레이스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기존의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루즈벨트 대통령과 뉴딜 정책에 대해 균형 감각이 부족한 찬사만 쏟아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이를 신중하고 냉정하게 바로잡고 있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슐레이스는 대공황 시대의 진정한 영웅은 혁신적인 방법으로 동료 시민들을 돕고 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줌으로써 미국 정신을 구체화한 유명 혹은 무명의 비범한 개개인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 「U.S.뉴스 & 월드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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