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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훈련소 신병에서 직업군인이 되기까지
chapter1 레스노 꾸스노 부르조 특급호텔에서 열린 라면 신고식, “쇼를 하라!” 라면이 벌레 같다고 맛의 달인들의 평가 라면의 유래와 세계평화 다시없는 도전과 기회의 땅에서 도브레 미스터 팍 “난 베트남 사람이 아니에요!” 발로 뛰며 시장을 개척하다 ※라면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 chapter2 푸르디푸른 꿈을 안고 “비행기 처음 타시나봐요.” 요구르트와 장미의 나라 불가리아 꿈의 궤적을 돌아보며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풋내기 사업가의 시행착오 장사꾼의 눈을 벗어나 홈런보다는 잦은 1루타가 필요해! ※부여족과 불가리아인의 연관성 chapter3 인생의 고난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다 느닷없이 날아든 사직서 솔깃한 동업제안 의류사업으로 대박을 꿈꾸다 잊을 수 없는 굴욕의 순간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쓰는 말이다 도전하라,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것처럼 총구의 서늘한 감촉 회사의 주력사업을 찾아 라면의 대명사 미스터 팍 chapter4 내 삶의 중심, 초이스 임계점을 넘어서 초이스의 현재와 미래 위임하고 소통하며 펑펑 놀아라 하나님을 모르던 선데이 크리스천 크리스천에서 예수쟁이로 그때 암스테르담에 가지 않았더라면 100-1=0이요, 0+1=100이다 초이스를 불가리아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은 촛불로 빛과 위안이 되리 아버지의 나라, 어머니의 나라 chapter5 그들이 있어 인생이 아름답다 아버지의 십팔번 아내와의 갈등을 넘어 인생역전의 사나이 루치 신데렐라맨 크라시 블라도와의 교감 에필로그 더 큰 도약을 준비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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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샘플을 들고 마트마다 찾아갔지만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다. 불가리아 사람도 아닌 외국인이 동양의 낯선 식품을 소개하려고 하자 위아래로 훑어보며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 당시 나는 생활에 꼭 필요한 불가리아어를 단어 위주로 공부하며 문법과는 상관없이 단어만 나열해 더듬더듬 의사소통을 하곤 했다. 유창하게 홍보를 해도 시원찮은 입장에서는 약점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키릴문자에 익숙지 않아 한국말로 소리나는 대로 단어를 외우곤 했는데, ‘파르티잔(partisan)’을 ‘빨치산’이라 발음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 상대가 내 말을 못 알아들을 때도 있었다---chapter1 '레스노 꾸스노 부르조' 中에서
‘미스터팍’ 라면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지켜보면서 경쟁업체들이 생겨났지만, 불가리아에 라면이란 제품을 가장 먼저 소개하고 오랫동안 시장을 지켜온 덕분에 우리 브랜드는 라면의 대명사가 되었다. 영국의 명품 브랜드 버버리(Berberry)에서 만든 트렌치코트가 ‘버버리’, 혹은 ‘바바리’라고 불리며 아예 보통명사가 되고, 복사기와 프린터 등 OA기기 전문업체인 제록스(Xerox)의 사명에서 비롯된 ‘제록스한다’는 말이 ‘복사한다’는 말로 쓰이는 것을 보면 브랜드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가리아에서는 ‘라면 먹자’라는 말이 ‘미스터 팍 먹자’, 혹은 ‘초이스 먹자’라는 뜻으로 통하게 되었다. (초이스는 우리 회사의 사명이다.)---chapter3 '인생의 고난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다' 中에서 얼마 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유럽 CBMC대회 기간에 한 목사님도 바로 그 기사를 주제로 말씀을 전하셨다. “여러분이 세상 어느 곳에서 기업을 하시던지, ‘이 회사를 우리 지역에 보내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지역 주민들에게 들을 수 있는, 그런 기업인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 말씀을 접하고 마음속으로 이런 기도를 드렸었다. “하나님. 20년 전에는 그저 사업만을 목적으로 불가리아에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불가리아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품으려 합니다. 제게 꿈을 허락하심에 감사드리며, ‘초이스를 불가리아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옵소서.” ---chapter4 '내 삶의 중심, 초이스'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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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샐러리맨에서 불가리아 라면왕이 되기까지,
사업가 박종태의 남다른 도전과 인생 이야기 ‘Mr. Park’이란 라면 브랜드로 낯선 땅 불가리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라면왕’이란 닉네임을 얻은 사업가 박종태의 자전적 에세이.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의 무역회사에 다니던 평범한 샐러리맨 박종태는 유년기의 지독한 가난과 결핍을 꿈의 원동력으로 삼아 1990년, 불가리아의 한국인 사업가 1호로서 무모하고도 남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시행착오는 물론, 이방인의 한계에 부딪혀 좌절하고, 쓰라린 배신에 눈물 흘리며, 때로는 목숨까지 위협받았던 파란만장한 사업 도전기가 매너리즘에 빠져 안이한 일상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2009년 불가리아 파르바노프 대통령이 국빈 자격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할 때, 대통령을 수행한 불가리아 경제사절단 중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박종태 사장은 민간외교관으로서 양국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고, 불가리아의 소외된 사람들에게 내일에 대한 희망을 열어주고자 자선재단을 설립해 후원하고 있다. 이 책은 동양에서 온 풋내기 사업가가 어엿한 민간외교관으로,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성숙한 기업인으로 거듭나기까지, 세계로 가는 성공 레시피는 남다른 능력이나 재주가 아니라 지칠 줄 모르는 도전 정신과, 묵묵히 꿈의 벽돌을 쌓아올리며 어려움을 이겨낸 끈기, 그리고 열정이라 말한다. “실패보다 후회가 더 두렵다면 지금 당장 꿈에 도전하라!” 성공한 CEO들의 사고방식과 태도를 조사한 결과 보통 사람들과 확연히 다른 점이 하나 있다고 한다. 그것은 그들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데 주저함이 없고, 보통 사람이라면 망설일 무모한 도전을 보다 과감히 시도한다는 것이다. 낯선 땅 불가리아에서 사업가로 우뚝 선 ‘Mr. Park’, 박종태 사장도 그러하다. 무역회사를 다니며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던 그는 사업의 꿈을 펼치기 위해 철의 장막이 막 걷힌 불가리아를 택했다. 사회주의가 무너지며 개혁과 개방의 물결이 밀려든 불가리아는 어수선하고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으나, 그에게는 다시 없는 도전과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따뜻한 상태에 안주하다 보면 아무런 자극이 없어 새로운 변화나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는 따뜻한 홈그라운드를 박차고 나가 낯설고 물 선 외국 땅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총성이 난무하는 최전방에 배치된 훈련소 신병처럼, 혹은 여러 모로 불리한 여건 속에서 힘겹게 ‘어웨이’ 경기에 임하는 선수처럼, 무던히도 부딪치고, 깨지고, 다치며 마침내 단단하게 다져진 사업가 박종태, 그리고 인간 박종태의 진솔한 삶의 고백을 따라가다 보면 내 안에 잠자고 있던 꿈이 기지개 켜는 소리를 들을 것이며, 세상에 겁 없이 대들 용기가 생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