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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며
1부 다시, 활시위를 당기다 하나. 우리가 잘 몰랐던 우리 | 엘리자베스 키스, 「평양 강변」 둘. 활 쏘는 사람 | 강희언, 「사인사예」 셋. 삶을 포기하지 않는 생명력 | 정선, 「사직노송도」 넷. 오직 아는 자만이 이를 알리라 | 이인상, 「검선도」 다섯. 어느 우국지사의 초상 | 채용신, 「최익현 초상」 2부 가슴에 무얼 담고 사는가 여섯. 헐렁함 속에 담긴 배려 | 김홍도, 「윷놀이」 일곱. 절로 미소를 머금게 하는 | 김홍도, 「서당」 여덟. 내가 쥐고 있는 마음의 열쇠 | 전 이경윤, 「고사탁족도」 아홉. 가슴에 무얼 담고 사는가 | 흉배 열. 더 높이 뛰어오르는 힘 | 장승업, 「천도복숭아를 든 원숭이」 열하나. 삶의 주체가 되다 | 신사임당, 「포도」 3부 더없는 즐거움을 원하오니 열둘. 두려울 것도 거칠 것도 없다 | 최북, 「풍설야귀인」 열셋. 누각 마루에 모여 | 안중식, 「탑원도소회지도」 열넷.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 작자 미상, 「견우직녀도」 열다섯. 꿈속 나비의 바람 | 남계우, 「화접」 열여섯. 더없는 즐거움을 원하오니 | 작자 미상, 「호작도」 참고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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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키스를 감동시킨 것은 한국인의 진실한 삶, 그 자체였습니다. 그녀는 “한국인의 자질 중에서 제일 뛰어난 것은 의젓한 몸가짐”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한국인의 품성에서 우러나오는 기품과 풍모에 감탄하곤 했습니다. 「평양 강변」을 소개하는 글에는 한국 풍경의 아름다움으로 “저 먼 산 위의 푸른 색깔”을 뽑았으며, 원산 지역의 아침 풍경을 그린 「아침 안개」를 설명하는 글에서는 밥 짓는 연기를 보고 한국 특유의 문화인 온돌을 언급하며 생활 속 아름다움까지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_엘리자베스 키스, 「평양 강변」 | 우리가 잘 몰랐던 우리
힘껏 치켜든 방망이로 그림의 현장감은 높아지고 철썩하는 소리가 들릴 것 같습니다. 빨래터의 소리를 시각화한 것은 활 쏘는 곳에서의 침묵과 묘하게 대립됩니다. 예부터 활 쏘는 곳에서는 ‘습사무언(習射無言)’이라 하여 활을 쏠 때는 말을 삼갈 것을 강조했습니다. 남과 여, 양과 음, 침묵과 소리. 강희언은 이렇게 대비법을 슬며시 풀어놓았습니다. _강희언, 「사인사예」 | ‘활 쏘는 사람’에서 곡식을 키우고 성장시켜 백성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땅에게 감사 의식을 거행하는 사직단에서 자신의 몸을 낮춰 땅에 순종하려는 사직송은 그야말로 딱 맞는 수종일 것입니다. 또 그 소나무를 그린 정선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백성의 주린 배를 생각하며 뒤틀리고 꼬여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삶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를 떠올리지 않았을까요? _정선, 「사직노송도」 | ‘삶을 포기하지 않는 생명력’에서 『능호필첩』 발문의 “이인상의 묘처(妙處)는 진함(濃)이 아니라 담담(淡)한 데에 있으며 익은 맛(熟)이 아니라 생생한 맛(生)에 있다”라는 김재로의 글처럼, 이인상은 스스로의 삶을 닦음으로써 예술적 성취를 피워냈습니다. 이인상에게는 서얼의 장애도 가난이라는 고난도 아무런 제약이 되지 못했습니다. 칼을 옆에 두고 자신을 돌아보고 경계하며 늘 깨어 있어야 함을 실천한 인물, 곧고 푸른 소나무 아래에서 당당히 앉아 있는 인물, 그런 품격을 지닌 인물이 오늘날 더욱 그리워집니다. _이인상, 「검선도」 | ‘오직 아는 자만이 이를 알리라’에서 사임당이 남긴 포도처럼, 포도는 같은 줄기에 달린 알갱이라도 저마다 익는 속도가 다릅니다. 터질 듯한 시커먼 알갱이에서부터 익을 기미가 안 보이는 연두색 알갱이까지 그 빛깔은 모두 제각각입니다. 때가 되면 저절로 익는다는 것을 알기에 덜 익었든 더 익었든 서로를 나무라지 않습니다. _신사임당, 「포도」 | ‘삶의 주체가 되다’에서 달빛 어스름한 정월 초하룻날 저녁, 어느 집의 누각 마루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시대를 아파하며 자신들의 무능을 곱씹었을 것입니다. 그중 한 사람은 누각 아래 수풀이 자욱한 곳을 애잔하게 내려다보고, 그의 시선 너머에는 숲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하얀 탑 하나가 몸도 성치 않게 서 있습니다. 「탑원도소회지도」는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는 조선 후기 산수화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묻어나는 먹먹한 애잔함은 이 그림이 평범한 산수화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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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세우는 옛 그림』(2012)으로 옛 그림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 즉 ‘옛 그림 수신론’을 역설했던 지은이가 다시 한 번 옛 그림을 꺼내들었다.
이번에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에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고, 다시금 힘차게 발돋움하기 위해서다. 이 책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옛 그림에서부터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볼 옛 그림까지 자신의 삶과 그림을 연결하며 현재를 톺아본다. 더불어 옛 그림이 현시점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옛 그림 감상이 곧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가는 과정과 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옛사람들의 시선과 마음으로 나를 다잡다 우리에게 근 몇 달간의 시간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아니 혹독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가치가 흔들리고, 사회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세상이 곪을 대로 곪아 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게 다 무너지고 으스러지고 나서야, 그동안 앞만 좇아 보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잊고 있었던 것들의 소중함과 살아가면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가치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된 것입니다. (중략) 아무리 각자도생의 사회가 되었다고 한들 세상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 세상의 구성원으로서의 자세, 자신을 바로잡고 다스리는 태도 등 어떤 가치들은 변하지 않으며, 오히려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힘을 갖는다고 믿습니다. 그런 가치들을 저는 옛 그림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_‘서문’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발 딛고 있는 곳이 단단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어떠한가. 기본적인 가치를 당연한 것이라 여겨서 무시하거나 제대로 돌보지 않고 대충 혹은 눈감고 지나가 버리는 경우가 만연하진 않은지. 이런 세태에 지은이는 오늘의 시각에서 친숙한 옛 그림을 꺼내들어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가치를 끄집어내고, 삶의 방향성을 찾는다. 일상을 깨우는 옛 그림의 단단한 가르침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지은이는 간송미술관의 ‘단원’ 전시를 계기로 옛 그림에 빠져들었다. 전국의 미술관과 고서화점을 섭렵하면서 좋아하고 즐기는 차원을 넘어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하기에 이르렀다. 지은이는 옛 그림과 깊게 사귀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상 속에 옛 그림을 대입하게 된다. 그림 애호가에서 전문가로 옮겨간 사람답게 그림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현재를 되짚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옛 그림은 지은이에게 일상을 바라보는 화두가 되었고, 그의 삶과 그림은 자연스럽게 뒤엉키게 되었다. 가령 지은이는 문화상품권에 얽힌 일화를 말하며 상품권의 도안에서 조선시대 관복의 가슴과 등에 수놓아진 '흉배'를 소환한다. 그러고는 흉배의 변천 과정과 의미들을 살펴보고, 가슴 속 흉배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은 무엇인지 책임감이라는 가치를 길어 올린다.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태도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이다. 또한 평화의 소녀상을 언급하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그림과 옛 그림들을 연결해 사회적 맥락에서 그 의미를 살핀다. 안중식의 「탑원도소회지도」를 통해서는 회화적?역사적 맥락을 밝혀 그림 속 인물들의 삶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짚어본다. 심지어 그림 속 탑의 존재를 찾아 직접 답사하는 과정은 옛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지은이는 계속해서 다양한 작품들을 꼽아 현재와 맞붙이며 옛 그림이란 단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활시위를 당기는 마음으로 옛 그림을 보다 이 책은 옛 그림을 소재로 옛사람들의 시선과 마음을 건넨다. 그것은 옛 그림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1부 ‘다시, 활시위를 당기다’에서는 흔들리고 어지러운 시절, 세상살이에 지친 지은이에게 힘이 된 그림들을 말한다. 스스로가 작게 느껴질 때 큰 가르침을 건네준 「사인사예」와 「검선도」, 사회의 기반이 흔들릴 때 가까이했던 「평양 강변」과 「최익현 초상」, 불굴의 의지가 무엇인지 알려준 「사직노송도」 등 마음을 바로잡는 데 도움을 주었던 옛 그림을 소개한다. 2부 ‘가슴에 무얼 담고 사는가’는 일상에서 만난 익숙한 그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모의 마음에서 바라본 김홍도의 그림, 5만 원권 지폐에 담긴 신사임당의 「포도」 등 너무나 익숙해서 제대로 그 진가를 알지 못했던 옛 그림들을 담았다. 3부 ‘더없는 즐거움을 원하오니’는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우리가 잃지 않아야 하는 태도에 대해 묻는다. 희망이 좀처럼 보이지 않을 때마다 꺼내본 「탑원도소회지도」와 「호작도」, 굳건한 심지가 무엇인지 가르쳐준 「풍설야귀인」 등 때로는 오늘날의 우리를 채근하고 때로는 다독이는 그림들을 꼽았다. 옛것을 본받아 새롭게 창출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은 이 책에 면면히 흐른다. 과거 없이 현재가 존재할 수 없듯,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또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말아야 한다. T.S.엘리엇은 1934년 시 「바위」에서 “생활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삶은 어디에 있는가. (……) 정보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지식은 어디에 있는”지 노래했다. 그리고 2017년 이 책의 지은이는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삶의 근간을 옛 그림에서 발견한다. 그림에 깃든 정신과 참된 마음을 살피고 그것이 다시 우리를 일어서게 하고 힘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옛 그림이 새로운 일상을, 새로운 시대를 향한 활시위를 힘차게 당겨줄 것이라고. 활을 당기는 순간에는 긴장감과 집중이 최대치에 달하고 어지러운 세상의 소리는 멀어집니다. 본질만이 뚜렷이 보이며, 어느 때보다 정신이 맑고 명확해집니다. 그러한 태도를 지닐 때, 다시금 일어날 수 있고,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기꺼이 무엇인가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며 떨지 않는 나침반 바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활시위를 당기는 마음처럼 옛 그림들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옛 그림을 향해 쏜 화살 하나하나가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꿰뚫고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살이에 지쳤을 때 분명 옛 그림은 삶의 힌트가 되어줄 것입니다._‘서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