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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를 잇는 수잔의 놀라운 모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신작. 독불장군에 극도의 개인주의자들로 이루어진 수잔과 다재다능한 가족들이 정치적 음모를 파헤쳐가는 모험의 과정을 그렸다. 스밀라를 잇는 독특한 캐릭터 수잔이 과학의 진보, 권력과 욕망의 실체를 파헤치는 심리 철학 스릴러.
2017.04.14.
소설/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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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2부 3부 옮긴이의 말 |
Peter Ho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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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지막으로 책상 위로 시선을 던졌다. 물리학에서는 여러 가지 비슷한 가능성이 존재할 때 그리고 모든 가능성이 충분히 논리적이고 타당할 때는 가장 단순한 것을 고르라고 한다. 이건 자연과학의 법칙일 뿐만 아니라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다. 그녀가 내게 뭔가를 남겼다면 가장 찾기 쉬운 방법을 택했으리라.
--- p.104~105 “너희가 이건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인생을 살면서 꼭 이루고 싶은 게 뭐였는지 아니? 평범한 삶을 사는 거야. 내겐 그게 물리학의 세계에 입문하는 것보다, 이 효과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어. 아니, 뭘 알고 싶다는 것 자체보다 훨씬 중요했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평범한 삶을 갈구했어. 가정과 직장, 남편, 아이들, 월급 통장,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삼시 세끼, 그리고 카오스와 엔트로피가 내 삶에서가 아니라 닫힌 시스템 안에서 유효하다는 확신. 그리고 난 그걸 얻었어.” --- p.112 그는 모르고 있지만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효과가 발현되고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예의가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예의란 표면에 붙은 겉껍질인 경우가 많으니까. 이렇게 상호 이해가 커지는 가운데 나는 물리 화학적 차원에서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심리학을 신봉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아니다. 모든 것은 양자전기역학적 작용에 기초한 생화학으로 설명된다. 토르킬 하인은 맹독성 액체가 가득 든 양동이에 국정원장, 육군 중령, 보수당 총재를 통째로 쏟아붓고 농축시켜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권력자들을 많이 봐왔지만 이 남자처럼 독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가 두려워한다는 건 우리 앞에 닥친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 p.121 “애 엄마요, 애 엄마.” 내가 말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어머니 이야기 알죠?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눈, 머리카락, 연금, 모든 걸 다 내놓잖아요. 그건 내 반쪽일 뿐이에요, 다른 반쪽은 뭔지 알아요? 미치광이 과학자예요. 프랑켄슈타인, 마부제 박사,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합쳐진 잡종이 나예요. 거기서 어떤 독종이 나왔는지 곧 보게 될 거예요. 켈센 씨, 날 봐요. 내가 얼마나 막다른 상황에 처했는지 아시겠죠?” --- p.158 “불균형은 아직 제대로 인식되지도 않았습니다. 덴마크의 현실을 보세요. 정치가들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하고 이해 집단들은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혈안이 돼 있고 언론은 진실을 알면서도 말하지 못합니다. 왜? 진실을 들으려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문제는 우리 밖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들 자신, 과소비와 빚더미에 앉아 있는 우리들이 문제인 겁니다.” 차는 점점 공항에 가까워졌다. 나는 그의 점잖은 미소 뒤에 숨겨진 분노를 느꼈다. --- p.269 “엄마가 너희를 임신했을 때 아빠 머릿속에 든 생각은 단 하나였어.” 라반이 말했다. “소망이라면 소망이고 꿈이라면 꿈인데, 너희에게 뭘 가르쳐주겠다 그런 것도 아니고 음악과 관련된 것도 아니었어. 그냥 너희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외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거 하나였어. (…) 네 엄마를 만나고 나선 괜찮았어. 하지만 그 대가를 치러야 했지. 다른 사람이 진정한 의미에서 나를 봐준다는 것, 한 여자가 내 존재를 알아챘다는 게 사람을 미치게 하더라고. 계속해서 날 봐줬으면 좋겠고 날 완전히 이해했으면 좋겠고. 이제까지 내 옆에 없었던 시간들을 다 보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리고 또 한 가지. 일단 마음을 열고 나면 잃어버릴까 봐 엄청나게 두려워져.” --- p.319~320 “그거 알아, 라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항상 배경음악이 흐르고 있어. 여기뿐 아니라 덴마크 전체에. 어딜 가든 그 노랫소리가 들려. 우린 잘 살고 있다, 걱정 마라,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건 다 있다, 우린 죽을 때까지 돌봐줄 사람이 있고 이 복은 끝없이 계속될 테니 두 다리 쭉 뻗고 삶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 유혹하는 노래야. 세이렌의 노래지. 잠깐 열린 시간의 구멍 속에 잠시 살다 가는 인생인데 이 노래는 그걸 잊으라고 해.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배고픔을 잊게 한다고. 하지만 나한텐 안 통해.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난 끝없이 배고프다고.” “수잔, 당신이 맛보지 않은 게 있어? 당신을 배부르게 할 수 있는 건 없어.” --- p.326 “옛날이야기를 해줄 때 엄마는 우리에게 방을 만들어주려고 한 것 같았어요. 전 그걸 느낌으로 알았어요. 아주 환한 방을, 완벽한 방을 만들어주려고 하는구나. 엄마가 말했잖아요, 물리학은 항상 완벽한 공간을 만들어내려 한다고. 빛이 완전히 차단된 공간, 완벽한 진공상태의 공간, 무중력의 공간, 무균상태의 공간. 엄마 아빠는 우리에게 그런 공간을 만들어주려고 했어요. 엄마가 옛날이야기를 해줄 때 전 그걸 가장 분명하게 느꼈어요. 그리고 엄마는 그렇게 해줬고요. 거의 그렇게 했다고 해야겠죠. 그런데 전 그 방에 들어가기가 싫었어요. 만약 그 방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았어요. 문제는 바로 그거예요. 정말 아픔이 없는 그런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그건…… 위험하잖아요. 왜냐면 그냥 거기 있고 싶어질 테니까. (…) 내 생각에 엄마는 물리 숙제를 고치듯 세상을 수정하려고 했어요.” --- p.329 “너희가 태어나고 얼마 안 돼서 코펜하겐 음대에 교수 채용 공고가 났어. 해외로 발돋움할 좋은 기회다 싶었지. 경제적 안정도 보장되고. 우린 음대 학장과 교수 두 명을 집에 초대했어. 그 세 사람은 채용 심사 위원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인원이었어. 엄마가 음식을 내온 다음 우린 효과를 발휘했어. 효과는 그때그때 일어나기도 하지만 의도적으로 발휘할 수도 있거든. 우린 경찰 신문도 해보고 안드레아랑 프로젝트도 많이 해봐서 그 방식을 알고 있었어. 어떻게 진행될지 빤히 보였다는 말이야. 먼저 상대가 나를 신뢰하게 만들어야 해.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 한편이라는 느낌이 들게 해주면 거의 자동적으로 마음을 열거든. 그다음에는 일종의 끌림을 느끼지. 이제 도망을 못 가. 그러면 낚인 거야. 이 과정을 소화하는 데에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 왜냐면 제때 효과를 중지하고 상대에게 마음을 돌려줘야 하거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건 착취고 유혹이야. 그날 저녁 우린 선을 넘었어. 그렇게 내게 마음을 여는 사람을 내 이익을 위해 이용해 먹으면 도덕성에 오점을 남기게 되고 미래에 빚을 지게 돼. 난 그 교수 자리를 얻었고 해외 진출 기회를 얻었어.” --- p.3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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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진보, 권력과 욕망의 실체를 파헤치는
심리 철학 스릴러 ‘자연법칙이 주는 확실성만큼 행복감을 주는 것은 없다’, ‘인간관계는 화학이다’라며 자연과학을 신봉하고 모든 것을 과학으로 재단하는 수잔에게 미래위원회 위원은 담담하게 말한다. “과학은 오히려 진실을 가리곤 하지”라고. 그리고 수잔은 곧 과학과 권력, 욕망이 뒤엉킨 사건의 핵심과 마주하게 된다. “이제 세기말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생태계는 무너지기 시작했어. 지각 있는 언론인, 정치가, 연구자 중에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 하지만 말을 하진 못하지. 말을 해도 먹히질 않거든. 왜냐면 팔리질 않으니까. 그럼 당선이 안 되는 거고. 결국 우리 자신이 문제의 한 부분이 된 거야. 이제 더 이상 적은 없어.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대상이 없는 거야. 이젠 우리 중 엘리트들만이라도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만 남았어.”(본문 중)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페터 회는 과학의 진보로 양극화되는 현대사회 문명을 비판한다. 신선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과거 회상과 현실을 오가는 구성 방식에 덴마크를 넘어 세계적 차원으로 넓어진 배경, 여기에 수잔 이펙트가 발휘될 때마다 일어나는 미묘한 심리 상태 묘사까지 다소 복잡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페터 회는 방대한 지식과 섬세한 필치로 능란하게 풀어간다. 이는 첫 소설을 내놓기 전까지 쌓은 독특한 경험 덕분이라 할 수 있는데, 그는 발레 무용수와 배우로 무대에 올랐고, 등산가로 세계 곳곳을 여행했으며, 선원이 되어 카리브 해와 아프리카의 바다를 누비기도 했다. 그러한 경험이 그만의 고유한 리듬감 있는 문장으로, 깊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신비로움을 품은 이야기로 탄생하였다. 페터 회는 1988년 첫 소설 『덴마크 꿈의 역사』를 내고, 2014년 『수잔 이펙트』를 내놓기 전까지 25년 동안 『밤의 이야기』,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경계에 선 아이들』, 『여자와 원숭이』, 『콰이어트 걸』, 『코끼리 파수꾼의 아이들』 단 여섯 편을 출간했다. 다작을 하기보다 오랜 시간을 들여 심도 있는 굵직한 글을 썼고, 사회 문제에서 나아가 문명 비판에 이르는 철학적인 소설을 써왔다. 그리하여 그의 소설은 기본기가 탄탄하고, 문장이 발레 동작처럼 탄력 있게 흐르며 유려하여 마음에 각인이 된다. 독자들의 두뇌를 자극하는 추리소설인 동시에 미묘한 심리 묘사가 더해지고, 철학적인 명제를 제시하는 『수잔 이펙트』는 스밀라를 기다린 독자들에게 분명 큰 만족감과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다. ■ 추천평 수잔은 스밀라가 아니다. 하지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주인공의 다음 모험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 페터 회의 『수잔 이펙트』는 반갑기 그지없는 책이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 그랬던 것처럼, 종말론적 SF와 음모론 스릴러, 사회풍자물이 뒤섞인 페터 회의 이 소설을 끌어가는 것은 강철 같은 지성과 뻔뻔스러운 폭력성을 겸비한 물리학자 수잔의 번뜩이는 개성이다. 세상은 언제나 이런 여자들이 더 필요하지 않던가. -듀나(평론가 겸 소설가) ★ 올해 읽어야 할 단 한 권의 추리소설이 있다면, 그건 단연 『수잔 이펙트』다! - 《이윌란스포스텐》(덴마크 일간지) ★ 스밀라를 잇는 주인공 수잔과 함께 페터 회가 돌아왔다! 페터 회의 신작은 가뭄에 콩 나듯 나오긴 해도, 분명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다! - 《쿨투나우트》(덴마크 문화 포털 사이트) ★ 뛰어난 스토리,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을 건드리는 이야기. - 《NZZ》(스위스 일간지) ★ 도발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추리소설을 들고 페터 회가 돌아왔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 《다그블라데네스》(덴마크) ★ 페터 회 특유의 건조한 위트와 긴장감, 스릴이 교차하며 독자를 사로잡는다. -《디 차이트》(독일 주간지) ★ 페터 회의 정상 탈환작! (…) 처음부터 끝까지 대단히 좋다. - 《크리스텔릭트 다그블라드》(덴마크 일간지) ★ 탁월한 스토리텔러, 페터 회가 또 한 번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 《알트 포르 다메르네》(덴마크 여성지) ★ 웃기고, 능수능란하며, 아이디어가 넘친다. 이보다 더 재미있는 소설을 만나긴 어려울 것이다. -《타게스 슈피겔》(독일 일간지) ■ 책 속으로 나는 마지막으로 책상 위로 시선을 던졌다. 물리학에서는 여러 가지 비슷한 가능성이 존재할 때 그리고 모든 가능성이 충분히 논리적이고 타당할 때는 가장 단순한 것을 고르라고 한다. 이건 자연과학의 법칙일 뿐만 아니라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다. 그녀가 내게 뭔가를 남겼다면 가장 찾기 쉬운 방법을 택했으리라. “너희가 이건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인생을 살면서 꼭 이루고 싶은 게 뭐였는지 아니? 평범한 삶을 사는 거야. 내겐 그게 물리학의 세계에 입문하는 것보다, 이 효과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어. 아니, 뭘 알고 싶다는 것 자체보다 훨씬 중요했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평범한 삶을 갈구했어. 가정과 직장, 남편, 아이들, 월급 통장,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삼시 세끼, 그리고 카오스와 엔트로피가 내 삶에서가 아니라 닫힌 시스템 안에서 유효하다는 확신. 그리고 난 그걸 얻었어.” 그는 모르고 있지만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효과가 발현되고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예의가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예의란 표면에 붙은 겉껍질인 경우가 많으니까. 이렇게 상호 이해가 커지는 가운데 나는 물리 화학적 차원에서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심리학을 신봉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아니다. 모든 것은 양자전기역학적 작용에 기초한 생화학으로 설명된다. 토르킬 하인은 맹독성 액체가 가득 든 양동이에 국정원장, 육군 중령, 보수당 총재를 통째로 쏟아붓고 농축시켜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권력자들을 많이 봐왔지만 이 남자처럼 독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가 두려워한다는 건 우리 앞에 닥친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애 엄마요, 애 엄마.” 내가 말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어머니 이야기 알죠?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눈, 머리카락, 연금, 모든 걸 다 내놓잖아요. 그건 내 반쪽일 뿐이에요, 다른 반쪽은 뭔지 알아요? 미치광이 과학자예요. 프랑켄슈타인, 마부제 박사,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합쳐진 잡종이 나예요. 거기서 어떤 독종이 나왔는지 곧 보게 될 거예요. 켈센 씨, 날 봐요. 내가 얼마나 막다른 상황에 처했는지 아시겠죠?” “불균형은 아직 제대로 인식되지도 않았습니다. 덴마크의 현실을 보세요. 정치가들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하고 이해 집단들은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혈안이 돼 있고 언론은 진실을 알면서도 말하지 못합니다. 왜? 진실을 들으려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문제는 우리 밖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들 자신, 과소비와 빚더미에 앉아 있는 우리들이 문제인 겁니다.” 차는 점점 공항에 가까워졌다. 나는 그의 점잖은 미소 뒤에 숨겨진 분노를 느꼈다. “엄마가 너희를 임신했을 때 아빠 머릿속에 든 생각은 단 하나였어.” 라반이 말했다. “소망이라면 소망이고 꿈이라면 꿈인데, 너희에게 뭘 가르쳐주겠다 그런 것도 아니고 음악과 관련된 것도 아니었어. 그냥 너희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외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거 하나였어. (…) 네 엄마를 만나고 나선 괜찮았어. 하지만 그 대가를 치러야 했지. 다른 사람이 진정한 의미에서 나를 봐준다는 것, 한 여자가 내 존재를 알아챘다는 게 사람을 미치게 하더라고. 계속해서 날 봐줬으면 좋겠고 날 완전히 이해했으면 좋겠고. 이제까지 내 옆에 없었던 시간들을 다 보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리고 또 한 가지. 일단 마음을 열고 나면 잃어버릴까 봐 엄청나게 두려워져.” “그거 알아, 라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항상 배경음악이 흐르고 있어. 여기뿐 아니라 덴마크 전체에. 어딜 가든 그 노랫소리가 들려. 우린 잘 살고 있다, 걱정 마라,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건 다 있다, 우린 죽을 때까지 돌봐줄 사람이 있고 이 복은 끝없이 계속될 테니 두 다리 쭉 뻗고 삶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 유혹하는 노래야. 세이렌의 노래지. 잠깐 열린 시간의 구멍 속에 잠시 살다 가는 인생인데 이 노래는 그걸 잊으라고 해.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배고픔을 잊게 한다고. 하지만 나한텐 안 통해.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난 끝없이 배고프다고.” “수잔, 당신이 맛보지 않은 게 있어? 당신을 배부르게 할 수 있는 건 없어.” “옛날이야기를 해줄 때 엄마는 우리에게 방을 만들어주려고 한 것 같았어요. 전 그걸 느낌으로 알았어요. 아주 환한 방을, 완벽한 방을 만들어주려고 하는구나. 엄마가 말했잖아요, 물리학은 항상 완벽한 공간을 만들어내려 한다고. 빛이 완전히 차단된 공간, 완벽한 진공상태의 공간, 무중력의 공간, 무균상태의 공간. 엄마 아빠는 우리에게 그런 공간을 만들어주려고 했어요. 엄마가 옛날이야기를 해줄 때 전 그걸 가장 분명하게 느꼈어요. 그리고 엄마는 그렇게 해줬고요. 거의 그렇게 했다고 해야겠죠. 그런데 전 그 방에 들어가기가 싫었어요. 만약 그 방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았어요. 문제는 바로 그거예요. 정말 아픔이 없는 그런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그건…… 위험하잖아요. 왜냐면 그냥 거기 있고 싶어질 테니까. (…) 내 생각에 엄마는 물리 숙제를 고치듯 세상을 수정하려고 했어요.” “너희가 태어나고 얼마 안 돼서 코펜하겐 음대에 교수 채용 공고가 났어. 해외로 발돋움할 좋은 기회다 싶었지. 경제적 안정도 보장되고. 우린 음대 학장과 교수 두 명을 집에 초대했어. 그 세 사람은 채용 심사 위원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인원이었어. 엄마가 음식을 내온 다음 우린 효과를 발휘했어. 효과는 그때그때 일어나기도 하지만 의도적으로 발휘할 수도 있거든. 우린 경찰 신문도 해보고 안드레아랑 프로젝트도 많이 해봐서 그 방식을 알고 있었어. 어떻게 진행될지 빤히 보였다는 말이야. 먼저 상대가 나를 신뢰하게 만들어야 해.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 한편이라는 느낌이 들게 해주면 거의 자동적으로 마음을 열거든. 그다음에는 일종의 끌림을 느끼지. 이제 도망을 못 가. 그러면 낚인 거야. 이 과정을 소화하는 데에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 왜냐면 제때 효과를 중지하고 상대에게 마음을 돌려줘야 하거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건 착취고 유혹이야. 그날 저녁 우린 선을 넘었어. 그렇게 내게 마음을 여는 사람을 내 이익을 위해 이용해 먹으면 도덕성에 오점을 남기게 되고 미래에 빚을 지게 돼. 난 그 교수 자리를 얻었고 해외 진출 기회를 얻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