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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단테, 안단테
권지니 저
눈과마음 200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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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저자 권지니
- 1973년 6월 25일 生
- 사자자리, O형
- 현재는? <사랑이 그리울 때 리코더를 불어요> 구상 중

● E-mail : omona625@nate.com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09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468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57511213

책 속으로

겨울 막바지에 이르자 차가운 빗줄기가 못내 아쉬운 듯 저녁 거리를 스산하게 적신다. 차갑게 식은 비를 검은 우산으로 받쳐들며 한 중년의 신사가 허름한 식당 문을 열고서 자신의 일행을 찾는 듯 두리번거린다. 30년의 세월도 이곳만은 비켜 가는지 가게마다 있을 법한 간판 하나 없었고, 나무로 만든 미닫이문은 열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냈으며, 낡은 의자나 탁자마저도 이 가게 문 열던 그 당시 그대로였다.
신림동의 어느 구석진 골목에 위치한 이 식당을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수재만 다닌다는 명문대에 입학한 제갈석은 부모의 도움을 일절 받지 않고 졸업하겠다고 선언한 뒤 집을 나왔다. 학비와 용돈을 벌기 위해 막일을 하며 2학기 등록금과 집세를 내고 나니, 생활비가 턱없이 모자라는 것이다. 며칠 동안 계속 비가 내려 막일도 나가지 못해 수중에 돈이 없던 제갈석은 배고픔을 참지 못하자 성북동 본가에 들러 합천댁이 해주는 맛깔스런 음식을 먹을 생각으로 자췻집을 나섰다. 하지만 곧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르자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되돌려 자췻집으로 들어가려는 찰나였다. 골목 구석진 가게에서 내뿜는 구수한 고기 냄새가 그를 유혹했다. 배는 채우지 못하더라도 냄새만이라도 배불리 맡아보자는 생각에 간판도 제대로 걸려 있지 않은 가게 앞에 섰다.
비를 흠뻑 맞으면서도 한 시간 넘게 그곳에 서서 삼겹살과 소주를 감칠맛 나게 먹는 사람들을 문밖에서 지켜보고만 서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을까? 어깨를 툭 치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눈이 아주 맑은 청년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불쑥 말을 꺼낸다.
“형씨, 오늘 나하고 술친구 합시다!”
그가 미처 말할 새도 없이 자신의 팔을 꽉 움켜잡고는 고깃집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얼떨떨해 있는 제갈석에게 자리를 권하며 자신도 맞은편에 앉더니 주방을 향해 고함을 지른다.
“아주무이, 여기 삼겹살하고 소주 한 병!”
그러자 주방에서 걸걸한 목소리의 사투리가 가게 안을 꽉 채운다.
“야, 이 머시마야! 니 눈까리는 뒤에 붙었나? 바빠서 내 뒤질 것 같으니께네 니가 갖다 무라!”
양반집에서 곱게 자란 제갈석은 거친 아주머니의 사투리와 험한 말투에 배고픔도 잊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의 앞에 앉은 청년은 아무렇지 않은 듯 껄껄 웃더니 삼겹살과 소주를 챙겨 가지고 와서는 그에게 잔을 건넨다.
“하하, 아주머니 말투에 놀란 것 같군요. 저도 처음에는 황당해서 말도 안 나왔는데, 이제 익숙해지니까 괜찮아지더군요. 형씨도 적응될 겁니다.”
제갈석으로서는 낯선 자신에게 이렇게 친절을 베푸는 그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 이유인즉 청년은 고깃집 2층에서 자취하고 있었고, 창가에 서서 담배를 피우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웬 남자가 고깃집 앞에서 꼼짝도 안 하고 서 있더란다. 처음에는 무심코 봤지만, 한 시간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려와 봤더니 여전히 가게 앞에 서 있는 그의 모습에 끌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학생들 배고픈 건 뭐 다 마찬가지 아닙니까? 구질구질하게 비 내리는 날 혼자서 마시는 술만큼 처량한 것도 없고, 마침 형씨가 내 술친구 하려는 듯 서 있는 거 보니까 반갑기만 하더만요.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잘 지내봅시다. 나 채병훈이오.”
왠지 모르게 사람의 마음을 이끌리게 하는 매력이 있는 친구였다. 남자였지만 여자보다 더 맑고 선한 눈빛에 제갈석은 마음속으로 그를 평생의 벗으로 삼아버렸다.
“하하, 이거 우리 인연이 있나봅니다. 난 요 아래 파란 집에서 자취하고 있소. 그리고 형씨 말대로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친구 합시다. 나도 알고 보면 꽤 괜찮은 사나이고, 형씨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나 제갈석이라 하오!”
그의 직선적이면서도 소탈한 태도에 채병훈 역시 너털웃음을 지으며 오른손을 내민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아는 제갈석 또한 그의 손을 불끈 쥐어 잡았다. 무언으로 서로의 눈을 바라보던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욕쟁이 아주머니가 구시렁거린다.
“하여튼 머시마들은 가시나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된다 아이가. 이것 봐라. 이 아까븐 고기 다 타는 거 봐라. 어찌 이럴꼬. 너거가 고기 태우는 바람에 가게 안이 연기로 가득 찼다 아이가. 내가 미치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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