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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돈 크레머, 슈베르트를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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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1
프란츠 슈베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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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돈 크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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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ubert / 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A Op.162 슈베르트 / 바이얼린과 피아노를 위한 이중주(바이얼린 소나타
Schubert / 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A Op.162
이 작품은 1817년 슈베르트의 나이 20세 대에 아주 짧은 기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한 해 전에 작곡된 세 곡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비교해 볼 때, 아주 견실하고 규모가 큰 작품이다. 슈베르트는 그 당시 제4번, 제5번 교향곡과 몇 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하여, 소나타 형식의 음악에는 어느 정도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이 작품은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특히 피아노 부분의 뛰어남이 돋보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곡은 바이올린 소나타라기보다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이중주라고 불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화성적으로나 리듬적으로 많은 매력을 지니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슈베르트 특유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돋보인다. 형식면에서 2악장에 스케르초를 위치시키고, 3악장에서 서정적인 안단티노의 변주곡을 배열한 점이 독특하다. 전체적으로 행복감이 넘쳐흐르는 작품으로, 이러한 특성은 슈베르트가 즐겨 사용했던 A장조라는 조성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이 작품은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뒤인 1851년 디아벨리 출판사에서 처음 선을 보였고, 공개적인 초연도 슈베르트 사후인 1864년 3월에야 이루어졌다.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 A장조. 4/4박자 소나타 형식으로, 특징있는 저음의 움직임을 지닌 피아노로 시작되고, 바로 바이올린이 밝은 제1주제를 거기에 첨부한다. 계속해서 진행하는 스타일의 경과부 뒤에 G장조로 제2주제가 피아노로 제시된다. 바이올린이 이 주제를 받은 뒤에 정열적인 코데타로 들어가는데, 곧 이어 바이올린의 움직임으로 제시부를 끝맺는다. 발전부는 자유롭게 삽입된 악구로 시작되고, 이어서 제1주제의 피아노 저음의 특징 있는 움직임과 이 주제가 제시되는 끝쪽의 셋잇단음표의 움직임이 삽입된다. 그리고 곡의 첫 부분과 같은 피아노의 움직임이 나온 뒤에 재현부가 시작된다. 이를 이어받아 바이올린이 제1주제를 연주한다. 경과부가 있은 뒤에 제2주제가 C장조로 재현된다. 코데타 뒤에 짧은 코다가 있고, 악장을 조용히 마무리한다. 2악장. 스케르초. 프레스토. E장조. 3/4박자 3부형식으로, 슈베르트적인 독창성을 보여주는 악장이다. 피아노로 시작하고 바이올린이 여기에 세밀하게 새기는 움지임을 보여주는데, 힘의 변화가 절묘하게 나타난다. 중간부는 C장조로, 주부가 스타카토를 주제로 하고 있는데 반해, 여기에서는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레가토로 아름답게 움직인고 반음계적인 진행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다시 주부가 반복되고 악장을 끝맺는다. 3악장. 안단티노. C장조. 3/8박자 변주곡 형식으로, 서정적이면서 일종의 외로움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주제의 선율이 바이올린으로 펼쳐진다. 제1변주는 피아노가 선율을 이끌고 있고, 제2변주는 주제와 상당히 떨어져 있는 입체적인 전개를 보이고, 제3변주는 바이올린이 주제를 원칙에 가깝게 재현한다. 4악장. 알레그로 비바체. A장조. 3/4박자 소나타 형식으로, 2악장 스케르초와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다. 스케르초의 주제와 동기적으로 비슷한 주제를 피아노가 명쾌하게 연주하고, 이 주제에 의한 짧은 경과부 뒤에 바이올린이 부드럽게 제2주제를 연주한다. 이것을 피아노의 저음부와 고음부에서 각각 반복하고, 피아노가 코데타 주제를 우아하게 연주하면 이것을 바이올린으로 반복한 뒤 제시부를 끝맺는다. 발전부는 제1주제를 중심으로 시작하여 대위법적으로 전개하고, 다양한 조옮김을 보여준 뒤 다시 주제로 복귀한다. 재현부는 두 주제를 차례로 연주하고 마지막에 제1주제의 동기를 사용하여 힘차게 곡을 끝맺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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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돈 크레머가 슈베르트를 노래하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가 현대 세계 최정상의 연주자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1980년대 처음 세계 무대에 첫선을 보이던 시기에, 어떻게 보면 기괴하다고까지 표현할 만한 모습을 지니고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던 최상의 기교를 지니고 있었던 그가 '파가니니의 환생'이라고 불렸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 그는 진지하고 학구적인 자세로 끊임없이 연주의 재창조성을 탐구하였고, 그 결과물로 보여주는 연주는 아무 생각 없이 현란한 기교만으로 가득한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롭고 진취적인 것이었다. 또한 그는 현대 작곡가들과의 지속적인 교류와 그 결과에 의한 작품의 연주, 그리고 숨겨진 작곡가들을 소개하고 부활시키는 데에도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 현대 음악 레코딩만 하더라도 슈니트케, 구바이둘리나, 아르보 페르트, 루이지 노노, 필립 글래스 등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래서 크레머가 이번에 무엇을 연주하였는가, 크레머의 해석이 어떠했는가 하는 것은 그때마다 세계 음악계의 작은 사건이 되어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그는 탱고 음악가인 피아졸라의 작품에 주목하여 전세계적인 탱고 음악 붐을 일으켰는데, 이러한 활동이 단순히 클래식 연주자의 외도에 그치지 않고 그의 진지한 노력의 성과로 기억되는 것도 그가 지니는 무게를 보여주는 사건인 것이다.
기돈 크레머는 1947년 라트비아 공화국의 리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스웨덴 혈통이었고, 어머니는 독일 출신이었는데, 특히 그의 외할아버지는 독일에서 활약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칼 브루크너였다. 부모 모두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환경 속에서, 그는 네 살 때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의 기초를 배웠다. 1965년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한 그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본다렌코에게 배웠다. 모스크바 음악원 학생이었던 1967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3위로 입상하여 처음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린 그는, 이어서 1969년 몬트리올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했고, 같은 해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파가니니 콩쿠르에서의 우승은 그의 파가니니적인 이미지를 극대화시킨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1970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크레머는 1975년에 처음 서방에 데뷔하였고, 얼마 되지 않아 엄청난 기교와 개성적인 음악성을 지닌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게 되었다. 1976년에 카라얀의 베를린 필과 브람스의 협주곡을, 78년에는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이스라엘 필과 번스타인의 '세레나데'를, 79년에는 마젤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과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을 녹음하여 최상의 평가를 받으면서 승승장구를 거듭하다가 1980년 급기야 당시의 서독으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81년에 로켄하우스 음악제를 창설했다. 로켄하우스는 원래 헝가리 국경에 접한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이었지만, 현대를 대표하는 기라성 같은 연주자들은 기돈 크레머가 주도하는 음악제라는 이유만으로 이곳에 모여들었다. 이곳에 있는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로켄하우스 성에서 매년 7월 음악제가 개최되었고, 로켄하우스의 실내악 페스티발인 현대 유럽의 대표적인 음악제로 자리잡았다. 1992년부터는 이 음악제의 명칭이 크레머의 이름을 따서 '크레메라타 무지카'로 바뀌었고, 실력 있는 젊은 연주자들로 이루어진 로켄하우스 음악제의 실내 오케스트라도 크레메라타 무지카라는 이름으로 연주 여행도 병행하게 되었다. 기돈 크레머의 음반 목록은 정통적인 레퍼토리부터 현대음악까지 넓은 범위를 자랑한다. 특히 80년 서독 망명 이후에는 대표적인 바이올린 협주곡들을 계속해서 녹음하였고,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작품들을 발굴하여 녹음한 음반들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가 망명 이전 소련에서 남긴 녹음들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30대의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로 자신의 음악적 방향을 구축해 나가고 있던 1970년대는 그에게 있어서 가장 역동적인 연주를 들려주던 때였고, 이 시기의 그의 연주는 지금은 느낄 수 없는 역동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1970년대 녹음된 음반에 담겨져 있는 그의 레퍼토리는 독특하게도 여러 바이올린 소품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잘 알려져 있는 대곡을 중심으로 하는 신예 바이올린 연주자들의 일반적인 경향과는 달리 그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품을 발굴하여 연주하는 데에 자신의 노력을 집중하고 있었고, 이러한 그의 연주 레퍼토리는 놀랍도록 신선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더구나 소품집이라고 해도 크라이슬러나 파가니니의 작품 같이 잘 알려져 있는 소곡들 사이사이에, 제미니아니, 로카텔리와 같은 잊혀진 바로크 시기의 작곡가들의 작품이나, 셰드린, 쇼스타코비치, 찬도쉬킨 등 러시아 계통의 작곡가들의 바이올린 작품들을 포함시키는 넓은 범위를 확보하고 있다. 사실 그는 기교적으로 어떤 곡이라도 쉽게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기교나 음악성을 과시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이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적인 방향을 여러 방면에서 찾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 당시 거의 연주되고 있지 않았던 슈베르트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연주하였고, 러시아 작곡가들의 바이올린 작품을 녹음했으며, 숨겨져 있던 소품들을 발굴하였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80년대 서방 망명 이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기돈 크레머의 연주와는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며, 70년대 이루어진 음원들은 단순히 그의 젊은 연주를 듣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우리에게 펼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