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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기돈 크레머, 슈베르트를 노래하다.

디스크

CD 1

  • 01 Variation's For Violin And Piano On 'Trockne Blume' (Arr : G. Kremer)
  • 02 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A, Op.162 - Allegro Moderato
  • 03 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A, Op.162 - Scherzo, Presto
  • 04 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A, Op.162 - Andantino
  • 05 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A, Op.162 - Allegro Vivace
  • 06 Schubert-Ernst / Erlkonig
  • 07 Geminiani / Sonata In B Flat For Solo Violin (Edtion : E. Corti)

아티스트 소개 2

작곡Franz Schub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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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슈베르트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독일어: Franz Peter Schubert, 1797년 1월 31일 ~ 1828년 11월 19일)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이다. 음악의 최고봉 중 한 사람이다. 관현악곡·교회 음악·실내악·피아노곡 등 명작이 많은데, 특히 리트(독일 가곡)에 뛰어난 작품이 많으며, 19세기 독일 리트 형식의 창시자이다. 여러 가지 의문점을 남긴 채 31세로 병사한 그는 가난과 타고난 병약함 등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600여 편의 가곡, 13편의 교향곡, 소나타, 오페라 등을 작곡했으며, 가곡의 왕이라고 불린다. 오스트리아 대공국 빈의 교외 리히텐탈에서 독일의 슐레지엔의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독일어: Franz Peter Schubert, 1797년 1월 31일 ~ 1828년 11월 19일)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이다. 음악의 최고봉 중 한 사람이다. 관현악곡·교회 음악·실내악·피아노곡 등 명작이 많은데, 특히 리트(독일 가곡)에 뛰어난 작품이 많으며, 19세기 독일 리트 형식의 창시자이다. 여러 가지 의문점을 남긴 채 31세로 병사한 그는 가난과 타고난 병약함 등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600여 편의 가곡, 13편의 교향곡, 소나타, 오페라 등을 작곡했으며, 가곡의 왕이라고 불린다.

오스트리아 대공국 빈의 교외 리히텐탈에서 독일의 슐레지엔의 자작농 출신이자 초등학교 교장인 아버지와 요리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음악에 재능이 있는 슈베르트에게 5살부터 악기교육을 시켰고, 1년 뒤 그의 아버지의 학교에 입학한 슈베르트는 그때부터 공식적인 음악 교육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의 아버지는 슈베르트에게 바이올린의 기초를 가르쳤으며, 그의 형 이그나츠는 슈베르트에게 피아노 교습을 시켰다. 7살부터 지역 교회의 합창단장인 미하엘 홀처로부터 교습을 받았다. 또한 가족 현악 4중주에서 형 이그나츠와 페르디난트는 바이올린을, 아버지는 첼로를, 자신은 비올라를 맡아 연주하기도 하였다. 슈베르트는 어려서부터 음악에 대한 재능이 뛰어났으나 아버지가 음악을 가르친 이유는 단순히 취미였을 뿐, 슈베르트를 음악인으로 키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중에 어른이 된 슈베르트는 교사가 되길 바라는 아버지와 진로문제로 갈등을 겪게 되었다. 1804년 슈베르트는 살리에리의 지도를 받았으며 그 재능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08년에는 궁정신학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고 그곳에서 모차르트의 서곡이나 교향곡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는 특히 모차르트를 좋아하고 베토벤을 존경하였다. 13세 때 변성기로 인해 궁정학교 수업을 그만두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군복무를 일정기간의 교사근무로 대신하는 대체복무제를 허용하고 있었으므로 아버지의 뜻에 따라 1814년부터 아버지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에서 조교사로 일했다. 이때부터 작곡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 해에 바 장조의 미사곡(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장례미사에 사용하는 음악)을 작곡하였는데, 이 곡의 독창을 부른 테레제 그로브는 슈베르트의 첫번째 애인이었다. 하지만 둘 사이의 사랑은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결실을 보지 못하고, 테레제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였다.

1815년 18세 때에 그의 재능을 아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수백 곡의 가곡을 썼으며,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인 《마왕》, 《휴식 없는 사랑》, 《들장미》 등의 명작도 이 해에 작곡되었다. 그가 지은 가곡 중 일부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책으로 편집되었다. 1816년 슈파운이 소개한 시인 친구 프란츠 폰 쇼버의 권유로 친구 집에 머물며 작곡에 몰두하였다. 이때부터 그의 방랑생활이 시작되며, 죽는 날까지 그를 괴롭힌 매독 또한 이 시기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1817년 당시 최고의 성악가이자 25세 연상인 요한 미하엘 포글을 만났다. 1818년에는 가곡 《죽음과 소녀》, 《송어》를 작곡하였으며 에스테르하지 공작 집안의 두 딸의 가정교사가 되어 한여름을 첼리즈에서 보냈다. 이듬해에 포글과 함께 북오스트리아 각지로 연주 여행을 하였는데, 그의 음악이 포글에 의해 처음으로 공개 연주되어 호평을 받았다. 이 좋은 벗의 도움으로 그의 명성은 차츰 높아지고, 오스트리아에 있는 그의 친구들을 중심으로 Schubertiads 라는 모임이 결성되었다. 1819년 라이바흐 사범학교의 교사가 되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부친의 학교에 머물면서 많은 작품을 작곡하였다. 가곡 《방랑자》나 《교향곡 제5번》 등이 이때의 작품이다. 1823년에는 《방랑자의 환상곡》, 《로자문데》 등을 발표했고 그 해 여름, 친구의 집에서 읽은 뮐러의 시에 감동하여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를 작곡하였다. 1824년, 다시 에스테르하지 가의 음악 교사가 되어 전원 생활을 즐기며 《현악 4중주곡》을 작곡하였다. 이듬해 다시 포글과 서부 오스트리아로 여행하였는데, 이때 《아베 마리아》를 작곡하였다. 1827년 30세가 되자 자신의 인생이 겨울을 맞았음을 아는 듯 《겨울 여행》을 작곡하였다. 1828년 3월 자작 연주회를 열어 성공을 거둔 뒤 교향곡 9번인 《대교향곡》을 완성하였으며, 그가 죽은 뒤 출판된 《백조의 노래》에 수록된 가곡의 대부분이 그 해 8월에 완성되었다.

슈베르트는 한때 베토벤과 만난 적이 있었다. 평소에 베토벤을 존경해왔던 슈베르트는 그를 만나고자 했지만 자신의 소심한 성격 탓에 쉽사리 만날 용기를 가지지 못했다. 게다가 베토벤의 청력상실을 비롯한 합병증으로 만난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만날 기회를 더더욱 가지지 못했다. 그러다 지인들의 권유로 슈베르트가 용기를 내어 1827년 3월 19일, 베토벤 집에 방문하여 만나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어렵게 만난 두 사람이 불과 2 km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에게 인사하는 한편 자신이 작곡한 악보를 보여준다. 베토벤은 슈베르트로부터 받은 그의 악보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으며 이렇게 늦게 만난 것에 대해 후회를 했고 슈베르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네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내 명은 이제 다 되었네. 슈베르트, 자네는 분명 세상에 빛낼 수 있는 훌륭한 음악가가 될 것이네. 그러니 부디 용기를 잃지 말게…"

이러한 베토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합병증으로 인해 힘이 들어 보였고 말할 때마다 계속되는 기침으로 슈베르트는 자신이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괴로울 지경이었다. 그 후 베토벤은 청력상실로 듣지 못하는 탓에 슈베르트에게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적으라고 했지만 슈베르트는 자신이 존경하는 음악가의 병이 든 처참한 모습을 보고 소심한 성격때문에 일찍 만나지 못한 자괴감과 후회감에 빠져 괴로운 나머지 인사말도 없이 그대로 방을 뛰쳐나가고 말았다. 베토벤이 죽기 일주일 전의 일이었고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1주일 뒤인 3월 26일, 베토벤이 죽자 그의 장례에 참여하였다.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1년 뒤인 1828년, 그는 자신이 대위법이 부족한 것을 스스로 깨닫고 다시 공부하다가(키즐러에게) 11월 17일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얻어 몸져 누웠다. 그의 병세는 날로 악화되어 기억력이 감퇴하여 술에 취한 사람처럼 몸을 비틀거리는데다 허깨비가 보이며 혼잣말을 하는 등 정신이상의 증세를 보이다가 이틀 뒤인 11월 19일에 31세의 젊은 나이로 빈에서 요절하고 말았다. 슈베르트의 아버지는 유해를 교회에 묻으려 했으나 당시 그를 돌보던 둘째 형 이그나츠가 평소에 존경하던 베토벤의 옆에 묻어주자고 제안을 해 빈 중앙 묘지의 베토벤 무덤 옆에 나란히 묻혔다. 슈베르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았는데 식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설, 장티푸스로 사망했다는 설과 매독의 악화로 사망했다는 설도 있으며 현재는 매독으로 인한 사망이 신빙성을 얻고 있다.[주해 1] 별세한 해에 만들어진 최후의 가곡 14곡을 모은 것이 《백조의 노래》이다.

슈베르트는 그 짧은 일생에 수많은 가곡과 기악곡, 교향곡 등을 작곡하였으나, 그의 이름을 유명하게 한 것은 가곡이다. 690곡에 이르는 가곡들이 모두 훌륭하다는 평을 듣지만, 특히 《겨울 여행》이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 《백조의 노래》 등이 특히 뛰어난 작품이며, 자유로운 표현력을 지니는 멜로디의 아름다움, 그리고 화성의 미묘한 변화 등 낭만주의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교향곡에서는 제8번의 《미완성》이 특히 유명하나, 제9번 《대교향곡》의 아름다움도 잊어서는 안된다. 피아노곡에서는 《마왕》, 《방랑자 환상곡》, 《스케르초》, 《악흥(樂興)의 한때》 등이 알려져 있고, 실내악곡에도 《죽음과 소녀》나 《송어》 등 걸작이 많다. 그 밖에 오페라·음악극의 작품도 있으며, 가곡을 비롯하여 교향곡·실내악·피아노곡 등 1,200여 곡의 많은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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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Gidon Kre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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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돈 크레머

발트 3국 중 하나인 라트비아 리가에서 태어났다. 조부이자 바이올린의 대가였던 카를 브뤼크너(1893-1963)와, 마찬가지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양부에게서 가르침을 받아 네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다. 일곱 살에 리가 음악 학교에 들어갔고, 열여덟 살부터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전설적 연주자인 다비트 오이스트라흐(1908-1974)를 사사하며 본격적으로 연주자의 길을 걷는다. 1967년, 브뤼셀에서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3위로 입상했고, 1969년 몬트리올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2위에 올랐다가 마침내 같은 해 열린 파가니니 콩쿠르와 1970년 차이콥스 키 콩쿠르에서
발트 3국 중 하나인 라트비아 리가에서 태어났다. 조부이자 바이올린의 대가였던 카를 브뤼크너(1893-1963)와, 마찬가지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양부에게서 가르침을 받아 네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다. 일곱 살에 리가 음악 학교에 들어갔고, 열여덟 살부터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전설적 연주자인 다비트 오이스트라흐(1908-1974)를 사사하며 본격적으로 연주자의 길을 걷는다. 1967년, 브뤼셀에서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3위로 입상했고, 1969년 몬트리올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2위에 올랐다가 마침내 같은 해 열린 파가니니 콩쿠르와 1970년 차이콥스 키 콩쿠르에서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다. 1975년 독일 안스바흐의 바흐주간 페스티벌과 베를린 필하모니를 통해 데뷔 무대를 가졌고, 1980년에는 소련을 떠나 독일에 정착했다. 다음 해, 오스트리아 로켄하우스에서 실내악 페스티벌(후에 ‘크레메라타 무지카’로 명칭 변경)을 창설해 새롭고 독특한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2011년까지 장장 30년 동안 예술감독을 지냈다. 1997년에는 발트 해 지역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인 크레메라타 발티카를 만들어 지금도 전 세계로 활발히 초청 공연을 다니고 있다. 2002년에는 이 실내악단과 함께 논서치에서 발매한 음반 〈애프터 모차르트After
Mozart〉로 그래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2016년 영국 음악전문지 〈BBC 뮤직 매거진〉이 백 명의 현역 바이올리니스트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생존하는 가장 위대한 바이올린 연주자로 첫손에 꼽히기도 했으며, 현대 음악의 저변과 바이올린 음악 레퍼토리를 넓히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이 책을 비롯하여 《유년기의
파편Kindheitssplitter》 등 네 권의 음악 관련 서적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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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z Schubert

piano : Oleg Maisenberg
violin : Gidon Kremer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매일
2003년 10월 13일
시간/무게/크기
100g | 크기확인중
KC인증

관련 자료

Schubert / 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A Op.162 슈베르트 / 바이얼린과 피아노를 위한 이중주(바이얼린 소나타
Schubert / 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A Op.162
이 작품은 1817년 슈베르트의 나이 20세 대에 아주 짧은 기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한 해 전에 작곡된 세 곡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비교해 볼 때, 아주 견실하고 규모가 큰 작품이다. 슈베르트는 그 당시 제4번, 제5번 교향곡과 몇 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하여, 소나타 형식의 음악에는 어느 정도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이 작품은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특히 피아노 부분의 뛰어남이 돋보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곡은 바이올린 소나타라기보다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이중주라고 불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화성적으로나 리듬적으로 많은 매력을 지니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슈베르트 특유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돋보인다. 형식면에서 2악장에 스케르초를 위치시키고, 3악장에서 서정적인 안단티노의 변주곡을 배열한 점이 독특하다. 전체적으로 행복감이 넘쳐흐르는 작품으로, 이러한 특성은 슈베르트가 즐겨 사용했던 A장조라는 조성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이 작품은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뒤인 1851년 디아벨리 출판사에서 처음 선을 보였고, 공개적인 초연도 슈베르트 사후인 1864년 3월에야 이루어졌다.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 A장조. 4/4박자
소나타 형식으로, 특징있는 저음의 움직임을 지닌 피아노로 시작되고, 바로 바이올린이 밝은 제1주제를 거기에 첨부한다. 계속해서 진행하는 스타일의 경과부 뒤에 G장조로 제2주제가 피아노로 제시된다. 바이올린이 이 주제를 받은 뒤에 정열적인 코데타로 들어가는데, 곧 이어 바이올린의 움직임으로 제시부를 끝맺는다. 발전부는 자유롭게 삽입된 악구로 시작되고, 이어서 제1주제의 피아노 저음의 특징 있는 움직임과 이 주제가 제시되는 끝쪽의 셋잇단음표의 움직임이 삽입된다. 그리고 곡의 첫 부분과 같은 피아노의 움직임이 나온 뒤에 재현부가 시작된다. 이를 이어받아 바이올린이 제1주제를 연주한다. 경과부가 있은 뒤에 제2주제가 C장조로 재현된다. 코데타 뒤에 짧은 코다가 있고, 악장을 조용히 마무리한다.

2악장. 스케르초. 프레스토. E장조. 3/4박자
3부형식으로, 슈베르트적인 독창성을 보여주는 악장이다. 피아노로 시작하고 바이올린이 여기에 세밀하게 새기는 움지임을 보여주는데, 힘의 변화가 절묘하게 나타난다. 중간부는 C장조로, 주부가 스타카토를 주제로 하고 있는데 반해, 여기에서는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레가토로 아름답게 움직인고 반음계적인 진행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다시 주부가 반복되고 악장을 끝맺는다.

3악장. 안단티노. C장조. 3/8박자
변주곡 형식으로, 서정적이면서 일종의 외로움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주제의 선율이 바이올린으로 펼쳐진다. 제1변주는 피아노가 선율을 이끌고 있고, 제2변주는 주제와 상당히 떨어져 있는 입체적인 전개를 보이고, 제3변주는 바이올린이 주제를 원칙에 가깝게 재현한다.

4악장. 알레그로 비바체. A장조. 3/4박자
소나타 형식으로, 2악장 스케르초와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다. 스케르초의 주제와 동기적으로 비슷한 주제를 피아노가 명쾌하게 연주하고, 이 주제에 의한 짧은 경과부 뒤에 바이올린이 부드럽게 제2주제를 연주한다. 이것을 피아노의 저음부와 고음부에서 각각 반복하고, 피아노가 코데타 주제를 우아하게 연주하면 이것을 바이올린으로 반복한 뒤 제시부를 끝맺는다. 발전부는 제1주제를 중심으로 시작하여 대위법적으로 전개하고, 다양한 조옮김을 보여준 뒤 다시 주제로 복귀한다. 재현부는 두 주제를 차례로 연주하고 마지막에 제1주제의 동기를 사용하여 힘차게 곡을 끝맺는다.

제작사 리뷰

기돈 크레머가 슈베르트를 노래하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가 현대 세계 최정상의 연주자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1980년대 처음 세계 무대에 첫선을 보이던 시기에, 어떻게 보면 기괴하다고까지 표현할 만한 모습을 지니고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던 최상의 기교를 지니고 있었던 그가 '파가니니의 환생'이라고 불렸던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 그는 진지하고 학구적인 자세로 끊임없이 연주의 재창조성을 탐구하였고, 그 결과물로 보여주는 연주는 아무 생각 없이 현란한 기교만으로 가득한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롭고 진취적인 것이었다. 또한 그는 현대 작곡가들과의 지속적인 교류와 그 결과에 의한 작품의 연주, 그리고 숨겨진 작곡가들을 소개하고 부활시키는 데에도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 현대 음악 레코딩만 하더라도 슈니트케, 구바이둘리나, 아르보 페르트, 루이지 노노, 필립 글래스 등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래서 크레머가 이번에 무엇을 연주하였는가, 크레머의 해석이 어떠했는가 하는 것은 그때마다 세계 음악계의 작은 사건이 되어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그는 탱고 음악가인 피아졸라의 작품에 주목하여 전세계적인 탱고 음악 붐을 일으켰는데, 이러한 활동이 단순히 클래식 연주자의 외도에 그치지 않고 그의 진지한 노력의 성과로 기억되는 것도 그가 지니는 무게를 보여주는 사건인 것이다.
기돈 크레머는 1947년 라트비아 공화국의 리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스웨덴 혈통이었고, 어머니는 독일 출신이었는데, 특히 그의 외할아버지는 독일에서 활약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칼 브루크너였다. 부모 모두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환경 속에서, 그는 네 살 때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의 기초를 배웠다. 1965년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한 그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본다렌코에게 배웠다. 모스크바 음악원 학생이었던 1967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3위로 입상하여 처음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린 그는, 이어서 1969년 몬트리올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했고, 같은 해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파가니니 콩쿠르에서의 우승은 그의 파가니니적인 이미지를 극대화시킨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1970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크레머는 1975년에 처음 서방에 데뷔하였고, 얼마 되지 않아 엄청난 기교와 개성적인 음악성을 지닌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게 되었다. 1976년에 카라얀의 베를린 필과 브람스의 협주곡을, 78년에는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이스라엘 필과 번스타인의 '세레나데'를, 79년에는 마젤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과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을 녹음하여 최상의 평가를 받으면서 승승장구를 거듭하다가 1980년 급기야 당시의 서독으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81년에 로켄하우스 음악제를 창설했다. 로켄하우스는 원래 헝가리 국경에 접한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이었지만, 현대를 대표하는 기라성 같은 연주자들은 기돈 크레머가 주도하는 음악제라는 이유만으로 이곳에 모여들었다. 이곳에 있는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로켄하우스 성에서 매년 7월 음악제가 개최되었고, 로켄하우스의 실내악 페스티발인 현대 유럽의 대표적인 음악제로 자리잡았다. 1992년부터는 이 음악제의 명칭이 크레머의 이름을 따서 '크레메라타 무지카'로 바뀌었고, 실력 있는 젊은 연주자들로 이루어진 로켄하우스 음악제의 실내 오케스트라도 크레메라타 무지카라는 이름으로 연주 여행도 병행하게 되었다.
기돈 크레머의 음반 목록은 정통적인 레퍼토리부터 현대음악까지 넓은 범위를 자랑한다. 특히 80년 서독 망명 이후에는 대표적인 바이올린 협주곡들을 계속해서 녹음하였고,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작품들을 발굴하여 녹음한 음반들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가 망명 이전 소련에서 남긴 녹음들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30대의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로 자신의 음악적 방향을 구축해 나가고 있던 1970년대는 그에게 있어서 가장 역동적인 연주를 들려주던 때였고, 이 시기의 그의 연주는 지금은 느낄 수 없는 역동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1970년대 녹음된 음반에 담겨져 있는 그의 레퍼토리는 독특하게도 여러 바이올린 소품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잘 알려져 있는 대곡을 중심으로 하는 신예 바이올린 연주자들의 일반적인 경향과는 달리 그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품을 발굴하여 연주하는 데에 자신의 노력을 집중하고 있었고, 이러한 그의 연주 레퍼토리는 놀랍도록 신선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더구나 소품집이라고 해도 크라이슬러나 파가니니의 작품 같이 잘 알려져 있는 소곡들 사이사이에, 제미니아니, 로카텔리와 같은 잊혀진 바로크 시기의 작곡가들의 작품이나, 셰드린, 쇼스타코비치, 찬도쉬킨 등 러시아 계통의 작곡가들의 바이올린 작품들을 포함시키는 넓은 범위를 확보하고 있다. 사실 그는 기교적으로 어떤 곡이라도 쉽게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기교나 음악성을 과시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이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적인 방향을 여러 방면에서 찾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 당시 거의 연주되고 있지 않았던 슈베르트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연주하였고, 러시아 작곡가들의 바이올린 작품을 녹음했으며, 숨겨져 있던 소품들을 발굴하였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80년대 서방 망명 이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기돈 크레머의 연주와는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며, 70년대 이루어진 음원들은 단순히 그의 젊은 연주를 듣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우리에게 펼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추천평

프란체스코 제미니아니는 1687년 이탈리아의 루카에서 태어나 1762까지 활동한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이다. 그는 코렐리 문하에서 가장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로 알려졌는데, 코렐리에게 바이올린을, A. 스카를라티에게 작곡을 배운 뒤 루카와 나폴리의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하다가 1714년 런던에 건너가 바이올린의 명인 및 교사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1749년부터 1755년 파리에 체재한 후 런던에 정착하였다.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탁월한 기량을 보였고, 스승 코렐리로부터 전수 받은 바이올린 주법을 영국에 전하는 동시에 여러 바이올린 기법 등을 개척하였다. 그의 바이올린 연주법에 관한 교본은 역사적으로도 중요하며, 이 교본은 각국어로 번역되어 근대 바이올린 주법의 기초가 되었다. 작곡가로서의 제미니아니는 바이올린소나타와 합주협주곡 분야에서 스승 코렐리의 우아한 스타일과 교묘한 연주효과를 결합하여 후기 바로크 양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B플랫장조는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작품으로,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교육자로서 지니고 있는 바이올린의 활용법을 총동원한 곡이다. 하이포지션 주법과 더블스토핑 등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바이올린 기법이 망라되어 있으며, 음악적으로도 균형 잡힌 작품이다.
슈베르트가 작곡한 가곡 '마왕'을 19세기 명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에른스트가 1854년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으로 편곡한 것이다. 원곡은 1815년 작곡된 슈베르트의 가곡으로,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 병든 아들을 데리고 말을 타는 아버지와, 병든 아들을 유혹하는 마왕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괴태의 시를 바탕으로 하고있다. 나레이터, 아버지, 아들, 마왕 네 사람의 목소리와 폭풍우와 말달리는 소리를 직접적으로 묘사한 반주의 극적인 표현을 담고 있는 원곡을, 에른스트는 바이올린 한 대만으로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다. 그런 만큼 에른스트의 편곡은 바이올린 역사상 가장 화려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모든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들에 도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슈베르트는 가끔 이전에 만든 작품 중에서 마음에 드는 주제를 선택하여 이것을 다른 작품에 사용하는 예가 많았다. 가장 유명한 경우는 가곡 '숭어'를 사용한 피아노 5중주곡이며, 가곡 '방랑자'에 의한 피아노 환상곡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도 그의 가곡의 주제를 바탕으로 새롭게 변주곡을 구성한 것으로, 20곡으로 구성된 연가곡 '아름다운 물레방앗간의 아가씨' 중 제18곡 '시든 꽃'을 주제로 7개의 변주를 전개하고 있다. 원곡은 1823년 작곡되었으며, 이 변주곡은 이듬해 1월에 완성되었다. 원곡은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당시 빈 음악원의 명예교수이던 명 플루트 연주자인 페르디난트 보그너를 위해서 작곡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음반에 수록된 연주는 플루트 부분을 기돈 크레머가 바이올린으로 편곡한 것으로, 새로운 레퍼토리를 탐구하는 그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곡 해설은 바이올린 편곡을 기준으로 새롭게 작성한 것이다.

서주. 안단테 e단조. 4/4박자
e단조의 으뜸화음이 피아니시모로 슈베르트가 즐겨 사용한 리듬꼴 위에 피아노로 시작하면 곧 이어 바이올린이 조용하게 연주되기 시작하고, 곧 이어 A장조의 악구로 발전한다.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이면서도 곡의 시작부분부터 대담한 조바꿈을 이루는 슈베르트의 특징이 엿보인다. 피아노가 16분음표로 화음을 만들기 시작하면 바이올린은 장식적인 악구를 삽입하면서 첫부분에서 제시한 두 개의 소주제를 사용하면서 자유롭게 발전한다. 그리고 나타나는 바이올린의 악구를 피아노가 교묘하게 모방하면서 점차 얽혀나가는 부분이 많아지고 음악은 충실해지면서 서주부를 구축한다.
주제. 안단티노 e단조. 2/4박자.
'시든 꽃' 주제가 8마디에 걸쳐서 피아노로 연주되면서 시작한다. 뒤를 이어가는 바이올린도 주제를 반복하며 진행된다. 바이올린 주제부에서는 이미 즉흥적인 장식음형이 나타나는데, 주제의 윤곽은 그대로이다. 주제 후반부에서는 E장조와 그 병행조인 c샾단조의 울림이 잠시 들려온다.

제1변주. e단조. 2/4박자.
e단조 화음이 16분음표로 피아노에 의해 가볍게 나타나는 가운데, 32분음표의 빠른 주제가 바이올린으로 변주된다. 후반부에서는 더욱 날카롭게 셋잇단음표도 참여한 전개가 이루어지고, 피아노를 주로 한 바이올린의 반행악구로 응답하고 있다.

제2변주. e단조. 2/4박자
변주의 중심이 피아노에 놓여있다. 첫부분부터 포르테로 도입되는 왼손의 옥타브 음형이 곡을 지배하고 있다. 선행한 피아노의 변주주제를 바이오린이 쫓는 듯이 전개해간다. 후반부에서는 바이올린에 트릴 음형에 의한 꾸밈이 많아지면서 조금식 화려함을 더한다.

제3변주. E장조. 2/4박자
여섯잇단음표의 음형에 의한 E장조의 펼침화음형으로 피아노가 반주에 집중하면, 바이올린는 여유 있게 선율을 노래한다. 후반부에서는 피아노가 선행하여 여섯잇단음표의 펼침화음을 왼손으로 연주하고 오른 손이 변주 주제를 연주하는데, 바이올린은 이것을 뒤쫓듯이 발전시킨다.

제4변주. e단조. 2/4박자.
성격적으로 제3변주와 비슷하다. 장조에서 단조로 돌아와서 피아노의 좌우 파트가 바뀌어진 형태로 정리할 수 있다. 여섯잇단음표의 펼침화음 음형은 오른손에 배치되고 음역을 넓히며, 왼손은 변주주제를 맡고 있다. 바이올린과 왼손 파트가 일종의 폴리포닉적인 복잡함을 보여준다.
제5변주. e단조. 2/4박자
앞의 두 변주에 이어서 여기에서도 여섯잇단음표가 중심적인 전개 소재로 작용한다. 앞의 곡까지 피아노로 연주되던 여섯잇음표가 바이올린으로 옮겨지고, 피아노는 본래 주제의 핵심적 동기를 두터운 화음으로 반복하면서 화성적이고 성격적인 변주를 전개한다.

제6변주. E장조. 3/8박자
두 마디의 도입부에 있어서 피아노는 수놓는 듯한 음에 B샾의 음을 교묘하게 사용하면서 c샾단조처럼 시작한다. 하지만 플루트의 연주는 E장조를 유지한다. 이 변주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중주적인 풍부한 화성을 유지하면서 나란히 발전한다. 전반부에서는 교차하는 일이 없던 주제가 후반부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교대로 주제를 연주하게 되고, 이것은 또한 다채로운 조바꿈에 의해서 울림에도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제7변주. 알레그로 E장조. 4/4박자.
독주자에게 상당한 기교를 요구하는 화려한 부분이다. 원칙대로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울림을 같이하여 주제를 4마디 연주한다. 다음의 4마디에서는 피아노가 꾸밈음표를 이끄는 셋잇단음표를 변주한다. 시작부와 닮은 4마디가 나온 후에, 바이올린이 셋잇단음표에 의한 변주를 시작하면서 점차 변주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발전해간다. 중간부에서는 셋잇단음표의 음형에 의한 얽힘이 나타나는데, 후반부에 들어가면 바이올린은 16분음표 중심의 즉흥적인 변주로 옯겨간다. 피아노로 옮겨가는 16분음표는 명화한 반주음형으로 바뀌고, 그 위에서 바이올린이 주제의 단편을 회상하듯이 분명하게 이끌어간다. 종결부는 주제의 일부분과 상행음계형 악구가 피아노와 바이올린에 교대로 나타나 클라이막스를 구축하면서 힘차게 곡을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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