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사선을 뚫고 남으로
2. 책 대신 총을 잡은 청춘 3. 제주도의 4ㆍ3사태 4. 송악산 전투 5. 태백산 공비 토벌작전 6. 6ㆍ25 7. 적진탈출 3천리 8. 백골병단 9. 7사단 5연대 10. 미국 유학 11. 화이트 장군과 M1고지 탈환작전 12. 휴전 이후 13. 이형근ㆍ정일권ㆍ백선엽 계파간의 갈등 14. 자유당의 부패정치 15. 5ㆍ16 혁명 |
|
동기생 중에서 나와 가장 가까웠던 김영직 대위를 송악산 전투에서 잃은 것은 두고두고 내 가슴을 쓰라리게 하였다. 그는 연희전문에 재학 중 학병으로 갔던 강직하고, 정의감과 의협심이 강한 사내 중의 사내였다. 난 그를 나의 친형같이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는 나를 친동생같이 아껴 주었다.
당시 북의 포탄은 2차 대전 때 소련군이 쓰던 것이어서 녹이 많이 슬어 있었다. 때문에 무른 땅에 박히면 불발탄이 되고 바위나 굳은 땅에 부딪쳐야만 터지는 것이었다. 하루는 나와 김대위가 아침에 만나 작전협의를 마치고 각자의 부대 위치로 돌아가는 도중 적의 120밀리 박격포의 산발적인 사격을 받았다. 물론 내 주변에도 5,6발이 떨어졌는데 다행히 무른 땅에 떨어져 불발이었다. 돌아가 전투에 열중할 땐 몰랐는데 그날 오후 전투가 소강상태에 들어 좀 한가할 때 난 그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건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 같았다. 내 경우에도 그랬지만 그렇게 땅에 박히던 박격포탄이 하필이면 그의 옆에 있던 바위에 떨어져 폭발했고 그 파편에 김대위의 생명을 빼앗았다는 것이었다. --- p.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