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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문화재를 통한 아름다움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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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과의 만남
그윽함 - 청자상감운학문완 익살 - 녹유귀면와 고결 - 이채의 초상 따사로움 - 이암의 "어미개와 강아지' 눈부심 - 금관총에서 나온 금관 애정의 손길 - 청자모자원형연적 고요함 - 안견의 몽유도원도 넉넉함 - 나전 포도 무늬가 있는 옷상자 미소 - 금동이리월식반가사유상 조촐함 - 백자청화팔각병 열린 마음 - 최북의 '빈 산' 너그러움 - 백자달항아리 끼끗함 - 청자오리형연적 함초롬함 - 청자상감운학문매병 화사 - 신명연의 '양귀비' 자연스러움 - 경복궁 천진 - 청자상감동자문잔 소박 - 삼층 책장 겨를 -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 담백 - 난초와 대나무 추상 - 분청사기조화선조문편병 어엿함 - 정선의 '금강전도' 길고 오램 - 수월관음도 그림이 된 무늬 - 백자청화포도문전접시 올곧음 - 어몽룡의 '월매도' 당당함 - 정선의 '비 갠 뒤의 인왕상' 생동감 - 무용총 '수렵도' 힘 - 강서대묘 '천룡도' 늠름함 - 김홍도 외 '대나무 아래 늠름한 호랑이' 배움의 열의 - 이형록의 '책거리' 토속 - 석조불입상 국제성 - 금동용봉봉래산향로 장엄 - 성덕대왕신종 옛 사람의 멋과 향기 사랑방의 촛불 - 이유신의 '가헌에서의 매화 감상' 고향 산의 봄 소식 - 이정근의 '관한에 쌓인 눈' 벗을 찾아 - 전기의 '매화가 핀 초옥' 매화가 흩뜨리는 봄 향기 - 전기의 '매화 핀 서재' 매화꽃을 찾아서 - 심사정의 '파교를 건너 매화를 찾아서' 봄날의 소요유 - 이불해의 '지팡이를 짚고 거닐다' 상춘, 봄에 취한 언덕 - 정선의 '꽃을 찾아 봄에 젖기' 만남 - 유숙의 '선비들의 반가운 만남' 꽃을 바라는 마음 - 정선의 '책 읽다 눈을 돌려' 탁족 - 조영석의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솔바람 소리와 선비들 - 이인문의 '소나무 숲에서의 담소' 폭포를 바라보며 - 윤인걸의 '소나무에 걸터앉아 폭포를 바라봄' 천렵 - 정세광의 '삼태그물 거두기' 가을 밤 뱃놀이 - 안견 전칭의 '적벽도' 선상의 여유 - 이상좌의 '배를 멈추고 물고기 헤아리기' 달빛 아래 '그윽한 고독' - 전기의 '달과 함께 술잔을' 풍요로운 사색의 공간 - 전기의 '가난한 선비의 집' 가을의 의미 - 이인상의 '소나무 아래에서 폭포를 바라봄' 꽁꽁 언 산하 - 윤의립의 '겨울산' 바람개비 - 윤덕회의 '공기놀이' 회갑연 - 정황의 '회갑 잔치' 혼인 60주년 - 회혼례 호젓한 여인 - 신윤복의 '연당의 여인' 춤바람 - 김진여 외 '원로 대신에게 베푼 잔치' 부엌 주변 - 안악 3호분 '주방도' 태양열 - 김윤보의 '나락 말리기' 축력 - 쌍용총 '우차도' 돛단배 - 정선의 '돛단배 타고 바다 건너기' 정과 짱돌망치 - 강희언의 '돌 깨는 석공' 즐거운 식사 시간 - 김홍도의 '들밥' 도르래 - 이인문의 '강과 산은 끝이 없어라' 부력 - 김홍도 외 '배다리' 물살 잠재우기 - 이성린의 '대정천을 건너며' 찾아보기 박물관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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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살은 삶의 윤활유일 뿐더라 아름다움의 하나로 예술에서도 빠질 수 없다. 우리 민족은 두려움의 대상까지도 익살로 희석시키거나 녹이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 조형예술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예서 소개하는 기와다.
꽤나 무시무시한 몰골이다. 약간 푸른색이 비치기는 하지만 어두운 검은색 일변도다. 광채가 있어 번들거림도 보이며 재질은 쇠붙이처럼 묵직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유난히 툭 불거진 왕눈, 소와 같은 뿔, 큰 코, 긴 수염, 크게 벌린 입 안의 날카로운 송곳니, 사자의 갈기와 얼굴 주름 등 사뭇 험상궂다. 정확한 명칭은 '녹유귀면와'다. 귀신의 얼굴을 한 이 기와는 흙으로 빚어 유약을 입혀 고열로 구웠으며 추녀가 넷 있는 팔작지붕의 마루 끝에 부착되던 것이다. 사다리꼴에 가까우나 상부가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아래쪽에는 반원형 홈이 파여 있어 내림새 막새기와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귀면문은 동양 삼국 모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온갖 재앙과 질병 등 사악한 것을 초능력을 빌어 몰아내고 복을 얻고자 하는 바람에서 나온 상직적인 도안 문양의 하나로 간주된다. 그 시원은 기원전 중국의 고동기 표면에 장식된 도철문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선 일찍이 삼국시대 궁궐이나 사찰에서 사용된 기와나 전돌 외에 문고리나 지배자 계층의 용구로 이를테면 금 또는 금동제 신발, 허리띠 장식, 칼 장식, 말 장식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문양은 지속되어 조선시대에는 소맷돌이나 돌다리에도 등장한다. 이 기와를 유심히 살피면 첫 인상이나 선입견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발견케 된다. 위엄이나 두려움이 강조된 듯 보이나 그것은 순간의 느낌일 뿐 이내 일종의 미소를 엿볼 수 있다. 할아버지가 귀여운 손자 앞에서 위엄을 과장하여 보여주듯(?) 다소 헤식고 바보스런 표정을 읽게 된다. 호랑이를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고 까치와 함께 멍청하게 묘사한 조선 말기 민화와 상통하는 미의식을 그보다 천 년 이상 앞선 옛 조형에서도 만나게 된다. 우리 민족 심성 저변에는 이와 같이 두려움마저도 익살로 녹여버리는 마음이 두텁게 자리잡고 있다. 1975년 3월에서 그 이듬해 연말까지 실시된 경주 안압지 발굴을 통해 이 귀면와가 출토되었으며, 당시 이와 유사한 형태의 기와가 마흔한 점이나 발굴되었다. 이 기와가 보여주듯 우리 민족의 조형감각은 기이하거나 괴상한 것 그리고 두려움의 강조 등과는 거리가 있다. 이 점이 강조될 종교미술에서도 신선이나 부처 그림을 보면 온화하고 평범한 모습이 주류를 이룬다. 일본이 자랑하는 신사에 이방인이 들어서면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에 압도되는 기괴함과는 구별된다. 맑고 투명한 어린이 같은 심성 앞에는 허세와 과장이 주는 위엄이나 공포도 별 것 아닐 성싶다 18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