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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별
별 마음의 집 흙노래·1 흙노래·2 山家에서 四季를 보내며 봄비가 내려 안개도 피어나고 모래시계 눈 내리는 아침 숲길에 서서 비 오는 날의 명상곡 달은 하늘에 나는 창 Ⅱ. 그대의 플룻 湖水 초원 이미지 序詩 편지 備忘錄 회복기, 병실에서 隕星 그대 눈으로 시인과 연필 新婦 가로등 그대의 플룻 피아노 Ⅲ. 빈센트 반 고흐의 自畵像 가을 따라 나선 길 빈센트 반 고흐의 自畵像 겨울 水彩畵 가을날의 備忘錄 참새·1 참새·2 산낙지를 씹으며 바닷가에서 쓰는 시 바닷가에 짓는 집 갈매기의 묵상 Ⅳ. 마음의 집에 작은 들창을 내어 바이올린의 G현 숲에서 夜行 호도애를 위하여 사랑과 진실 詩人의 사랑 獨白 우리가 강가에 서서 사랑의 바다 마음의 집에 작은 들창을 내어 成婚의 노래 눈 오는 산창가에서 Ⅴ. 청년 예수와 함께 당신이 내 마음의 집에 들어와 나이팅게일처럼 사람이 자기에게 하는 말 종이꽃 新婦의 기도 청년 예수와 함께 부활의 노래 내 마음은 성전 마량리 해돋이 마을에서 눈길 따라 가는 길 씨를 심으며 크리스마스 이브의 묵상 |
李紀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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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주 창문을 통해 풍경을 본다. 마당에 있는 꽃밭과 은행나무,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느티나무, 들녘 건너 산 마을까지 창문을 통해 내다본다.
해돋이 무렵, 영창(影窓)은 햇살이 비쳐들게 한다. 햇살을 뿌려 곤히 잠자는 눈두덩을 두드리는 소리가 쟁쟁 난다. 잠깨어 눈 비비며 일어나, 창문에 그림처럼 들어선 정경(情景)들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꽃이 피고 지는 걸 보며, 신록이 피어 낙엽으로 지는 걸 보며, 어느 계절인지, 그리고 내 연륜(年輪)도 그냥 알게 된다. -중략- 창문이 없는 집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어느 누구나 집을 지으면 창문을 내는 일은 마땅하지 않으랴. 시(詩)를 짓는 일은, 마치 집을 지을 때 먼저 창틀을 놓고 벽돌을 쌓는 것처럼 마음의 집에 창문을 내는 일이다. 창문을 통해 정경을 내다보는 일이다. 창 밖의 풍경이나 삶을 보면, 마음의 집에 정서(情緖)가 일어 잠자는 감정(感情)과 꿈과 욕망, 사랑, 영혼을 일깨워준다. 나는 창문과 같은 시를 쓰고 싶다. 비록 작지만 눈부신 햇살, 달과 별들이 도란거리는 하늘, 철 따라 피고 지는 꽃, 사철의 풍경이 내다보이는 창문과 같은 시를 쓰고 싶다. 자주 마당에 나가 창문을 통해 내 마음의 집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시를 쓰고 싶다. 창문을 내다보며 들여다보며…. 창문은 늘 나를 바라본다. 나는 창문을 통해 정경을 내다보면서도 창문은 보지 않는다. 그러나 영창(影窓)은 언제나 내 마음의 집을 환히 밝혀주고 있다. 나는 시(詩)라는 영창(影窓)을 통해 하늘과 들꽃과 바람이 일렁이는 햇살을 맞는다. 어린 딸이 피아노 치는 소리가 내 창가에 들리면, 비록 서투르지만 맑고 고운 선율은 내 영혼을 약동(躍動)하게 한다. 나는 살며시 다가가 피아노 치는 딸의 어깨를 어루만진다. 그러면 문득 나를 바라보는 맑고 빛나는 눈동자는 내 마음의 집에 들어와 하늘을 다 담고도 남을만한 영창(影窓)을 내어 조그맣게 비친 내 자신(自身)을 그윽이 들여다본다. 내 마음의 집과 창문 사이처럼 시는 나의 영원한 연인(戀人)이다. 시인과 시는 연인이 아니랴. 시인은 시를 짓고, 시는 시인을 말해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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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派 詩人의 告白 -이기동의 시세계
성기조(시인·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장)
이기동 시인의 원고를 읽으면서 그의 신앙생활이 시 속에 녹아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시집의 표제가 "마음의 집에 작은 들창을 내어"인데 바로 마음의 집이 신앙의 세계요 작은 들창이 신앙심을 바탕으로 하여 세상을 보는 통로란 생각이다. 그런데 신앙심을 근거로 하여 보는 세상이 하필 작은 들창이라고 했을까, 이 부분이 이기동 시인의 겸손이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보는 이 세상, 이 세상에서 보는 하나님의 나라는 커다란 통로를 통해서 들락거릴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이 고속도로처럼 휑하니 뚫렸다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빈 공간에 그대가 깃들어 잔잔히 감치는 숨결이 일렁이고 그리움이 초승달로 떠서 보름, 그믐으로 사위어가다 초저녁 별로 떠서 공간 가득히 마음의 집을 지어 놓았다. -"마음의 집에 작은 들창을 내어" 첫 연 빈 공간에 그대가 깃들어 잔잔히 감치는 숨결이 일렁인다는 것은 텅 빈 공간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 같은 빈 공간에서 잔잔히 숨을 쉰다. 그러면서 사람이 그리워 초승달로 떴다가 보름, 만월이 되고 그믐이 된다는 정연한 질서는 우주를 창조하고 주재하는 하나님과의 交感이 없고서는 불가능하다. 설령 먼동이 불타서 스러지고 샛별마저 빛을 잃는다 해도 그대 눈빛이 마음의 집에 작은 들창을 내어 순전한 사랑으로 아침 햇살이 비쳐들게 하리라. -"마음의 집에 작은 들창을 내어" 마지막 연 마음의 집에 작은 들창이 하나님과의 통로라면 그 집에 드나드는 사람은 ‘순전한 사랑’으로 마음이 가득 차야 한다.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기에 눈빛만 가지고도 마음의 집에 들창을 낸다는 확신은 이기동 시인의 변함 없는 자세가 된다. 사랑과 믿음을 실천하는 牧會者로서만 가능한 생각일까? 아니다, 그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같이 생각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그가 시로 쓰는 것은 事物의 성격을 해석하거나 하나님을 직접 비유하는 시가 아니고 인간의 심령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실천으로 신앙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점이 종교를 가진 다른 시인들이 쓰는 신앙시들과 다른 점이라고 생각한다. 직설적으로 종교를 믿으라고 말하기보다 잘 익은 포도주처럼 은은한 향기로, 그리고 알싸한 酒香으로 머리를 몽롱하게 하고 가슴을 울렁이게 하듯 詩語에 감춰진 의미가 자연스럽게 종교를 안내한다면 이 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이기동 시인은 목사 시인으로 이런 방법을 가지고 시 쓰기에 익숙해 있고 열중하는 사람이다. 문학을 제대로 종교에 활용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목사 시인임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나는 이런 점을 높이 사 이기동 시인을 좋아하고 그가 쓴 시를 읽는 것을 즐거움으로 아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이기동 시인의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대개 신앙시에 해당되지만 겉보기는 그렇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이 시인의 詩的 表現과 기교에 해당한다. 그러나 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신앙과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신앙시이면서 일반 事物에 관한 시처럼 보이고 그 속에 삶의 과정에서 파도처럼 일렁였던 추억과 끈질기게 바뀌지 않는 문화적 전통, 그리고 肉親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그러면서도 이 모든 것들이 종교적으로 승화되어 곰삭은 젓갈처럼 읽는 이의 입맛을 돋구는 것은 그의 시가 사색에 기초해서 올바로 발전해왔고 삶의 곳곳에서 느끼는 고통을 이겨낸 결과란 것을 알게 된다. 그런 과정을 겪었기에‘마음의 집에 작은 들창을 내어/ 순전한 사랑으로 아침 햇살이 비쳐들게 하리라’고 야무지게 다짐한다. ∥評說∥의 일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