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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라, 세계를 향한 영혼의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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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Prologue _가장 힘겨울 때 내딛는 한 걸음

Part 1. 세상이 바라는 ‘나’가 아니라, 내가 바라는 ‘나’가 될 것이다
1. 길에 들어서다
2. 오토바이에 마음을 빼앗긴 소년
3. 삶은 결코 대량생산으로 만든 기성품이 아니다
4. 스물한 살의 비망록
5. 학생의 천국, 이탈리아
6. 자동차의 도시, 토리노

Part 2. 즐겨라, 네 꿈이 영글어가는 시간을
7. 다시 출발점에 서다
8. 쌍용자동차 디자인 별동대
9. 일이 가장 즐거운 놀이다
10. 언젠가 찾아올 그들과 함께하리라
11. 한국의 카로체리아에 다가서다
12. 뚝심의 사나이, 박동혁

Part 3. 스피라, 세계를 향한 영혼의 승부
13. 회사는 팔아도 꿈은 팔지 않겠다
14. 두려움을 모르는 장인들
15. 아, 이게 되는구나. 앞으로 무엇이든 되겠구나
16. 울다, 이기다, 다시 시작하다
17. 젊은 열정이 만든 기적

에필로그 _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저자 소개 1

1962년에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오토바이와 자동차에 푹 빠져 지내며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술대학으로 진학했다가 다음 해에 이탈리아로 건너가 미술 수업과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는 훈련을 받았다. 7년 동안의 유학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 쌍용자동차에서 ‘무쏘’ 개발에 참여했으며, 아시아자동차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경차 상용차 ‘타우너’와 대형버스 ‘그랜버드’를 디자인하는 한편 미래형 SUV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994년 오래전부터 꿈꾸어온 일을 이루기 위해 아내와 함께 프로토디자인을 설립하고 자동차 디자이너에서 설계, 제작에 이르
1962년에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오토바이와 자동차에 푹 빠져 지내며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술대학으로 진학했다가 다음 해에 이탈리아로 건너가 미술 수업과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는 훈련을 받았다. 7년 동안의 유학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 쌍용자동차에서 ‘무쏘’ 개발에 참여했으며, 아시아자동차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경차 상용차 ‘타우너’와 대형버스 ‘그랜버드’를 디자인하는 한편 미래형 SUV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994년 오래전부터 꿈꾸어온 일을 이루기 위해 아내와 함께 프로토디자인을 설립하고 자동차 디자이너에서 설계, 제작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마스터해나간다. 그리고 IMF 후폭풍이 닥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오랜 염원이었던 수제 슈퍼카 제작에 돌입한다. 훗날 ‘스피라’라는 이름을 얻은 이 슈퍼카는 2008년 GT Masters Series에서 세계적인 명차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한다. 단국대학교 응용미술학과 1학년을 마친 뒤 이탈리아로 건너가 피렌체 국립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디자인 교육기관인 IDAD(Istituto d’arte aplicata e design)의 자동차 디자인 과정을 이수했다. 쌍용자동차, 아시아자동차를 거쳐 프로토모터스를 설립했으며, 현재 스피라를 생산하고 있는 어울림모터스(주)에 재직 중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9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270쪽 | 650g | 208*226*20mm
ISBN13
9788925539775

출판사 리뷰

세계와 겨루는 국산 수제 슈퍼카의 탄생신화
미치도록 이루고 싶었던 단 하나의 꿈
젊은 열정이 만들어낸 기적, 스피라!


최초의 시도로 최고를 꿈꾸었던 사람들
그들은 스피라로 하나가 되었다!

나는 카로체리아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자동차의 매력에 더욱 더 빠져들었다.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서 직접 용접을 하고 망치를 두드리면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자동차를 만들어내는 장인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 무렵 나는 막연하기만 했던 나의 동경이 무엇을 향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본문 중에서

GT Master Series 최대의 이변, 스피라
“대한민국 최초 수제 슈퍼카의 화려한 등장!”

2008년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펼쳐진 GT Master Series(이하 GTM)에서는 대한민국 모터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뜻 깊은 사건이 벌어졌다. 세계적 브랜드의 명차들 일색이었던 GTM 출전 차량 리스트에 대한민국 국적의 스포츠카, ‘스피라’가 이름을 올린 것이다.
국산 스포츠카에 대한 의구심이 팽배한 가운데 스피라는 처음 출전한 제2전(5월 12일) 예선에서 1위를 차지하며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하지만 결선에서의 결과는 ‘Retire.’ 엔진의 힘을 차축에 전달하는 부품이 깨지면서 더 이상 레이스를 펼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메이저 자동차회사가 아닌,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중소기업에서 만든 국산 스포츠카를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심지어는 사기꾼이라고 매도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 펼쳐진 레이스에서 ‘기권’을 거듭하던 스피라는 10월 12일에 펼쳐진 제6전에서 드디어 강력한 우승후보인 포르쉐 군단의 아성을 무너뜨리며 1위를 차지한다. 그리고 앞선 경기 1위에게 주어지는 ‘1분 정차 핸디캡’을 극복하며 제7전에서도 2위 차량과 한 바퀴 이상의 격차를 벌이며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다. 혹독한 레이싱을 펼치면서 조금씩 부품을 업그레이드하며 진화한 스피라는 2008 GTM의 최대 이변을 연출하며 챔피언의 자리에 등극한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수제 슈퍼카, 스피라’
이 한 대의 차가 탄생하기까지는, 세계적 명차의 반열에 이름을 올릴 국산 슈퍼카를 만들겠다는 한 부부의 꿈과, 10년 동안 피땀을 흘린 젊은이들의 열정이 숨겨져 있다.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큰 일을 시작하다
“회사를 팔았다고 꿈조차 팔아넘길 수는 없다!”
교육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바람은 아들이 경제학과나 법학과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어릴 때부터 꿈꾸어온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미술대학으로 진학하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다.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는 싶었지만, 아버지가 바라는 대로 살 수는 없다’고 아들은 생각했다. 스피라를 만든 김한철 씨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어릴 때부터 오토바이와 자동차에 미쳐 노트의 뒷부분을 온통 자동차 그림으로 채웠던 그는 7년간의 이탈리아 유학을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쌍용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에서 자동차 디자이너로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해나갔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내 차를 만들겠다’는 꿈에 사로잡혀 있었던 그는 1994년, 회사를 박차고 나와 아내와 함께 프로토디자인이라는 회사를 설립한다.
부부는 ‘한국형 카로체리아’를 지향했다. ‘자동차 공방(gJ)’이라는 뜻의 카로체리아는 디자인 능력을 갖춘 소규모 자동차회사로서, 포르쉐, 람보르기니, 코니세그 등 세계적으로 희귀한 명차는 모두 카로체리아의 장인들을 통해서 탄생한 것이다. 김한철 씨 부부도 바로 자신들의 카로체리아에서 자신들의 차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때마침 시작된 ‘서울모터쇼(1995년)’와 한국 자동차회사들의 고유 모델 개발붐과 맞물려 프로토디자인은 나날이 성장해갔다. 하지만 ‘내 차를 만들겠다’는 꿈은 당장 밀어닥치는 작업들을 처리하느라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일이 많았고, 김한철 씨는 직원들과 함께 날을 새우기 일쑤였다. 그러던 1997년, IMF가 터졌다. 현대자동차를 제외한 모든 자동차회사가 부도를 맞고, 프로토디자인도 도산 위기에 직면했다. 이후로 2년 동안 회사 부지를 조금씩 떼어 팔며 근근이 버텨온 프로토디자인은 1999년 11월 결국 도산하고 만다.
‘대한민국 최초의 수제 슈퍼카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 바로 이때였다. 실의에 빠져 있는 남편에게 아내 최지선 씨가 “지금이 바로 오랫동안 미루어온 ‘그 일’을 시작할 때”라며 용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회사는 부도를 맞았고, 회사 건물과 부지 대부분을 팔아넘긴 상황이었지만, 김한철 씨는 ‘꿈마저 팔아넘길 수는 없다’는 일념으로 슈퍼카 제작에 들어간다. 몇 달째 월급이 밀려 있던 대부분의 직원들도 ‘전혀 돈이 좾 될 것 같은’ 일에 동참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로부터 1년 4개월이 지난 2001년 3월, 스피라의 1차 모델인 PS-2를 세상에 공개한다.

대한민국 장인들에게 바치는 찬가
“단순한 슈퍼카라 하기엔 아쉽다.
너무 많은 이들의 꿈이 담겨 있는 수작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일감이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스피라 제작에 매달리는 동안 직원들은 6개월 이상 월급이 밀렸다. 하지만 그들은 단 한 사람도 이탈하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스피라를 탄생시키고자 거의 매일 이어지는 밤샘작업도 불사했다. 프로토디자인의 협력업체들도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프로토디자인의 부도로 당장 어려움에 처한 그들이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김한철 씨를 위로하고 힘을 보태주었다. 이 든든한 ‘파트너’들은 결코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김한철 씨 부부와 함께 묵묵히 같은 길을 걸어갔다.

돈벌이로는 결코 친해질 수 없는, 가치와 의미에 삶의 무게를 둔 이들 진정한 장인들이 있었기에 스피라가 탄생할 수 있었다. 스피라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그들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단지 ‘도전한다’는 그 자체에 매달린 채 몇 날 며칠 씨름을 하며 결국에는 문제를 해결해내고야 말았다. 거의 매일 무보수로 밤을 새워 일하던 스무 명의 직원들, 영세한 사업체를 이끌면서도 자신의 기술이 보탬이 된다면 기꺼이 동참했던 협력업체의 장인들로 인해 스피라는 단순한 스포츠카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꿈’으로 자랐다.

저돌적인 젊은 사업가와 꿈을 향해 나아가는 장인의 만남
“쉬웠다면 도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김한철 씨의 본격적인 고난은 스피라를 처음 세상에 공개했던 2001년 3월부터 시작되었다. 하나의 꿈을 이루었다는 짧은 축제의 시간이 지나고, 스피라를 꾸준히 생산해낼 수 있는 양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엄청난 과제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대의 차를 만들어내는 것과, 그 차를 생산할 수 있는 양산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은 일의 규모와 자본 측면에서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양산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차량에 들어가는 부품을 최적화하고 표준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테스트를 하고 부품을 개발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직원들 월급도 제대로 못 주는 영세한 기업에서 이 일을 해낸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프로토모터스라는 사명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동안 용역 일을 처리해서 돈이 들어오면 스피라 양산형 개발에 투자하고, 다시 돈을 벌기 위해 스피라 양산형 개발 작업을 멈추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는 동안 프로토모터스의 재정난은 점점 더 심해졌다. 2007년 무렵, 프로토모터스는 다시 한 번 부도에 직면했다. 사장인 김한철 씨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얼굴에도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이번에 잃는다면, 너무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
이때 나타난 사람이 바로 젊은 사업가 박동혁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500만 원으로 소프트웨어 사업을 시작해 여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어울림네트웍스의 대표이사로 성장한 그는 2006년에 어울림모터스를 설립하고 고유 모델을 개발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난생 처음 보는 스포츠카를 목격하고는 그 차를 만든 회사를 수소문했다. 그 차가 바로 스피라였다.
2007년 초에 세 번 정도 만난 뒤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다. 곧바로 합작이 추진되었고, 스피라는 드디어 양산 체제 구축을 위한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설 수 있었다. 백여 가지 항목에 이르는 인증절차를 거치고 GTM의 혹독한 환경에서 레이싱을 펼치는 동안 스피라는 더욱 더 강해졌다. 그리고 드디어 GTM 6전과 7전에서 압도적인 성능 차를 보이며 세계적인 명차들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에 이른다. 박동혁 대표가 스피라 양산체제를 구축하는 데 들인 돈은 400억 원이었다.
2010년 6월 25일, 환경부로부터 소음 인증을 받음으로써 스피라는 국내 시판 자격을 얻었다. 그리고 지난 8월 6일 국내 번호판을 단 스피라 1호차가 고객에게 전달되었다. 김한철 씨 부부를 비롯한 ‘스피라의 아버지’들이 공통적으로 꿈꾸었던 것이 바로 스피라가 우리나라 도로를 달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그들의 꿈이 10년 만에야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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