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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
감사의 말 머리말 2017 횡성 토종 농사 달력 2012 경칩에 물고구마 싹을 준비합니다 _ 박부례 할머니의 물고구마 풀 키우지 말고 꽃을 키워 _ 김부옥 할머니의 월동추 할머니, 다음 장날에 또 봬요 _ 정애기 할머니의 산나물밭 화초로 키우기도 힘든 게 농사 _ 이연수 할머니의 콩 장마 전에 풀 매기 _ 강종석 할머니의 검정옥수수 보석처럼 아름다운 굵직한 손 _ 오영자 언니의 오이 옥수수가 귀하던 시절 _ 배영희 언니의 돼지감자 장사보다 날품이 더 쉬웠지 _ 정양철 언니의 돼지파, 왕가래팥 왜 안 달리나 걱정할 즈음에야 _ 정창순 할머니의 울타리콩 2013 빚내 살아도 혹독한 겨울 견딜 만했지 _ 박은자 언니의 파 풋것을 따와 맷돌에다 사뭇 갈아서 _ 김성옥 할머니의 속노란검정콩, 흰찰옥수수 할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_ 이규분 할머니의 자두, 고야 답답하고 심심할 새 없어 _ 안옥순 할머니의 차조, 메조 ‘때그랑’ 땅콩의 고소한 맛 _ 신상옥 할머니의 땅콩 추억을 복원하는 육종가 _ 최복례 언니의 노란 쥐이빨옥수수, 붉은 쥐이빨옥수수 2014 한평생 농사꾼으로 산다는 것 _ 김갑순 할머니의 꽈리 부자들만 먹던 민들레 초고추장 비빔밥 _ 손금녀 할머니의 노란민들레 자식 주려면 뭣이 힘들꼬 _ 김용배 할머니의 녹두, 복분자 송아지 한 마리 받았지 _ 이기분 할머니의 노랑오이, 지레호박 떡잎은 원래 안 먹어 _ 김영화 할머니의 우엉과 밑갓 대추나무가 벼락 맞는 이유 _ 양옥순 언니의 대추나무 수수밭엔 참새도 집을 짓지 _ 장한수, 이경도 할아버지의 쌀수수 2015 뿌린 대로 거두는 게 농사요 인생이요 _ 정복련 언니의 시금치 강원도 하면 산나물 _ 김정희 할머니의 참취 마늘밭은 따로 있는 법 _ 박건남 할머니의 마늘 진주알처럼 고운 알뿌리 _ 한승기 할아버지의 달래 쌀값보다 비쌌던 봄딸기 _ 김동수 할아버지의 딸기 씨앗을 받는 마음 _ 김명환 언니의 구억배추, 게걸무 한 번 맛보고 평생 키우게 된 산나물 _ 원종근 선생의 둔내곰취 할머니는 도리깨질, 할아버지는 타작기 _ 신현자 할머니의 들깨 음식 중의 음식, 메밀부침 _ 정옥현 할머니의 마늘과 메밀 맺음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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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농사를 배우겠다는 말만 했을 뿐, 농사를 정말 제대로 배울 마음이 있었는지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 몇 해 전만 해도 모든 씨앗을 받아서 농사짓던 할머니는 이젠 씨앗을 다 지워서 몇 가지 남지 않았다고 하신다. 벼농사도 홀로 거뜬히 지을 수 있었던 할머니에게 남은 씨앗들은 갓끈동부, 월동추, 댑싸리, 마늘, 쪽파, 파 씨였다. 토종이라 그동안 농약 없이도 잘 자라다가 기후가 어수선해진 요즘엔 월동추에 벌레가 낀다고 걱정하신다.”
--- p.47 “옛날에는 우리 농산물을 애용해야 되고, 우리 농산물을 지어 먹거리를 해결해야 되니까, 장마나 큰 태풍이 와서 수해를 봤다 그러면 어느 지역에 지금 이만저만 해서 피해가 많아 가지고 농민들의 시름이 어떻다느니, 가물으면 가물어서 어떻다느니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요즘에는 농민들 얘기를 너무 안 해요. 농산물이 국내 게 없어 가지고 외국에서 수입해다 먹으면 되지, 이런 식인 거야. 이게 정말 크게 잘못된 것 같아요.” --- p.118 "그러고 보니 딸기들은 모두 이랑 바깥쪽을 향해 붉은 열매를 달고 있었다. 아주 오래된 종자가 병 하나 없이 깨끗하게 보존되었다고 평가받은 것은, 이렇게 해마다 뿌리를 옮겨 심었던 재배 기술 덕분이었다. 할아버지는 횡성고의 전신인 횡성농업고등학교를 나와 스무 살부터 제대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지금 3.1공원 안에 있던 그의 ‘힐 사이드(HILL SIDE)’ 과수원은 당시 횡성의 명물이었다고 한다. 횡성에서는 처음으로 포도, 복숭아, 딸기를 심어 팔았던 곳으로 돼지와 젖 짜는 산양, 소, 토끼, 닭들을 골고루 갖춘 3000평 규모의 농장이었다. 젊은 연인들이 데이트 장소로 애용했고, 많은 이들이 찾아와 과일을 사갔다." --- p. 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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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 전통농업의 마지막 세대가 될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
대학 졸업 뒤로 강원도 횡성으로 귀농, 귀촌해 20년 넘도록 횡성에서 살고 있는 두 지은이는 지난 2012년부터 4년 동안 씨앗을 심을 때와 한창 작물이 자랄 때, 씨앗 받는 때에 맞춰 횡성군 내의 농가를 찾아다니며 토종씨앗을 수집하고, 어르신들로부터 농사법을 익혔다. 횡성에서 살아온 토종씨앗들의 보유자들은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어도 묵묵히 자기 삶을 살아온 육칠십대 이상인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세대들이었다. 어르신들은 정성스럽게 자기 삶을 가꾸듯, 적은 양이지만 다양한 씨앗을 소중히 여기며 농사를 지었다. 어쩌면 이분들이 우리 시대 전통 농업의 마지막 세대이자 지식보유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몰려와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토종씨앗을 통해 새로 배운 ‘농사짓는 삶’ 지은이들은 애초 씨앗을 지키며 살아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삶을 통해 씨앗을 받고 다음 해에 다시 심고 거두는 젊은 농부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시기별로 찾아가 기록하는 일을 통해 오히려 자기 자신들의 ‘농사짓는 삶’에 대해 성찰하고 깨달음을 얻는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언제든지 찾아가면 가지고 계실 줄 알았던 토종씨앗들이 그 사이 병들고 쇠약해진 어르신들에게서 사라져 버린 걸 알고 누군가에게 미루기만 하던 자신들의 모습을 성찰하고 토종씨앗을 기록하는 이유는 농사를 짓기 위함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깨우치기도 했다. 대부분 고령의 할머니들인 보유자들은 대대로 자식들을 먹이던 채소와 곡식, 열매들을 화초로 가꾸기에도 더 이상 기력이 달리는 현실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와중이었다. 그러다가 토종씨앗을 찾아다니고 씨앗의 대를 이어갈 농부들을 모아서 함께 나누고, 별도의 채종포도 운영해 공동으로 심고 가꾸어 씨앗을 보전하려는 젊은 여성 농민들의 활동에 큰 반가움과 고마움을 느끼고 자신의 삶을 통틀어 지혜와 지식을 전수해 책으로 기록될 수 있도록 도왔다. 심는 법, 키우는 법, 먹는 법, 종자 보관법을 알려주며, 사람들과 나눌 씨앗들도 해마다 아낌없이 내주었다. 씨앗을 지키는 삶이 지속가능한 삶 전 세계의 소농들은 지금도 GMO(유전자 조작) 종자 반대 운동과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대대로 물려받은 씨앗으로 농사짓는 소농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스스로 대안을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 반갑고도 다행스럽게도 토종 유전자원 지원 조례를 제정하는 지방 정부도 늘어나고 있다. 농민들과 함께 토종씨앗을 지키고 있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은이들은 대대로 씨앗을 지키는 담당자였던 여성 농민이 토종씨앗을 찾아 되살리는 일을 하면서 자부심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횡성의 할머니님들과 함께 애쓴 결과 2016년에는 횡성군 유전자원 지원 조례가 제정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