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문 패트리샤 컬리 수의사
프롤로그 - 살아남은 고양이 깔대기를 쓴 새끼고양이 눈 없는 고양이에게서 무엇을 보나요? 첫 발자국 그냥 저냥 냥이회 우리 막내 방심은 위험해 이사를 했어요 두려움을 모르는 고양이 개와 고양이가 한 집에 있어…… 나는 믿어요! 나만의 단칸방 기타 치는 고양이 사냥꾼 호머, 파리를 찾아요 고양이 중의 고양이 호머 그리고 나 혼자 사는 여자와 고양이 고양이 유랑단 고양이들은 괜찮아요 하늘에 뚫린 구멍 9.11테러, 우리 헤어진 다음 날 사랑에 눈이 멀다 고양이와 가족이 된다는 것 우린 평생 함께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여, 내가 그와 결혼했노라 번역을 마치며 |
Gwen Cooper
Horan ,본명:최수진
호란의 다른 상품
|
애완동물을 기르기 시작하면, 그 동물이 당신 삶의 일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이 고양이의 삶에 일부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 없이 망가진 채, 세 마리 고양이를 끌어안고 버둥대는 독신녀였던 나는, 이제 전지전능하고 절대적인 신성을 가진 자비와 신비의 존재가 되었다. --- p.34
무엇보다 그를 흥분시키는 것은 매일 아침 잠에서 깨는 것이었다. 아침에 내가 일어나 앉으면 호머는 녀석만의 목소리로 콧노래하듯 가르릉거렸다. 그 소리는 마치 새소리처럼 음율과 화음을 띠고 있었다. 너무 성급하게 내 손에 자기 얼굴을 부비다가 녀석은 균형을 잃고 벌러덩 넘어져서 깔때기의 무게를 못이긴 채 뒤집힌 벌레처럼 두리번거리곤 했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녀석은 열심히 힘을 주어 몸을 바로 잡고는, 내 가슴에 앞발을 디디고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열정적으로 문질러댔다. 그러면 털의 부드러움과 수술 자리를 꿰맨 실밥의 까끌까끌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 p.56 나는 14번가에 도착해 열차에서 내렸다. 그동안 의식하지도 않았던 맨해튼의 특징적인 냄새 대신(적어도 시내 중심가서 내가 항상 느꼈던 냄새 대신), ‘그라운드 제로’의 폐허에서 나는 냄새만이 그곳에 가득했다. 나는 호머의 민감한 코와 극도로 예리한 청력을 떠올렸다. 빌딩이 계속 무너져내리고 불이 타오르는 곳에 나보다 훨씬 가까이 있는 그에게 이 모든 냄새가 어떻게 느껴질까? 아파트 창문으로 바깥을 볼 수 있는 스칼렛과 바쉬티는 그보다는 덜 겁먹을 것이다. 적어도 자신들이 보는 광경과 냄새와 소리를 연관시켜 생각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 편이 훨씬 덜 무서울 것이다. --- p.231 “이 고양이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압니다.” 로렌스가 말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 거대한 세상이 모두 들어가 있고, 그를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살아가는 하루하루, 한 순간 한 순간이 모험이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나는 그저,” 그는 마저 마무리를 했다. “나는 그저 이 고양이가 듣는 것을 함께 느끼기를 바랄 뿐입니다.” --- p.315 |
|
눈 없는 검은 고양이 호머가 아는 세상이란
사랑해야만 하는 것이고, 그래서 행복해지는 것뿐이다 에디터’S 노트 - 고양이를 사랑하는 가수 호란이 번역하고, 고양이에 호기심 많은 아티스트 박훈규가 디자인하다! 911 테러가 일어나고, 세상이 험악할 때 나약한 우리들은 ‘영웅’에 목말라 한다. 이 세계 저 너머의 신과 인간 사이에 있는 영웅말이다. 태어나자마자 두 눈을 잃었을 때에도, 911 테러가 일어나 두 덩이 월드트레이드 센터가 주저앉는 곳에서도, 비극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남아 이전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고, 행복해지려고 하는 고양이가 있었다. 털은 검고, 겨우 젊은 아가씨 두 손바닥만 한 생명, 그 옛날 『오디세우스』의 시인처럼, 호머라는 이름을 당연히 받아들인 고양이. 눈이 없는 검은 고양이 얼굴을 상상해보라. 호머는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아야 할 눈이 없다. 태어나자마자 치명적인 세균에 감염된 호머는 너무 일찍 삶의 위기와 맞닥뜨렸다. 하지만 호머는 그게 절망인지 무엇인지도 모를 아기였다. 수의사 패트리샤 컬리는 그 아기를 살리기 위해 두 눈을 얼굴에서 뽑아내야만 했다. 눈을 잃고, 응당한 시각을 잃고, 호머는 얼굴의 대부분인 눈을 잃음으로써 얼굴의 대부분조차 상실했다. 호머가 주먹만 한 고작의 몸으로 시작해야 할 삶은, 모르고 어머니를 사랑한 탓에 결국 두 눈을 찌르고 테베를 떠나가야만 했던 오이디푸스의 삶의 가장 아픈 그 순간보다 더 쓰라린 것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호머는 살아남았다. 그 작은 털실뭉치는 그래도 살아남았다. 호머의 마음에 무엇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눈물을 흘릴 수 없는 그가 그 작은 고작의 몸 안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감히 인간의 수치로는 가늠조차 못하겠다. 호머는 거기서부터 깨끗하게 일어났다. 호머는 그웬을 만났고, 그웬은 여느 범박한 인간들처럼 그를 ‘살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사려 깊은 그웬도 몰랐다. 영웅으로 태어난 호머에게 인간들의 그 조잡한 삶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호머는 숲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사막을 횡단하지도 않았다. 당신을 떠나지도 않았다. 호머는 거기서 그웬이 아는 세계를 받아들였고, 그웬을 사랑에 빠뜨렸다. 그웬이 알던 세계를 조금씩 뜯어고쳐나갔다. 행복이라는 인간의 말이 얼마나 왜소한 것이었던가. 사랑은 편만한 이 세계에 넘쳐흐르는데 그것을 뒤집어 다른 사람을 밟고 살아야 하는 불안한 동물 인간은 얼마나 가련한가. 물론 호머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몰랑몰랑한 그의 가슴은 그런 식이 아닐 것이다. 대신 그러려는 사람들의 팔과 가슴에 파고들어 ‘가르릉 거린다.’ 호머는 볼 수 없으므로 ‘처음 본 사람’이라는 가혹한 타인의 개념조차 없다. 처음 본 당신의 품에 호머는 기어코 파고들어가 ‘가르릉 거린다.’ 야옹…(안아줘), 야…옹(왜 안아주지 않아?), 야옹……(그래야 당신을 사랑할 수 있다구). 이보다 용기 있는 영웅이 있을까. 그의 작고 소박하게 뛰는 가슴에서는 사랑에 실패하여 상처를 받는다는 인간의 법칙이 부러진다. 영웅에게 평범한 전사의 칼이 무용지물이듯이 말이다. 그웬이 받아 적은 호머의 삶은 가히 영웅의 그것이다. 거기에 절망도, 불안도, 한계도 없는 사랑과 사랑하며 사는 삶의 요약이 있다. 살아 있는 것들이 수행해야 할 당연한 사랑과 그것을 거부하는 성공한 인간들의 남루한 그림자가 있다. 무엇보다 호머의 삶이 영웅의 그것인 것은, 어떤 위대한 문명인의 성공도 호머의 일상에서는 오래 반성해야 할, 불안하고 여기까지 쫓기며 긴 삶이라는 확신을『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를 읽어본 자라면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으면, 호머를 만나고 싶을 것이다. 그만큼 솔직해질 것이다. 당신 삶도 이 현실 어느 모서리엔가 치이고 어느 구석엔가 처박혀 말이 아닐 것이다. 그때에, 눈을 감고, 호머를 떠올리면 된다. 그러면 눈 감은 그 속에서 호머가 가르릉 거리며, 야옹…(안아줘)하고 다가올 것이다. 애묘가 호란이 번역을 마치며 보내온 편지 대체로 애견인들에 비해 애묘인들은 정체성을 잘 숨기지 못하는 편이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보다 수적으로 우세한 것이 현실인데, 자신의 반려동물에 대해 호들갑을 떨어가며 떠벌리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애견인들보다는 애묘인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누가 앞서고 뒤서는 게 있겠냐마는, 유난히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면 고양이 이야기를 빼놓고 한 시간 이상 대화를 이어가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하루라도 고양이 얘기를 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라도 돋치는 양 고양이 수다를 즐긴다. 같이 이야기 할 상대가 ?의치 않으면 미니 블로그에 포스팅을 해서라도 내 고양이의 아름다움과 우아함, 반짝이는 재치와 매력에 대해 동네방네 떠들어대고야 만다. 하지만 고양이를 키워본 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건 내가 유난히 극성맞은 팔불출이어서가 아니라, 고양이라는 생물이 가진 천성적인 신비로움과 생명력 때문이라는 것을. 이렇게 고양이의 매력에 십 년 넘게 빠져 있는 나로서, 눈먼 고양이 호머의 이야기를 번역하게 된 것은 아주 멋진 일이었다. 이 세상에 평범한 고양이는 없다. 모든 고양이는 각자의 매력과 강인함, 독립성과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고양이 특유의 이러한 신비로운 천성이 눈먼 고양이 호머 안에도 아주 생동감 넘치게 살아 있음을, 나는 번역하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사랑하는 주인이 귀가했을 때 행복감에 넘쳐서 대문 앞으로 뛰어나가는 애정 어린 태도에서, 나이도 덩치도 한참 앞서는 고참 고양이를 기습하려고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는 신중한 발걸음에서, 자신의 가족에게 닥친 위협 앞에 거칠게 달려드는 용감한 모습에서 내가 느낀 것은, 그 오랜 시간동안 인간과 함께 살아오면서도 고양이들에게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귀한 야성이었다. 호머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발견된 순간부터 입양되기까지 그가 겪어야 했던 드라마틱한 과정은 거의 신파적이기까지 하고,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고양이들의 배로 쾌활한 천성은 활자에서 튀어나와 행간을 휘저으며 춤추는 듯하다. 우리 모두가 경악했던 911사태는 호머와 그 가족들의 관점에서 다시 한 번 생생하게 재현되어 강한 인상을 남기고, 로맨스를 거쳐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결말은 ‘기승전결의 정석’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인 스토리만 읽는다면 그건 호머의 매력을 반만 읽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호머의 이야기가 ‘장애를 극복하고 일어난 눈먼 고양이의 인생역정’ 정도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호머는 똑똑하고 유쾌하며 무조건적인 신뢰의 가치를 알고 삶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 멋진 생물이다. 자칫 그의 장애에만 정신을 빼앗겨 삶의 경이로움보다 인생살이의 힘겨움에 대한 우울한 사색에 빠지지 않게끔, 호머는 이 책 전체에 걸쳐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아, 내 눈요? 멀었어요. 그건 그렇고, 그보다 우리 이 세상이 얼마나 멋진지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래요?’ 이 책은 고양이의 눈을 빌린 생명에 대한 찬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