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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고난의 날은 길어도-힘겨운 나날을 견디며- 투혼은 승리로 가는 길- 첫 출진 전투가 끝나고- 미키코의 죽음- 후지코와의 만남- 나, 필리핀 상공에 있고-하늘의 요새와 첫 전투-센닌바리-버팔로와의 싸움-지옥 라바울로- 하늘의 독사(에어라코브라)를 제물로- 천황의 생일 파티(천장절天長節)- 위태로운 사사이 중위- 혼다(本田)의 전사- 편대, 적 기지 상공에서 공중제비- 상어떼- 고공출격-거절된 훈장-라에 상공의 요격전-하늘의 요새를 모두 격추- 덮쳐오는 죽음과의 싸움-라바울을 떠나는 날-떨어지는 젊은 벚꽃은 갈 곳이 없고- 불석신명不惜身命의 의기- 이오지마 상공의 대규모 공중전-그대들이여, 헛되이 죽지 말지어다- 날개 없는 대공의 사나이들-여자의 마음- 공습경보를 결혼행진곡 삼아-별들은 지고- 최후의 전투-에필로그-사카이 사부로의 말로- 부록-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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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미가우라의 체력 훈련 코스는 일본 내에서도 가장 엄격한 것이었다. 장애물 코스 중 제일 힘들었던 곳은 높은 철봉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기어 올라가야만 했다. 철봉 위에서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해야만 했다. 10분 이상 몸을 지탱하는 데 실패한 연습생은 엉덩이를 걷어차이고 처음부터 다시 기어 올라가야 했다. 이 코스를 마칠 때까지 제명을 면한 연습생은 한 팔로 15∼20분간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해군병사는 수영도 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산악지역 출신의 연습생들 중에 수영을 전혀 해본 적이 없는 친구들도 많았다. 이런 경우 해결책은 간단했다. 연습생들의 허리에 밧줄을 묶고 바다 속으로 집어 던져버리는 것이었다. 수영을 하던가 물에 빠지던가 둘 중 하나였다. 현재 내 나이 39세이고 몸속에 아직도 파편이 박혀 있지만 34초 내에 50m(162피트)를 헤엄쳐 갈 수 있다. 비행학교에서 이 정도 거리는 30초 내에 주파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모든 연습생들은 최소한 50m까지 잠수하여 최소 90초간 견뎌야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리 숨을 참아도 약 40∼50초간 견딜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일본의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내 최대 잠수 기록은 2분 30초였다. ---p.33 정말로 편안한 졸음만이 느껴졌다. 잠을 자고 싶었다. 비행기가 피격당했고 내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실감하려 애썼으나 두려움은 없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이토록 고통 없는 것이라면 걱정할 이유가 없을 텐데. 나는 꿈속에 있었다. 뇌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눈앞에 영상은 파도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경악할 만치 또렷하게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우시면서 호통을 치셨다. “사카이! 부끄럽지도 않느냐! 일어나라! 넌 겁쟁이가 아니야! 어서 정신 차리렴!” 문득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신이 들었다. 제로 전투기는 땅으로 돌멩이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억지로 눈을 떠서 보니 주변을 가득 메운 시뻘건 화염이 보았다. 나는 전투기가 불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기 냄새는 나지 않았다. 나는 눈을 깜박거렸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모든 것이 다 빨갛게 보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조종간을 더듬어 찾으면서 잡았다. 여전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조종간을 뒤로 잡아당겼다. 비행기는 급강하에서 벗어났다. 제로 전투기가 급강하 상태에서 빠져나와 수평직선 비행으로 들어가면서 의자에 몸이 앉혀지는 중력을 느꼈다. 바람은 훨씬 부드러워졌다. 더 이상 바람이 얼굴을 강하게 후려치지는 않았다. 그때 갑작이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 상태로는 라바울에 돌아갈 수 없다. 나는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나는 내 왼손을 스로틀로 가져가 출력을 높이려고 했다. 나는 손을 뻗치려고 힘을 주었으나 내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젠장! 나는 절망적으로 내 손을 강하게 움켜쥐려고 했다. 이번에도 손에 아무 감각이 없었다. 마비된 느낌 뿐이었다. 나는 내 발을 방향타 페달로 옮겨갔다. 오른발만이 움직였고 제로 전투기는 방향타가 움직이는 대로 미끄러졌다. 내 왼발은 마비되었다. 나는 이를 갈며 긴장했다. 아무런 감각이나 느낌이 없었다. ---p.253~254 나는 신속하게 결단을 내려야했다. 만약 우리가 어둠을 뚫고 절망적으로 앞이 안 보이는 바다를 헤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면 결국 연료가 떨어지고 우리는 살아남을 희망도 품을 수 없이 바다에 추락할 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이유 없는 죽음, 쓸모없는 죽음이었다. 나는 내 꼬리에 찰싹 달라붙은 두 제로 전투기를 보았다. 저들 두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하여야 하나? 저들은 내게 아무 군말없이 나를 따라왔으며 내가 무엇을 하든지 그대로 따라할 것이다. 만약 내가 속도를 내어 전속력으로 바다에 추락한다면 저들 역시 단 1초도 망설임 없이 내 비행기를 따라 바다에 추락할 것이다. 그들의 운명은 내 손에 달려 있었고, 그런 생각이 나를 화나게 했다. 계속 전진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가? 바다에 충돌한다면 이오지마에 있는 아군들은 우리가 적함에 충돌했거나, 아니면 공중전 중에 격추당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만이 진정 명예로 향한 길인가? 아니다! 나는 나침반을 점검하고 완만한 선회를 했다. 두 대의 제로 전투기도 내 뒤를 따랐다. 나는 내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거칠게 싸워 왔고, 구름 속을 날아왔으며, 폭풍 속에서 앞이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태평양 상공 어디쯤을 날고 있을 것이다. 180도 선회를 해서 간다고 해도 이오지마로 가는 대신 오히려 더욱 남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선회해야 했다. 나는 해내야 했다! 미우라 대좌의 무서운 말이 내 귓전을 맴돌았다. “…여러분은 모두 함께 적 항공모함에 격돌하여야 한다!” 나는 적함을 찾으러 선회할 뻔 했다. 나는 아직도 절대적인 명령체계를 지닌 제국 해군의 장교였다. 자신이 받은 명령이 옳건 그르건 간에 복종하여야 했다. 만약 우리가 모기지에 복귀한다고 해도, 나를 이 작전에 투입한 항공대 사령의 얼굴을 어떻게 대면할 수 있을까? 그것은 정말 무서운 싸움이었다. 나는 계속 주저하며 고민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당시 내가 행동한 것만이 유일한 이성적인 조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나는 내가 그때까지 받았던 엄격하고 가혹한 정신교육, 즉 평생토록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신조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나의 자아의 싸움을 말로 형언할 길이 없다. 제로 전투기의 조종석 안에서의 그 가혹한 시간 동안 나는 나를 묶고 있던 이념과 전통의 사슬을 끊어버리는데 성공했다. ---p.382~3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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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의 사무라이》를 내며….
태평양전쟁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종결된 지도 어언 60년이 흘렀지만 그들이 저지른 가혹한 수탈과 만행은 여전히 우리의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그들의 행한 행동은 어떠한 근거로도 합리화되거나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일본에 대해 특히 2차세계대전의 절반을 차지했던 일본군의 태평양 전투에 대한 연구나 혹은 그 자체를 꺼려하는 것은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 데 위험한 일이다. 기실 태평양전쟁의 일본군 연구를 통해 우리 민족의 수난사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군사 사이트에서 일본군에 대해 조금만 말을 잘못 했다가는 한쪽으로 몰려 호되게 당하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국내에 출간된 서적을 봐도 일본군 및 태평양전쟁 관련 도서들을 만나기 쉽지 않다. 그런 이유에서 일본군 조종사가 바라본 2차세계대전을 다룬《대공의 사무라이》라는 책이 일본과 태평양에서 처절한 사투를 벌였던 미국에서조차 베스트셀러가 되었음에도 한국 독자들을 만나기까지 50년이 넘게 걸린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1956년 작인《대공의 사무라이》는 사카이 사부로라는 일본군 비행조종사의 일대기를 담은 책으로 출간 당시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책이다. 이 책의 내용 중 일부는 첫 출간 때부터 미국과 일본의 여러 전문가들과 참전 용사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거리가 되어왔을 만큼 문제적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태평양전쟁과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내밀함까지 모두 아우르는 이 책이 편견 없고 정확한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이해해야 하는 것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사카이 사부로는 누구인가? 그 전투 비행조종사가 바라본 2차세계대전의 살아있는 기록! 사카이 사부로는 몰락한 사무라이 가문의 후예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일본병으로 입대, 전투기 조종사가 되어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에 참전하여 64대의 연합군기를 격추한 일본 최고의 에이스였다. 그에 관한 유명한 일화로 그가 태평양 지상전의 분수령이 된 과달카달 전투에서 미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라바울의 기지를 출격했다가 미군기가 쏜 기관탄총을 맞고 오른쪽 눈을 실명하고 반신불수가 되고 말았다. 불시착은커녕 낙하산 탈출조차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600마일 이상의 거리를 자력으로 비행해 라바울 기지로 복귀한 일화가 전해진다. 종전 후에는 자신의 동료나 상관이었던 전사자들의 가족들을 끝까지 보살펴주고, 그와 교전을 펼쳤던 미해군의 조종사들과도 교류하며 지냈다. 집안에는 사당을 지어 놓고 매일 자신이 죽인 연합군 조종사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종전 후에는 자신의 파일럿 생활을 소개한 자서전《대공의 사무라이》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사업가, 영화배우로도 이름을 알렸다. 반일감정이 심했던 우리나라에서조차도 한때 공군 내에서 해적판으로 번역되어 필독서로 통했을 만큼 사카이 사부로는 패전국이자 전범국가 일본의 군인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더라도 입지전적인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늘의 사무라이라 불렸던 전설의 격추왕들을 만나다 인류 역사상, 2차세계대전만큼 많은 항공기가 한꺼번에 몰려 싸운 때는 없었다. 전성기인 1943~1944년에는 전 세계를 합쳐 문자 그대로 몇 만 대의 각종 비행기가 하늘에 나타났다 사라졌고, 그것은 그만큼 많은 조종사와 승무원이 그들이 탔던 비행기와 운명을 함께했다. 지상에서의 치열한 싸움만큼이나 하늘에서의 싸움은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고, 이것은 비교적,우아해 보이는 전투기 조종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2차세계대전은 하늘에서 싸우는 사나이들이 전쟁의 승부를 가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첫 번째 전쟁이기도 했다. 이런 전투조종사들은 대개가 어려서부터 조종사의 꿈을 키워왔으며, 각고의 노력을 통해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닌 조종사로 거듭났다. 더욱이 하루에도 수차례 출격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놀라운 격추기록을 세워나감으로써 자국에는 영웅으로 적국에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다른 어떤 전쟁보다 2차세계대전은 하늘을 지배하는 자가 승리자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전투 조종사들이 한 대 뒤엉켜 처절하게 싸우고 불꽃처럼 사라져 갔다. 이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며 치열하게 살다간 수많은 격추왕들의 삶과 죽음을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대공의 사무라이》는 사카이 사부로 한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한 동료들, 즉 전쟁의 성패를 좌지우지하기에 이른 일본군 조종사들의 삶과 죽음도 다루고 있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2차세계대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더불어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의 터널을 지나온 인간 존재의 다양한 면면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