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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Marc Pa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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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의 소중함을 믿는 사람이라면 자석처럼 이끌리게 될 매혹적인 소설
『종이 한 장 위의 연인들(원제: Les aimants)』은 장 마르크 파리지스의 25년 사랑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자전적 소설이자, 삶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사랑하는 여인의 초상화이다. 소르본느 대학을 다니던 시절 작가는 시험을 치르는 강의실에서 아름답고 지적인 한 여학생을 운명적으로 만난다. “모든 생명에는 끌어당김의 법칙이 작용한다.”라는 문장과 함께 소설의 전반부는 시작된다. “아바는 아주 일찌감치 나의 생명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어떤 육체의 경우 빛에 매우 민감한 그런 나이 때부터. 그녀의 곁에서 그녀와 함께한 내 인생은 내 젊음의 전부였고, 온전한 남자로 산 내 삶의 전부였다. 나를 성장하게 한 건 그녀였다. 우린 동갑이었고 끌어당김의 힘은 상호적인 것이었으므로 그녀는 저 높은 곳에 있는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내게서 어떤 힘을 끌어갔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하늘이 텅 비어 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내게 남은 이야기는 이것뿐이다. 믿기지 않게도……” 영원한 ‘자석의 양극’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며 시작된 둘의 관계는 시간의 흐름 속에 사랑과 우정 사이를 오가지만, 그녀가 그의 곁을 떠나는 순간 새로운 사랑의 모습으로 탈바꿈된다.작가의 화려한 문장과는 상관없이 파리지스는 오늘날 프랑스 작가들 중에서도 여성의 모습과 심리를 가장 탁월하게 묘사하는 작가로 꼽힌다. 『종이 한 장 위의 연인들』은 “10년 만에 한 번 나올 만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는 찬사를 받으며 ‘《르 푸엥》이 선정한 2009년 최고의 책 20선’으로 선정되었다. 화자이자 작가인 파리지스는 화려한 문체로 좀처럼 보기 힘든 조화로운 사랑을 종이 위에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이 빛나는 이유는 보석 속에 박힌 다이아몬드 같은 작가의 문체 덕분이다. 2. 긴 세월,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빛나는 소설 같은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이름, 우연한 만남……. 소르본느 대학 강의실, 스무 살의 두 주인공이 시험날 옆자리에 앉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과도하게 낭만적이고 서정적이며 외향적인 젊은 화자는 허구의 세계에 대한 믿음에 이끌려 로덴 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쓰고 아라공이나 말로우를 흉내내며 소르본느 대학을 누비고 다닌다. 그리고 바로 그 믿음이 그로 하여금 세련미 넘치는 갈색 머리 여학생 아바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한다. 파리에서 태어난 그녀는 라 쿠폴 레스토랑과 뤽상부르 공원 사이에서 자랐다. 그곳은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펼쳐질 곳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파리의 변두리에서만 살아온 화자에게 파리는 도피의 장소이다. 신문사의 객원 기자이면서 작가이기도 한 그가 퐁주와 브르통, 네르발, 파베제, 드리외 라 로셸 등을 즐겨 읽는 동안, 그녀는 생 존 페르스와 특히 보들레르를 탐독한다. 보들레르는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며, 세느 강변의 헌책방 순례를 기쁨으로 삼는 두 주인공에게는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이다. 시간이 지나 조심스럽기만 하던 사랑은 진정한 연인의 삶으로 바뀐다. 소소한 기쁨과 웃음으로, 순수하고 평온한 행복으로 이루어진 삶이다. “사랑에 관한 한 우린 아무 걱정도 없었다. 우리가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책으로, 영화로, 파티로, 파리 산책으로, 둘만의 도시로, 아바의 도시로 한 땀 한 땀 수놓은 연인의 삶은 십 년 동안 계속된다. 하지만 “허영과 모방이 심해지면서 (……) 인간의 모든 거래는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고 파리지스가 탁월한 묘사를 하고 있는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 두 사람의 관계는 어긋나기 시작한다. 아바는 현실을 등지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다. 외로운 몽상을 즐기고 글쓰기라는 곳으로 유배를 떠난다. 지나치게 현명했던 시간들과 오랜 부부처럼 살아온 세월에 싫증을 느낀 그는 아바의 빈 자리를 옛 망령들로 채운다. 아바의 기나긴 은둔 생활이 시작된 것도 모른 채 파티장을 돌고 술로 밤을 보내며 여자들을 찾아다닌다. 그러면서 그는 점점 공기 요정으로부터 멀어진다. 『종이 한 장 위의 연인들』은 긴 세월,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수많은 소설이 쏟아져 나오는 이 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아니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소설 중 하나로 꼽혔다. 이 세상을 떠난 연인에게 종이 무덤을 쌓는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파리지스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찬란하고 강렬하며 생명 넘치는 한 편의 시를 선사하고 있다. 3. 소중한 사랑을 담아 놓은 영원의 보석상자와도 같은 소설 이 책의 매력은 ‘살아 있는 한 편의 시’ 같은 주인공들의 ‘미묘한 추상’에 있고, 그것은 아바의 죽음이 남긴, 화자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공허함으로 증폭된다. 행복에서 고통으로 전환되는 부분에서, 초반부의 축복과 시혼은 슬픔과 반항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소설에 깔린 이 비극성은 태양처럼 빛나는 그리운 여인의 아름다운 초상화를 퇴색시키지 않는다. 기억이라는 고통스러운 작업은 비탄과 가식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소설에 한 장의 빛 바랜 사진 같은 낭만성을 부여하고 있다. 한때 연인이었던 그들은 영원한 ‘자석의 양극’이다. 파리지스의 소설 역시 자석처럼 빨아들이는 힘이 있다.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 장 마르크 파리지스에게 여자들은 유령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딘지 모를 낯선 곳으로 떠난 사람들이 우리 안에 남기고 간 감정이다. 만질 수 있는 건 남아 있지 않다. 비통함 속에서도 꿋꿋하게 울리는 심장 박동밖에는. 작가는 아바를 통해 그의 작품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물을 창조해냈다. 예술과 진실의 세계에 파묻혀 나이조차 잊고 살았던 한 여인의 초상화를 완성했다. 열정과 서정이 살아 숨쉬는 장 마르크 파리지스의 감미로운 문체는, 몸을 산산이 부수는 공허감과 마음을 갈기갈기 찢는 외로움과 길모퉁이마다 지키고 서서 화자를 심연으로 빠뜨리는 추억들을 이야기하면서 폭력적이고 분노에 찬 얼굴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영혼의 짝을 잃게 한 생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그에게서는 동정심도 돌로리즘(고통주의)도 느껴지지 않는다. 한 편의 시와도 같은 이 짧은 소설은 아직 사랑을 소중한 것이라 믿는 사람이라면 자석처럼 이끌리는 매혹을 느끼게 된다. 파스칼적인 단순함을 지닌 문장들로 찬란하게 빛나는 『종이 한 장 위의 연인들』을 읽다 보면 지금껏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슬픔이 생겨난다. 그리고 아픔을 느끼고 방황하고 영원히 소외되는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된다. 누구도 이런 식으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적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교에 치우치거나 속임수를 쓰거나 꾸민 듯한 글은 결코 아니다. 언어의 입체감과 뉘앙스를 살려내고 있으며, 그 가능성과 함께 다양한 얼굴과 함정도 보여주고 있다. 파리지스처럼 몇 페이지 만에 독자의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을 수 있는 작가도 드물 것이다. 그건 그가 고통에 관해 쓰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고통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읽는 건 그의 고통이다. 침착하고 예리하며 독창적이고 세련된 고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