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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장 - 멋과 해학의 나라
ㆍ수표교 아래서 책을 팔던 서점이 있었다ㆍ사주는 같으나 운명이 달랐던 팔자ㆍ조선시대에 석유 광고가 등장했다ㆍ조선의 다리에는 모두 사연이 있다ㆍ거지와 임금의 팔자를 가려내던 점술ㆍ숭례문 주변에 보도블록을 깔았다ㆍ종이로 만든 속옷을 입었다ㆍ연하장으로 새해를 축하했다ㆍ거지도 나라에서 돌보았다ㆍ김홍도도 춘화를 그렸다ㆍ상투 튼 남자들도 머리카락을 잘랐다ㆍ비를 막을 수 없는 우산이 있었다ㆍ조선시대 이전부터 공중목욕탕이 존재했다

2장 - 조선시대, 조선사람들
ㆍ조선시대에도 사인으로 서명을 했다ㆍ사방 2km 안에는 같은 점포를 차리지 않았다ㆍ뇌물로 형벌을 면하기도 하였다ㆍ인기 직업과 3D 직업이 존재했다ㆍ낙서한 자는 무거운 형벌로 다스렸다ㆍ사기도박꾼인 타짜가 존재했다ㆍ조선시대 남자들도 군대 때문에 고민했다ㆍ조폭과의 전쟁이 있었다ㆍ망나니도 죄인이었다ㆍ왜놈은 얼레빗 되놈은 참빗ㆍ욕을 하면 유형에 처해졌다ㆍ야간 통행금지가 있었다

3장 - 여인이여, 사랑이여!
ㆍ신사임당 남편 이원수는 처가살이를 했다ㆍ여인들의 치맛바람이 강했다ㆍ사방지와 임성구지가 존재했다ㆍ은장도는 사치품이었다ㆍ궁녀를 양가의 딸 중에서 징발한 적도 있다ㆍ궁녀들도 결혼한 적이 있었다ㆍ부적이 되었던 생리대ㆍ옷 조각이 이혼증서가 되었다ㆍ조선시대에도 함들이 사치가 만연했다ㆍ여인들이 남자 의원을 꺼려해 목숨까지 잃었다ㆍ무당이 의료행위를 했다ㆍ대를 잇기 위한 씨내리를 두었다

4장 - 세계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
ㆍ조선의 아침을 열었던 일간신문ㆍ최초의 안경은 거북이 등껍데기로 만들었다ㆍ선죽교에 정몽주를 기리는 영조의 비석이 있다ㆍ영감이라 불러도 화내지 않았던 광해군ㆍ장수한 영조보다 더 오래 산 효령대군ㆍ이름을 목숨처럼 여겼다ㆍ아이들을 극진히 사랑한 임금들ㆍ청렴한 관리가 있던 나라ㆍ이성계의 활이 조선을 열었다ㆍ역사를 지고 온 지게ㆍ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큰 글 한글ㆍ임금들의 묘호 짓기는 조심스러웠다ㆍ조선 중심의 세계지도를 만들다

5장 - 조선의 맛을 찾아서
ㆍ신선로와 전골이 있던 따뜻한 밥상ㆍ생선 이름에도 해학과 풍자가 있었다ㆍ두부에도 33가지 종류가 있었다ㆍ주막이 주점이 되었다ㆍ임금도 그 맛을 잊지 못했던 장국밥ㆍ엿을 좋아했던 연산군ㆍ잔칫상을 채웠던 사람들의 숨결ㆍ한 그릇에 정을 비벼 먹던 비빔밥ㆍ겨울에 즐겨 먹었던 냉면ㆍ식혜에서 사이다까지ㆍ이성계를 원망하다 만든 만두와 떡국ㆍ영양식인 우유는 특식이었다

6장 - 구중궁궐 그곳에서는
ㆍ김홍도는 스파이였다ㆍ임금도 과외공부를 했다ㆍ궁녀들에게 한글은 필수 과목이었다ㆍ왕실은 왕씨와 김씨를 꺼려했다ㆍ정치의 한복판에는 화재사건이 있었다ㆍ임금의 식수는 따로 있었다ㆍ궁궐 안에 차를 마시는 다방이 있었다ㆍ얼음은 최고의 사치품이었다ㆍ사람 사는 곳에 함께 피던 꽃 동성애ㆍ격구로 건강을 유지했던 정종ㆍ국호를 왜 조선이라 지었는가ㆍ대문 옆에 화장실이 있었다ㆍ온천욕을 즐겼던 세조

저자 소개

저자 : 강영민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현재 강영민 내과 원장으로 있으며 제주중학교, 영주고등학교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조선왕들의 생로병사』 『의사와 함께 조선의 숲길을 걷다』 『손상된 간 재생술』등 의 저서가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10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87쪽 | 512g | 153*224*20mm
ISBN13
9788975470875

책 속으로

조선시대에도 서점의 역할을 하던 곳이 있었다.
명종 9년(1554) 학자 어숙권이 편찬한『고사촬요』는 역관이나 의관 등기술직 관리들이 꼭 숙지해야 할 상식지침서였다. 이 책의 간기에 보면 ‘발행일 1576년 7월 수표교 아래 북쪽 자리 수문 입구에 있는 하한수로 살 사람은 찾아오시오’라는 문구가 있다.
1576년 7월에 발행한『고사촬요』를 수표교 아래 북쪽 수문 입구에 있는 하한수에서 팔고 있으니 필요한 사람은 오라는 내용이다. 하한수는 개인이 직접 책을 만들어 팔았던 곳으로 출판사와 인쇄소 그리고 서점을 함께 하고 있던 셈이다.
원래 조선시대 서점 역할을 했던 곳을 서사(書肆)라고 불렀는데, 나라에서 관리를 두고 운영하던 관영이었다. 중종 24년(1529) 대사간을 지낸바 있는 어득강이 다음과 같이 청한 일이 있다.
“지금 책을 펴내는 곳이 교서관뿐이라 학문에 뜻을 둔 사람들이 마음 놓고 구매할 수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시중에 서사를 두면 누구든지 책을 살 수 있게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조선시대 전기까지만 해도 교서관에서 펴낸 책은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하던 귀한 것이었다. 물론 종이와 품삯 등 간행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면 책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역관 등 중간에 소개인이 있을 경우 구입도 가능했지만, 이는 상류층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었다.
어득강은 책을 살 수 있을뿐더러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필요 없는 중고 책까지 팔수도 있는 신개념의 서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현재의 헌책방과 도서관 같은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서사를 제시했던 것이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기상천외 조선사는......
“석유를 놓고 누구는 바다 깊은 곳에서 얻어낸 것이라 하고, 누구는 석탄에서 뽑아낸 것이라 하며, 또 누구는 돌을 달여 얻은 것이라 하는 등 설명이 각기 다르다. 하지만 석유가 천연자원임에는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진년(1880)부터 이것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색깔이 붉고 냄새가 역했는데 한 홉이면 열흘 밤을 충분히 밝혀 줄 수 있었다. 그 후 수년이 지나자 색깔이 점점 묽어지고 역겨운 냄새도 사라졌지만, 화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한 홉으로 겨우 사나흘 정도만 밝힐 수 있었다. 석유가 등장하자 산과 들에서 자라던 기름을 주던 열매들은 더 이상 번성하지 않게 되었는데, 어느 곳이든 석유를 사용했고 재래식 기름은 멀리했기 때문이었다.”
『매천야록』에 기록되어 있는 석유와 관련된 내용으로 그 당시의 상황을 잘 알 수 있다.

역사란 단순히 지나간 시간이고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인가, 혹은 덮어두고 묻어둔 채 아예 모른 척할 수도 있는 대상인가. 과거란 절대로 재현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그 과거를 이 현재 속에서 되찾을 수 있어서 역사는 매우 흥미진진한 학문이다.
조선시대 병사들이 종이옷을 입은 채 변방을 지키며 겨울철 전쟁터를 누빈 사실을 아는가? 조선의 아침을 조보(일간신문)가 열었다는 것을 아는가? 관리와 천민들까지도 문서에 사인을 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 김홍도가 스파이였다는 사실이 믿어지는가.
이 책에는 조선왕조실록과 야사를 토대로 흥미진진하고 기상천외한 또는 황당하기까지 한 역사 속에 존재했지만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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