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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Katarzyna Rajs 로만 마치예프스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편곡 작품 1집 - 카타르지나 레이즈, 피오트르 컨핀스키 (Roman Maciejewski: Transcriptions For Two Pianos Vol.1)
바흐 / 모차르트 / 라벨 / 알베니스의 작품 편곡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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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디스크

Disc

  • 01 Johann Sebastian Bach: Passacaglia in C Minor, BWV582
  • 02 Wolfgang Amadeus Mozart: Variations in G Major on the Theme 'Unser Dummer Pobel meint Glucka': Tema. Allegretto
  • 03 Variation 1
  • 04 Variation 2
  • 05 Variation 3
  • 06 Variation 4
  • 07 Variation 5
  • 08 Variation 6
  • 09 Variation 7
  • 10 Variation 8
  • 11 Variation 9
  • 12 Variation 10
  • 13 Louis-Nicolas Clerambault: Suite in D minor: Grand Plein Jeu. Fort Lentement
  • 14 Duo. Gayement Et Gratieusement
  • 15 Recit De Nazard
  • 16 Basse Et Dessus De Trompette
  • 17 Recits De Cromorne Et De Cornet Separe, En Dialogue
  • 18 Caprice Sur Les Grands Jeux
  • 19 Ignacy Jan Paderewski: Sarabande in B minor Op.14 No.2
  • 20 Ignacy Jan Paderewski: Menuet Celebre in G Major Op.14 No.1
  • 21 Maurice Ravel: Pavane Pour Une Infante Defunte, M19
  • 22 Isaac Albeniz: Tango, Op. 165, No. 2
  • 23 Fritz Kreisler: Liebesfreud

아티스트 소개 10

작곡Johann Sebastian 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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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세바스찬 바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독일어: Johann Sebastian Bach, 1685년 3월 21일 ~ 1750년 7월 28일)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이며, 개신교회의 교회 음악가이다. 교회 성기사와 오케스트라, 듀오 악기를 위한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음악을 창작했고, 그의 작품은 바로크 시대의 종말과 궁극적인 성숙을 동시에 가져왔다. 그는 바로크 시대의 최후에 위치하는 대가로서, 일반적인 작품은 독일음악의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위에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양식을 채택하고 그것들을 융합하여 독자적 개성적인 음악을 창조하였다. 종교적 작품은 기존 구교 음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독일어: Johann Sebastian Bach, 1685년 3월 21일 ~ 1750년 7월 28일)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이며, 개신교회의 교회 음악가이다.

교회 성기사와 오케스트라, 듀오 악기를 위한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음악을 창작했고, 그의 작품은 바로크 시대의 종말과 궁극적인 성숙을 동시에 가져왔다. 그는 바로크 시대의 최후에 위치하는 대가로서, 일반적인 작품은 독일음악의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위에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양식을 채택하고 그것들을 융합하여 독자적 개성적인 음악을 창조하였다. 종교적 작품은 기존 구교 음악과 차별화하여 새로운 음악을 통해 개신교회 예배에 기여하고자 노력하였다.

바흐의 집안은 200년에 걸쳐서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한 일대 음악가계였다. 바흐 집안의 음악가들은 대대로 개신교회인 루터교회의 경건한 신자들이었고, 교회음악가로도 활동하였다. 또한 그들의 일에 강한 장인(匠人)적인 긍지를 품고 있었다. 이 '신앙'과 '장인기질(匠人氣質)'은 요한 제바스티안에게도 계승되어서, 마치 2개의 정선율(定旋律)과 같이 그의 일생을 관통하게 된다. 제바스티안 이전에도 17세기 초엽 이래 많은 유명한 작곡가를 배출했고, 일족의 중심지이었던 중부독일의 튀링겐 지방에서는 '바흐'가 '거리의 악사'를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을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제바스티안의 큰할아버지 하인리히 바흐(1615-1692), 그 아들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1642-1703)와 요한 미하엘 바흐(1648-94)는 음악사(史)에도 이름을 남긴 뛰어난 작곡가들이었다.

바흐는 사후 고전주의 음악사의 흐름에 밀려 완전히 잊혔으나 1802년 독일의 음악사학자인 포르켈이 바흐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인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Uber Johann Sebastian Bachs Leben, Kunst und Kunstwerke)을 1802년에 발표함으로써 전 유럽적 바흐 광풍을 몰고 오게 하였으며 또한 사후 바흐에 대한 재평가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였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온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아주 훌륭한 곡을 많이 작곡 하였다.

바로크 음악에 있어서 바흐는 대위법 기술의 정수를 다한 사람이나, 그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당시에 이미 궁정문화에 침투했던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양식을 스스로 받아들여 칸타타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도 했다. 거기에는 그가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배운 여러 나라의 온갖 요소가 모두 투입되어 그만이 지닐 수 있는 최고로 천재적이게 융화되어 일치미를 이루고 있다. 콘티누오(통주저음)만으로 반주되거나 또는 여러 개의 악기로 반주되는 독창이나 중창에 의한 이탈리아식 다 카포 아리아, 오페라적인 아리오소와 레치타티보, 가장 초기의 가브리엘 형태에서 바흐 시대의 프랑스식 서곡에 이르기까지의 관현악 신포니아, 협주곡, 트럼펫의 팡파르, 풍요한 장식성을 지니고 성악성부에 얽혀드는 기악의 오블리가토 성부, 복합창형식, 때로는 성악에까지 적용되는 프랑스의 리드미컬한 춤곡, 이러한 것이 독일의 오랜 전통인 코랄과 결부되고 있다. 대체로 바흐만큼 코랄을 훌륭하게 활용하고 또 코랄을 창작의 중심으로 삼기에 정당함을 느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 나라 양식의 혼합은 기악 분야에서도 볼 수 있다. 프로베르거의 전통, 쿠프랭의 프랑스 모음곡형식, 쿠나우에 의하여 전해진 이탈리아의 소나타 다 카메라양식,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건반 텍스처(鍵盤書法), 푸가에 있어서도 클라비어 푸가는 이탈리아 협주양식의 영향을 나타내나 오르간 푸가는 북독일 오르간 악파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협주곡 분야에서는 끊임없이 비발디가 모범으로 숭앙되며, 가장 이탈리아의 특징을 나타낸다. 이와 같이 바흐의 작품은 매우 많은 여러 가지 양식을 포함하고, 또한 작곡한 분야도 넓으며 바흐 개인으로서도 시대에 따라 기술적, 내용적으로 현저하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개인양식을 간단히 종합하기란 곤란하다고 하겠다.

바흐는 생전에도 동시대의 음악가였던 비발디나 텔레만과 같이 국제적 지명도를 가진 음악가는 아니었다. 사후에는 당시 음악가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작곡가로서는 완전히 잊혀진다. 바흐 생애 후반부에 이미 고전파 음악의 전조가 시작되었고 바흐 음악은 낡은 것으로 취급되었다. 바흐는 비발디나 헨델과 같이 음악가의 프리랜서화를 선도하는 인물도 아니었고 끝까지 교회 음악가로 남았다. 고전파 시대에 바흐는 고전파의 문을 연 아들들의 아버지로서 오히려 유명하였다. 유명인 중에는 모차르트가 바흐의 악보를 찾아서 탐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모차르트 음악에 가끔 훌륭한 푸가가 보이는 것이 바흐의 영향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베토벤 또한 바흐를 연구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영향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바흐를 극찬하는 말을 남겼다고하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아닌 아들 바흐에 대한 찬사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그러나 1802년 독일의 음악사학자인 포르켈이 사후 완전히 잊혔던 바흐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인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Uber Johann Sebastian Bachs Leben, Kunst und Kunstwerke"(1802)를 발표함으로써 바흐에 대한 인식의 전환점을 제공하였다. 근대 인문학으로서의 음악사학의 발전은 낭만주의 시대에 이전 시대의 음악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이들의 작품을 출판,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바흐는 그 핵심 레파토리로 떠오른다. 바흐 생존 시기나 고전파 시대의 지명도와는 달리 낭만주의 시대에 바흐는 이전 시기 어떠한 음악가보다 높이 평가되기 시작하여 멘델스존 이후 음악가들 중 바흐를 연구하지 않은 작곡가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바흐에 대한 관심은 바흐가 많이 참고하고 편곡을 했던 다른 음악가들, 특히 비발디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켜서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바로크 음악의 부활을 이끌기도 하였다. 오늘 날에도 바흐는-그의 음악이 바로크 음악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도 없고, 바로크 시대 가장 유명한 음악가도 아니었지만-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추앙받고 있다.

서양 음악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바흐의 가문에서는 약 200년 동안에 걸쳐 저명한 음악가가 많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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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Wolfgang Amadeus Moz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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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음악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로 불리는 작곡가. 세 살에 건반을 익히고 다섯 살에 작곡을 시작했으며, 어린 시절부터 유럽 전역을 순회하며 신동으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그의 삶은 영광의 순간만큼이나 깊은 좌절과 고뇌로 가득 차 있었다. 새로 부임한 대주교와의 갈등 속에서 더 넓은 세상을 갈망하던 청년 모차르트는, 일자리를 찾아 어머니와 함께 만하임과 파리로 긴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첫사랑의 배신과, 낯선 도시 파리에서 마주한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 그리고 차가운 세상의 외면뿐이었다. 이 모든 영광과 비극의 순간, 모차르트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
음악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로 불리는 작곡가. 세 살에 건반을 익히고 다섯 살에 작곡을 시작했으며, 어린 시절부터 유럽 전역을 순회하며 신동으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그의 삶은 영광의 순간만큼이나 깊은 좌절과 고뇌로 가득 차 있었다. 새로 부임한 대주교와의 갈등 속에서 더 넓은 세상을 갈망하던 청년 모차르트는, 일자리를 찾아 어머니와 함께 만하임과 파리로 긴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첫사랑의 배신과, 낯선 도시 파리에서 마주한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 그리고 차가운 세상의 외면뿐이었다.

이 모든 영광과 비극의 순간, 모차르트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기댈 수 있는 스승이며, 족쇄이기도 했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에게 가장 내밀한 편지를 썼다. 마침내 「이도메네오, 크레타의 왕」의 성공으로 빈에 정착한 모차르트는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마술피리」 등 불멸의 걸작들을 쏟아냈지만, 동시에 평생 가난과 병마에 시달려야 했다. 1791년, 미완의 「레퀴엠」을 남긴 채 3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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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Louis-Nicolas Cleramb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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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니콜라 클레랑보

프랑스의 오르간/하프시코드 연주자, 작곡가. 태양왕 루이 14세의 오르간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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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Ignacy Paderew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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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Ignacy Jan Paderewski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작곡가, 교육자. 1872년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배운 뒤 그곳에서 피아노 교수로 재직하였다가 1881년 베를린에서 작곡법을 배웠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폴란드 공화국의 초대 수상을 맡기도 하였으나, 1년 뒤 사임하고 다시 피아니스트로 활발히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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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Maurice 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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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라벨

프랑스의 서양 고전 음악 작곡가이다. 음악원 선배인 클로드 드뷔시와 함께 20세기 초 인상주의 사조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관현악곡인 <볼레로>로 유명하며, 무소륵스키가 작곡한 피아노곡인 <전람회의 그림>의 관현악 편곡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오케스트레이션은 다채로운 음색과 악기의 사용으로 유명하다. 그는 프랑스 바스크 지방의 Ciboure에서 바스크계의 어머니와 스위스인인 아버지로부터 태어났다. 열 네살이 되자 그의 아버지는 그의 음악적 재능을 키워 주기를 원하여 라벨을 파리 음악원으로 보냈다. 피아노와 작곡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재학 중 발표한 <죽은 왕녀를
프랑스의 서양 고전 음악 작곡가이다. 음악원 선배인 클로드 드뷔시와 함께 20세기 초 인상주의 사조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관현악곡인 <볼레로>로 유명하며, 무소륵스키가 작곡한 피아노곡인 <전람회의 그림>의 관현악 편곡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오케스트레이션은 다채로운 음색과 악기의 사용으로 유명하다.

그는 프랑스 바스크 지방의 Ciboure에서 바스크계의 어머니와 스위스인인 아버지로부터 태어났다. 열 네살이 되자 그의 아버지는 그의 음악적 재능을 키워 주기를 원하여 라벨을 파리 음악원으로 보냈다. 피아노와 작곡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재학 중 발표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현악 4중주곡 바장조>에서 새로운 경향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거기에서 그는 ‘아파치’라는 작곡가 학생들의 모임에 가입했는데, 이는 술을 마시고 여성들에게 집적대는 모임으로 유명했다.

파리 음악원에서 라벨은 가브리엘 포레에게 음악을 배웠다. 음악원에 있는 동안 로마대상을 받으려고 했지만 받지 못하였는데 그가 충분한 재능이 있었음에도 대상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그는 음악원을 떠났다. 라벨은 클로드 드뷔시에게 영향을 주었고, 재즈와 아시아의 음악, 그리고 유럽 전역의 민요와 스페인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라벨은 종교를 가지지 않았으며 무신론자로 보인다. 그는 바그너의 음악처럼 공공연히 종교적인 색채를 부여한 음악을 싫어했으며, 대신 고대 야화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는 편이었다.

1932년에 심한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그의 건강은 악화되었다. 1937년에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수술을 받았지만 실패하여 사망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라벨의 복잡하고 정교한 음악에 빗대어 그를 “스위스 시계 장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라벨은 인상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하나이지만, 그의 음악은 환상적인 묘사만을 강조하는 드뷔시와는 달리 프랑스 고전주의의 틀을 지키며 근대적인 감각을 발전시킨 것으로, 정교하고 치밀하다는 평을 듣는다. 라벨은 자신의 피아노곡을 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하는 것을 즐겨했으며, 의뢰를 받아 다른 작곡가의 곡을 편곡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예로는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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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Isaac Alben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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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알베니즈,Isaac Manuel Francisco Albeniz y Pascual

에스파냐의 근대 피아노 음악의 대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이다. 동북부의 카탈루냐에서 태어났으나 남부 안달루시아의 민족음악에 매혹되어 그 풍물을 묘사하다가 서(西)피레네의 피서지 칸보에서 별세하였다. 그는 누나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4세 때 바르셀로나의 로메아 극장에서 독주회를 가졌고 7세 때 작곡한 파소도블레를 시(市)의 군악대가 연주했다는 천재이다. 알베니스는 어릴 때는 물론 청년시절에 심한 파란을 겪었고 만년은 영예에 빛나는 호사한 일생이었다. 6세 때 파리에서 마르몽텔에게 배우고 8세 때 마드리드로 옮겨 음악원에서 멘디사발에게 배웠다. 이때 쥘 베른 과학소설을 탐독하고
에스파냐의 근대 피아노 음악의 대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이다. 동북부의 카탈루냐에서 태어났으나 남부 안달루시아의 민족음악에 매혹되어 그 풍물을 묘사하다가 서(西)피레네의 피서지 칸보에서 별세하였다.

그는 누나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4세 때 바르셀로나의 로메아 극장에서 독주회를 가졌고 7세 때 작곡한 파소도블레를 시(市)의 군악대가 연주했다는 천재이다. 알베니스는 어릴 때는 물론 청년시절에 심한 파란을 겪었고 만년은 영예에 빛나는 호사한 일생이었다.

6세 때 파리에서 마르몽텔에게 배우고 8세 때 마드리드로 옮겨 음악원에서 멘디사발에게 배웠다. 이때 쥘 베른 과학소설을 탐독하고 모험에 흥미를 느낀 끝에 가출하여 단신으로 에스파냐 북부를 연주여행하였으나 사모라에서 그 당시의 명물인 산적을 만났고, 한편 누나의 사망으로 부득이 귀가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다시 집을 뛰쳐나와 남에스파냐를 여행하였으며 이때 본 풍물과 민족음악이 소년 알베니스를 매혹시켜 이것이 후년 많은 걸작을 낳게 하였다. 카디스의 시장으로부터 "부모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체포하겠다"는 통고를 받고 항구에서 배를 타고 남미로 건너가 각지로 연주여행하면서 쿠바로 갔을 때 우연히 아바나의 세관에 근무하는 아버지를 만났으나 알베니스는 이미 경제적으로 독립된 13세의 음악가였으므로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여행을 계속하였다. 뉴욕에 왔을 때는 가진 돈이 없어 항구의 화물 운반 인부로 또는 바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끼니를 이었다. 이때 바에서 연주할 당시 그는 피아노를 뒤로 등지고 양손을 뒤집어 여러 가지 곡을 연주하였다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뒤 영국에서 독일로 건너와 야다스존과 라이네케에게 배우고, 귀국하여 국왕의 보조로 브뤼셀 음악원에서 배워 18세 때 우등으로 졸업하였으며 그 뒤에 리스트에게 배워 대피아니스트 안톤 루빈시타인과 함께 연주여행을 하여 20세로 세계 일류의 피아니스트가 되었으나 이것으로 그의 연주활동은 그쳤고 그 뒤로는 작곡에만 전념하였다.

23세 때 페드렐한테 배운 뒤 그의 작곡은 일변하여 안달루시아의 민족음악(세간에서 말하는 플라멩코라고 하는 향토민요 춤곡)의 형식과 정신을 바탕으로 한, 개성적인 불멸의 피아노 작품을 수없이 남겼다. 전기의 작품 <에스파냐의 노래>(5곡), <에스파냐 모음곡>(8곡), <여행의 추억>(6곡), <붉은 색의 탑>, <탱고> 등은 모두 세계적으로 보급되어 후세에 남은 명곡이나, 이 시기의 곡 중에서는 <에스파냐의 노래> 중의 한 곡 <코르도바>가 최고작이라 할 수 있다. 후기의 작품에는 보다 고도의 <카탈로니아>, <라 베가>, <아스레포스>, <이베리아 4권 12곡> 등이 있다. 특히 <이베리아>는 그가 만년에 파리에서 고국을 회상하며 각지의 인상을 묘사한 것으로, 안달루시아의 민족음악의 요소를 예술적 형성 속에 자유롭게 이상화시킨 걸작이다. 민족음악의 형식과 에스프리를 소재로 한 모음곡이 이와 같이 고도로 예술화된 것은 매우 드물며, '브람스 이후의 최고의 피아노 문학'이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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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트르 케핀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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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곡Roman Maciejew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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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마치예프스키

품목정보

발매일
2017년 07월 25일
시간/무게/크기
크기확인중
제조국
EU
KC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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