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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1. 서론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사회민주주의 이야기 이 책의 계획 2. 배경과 기반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융성과 쇠퇴 프랑스 : 실천으로서 민주적 수정주의의 시작 독일: 민주적 수정주의 이론의 기원 3. 성숙해진 민주적 수정주의 파리 대회와 그 이후 암스테르담을 향해,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오스트리아인들이 알고 있었던 것 4. 혁명적 수정주의, 그리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결합 소렐과 혁명적 수정주의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5. 수정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로 참여할 것인가, 참여하지 않을 것인가 이탈리아 이야기 병상에 누운 자본주의 앞에 서다 드 망의 계획 6. 권좌에 오른 파시즘과 민족사회주의 이탈리아에서의 파시즘 독일의 민족사회주의 에필로그 7. 스웨덴에서만 가능했던 이유 스웨덴의 민주적 수정주의 전간기의 도전들 사회민주주의로의 이행 ‘제3의 길’ 에필로그 8. 전후 시대 전후 체제 전후의 사회민주주의 9. 결론 이데올로기 시장에 대한 이해: 구조와 행위자 20세기를 이해하기 과거와 미래의 이데올로기 앞으로의 길 옮긴이 후기 미주 찾아보기 |
Sheri B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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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시장경제도 사회 공동체의 한 부분이다.
정치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서만 공동체의 통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왜 1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 모두를 거부하는 대중적 흐름이 강력했을까 “이 책 [영문판] 표지에 실렸던 포스터들을 보면 이런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두 장의 포스터 모두 1930년대 초반의 선거운동 당시 사용된 것인데, 다음과 같은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에게 표를 달라. 그러면 우리는 국가가 계급적 배경과는 상관없이 모든 시민에게 일자리를 보장하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체제를 제공할 것이다.” 이런 유사점들, 그리고 이 운동들이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 모두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게 된 과정을 알게 되면, 왜 그들이 전간기 동안 유럽 민중에게 그토록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어떻게 그리 많은 저명한 지식인들이 당시 겉보기에 비이성적인 결정, 즉 (수정주의적) 좌파로부터 (파시즘적 또는 민족사회주의적) 우파로 전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표를 달라. 그러면 우리는 국가가 계급적 배경과는 상관없이 모든 시민에게 일자리를 보장하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체제를 제공할 것이다” 1. 자유주의가 아니다 이 책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근대 이데올로기 간의 투쟁의 역사를 다룬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주제에 대한 책은 많다. 최근에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헤겔적 테마를 불러 들여 이데올로기 사이의 투쟁은 자유주의의 승리로 끝났다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국내에서도 뉴라이트 운동이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위세를 떨쳤다. 일각에서는 공동체적 자유주의를 선진화 담론의 핵심으로 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역사 종언론’ 내지 ‘자유주의 승리론’을 네오콘의 대표적 이데올로기로 비난해 왔던 개혁 내지 진보 진영에서도 다르지 않다. 자유주의의 중요성을 재발견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진보적 자유주의를 일종의 대안 담론으로 내걸고자 하는 시도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진보와 보수 모두 자유주의를 변용해 자신들의 대안으로 삼고자 경쟁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결론은 매우 다르다. 저자는 근대 이데올로기의 투쟁사를 자유주의의 승리로 보는 것에 명백히 반대한다. 만약 이데올로기 투쟁의 승자를 굳이 따지자면 그것은 사회민주주의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보기에 “사회민주주의란, 정치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내건 적극적 민주주의자들의 비전”이며 그것이 전후 복지국가체제를 이끌었다고 본다. 2. 마르크스주의도 아니다 무엇이 개인들을 공동체적 유대로부터 분리된 불행한 삶을 살아가게 만들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를 자본주의 내지 자본주의적 시장체제에서 찾는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대면하는 방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에서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자본주의 이전까지 시장 내지 경제는 사회의 한 부분이었고 전체 공동체의 요구에 순응하는 역할을 했다. 자본주의는 이 관계를 뒤집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시장의 요구 사항들이 공동체의 삶과 정치권력이 할 수 있는 한계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국가-시장-사회 간의 관계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자본주의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가져온 것은 분명했지만 그러면서 자연과 사회의 보호라는 인간 공동체의 본래 목적은 쉽게 해체되었다. 자유주의는 이러한 대전환을 정당화했던 이데올로기였다. 불행하게도 자유주의와 적대했던 마르크스주의도 경제중심주의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와 사회를 생산과 교환의 법칙에 따르는 종속적 위치로 더 확고하게 위치시킨 것은 마르크스주의였다. 역사의 주된 원동력을 경제적 힘들에서 찾았고, 그러면서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궁핍화와 파국적 불황으로 이어질 것이라 예측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결국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잘못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은 다양한 형태의 수정주의로 나타났고, 궁극적으로는 경제 논리로부터 정치적 실천을 독립시키는 길을 개척하게 되었다. 그 시도 가운데 민주주의의 가치와 전면적으로 결합된 것을 사회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는데, 엄밀히 말해 그것은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태동했지만 결국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한 새로운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3. 수정주의도 아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경제 중심주의에 대한 불만과 수정은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되었지만, 크게 보아 두 부류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혁명적 수정주의라 할 수 있다. 경제적 후진성에서 불구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가능함을 주장했던 공산주의도 여기에 포함할 수 있다. 그러나 서유럽의 경우 혁명적 수정주의의 큰 흐름은 조르주 소렐과 같이 기존 체제의 폭력적 전복을 주장하는 강한 직접행동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 민주적 방법을 부정하는 혁명적 수정주의와는 다른 흐름을 저자는 민주적 수정주의라고 부른다. 이들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유물사관과 계급투쟁론이 현실에서 실천될 수 없다는 점을 끊임없이 제기하며 적극적인 정치적 실천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를 현실에 맞게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스스로도 마르크스주의의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로 생각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혼란기 동안 혁명적 수정주의나 민주적 수정주의 모두 유물사관과 계급투쟁론으로부터 벗어나려 노력했다. 양자 모두 자본주의에 적대적이었지만 그 방법은 경제 논리가 아닌 정치적 행동과 실천에서 찾고자 했다. 혁명적 수정주의는 점차 파시즘과 민족사회주의(나치즘)로 구체화되면서 계급보다는 민족공동체를 강조했다. 민주적 수정주의 역시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점차 벗어나게 되었다. 정치의 우선성과 계급을 가로지르는 연대를 강조했고, 그러면서 국민의 정당과 민족주의의 가치에도 주목했다. 파시즘과 민족사회주의의 성공은 눈부실 정도였다. 하지만 민주적 수정주의는 여전히 마르크스주의 안에 있었고 정통파와의 싸움에서 분명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민주적 수정주의가 승리한 곳은 스웨덴이 유일했다. 하지만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파시즘과 민족사회주의의 길은 몰락했다. 반면 사회민주주의의 길은 훨씬 넓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전후 체제에서 새로운 활력을 갖게 된 노선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유주의적 요소나 마르크스주의적인 요소와의 연관성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후 체제를 안정화시킨 것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병행 발전 그러면서 동시에 사회의 공동체적 통합을 지향하는 노선이었다. 경제에 간섭할 정치권력의 역할이 강조되었고, 국민경제의 안정과 사회적 통합을 강조했던 전후 체제에서 자유주의나 마르크스주의적 요소는 찾기 어려웠다. 차라리 그보다는 민족사회주의나 파시스트들이 옹호했던 가치들에 더 가까웠다고도 할 수 있다.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종언이라고 부를 만한 변화였던 것이다. 산업혁명의 시작과 더불어 자유주의는 근대적인 정치?경제 이데올로기로서 무대의 중심을 차지했다. …… 자유주의자들은 진보에 대한 신념을 퍼뜨렸다. 즉 시장이 최대 다수에게 최대 이익을 선사한다는 신념과, 정부는 역사의 전진 과정에 가능한 한 최소로 개입해야 한다는 확신 말이다. 정말로 19세기는 그 시대와 이데올로기 간의 궁합이 딱 맞아 떨어져서 종종 ‘자유주의의 시대’라고 불리곤 한다. 하지만 세기말이 다가올 무렵, …… 초기 자본주의가 가져온 실제 결과(특히 심각한 불평등, 사회적 뿌리 뽑힘, 그리고 그 결과 초래된 원자화)는 자유주의에 대한 반발과 새로운 대안에 대한 모색을 자극했다. 좌파에서 제기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도전은 마르크스주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이 독트린의 가장 큰 특색은 역사 유물론과 계급투쟁인데 이 둘이 합쳐져서, 역사는 인간의 의식이나 행동의 변화가 아닌 경제적 발전과 그 결과 발생한 사회적 관계들의 변화에 의해 앞으로 나아간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곤란을 겪기 시작했다. 우선 마르크스의 수많은 예언들이 실현되지 않았다. 19세기 말이 되자 기나긴 불황 이후 유럽 자본주의는 새로운 활기를 얻었고, 부르주아국가들은 중요한 정치?경제?사회적 개혁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 19세기 후반 무렵, 마르크스의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던 정당들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중요한 정치 행위자가 되어 있었지만, 정치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권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해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제공해 줄 수 있는 전략은 그 어떤 것도 없었다. …… 20세기로 들어설 무렵, 많은 좌파들은 난처한 딜레마에 직면했다. 즉 마르크스주의적 기획을 탄생시킨 가장 큰 동기였던 경제적 부정의와 사회적 분열은 그대로였지만 자본주의는 여전히 번성했다. …… 19세기의 막바지에 이르러 몇몇 사회주의자들은, 만약 자신들이 바라던 정치적 결과가 …… 인간 행위의 귀결로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수정주의’ 진영에서는 두 가지 눈에 띄는 사상의 갈래가 나타났다. 첫 번째는 조르주 소렐Georges Sorel의 작업으로 대표되는 혁명적인 것(혁명적 수정주의)이었다. 소렐은 현존하는 질서를 급진적이고 폭력적으로 전복시키는 것이야 말로 좀 더 나은 미래로 가는 확실한 길이라 믿었다. …… 수정주의의 두 번째 갈래는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의 작업으로 대표되는 민주주의적인 것(민주적 수정주의)이었다. …… 소렐과 달리 그는 이 투쟁이 민주적이면서 점진적인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렐의 작업이 파시즘의 기반을 다지는 데 일조할 바로 그 지점에서, 베른슈타인의 작업은 사회민주주의의 기반을 다지는 데 일조하게 될 것이었다. 베른슈타인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두 기둥, 즉 역사 유물론과 계급투쟁을 공격했다. 그리고 정치의 우선성과 계급 교차적 협력에 기반을 둔 대안을 주장했다. 그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자본주의에서는 부의 집중과 사회적 궁핍화가 점점 더 심화되는 것이 아니라, 점차 복잡해지고 적응력도 커지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자본주의가 붕괴되어 사회주의가 출현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현존하는 체제를 개혁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쪽을 선호했다. …… 베른슈타인은 계급투쟁의 필연성이라는 교리 또한 유사한 치명적 결점을 공유한다고 보았다. …… 그는 자본주의 체제의 부정의로 인해 고통 받는 사회의 광범위한 다수와 노동자들 간에는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자연적 공동체가 실제로 존재하며,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불만에 찬 중간계급과 농민들을 잠재적 동맹자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른슈타인의 주장은 유럽 전역에서 아직 그 수는 적지만 점차 성장하고 있던 이단적 사회주의자들을 통해 울려 퍼지게 되었다. 이들은 사회주의의 필연성보다는 그것을 향한 정치적 경로를, 그리고 계급투쟁보다는 계급 교차적 협력을 강조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 하지만 수정주의자들은 아직 자신들의 주장이 가진 의미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고 정통파와 깨끗이 결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 결과는 긴장과 혼란이 점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회주의 정당들과 국제 사회주의 운동을 분열된 하나의 집으로 묶어 놓았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과 그 여파는 결국 그 집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세계대전이 촉발한 광범위한 변화로, 수많은 서유럽 좌파들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두 기둥(계급투쟁과 역사 유물론)을 분명히 거부하고, 그 반대 테제들(공동체주의와 정치의 우선성)을 공개적으로 받아들였다. 혁명적 수정주의자들은 노동자들만으로는 효과적인 혁명적 전위를 구성할 수 없다는 점과, 민족주의가 엄청난 동원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마침내 계급투쟁을 거부했다. 민주적 수정주의자들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는데, 이는 노동자들만으로는 결코 선거에서 다수파가 될 수 없다는 점과, 정치적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비프롤레타리아 집단들과 협력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또한 민족주의의 힘을 인식했으며,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강조하는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의 독자성에 계속 매달린다면 보통 시민들의 욕구에 반응하기 어려워질 것임을 우려했다. 한편 두 진영 모두, 자본주의의 붕괴를 선동하는 것보다는 국가를 통해 시장의 파괴적이고 무정부적인 잠재력을 규제하면서 그것의 전례 없는 물질적 생산 능력을 끌어내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고 결론을 내렸으며, 그 결과 역사 유물론과도 멀어졌다. …… 민주적 수정주의자들은 공산주의적 좌파뿐만 아니라 파시즘적?민족사회주의적 우파에 대한 두려움을 표하면서,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매달린다면 주류 좌파들은 정치적 망각의 운명에 처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혼란에 빠지고 불만에 찬 유럽 대중의 욕구와 주장에 부응하는 민주주의적 좌파의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그들은 한 세대 전에 베른슈타인과 그 밖의 다른 이들이 제시한 주제들과 비판으로 돌아갔다. 즉 정치의 우선성과 계급 교차적 협력의 필요성이었다. 1920년대 후반이 되자, 서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 19세기의 두 거대한 정치적 운동이자 이데올로기였던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는 아이디어가 고갈되었으며, 당대의 문제들을 다루는 데 부적절한 것이 되고 말았다. 반면에 파시스트들과 민족사회주의자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적극적이고 공격적이었으며 열정적이었다. 이데올로기의 무대는 새로운 전환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록 파시즘과 민족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간에는 분명 결정적 차이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충분히 평가되지 않았던) 중요한 유사점이 있다. 이들 모두는 정치의 우선성을 받아들였으며, 정치권력을 사용해 사회와 경제를 재구성하고자 하는 열망을 강하게 드러냈다. 또한 공동체적 연대와 집단적 선에 호소했으며, 현대적 대중 정치조직을 만들었고, 자신들을 ‘국민정당’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자본주의와 관련해 중도적 입장을 택했다. 즉 마르크스주의자들처럼 자본주의의 종말을 기원하지도 않았고, 많은 자유주의자들처럼 무비판적으로 자본주의를 숭배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국가가 시장을 파괴하지 않룀면서 그것을 통제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제3의 길’을 추구했다. …… 이런 유사점들, 그리고 이 운동들이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 모두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게 된 과정을 알게 되면, 왜 그들이 전간기 동안 유럽 민중에게 그토록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어떻게 그리 많은 저명한 지식인들이 당시 겉보기에 비이성적인 결정, 즉 (수정주의적) 좌파로부터 (파시즘적 또는 민족사회주의적) 우파로 전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파시즘과 민족사회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화염 속에서 몰락했다. 반면 사회민주주의는 바로 그 이후부터 가장 큰 성공 시대를 구가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은 전후의 안정the postwar settlement을 자유주의의 승리로 해석해 왔다. 비록 그것이 다소 순화된 형태의 자유주의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1945년 이후 유럽이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민주주의와 훨씬 관련이 깊다. 전후의 합의는 국가-시장-사회 간 관계의 극적인 변화를 기반으로 한다. 규제되지 않는 시장은 이제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사회적 이익은 이제 사적私的 특권보다 당연히 우선시되었다. 그리고 국가는 ‘공동의’ 또는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경제와 사회에 간섭할 권력(아니, 의무)을 지닌 것으로 이해되었다. 달리 말해 1945년 이후 사람들은 국가를 사회의 보호자로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경제적 우선순위는 종종 사회적 우선순위보다 뒷자리로 밀려났다. 그 결과 오랫동안 공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던 것들, 즉 잘 작동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적 안정성 사이에 조화가 이루어졌다. 이 새로운 체제의 기초가 전통적 자유주의나 마르크스주의 교리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만한 근거는 거의 없었다. 새로운 체제가 정말로 닮았던 것은 1920년대부터 1940년대에 걸쳐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옹호했던, 그리고 (그보다는 덜하지만) 파시스트들과 민족사회주의자들이 옹호했던 원칙과 정책이었다. 전후의 안정을 가능하게 한 비결이 바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적 안정을 조화시킬 수 있었던 전후 체제의 능력이라는 생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한때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이 시장과 대중의 전투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면서 이제는 잊혀 버렸다. 따라서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의 목표 가운데 하나는 젊은 세대들에게 바로 그 전후의 안정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었는지, 왜 그것이 필요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실행되었는지를 상기시켜 주려는 것이다. 두 번째 목표는 누구보다도 그 공로를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유럽 대륙 사회민주주의의 선구자들에게 제 몫의 명예를 돌려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사회민주주의는 정치의 우선성과 공동체주의 위에 세워졌으며, 비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고유한 이데올로기와 운동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그것은 20세기의 가장 성공적이었던 이데올로기와 운동으로서 인식되어야 한다. 그것의 원칙과 정책들은 유럽 역사상 가장 번성하고 조화로웠던 시기를 지탱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은 사회민주주의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현재의 정치적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 어떻게 안내자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줄 것이다. 현재의 과제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점에서 한 세기 전의 문제들과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