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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 말썽쟁이 꼬마 홍도
1745년 - 서울 마포 근처에서 태어남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1751년 - 강세황의 제자가 됨 2% 부족했던 도화서의 천재 화가 1765년 - '경현도 수작도 계병'을 그림 백성들의 사는 모습을 그려오시오 1744년 - 사포서 별제로 일함 조선의 자연은 조선의 화법으로 그려야 한다 1781년 - 정조 임금의 초상화를 그림 새로운 기법으로 그린 후불탱화 1789년 - 중국 사신으로 가서 원근법을 익힘 정치가가 된 예술가의 고민 1791년 - 현감 벼슬 받음 화려했던 천재화가의 쓸쓸한 죽음 1796년 - 『부모은중경』삽화 그림 (부록) 김홍도의 사명선언문 김홍도의 꿈을 향한 위대한 여정 내가 주인공이라면? 사진으로 확인하는 더 알아보기 역사 확대경 추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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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열정으로 그림을 그리다
어린 시절의 홍도는 마을에서도 알아주는 개구쟁이에 말썽쟁이였어요. 하라는 글공부는 안 하고 동네방네 다니며 말썽이나 피우고 그림낙서나 해대곤 하는 천하의 말썽꾼.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홍도는 그림그리기를 멈출 수가 없었어요. 비록 홍도가 마을에서 알아주는 개구쟁이에 말썽쟁이였지만, 이처럼 그림에 대한 열정만은 남달랐던 거지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한 가지 길만을 고집한 홍도의 열정이 후에 조선을 대표하는 위대한 화가를 탄생시킨 원동력에에요. 그림에는 그린 사람의 향기가 묻어나야 한다 김홍도는 자질이 뛰어난 천재이고,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것만으로 오늘날 존경받는 위대한 화가가 된 것은 아니에요. 그의 옆에는 어린 홍도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삼촌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어요. 삼촌은 글공부를 고집하는 홍도의 아버지를 설득해서 홍도를 그림의 세계로 이끌어주고, 당대의 최고 화가였던 강세황의 문하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답니다. 강세황은 홍도가 진정한 예술가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지도를 했어요. 그는 홍도에게 남의 그림만 베끼는 화가가 되어서는 안 되고 그린 사람의 향기를 낼 수 있는 화가가 되어야 한다고 교육했어요. “깊이 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너만의 철학을 가져야 한다.” 강세황은 홍도에게 예술가로서의 철학을 가르쳐준 평생의 스승이 되어 준 것이지요. 백성들과 함께하며 깨달은 해학 김홍도는 정조 임금의 신임을 많이 받았어요. 당시 새로운 학풍인 실학 사상을 도입한 정조는 김홍도에게 백성들이 사는 모습과 조선의 자연을 많이 그리도록 했어요.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김홍도는 청나라에까지 가서 당시에는 생소한 원근법과 명암법을 익혀오기도 하지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은 김홍도는 중인 신분으로서는 오를 수 있는 최고 높은 현감이 되어 부임하게 되지요. 바야흐로 정치가로서의 김홍도의 삶을 살게 된 거지요. 짧은 기간이나마 김홍도는 백성들의 생각하고 위하는 훌륭한 정치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지요. 직접 백성들을 다스리며 그들의 삶을 겪게 된 김홍도는 그의 예술가로서의 영역을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어요. 바로 힘든 시련을 극복하는 웃음, 즉 웃음으로 힘든 것을 이겨내는 해학을 깨닫지요. 해학은 김홍도의 그림을 평가할 때 흔히 나오는 말이지요. 조선의 삶과 생활을 해학으로 버무려 예술로 승화시킨 김홍도야 말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위대한 예술가의 한 사람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