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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_사람을 돌보는 일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 1장 7살 적 꿈을 이룬 간호사 선생님은 왜 병원에서만 환자를 봅니까? 문을 박차고 들어왔던 환자 제 친구 데려와도 될까요? 10가지 돌봄 행위의 치유 효과 기적같이 만들어진 30만 불 원더풀! 수지 킴 프로젝트 초등학교 1학년 때 잉태된 간호사의 꿈 코를 닦아주던 교회의 여선생님 영웅 같았던 간호사 아줌마 초등학생 꼬마 간호사 하루 28시간을 사는 열정 여학생 너처럼 고집 센 애는 처음 봤어! 미국에서 날아온 기적의 100불 너무나 재미있는 간호학 공부 19살 여대생이 아저씨들에게 성교육을 수지맞는 김수지 나이팅게일 선서, 내 평생 잊지 못하는 날 병실에만 들어가면 물 만난 고기 미국 유학생, 고졸 남편과 결혼하다 매일 주고받은 2,400통의 연애편지 유학을 포기하고 남편을 택하다 우리 사랑해서 결혼한 거 맞나? 결혼 2년 만에 이혼을 통보하다 친정에 잘했던 남편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한 아빠 순간의 최선이 운명을 가른다 낮에는 교수로, 밤에는 남편 대신 청강을 진정으로 환자를 사랑했던 닥터 존슨 한국 최초의 간호학 박사 성공의 비결은 PCC 2장 간호는 인생을 피어나게 한다 한국 최초의 간호학 박사 집에만 있다가는 평생 불행할 사람 간호조무사로 두 번째 시작한 미국 생활 진정으로 환자를 사랑했던 닥터 존슨 간호학의 명문, 보스턴 대학에 입학 후배와 함께 박사과정 한국 간호학 박사 1호 탄생 시어머니를 살린 사랑의 간호 엄마를 살려달라고 매달리던 소녀 간호사가 된 그 소녀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서 시어머니가 죽게 생겼대요 어머니, 이걸 드셔야 기운이 나서 사십니다 “어머니는 대단하신 분이세요!” 건강하게 18년을 더 사신 어머니 36.5도 사랑, 간호 간호는 전인적 돌봄이다 간호사의 몸이 돌봄의 도구 관계의 맛을 체험하는 간호 좋은 간호의 3가지 조건 사람이 있는 곳은 어디나 간호 현장 훌륭한 선생님 밑에서 좋은 배움을! 내 생애 큰 축복, 이호영 교수님 수지 킴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도! 3장 웰빙, 웰에이징, 웰다잉 죽는 순간까지 사랑받고 싶다 처음으로 접한 호스피스 "교수님은 이제 첼로를 할 수 없습니다" 지가 뭔데! “다잉 영”을 보고 싶어요! “죽을 사람이 뭔 영화, 당신들도 미쳤군!” 내가 저 입장이라면 뭘 하고 싶을까? 호스피스팀에 자동차를 주신 할머니 호스피스, 갓난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마음으로 평안한 죽음, 인생의 마무리 준비 잘 살아야 잘 죽는다 죽음, 입시 준비하듯 준비해야 퇴직 후 공동체 생활을 꿈꾸다 사회복지학 공부를 위해 사이버대학에 등록하다 마침내 ‘사랑의 집’을 개원하다 할머니를 찾아온 아이들, 뜰도 쓸고 풀도 뽑고 100불과 미리 받은 2년치 월급이 준 교훈 절약한 것만큼 나누면 된다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 ‘웰 에이징’의 비법 에필로그_나는 다시 태어나도 간호사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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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 안식년으로 호놀룰루에 머물고 있던 어느 날, 유엔국제개발기구(UNDP)의 한국주재 대표였던 미스터 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대뜸 “김수지 교수님, 축하합니다!”라며 내가 국제간호대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아니, 내가 국제간호대상을!”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내가 그런 영예로운 상을 받게 되다니….’ 시상식은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열렸다. 당시 123개국의 대표 간호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한복을 입고 시상식에 참석했다. 흥분되고 떨리는 마음으로 20분간의 수상소감을 말하는 연설을 위해 시상대에 오르자 애국가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시상대에 선 기분이었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내가 나라를 빛냈다는 강한 감동이 일었다. 나는 그때까지 ‘간호는 사람을 돌보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지, 간호를 통해 우리나라를 빛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아, 결국 이렇게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구나…’ 처음 간호사가 되겠다고 꿈을 가진 순간부터 이 자리에 서기까지의 수많은 시간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특히 이 이론을 개발하기까지의 힘들고 어려웠던 긴 세월의 과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 1장 “7살 적 꿈을 이룬 간호사” 중에서 그때 한 젊은 부인이 앞으로 나가 그를 부축해 오더니 가운데에 눕혔다. 그리고 사람들을 두 줄로 둘러 세워 그를 가리게 했다. 그 부인은 아기를 업고 있던 아주머니의 띠를 풀어 그것으로 지혈을 시켰다. 얼마 후 피가 멈추었다. “누가 물 좀 떠다주세요.” 그러나 아무도 선뜻 밖에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얼른 나가서 양동이에 물을 떠가지고 왔다. 밤새도록 헛소리를 하는 남자 옆에서 부인은 “정신 차리라”며 뺨을 툭툭 치면서 찬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는 등 정성스럽게 간호를 했다. 나도 잠을 자지 않고 꼬박 그 부인과 남자를 지켜보았다. 드디어 남자가 새벽녘에 정신이 들었는지 깨어났다. “여기가 어디요?” 죽어가던 사람이 살아난 것이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어린 내 눈에는 죽어가는 사람을 밤새도록 간호해서 살렸다는 게 엄청난 사건이었다. 나는 부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줌마, 뭐하는 사람이에요?” “응, 나, 간호사야.” 그 순간 결심했다. ‘아, 나도 간호사가 되어야지.’ --- 1장 “7살 적 꿈을 이룬 간호사” 중에서 환자를 간호할 때 대부분 같은 내용(과학적인 사실)을 똑같은 절차로 간호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람마다 간호 양상이 달라야 한다. 간호는 과학인 동시에 맞춤형 예술이다. 환자에게 물을 먹일 때도 환자에 따라 다르게 해야 한다. 몰론 약을 먹이는 과정도 환자마다 다르다. 숟가락으로 약을 녹여서 먹여야 하는 경우, 그냥 물로 마시게 하는 경우 등 상황에 맞추어 환자에게 가장 잘 맞는 간호법을 찾아 적용하는, 그 자체가 예술이다. 이는 사람에 대한 열정과 경험, 사랑과 관심이 없으면 어렵다. 또한 주사를 놓더라도 그저 주사 놓을 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술적으로 즐겁고, 기쁜 상황을 연출하여 적소에 기분좋게 놔야 한다. 환자를 눕힐 때도 최대한 편안하고 기분좋게 눕혀야 한다. 또한 환자가 있는 환경도 청결하게 쾌적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 --- 2장 “간호는 인생을 피어나게 한다” 중에서 안암 말기로 암세포가 뇌까지 번져 시한부인생 선고를 받은 시어머니. 저자는 마시지도 먹지도 못하는 극심한 고통과 통증에 시달리는 시어머니 옆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돌보기 시작했다.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은 물론 미음을 드실 때에도 왜 잡수셔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드리며 꼭 사실 수 있다고 희망을 드렸다. 운동을 할 때도 같이 걸으며 시어머니의 훌륭한 점을 찾아서 칭찬해드리고 시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을 적극적으로 경청했다. 저자의 극진한 간호 덕분에 시어머니의 암 세포가 감쪽같이 없어지고 그 이후로 18년을 더 사셨다. 그 이후부터 시어머니는 누가 암에 걸렸다고 하면 직접 미음을 쑤어 찾아다니면서 용기를 주었다. “이거 먹어야 삽니다.” “나도 암에 걸려 죽을 뻔했는데 이렇게 살아났잖아요.” 시어머니는 저자가 했듯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이렇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 2장 “간호는 인생을 피어나게 한다” 중에서 내가 그에게 물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뭐예요?” “제발 하루라도 아버지 저 소리 좀 안 듣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는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덧붙였다. “나를 미친 사람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다잉 영’을 보고 싶습니다.” 그는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그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싶어 차를 태워줄 자원봉사자를 구해서 그의 집으로 갔다. 입김이 쩍쩍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12월 말의 겨울이었다. 아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데리고 나가겠다고 말하자 아버지가 비웃었다. “흥, 당신들도 다 미쳤군!” “죽을 사람이 뭔 소원이냐. 저 미친 놈 이야기를 듣는 당신들도 다 미친 사람들이야.” 아버지의 욕설을 뒤로 하고 우리는 눈, 코, 입만 빼고 전신을 감싼 아들을 차에 태우고 휠체어도 자동차 트렁크에 실었다. 극장 앞에 가니 사람들이 한도 끝도 없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좌석은 모두 매진이었고 마지막으로 상영되는 표도 구하려면 긴 줄을 지어 기다려야 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맥이 탁 풀렸다. 환자를 여기까지 데려왔는데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덜덜 떨며 실망스런 표정으로 휠체어에 앉아 있는 환자를 보니 더욱 난감했다.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불어왔다. 온몸이 얼 정도로 떨리고 추웠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얼어붙은 듯 서 있는데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환자는 휠체어에 앉아 있으니까 굳이 좌석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극장에만 들여보내주면 될 것 같았다. 나는 극장 입구에 가서 급히 매니저를 찾았다. “매니저를 좀 만나보게 해주세요.” 직원이 귀찮다는 듯이 나를 한동안 쳐다보더니 마지못해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잠시 후 키가 크고 체구가 건장한 남자가 와서 퉁명스럽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죠?” 나는 사정을 이야기하며 부탁했다. “도와주세요. 환자는 이 영화를 보는 게 마지막 소원입니다.” 내 말을 들은 매니저가 극장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이리 들어오세요.” 그리고는 앞장서서 사람들을 밀치면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었다. “비켜요! 비켜요!” 매니저가 직접 휠체어를 끌고 극장의 가장 중앙으로 데려다 주었다. 영화를 보고 나온 환자는 무척 행복해했다. 그날 밤 아들은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버지!” 아버지가 들은 척도 안했다. 다시 아들이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미안해요. 내가 아들 노릇 못해서…” 아버지가 와서 아들을 안았다. 그리고 아들은 사흘 뒤에 죽었다. --- 3장 “웰빙, 웰에이징, 웰다잉”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