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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글
1판 머리글 들어가는 글 - 한국 근현대사의 특성과 유영모의 철학 1장 다석 사상의 변화와 시기 구분 2장 삶과 죽음의 가운데 길 3장 하루살이: 하루를 영원처럼 4장 밥 철학과 깨끗한 삶 5장 ‘가온 찍기’와 무등(無等)세상 6장 생각: 존재의 끝을 불사르며 위로 오름 7장 숨과 영성: 숨은 생명과 얼의 줄 8장 우리말과 글의 철학: 천지인 합일과 인간 주체의 철학 9장 예수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그리스도로 살면서 그리스도를 찬미함 10장 기독교·유교·불교·도교의 회통: 빈탕한데 맞혀 놀이(與空配享) 11장 하나로 돌아감(歸一): 하나로 꿰뚫는 한국적 종합사상 나가는 글 - 다석 사상의 성격과 의미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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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사상의 시기 구분과 열쇳말들
《다석 유영모》는 총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다석의 삶을 네 시기(1890~1913, 1914~1939, 1939~1943, 1943~1981)로 구분하여 각 시기마다 특징을 요약하여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다석 사상은 시대 변화나 개인적 사건이 아니라 새로운 체험과 성찰에 따라 뚜렷하게 변화하여 갔음을 알 수 있다. 2~4장은 다석의 죽음관, 하루살이의 철학, 밥 철학을 조명한다. “몸은 죽고 얼은 영원히 산다”는 결론에 이른 다석의 죽음관은 “죽음을 통해 다시 산다”는 기독교의 부활 신앙을 체득한 데서 나온 결론이다. 어제에 매이지 않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으며 오늘 하루를 영원처럼 산 다석은 일식(一食), 일언(一言), 일좌(一座), 일인(一仁)을 지키며, 생존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을 이루기 위해 밥을 먹는 밥 철학대로 살았다. 5~11장은 ‘가온 찍기’, ‘생각’, ‘숨’, ‘우리말·글’, ‘예수 그리스도’, ‘회통’, ‘귀일’이라는 열쇳말을 통해 다석 사상의 알짬을 정리하였다. ‘가온’은 가운데를 가리키는 우리말로서 가온 찍기란 지금 여기의 나를 한 점으로 찍어서 자유에 이르는 것이다. 하루살이를 넘어 지금 여기의 삶을 붙잡고 가기 위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이 나아감은 생각을 통해서 가능하다. 다석은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여 참으로 있는 것은 ‘나’가 아니라 ‘생각’이라고 하였다. 생각을 통해 사람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또한 다석은 생명을 숨으로 보았다. 숨이 깊고 편하면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과도 잘 소통한다고 보고, 앞무릎을 붙이고 두 다리를 벌려 엉덩이를 대고 앉는 자세로 늘 지냈다. 이전의 한국 사상가들과 다석이 크게 다른 지점은 우리말과 글로 철학을 한 것이다. 다석은 평생 말을 탐구하면서 말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을 만나려 애썼다. 오늘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한국인의 심성으로 예수를 받아들인 다석은 우리 정신문화와 기독교 정신을 역동적으로 수용하여 세계적인 사상을 형성할 수 있었다. 기독교 신앙을 동양적으로, 주체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다석 사상의 중심에 있는 사상은 ‘하나’이다. ‘하나’를 찾고 ‘하나’로 돌아감으로써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상생하는 문명을 이루는 철학의 원리를 제시한다. 2. 편집자가 뽑은 문장 다석은 생각을 이성적 자아의 기능으로 본 데카르트와는 달리 생각을 자아를 불사르는 일로 보았다. 생각하는 일이 곧 자아를 불살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였다. 다석에게 생각은 몸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생각과 몸이 통전되어 있다. 생각에 대한 다석의 이러한 이해는 생각에 대한 데카르트의 이해와는 다르다. 데카르트는 “사유(思惟)하고 연장(延長)이 없는 실체”로서의 정신과 “사유하지 않고 연장을 가진 실체”로서의 물체를 엄격히 구분하였다. 이에 반해 다석은 마음의 생각과 몸의 생리작용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말하였다. 마음과 몸은 하나의 큰 틀 속에서 긴밀히 결합되어 있고 연속되어 있다. 다석은 몸 속 깊은 데서 몸 전체의 생리작용으로부터 생각이 우러난다고 하였다. _117면, 2장 ‘삶과 죽음의 가운데 길’에서 다석은 금식을 자주 하고 하루 한 끼 먹는 일중식(日中食)을 하였다. 일중식도 금식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아주 안 먹으면 죽으니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되 필요한 만큼만 먹는 것이다. 다석은 오랫동안 두 끼 먹고 살다가 1941년 2월 17일부터 하루에 저녁 한 끼니씩만 먹었다. 석 달이 지나서 여느 때의 안색으로 돌아왔다. 다석은 엄격히 하루 한 끼만 먹고, 간식, 군것질을 일체 하지 않았다. 최원극에 따르면 다석의 일일 일식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15시간 이상을 물 한 방울 입에 대지 않는 엄격한 것이었다. 다석이 금식과 일중식에 힘쓴 것은 밥을 줄임으로써 육으로만 살지 않고 정신으로 살고, 저만을 위하지 않고 남을 위해 공(公)과 전체(全體)를 위해 살자는 것이었다. 하루 한 끼 식사를 함으로써 다석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편안해져서 하늘의 뜻대로 신령하게 살고자 했다. _145-146면, 4장 ‘밥 철학과 깨끗한 삶’에서 다석은 우리말과 글을 닦아 내고 살려 내려고 힘썼다. 이 점에서 다석은 이전의 한국 사상가들과 비교된다. 조선왕조의 실학자들도 한문으로 생각하고 표현했다. 19세기의 민중종교 사상가들조차 한문과 한자로 생각을 표현하고 전했다. 동학의 동경대전은 한문으로 되었고 용담유사는 한글로 표기되었으나 한자어를 한글로 옮겼을 뿐이다. 주문이나 부적의 글도 다 한자로 되어 있다. 강증산도 한자어를 주로 사용했고 증산교의 경전인 《대순전경》도 초판은 국한문 혼용체로서 한자어를 주로 사용했다. 대종교의 경전들조차 한문으로 되어 있다. 이들에게는 우리말과 글에 대한 철학적 자각이 없었다고 생각된다. 성경이 한글로 번역되면서 민중의 삶 속에서 우리말과 글에 대한 자각이 생겼다. 이 점에서 유영모는 민주의식을 가지면서 우리말과 글을 철학적 언어로 다듬어내고 우리말과 글로써 철학을 펼쳤던 첫 번째 사람이었다. 말년에 다석은 자신이 평생 말을 탐구했으며, 말마디 속에서 하나님의 이르신 뜻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만났다고 하였다(1972년 1월 22일 일지). _251-252면, 8장 ‘우리말과 글의 철학: 천지인 합일과 인간 주체의 철학’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