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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키 스타디움에서
제1부 제2부 베이루트에서 옮긴이의 말 |
Don DeLi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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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는 돈 드릴로의 소설 『마오 Ⅱ』가 번역 출간되었다. 현대의 문화현상과 자본주의와 미디어의 실상을 신랄하게 풍자한 문제적인 작품들을 발표해온 드릴로는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곤 하는 가장 미국적이면서도 가장 현대적인 작가이다. 미국적인 상황과 설정을 보편적인 주제의식으로 엮어내는 탁월한 통찰력, 익숙한 사건을 낯설게 만드는 미학적 기법, 지극히 비일상적인 인물의 심리를 추적하는 집요함, 일견 난해한 듯하지만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촘촘한 문체 등 드릴로 소설을 규정하는 수많은 특성들이 집약되어 있는 『마오 Ⅱ』는 개인의 상실, 매스미디어의 횡포, 군중의 폭력성 등 가장 드릴로적인 주제로 중무장한 그의 대표작으로 펜/포크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돈 드릴로는 『마오 Ⅱ』를 쓰면서 두 장의 사진을 걸어놓았다고 한다. 하나는 서울에서 열린 통일교의 집단결혼식 장면을 담은 사진이고, 또 하나는 제롬 데이비드 쌜린저의 사진이다. 통일교의 집단결혼식 장면이 이 작품의 주요한 주제인 개인성이 몰살된 집단성, 군중주의를 원형이라면, 잘 알려진 바대로 철저히 자신을 은폐하는 작가로 알려진 쌜린저는 개인주의의 상징으로 읽힌다. 『마오 Ⅱ』의 주인공 빌 그레이는 바로 쌜린저와 동일시되는 인물로 세계적인 작가이지만 은거하면서 더이상 작품 출판을 거부하고 고쳐쓰기를 반복하며 대중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페쇄적인 인물이다. 그를 둘러싼 인물들은 끊임없이 그를 대중 속으로 소환하려 하고 그의 눈에 비친 현대적인 매스미디어와 테러리즘은 과잉된 이미지와 소비주의, 집단주의에 사로잡힌 군중의 광기 어린 작태일 뿐이다. 이 작품은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통일교의 집단결혼식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곳은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영적인 결혼을 맹세하는 것에 대한 기대와 흥분의 도가니지만, 관중석에 있는 캐런의 부모는 멀쩡한 딸을 꼬드겨 납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한 그 광적인 종교의 정체를 의심한다. 프롤로그의 말미에 작가는 “미래는 군중의 것이다”라는 선언으로 개인의 죽음을 알린다. 세계적인 명성의 작가 빌 그레이는 은둔형 인물이며, 분신처럼 일을 봐주는 비서 스콧과 그의 연인 캐런과 뉴욕 업스테이트에 살고 있다. 숨어사는 괴팍한 작가 빌은 오래도록 마무리짓지 못한 작품, 마무리짓고도 공개하지 않은 작품을 갖고 있고, 스콧은 그에게 어서 작품을 끝내도록 종용한다. 오래도록 작업한 작품의 출판을 미루는 빌에게 브리타라는 사진작가가 찾아오고 그녀에게 사진 찍는 것을 허락한다. 사진을 통해 빌은 대중들 앞에 나서려는 용기를 낸다. 그때 마침 빌의 친구이자 출판인인 찰리는 아부 라시드가 이끄는, 마오주의에 경도된 레바논 테러집단에 억류된 스위스 시인 장 끌로드의 석방을 촉구하는 런던의 낭독회와 기자회견에 빌이 참여하기를 권한다. 빌이 어렵사리 결심하고 나섰으나 런던의 기자회견을 앞두고 폭발이 일어나고 빌은 그뒤로 사람들 앞에서 행방이 묘연해진다. 빌은 런던에서 베이루트의 조직에 명령을 받은 조지 하다드를 만나고 제 발로 배를 타고 주니에 항을 거쳐 베이루트로 들어가기로 하지만 종적을 감춘다. 한편 빌을 연인처럼, 아버지처럼 따르던 캐런은 빌이 사라진 뒤 브리타가 사는 뉴욕에 가고, 텔레비전에서 생중계되는 호메이니의 장례식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스콧 홀로 남은 빌의 집으로 돌아간다. 브리타는 잡지사의 요청으로 아부 라시드를 찍기 위해 베이루트로 간다. 아부 라시드에게 인질의 행방을 묻지만 그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다. 한때 중국을 이끌었던 역사 속의 마오 쩌뚱은 현대 미술가 앤디 워홀의 그림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실제로 마오는 자신의 사진을 중국 민중의 결속을 다지는 도구로 사용했다. 주인공 빌 그레이 역시 은둔형 작가지만 사진작가 브리타에게 촬영을 허락함으로써 존재를 드러내고 출판업자 찰리의 제안으로 기자회견에 나가기로 결심하면서 군중 속으로 한걸음 나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테러집단의 방해로 무산되는 기자회견과, 베이루트에 억류된 시인을 통해 영혼을 울려야 하는 문학이 현대의 테러와 폭력에 무릎꿇는 현실을 목격한다. 돈 드릴로는 빌 그레이의 입을 빌려 문학의 자리를 차지한 현대의 테러에 대해 언급한다. “소설가들과 테러리스트들을 묶어주는 야릇한 끈이 있다오. 서구에선 우리가 쓴 책이 뭔가를 형성하는 힘과 영향력을 상실함에 따라 소설가들은 유명한 화형식용 허수아비가 돼버렸어요. 당신이 만나는 작가들에게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봅니까? 수년 전 나는 소설가가 문화의 내적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젠 폭탄 제조자들과 총잡이들이 그 영토를 빼앗아가버렸지요. 그들이 인간의 의식을 공략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포섭돼버리기 전에 작가들이 하던 바로 그 일을 말이오.” (…) “우리가 테러에 밀려나고, 테러 뉴스에 밀려나고, 녹음기와 카메라에 밀려나고, 라디오와 라디오에 장착된 폭탄에 밀려나는 것을 말입니다. 재난 뉴스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유일한 서사가 되었지요. 뉴스가 암울하면 암울할수록 서사는 더 웅대해지고. 뉴스는 마지막 중독, 그 뭐랄까, 그다음에 오는 건 알 수가 없소. 하지만 당신은 현명해서 우리가 사라지기 전에 당신 카메라에 우리를 포착하고 있는 거요.” 무수한 사건사고가 벌어지고, 심지어 국제적인 테러까지 빈번한 현대사회에서 소설과 문학의 역할이란 한없이 위축되었고, 더이상 사람들에게 감동도 재미도 자극도 줄 수 없는 무용한 가치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천번의 생애를 되살면서 음미해도 남을 만큼 메씨지와 의미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테러만이 유일하게 의미있는 행위”이라는 것이 주인공 빌 그레이이자, 작가 돈 드릴로의 묵시론적이고 냉소적인 판단이다. 문선명이 이끄는 통일교의 집단결혼식과 수많은 이란인들의 오열 속에 거행되는 호메이니의 장례식 장면은 일체가 된 군중의 힘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한편 호메이니의 장례식 장면은 이 작품에서는 중첩된 의미의 코드로 사용되는데, 쌜먼 루슈디에게 처형명령을 내린 사람이 바로 호메이니이기 때문이다. 지식인과 문학에 대한 탄압의 장본인인 호메이니가 열렬히 애도받는 장면이란 테러와 대 군중의 폭력성을 이중적으로 상징한다. 돈 드릴로 소설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마오 Ⅱ』 역시 단선적인 구성을 거부하고 사건의 대립과 병치, 병렬 등의 기법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돈 드릴로는 접근성이 용이한 넘쳐나는 정보의 시대에 진짜 진실을 얻기란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기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뉴욕타임스』 1991. 5. 19일자 인터뷰 「위험한 드릴로」(Dangerous Delillo)). 지극히 비일상적인 인물과 언어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이 불가능할 만큼 난해한 구성, 어색하고 아이러니한 묘사 등은 그를 포스트모던한 작가이자 컬트적인 작가로 독보적인 지위를 부여해주었다. 『마오 Ⅱ』를 우리말로 옮긴 번역자 유정완은 이런 점에 주목하여 드릴로의 문학세계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시대 작가 폴 오스터를 비교한다. 드릴로의 서사는 예술영화에서처럼 문맥이 완전히 배제된 표현들, 헤밍웨이의 글처럼 간결하고 함축적인 문장들, 숨막힐 듯 쉬지 않고 이어지는 구절과 문장들, 그리고 지식인·예술가들이나 내뱉을 만한 평범하면서도 역설적인 비유와 농담을 특징으로 한다. 이와 같은 그의 문체는 국내에 이미 상당한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또다른 미국 현대작가 폴 오스터와 그를 확연히 대비시켜주는 근거가 된다. 서로 친구이기도 한 이 두 작가를 미국 학계에서는 대체로 포스트모더니즘 계열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두 작가는 대중·군중에 대한 태도에서 극단적일 만큼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오스터가 대중의 취향과 지적 호기심 또는 허영심을 잘 파악하여 쉽고 재미있게 글을 쓰는 타고난 대중적 포스트모더니스트 또는 상업적 포스트모더니스트라면, 드릴로는 대중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포스트모던시대의 문화지형을 끊임없이 분석하고 고민하고 비판하는 철학적 소설가 또는 정치적 예술가이다. 또는 드릴로는 모더니스트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평자에 따라 낭만주의자, 사실주의자, 모더니스트, 포스트모더니스트 등 상이한 여러 호칭들이 그에게 붙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옮긴이의 말」) 국내에 번역 소개된 『화이트 노이즈』(2005), 『리브라』(2009)를 통해 이미 우리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돈 드릴로의 작품세계를 『마오 Ⅱ』는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마오 Ⅱ』가 제기하는 매스미디어의 횡포, 군중주의의 폭력성, 테러리즘 등은 현대를 살아가는 전지구인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문제들이다. 9?11 사태를 예견하는 작품으로도 유명했던 돈 드릴로는 무력적인 테러뿐 아니라 일상적인 테러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