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마 터치, 크레마원 기본뷰어 이용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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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다보며 -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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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철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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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작은 사이즈를 가졌다.
신지 않으려고. 일없이 꺼내어 보려고. 헛되이 만지기나 하려고. 실은 이 한없이 보드라운 신발이 내게 전혀 어울리지 않음을 안다. 알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이란……. ---「1月 15日」중에서 그들의 꿈은 온통 바다의 밑으로 향한다. -저는 지난겨울 동해 바다를 잊을 수 없어요. 바다로 10분쯤 들어갔다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더니, 글쎄 온통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는 거예요. ‘나는 지구의 아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스킨스쿠버 다이빙은 우리에게 지구의 시(詩)를 읽으라고 말하는 걸까? 그날 밤 산호가 너무 보고 싶어 서교동 홍산수족관에 다녀왔다. ---「5月 19日」중에서 -엄마, 아욱 이제 없던가? 다 끝났나? 끝나긴 뭐가 끝나, 지금이야말로 제철인 거 뻔히 알면서 묻는 거다. 엄마는 금방 목소리 톤이 하나 더 올라간다. -아욱? 아욱이 왜 없어, 있지! 아들, 아욱국 끓여 자시게? 가을 아욱국은 문 닫고 먹는다잖어. 아욱 보내 주까? 딴건 뭐, 배추겉절이 좀 해 주래? 아들과 엄마는 누가 누가 더 착한가 경연 대회 참가 중. 아무렴 어떤가. 엄마에게 그러지, 누구에게 그럴까? 아들에게 그러지, 누구에게 그럴까? ---「9月 11日」중에서 어젯밤 쓴 편지가 오늘 아침에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기를, 세상에 그럴 수도 있기를 기도하면서 이것을 서랍 깊은 곳에 둔다. 한 장을 꺼내더라도 어렵게 꺼내고 싶어서지만, 그렇게 폼을 잡을 건 또 뭔가 싶어 결국엔 쓸 만큼 쓰거나 말거나 한다. 손으로 칠한 테두리 선, 필기체로 돋을새김된 ‘Pineider’라는 글자의 촉감, 그리고 ‘편지를 쓴다’는 말 속에 깃든 유순한 자기애. ---「9月 16日」중에서 -집이 최고다. 길가의 풀처럼 주위에 그런 말이 수북했다. ‘아니지. 꼭 그렇지는 않지’, 고개를 저으면서도 실은 그 말에 안심하곤 했다는 걸 말해 두어야겠다. 나는 당신의 피로에, 당신의 낮아진 목소리에, 당신의 술을 덜 마시는 습관에, 당신의 나를 향한 몸과 마음이 여기저기 둥글다는 감촉에 안심했다. ---「10月 1日」중에서 실은 서울에서부터 티슈로 겹겹이 싸 간 물건이 있었다. 나는 겉멋의 화신이니까 싸면서 일말의 민망함 따윈 없었다. 그건 바카라의 아르쿠르 와인 잔이었다. 부르고뉴에서 이 잔에 와인을 마시겠노라는 순진한 기쁨! ---「10月 28日」중에서 보이는 그대로 자작나무였지만, 나는 굳이 물었다. -이게 뭐죠? 대답은 역시 ‘자작나무’일 뿐, 딱히 용도도 없었다. 지름은 한 10센티미터 될까? 길이는 한 20센티미터쯤. 가격은 5천 원. 나는 이걸 여러 번, 여러 개 사서 아무 데나 놓고 쳐다보았다. 눈길이 머물면 차분해지고, 손길이 닿으면 손바닥으로 ‘나무’가 왔다. 오늘도 자정을 넘겼군. 하지만 괜찮을 거야. 평화라면 평화려니 나무를 만져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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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를 웃게 하는 것들에 대한
캘린더 형식의 기록 ‘시작’은 무릇 설렘을 동반하지만, 예사롭게 흐르다 문득 돌이켜본 다음에야 언제가 시작이었겠거니 더듬을 때도 있다. 뚜렷하지 않은 출발도 더러 있는 것. 거창할 건 없었다. 이 책의 시작은, 그저 ‘좋아서’. 어느 날 오래 살고 있는 집의 창으로 깊숙하게 들어온 햇빛을 유심히 본다. 그것이 문득 예쁘고 좋아서, 그 빛 닿는 곳에 오늘 유독 좋아진 물건이나 꽃을 가져다놓고 사진으로 글로 기록했다. 둘러 입고 밖으로 나가서 나무, 풍경, 장소 등 빛 고인 계절의 얼굴들을 좋아라 담아 모았다. 여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고르고 시집을 들추었다. 그런 날들이 이어졌다. 사람의 마음은 날씨처럼 변덕스러울지라도 취향이란 참으로 완강한 것이어서, 하루의 기록들은 어느덧 고유한 윤기로 색과 리듬을 이루었다. [GQ Korea]의 에디터 장우철. 그가 홀로 꺼내 보며 비밀처럼 웃던 일들을 성심껏 매만지고 찬찬히 걸러, 1년 365일 중 약 200일을 캘린더 형식으로 나날이 묶었다. [GQ Korea] 에디터 장우철, 하룻날들을 발견하고 자축(自祝)하다 그리고 오늘, 당신은 무엇을 마음에 두고 있는지 유행의 최전선이라 하는 매거진의 에디터로 살지만, 그럴수록 그는 자신의 취향과 안목을 짙게 세운다. 스스로는 ‘편애’라 칭하나 어떤 면에선 과연 넉넉하다. 슈만의 클래식을 들으며 아름다움에 취하는 한편으로, 트로트의 요란함을 정겹게 아끼는 마음. 와인 잔 하나를 프랑스 파리까지 가져가는 ‘겉멋’을 끝내 포기 못 하면서도, 고향 집 김장 날 바닥에 척 앉아 질 좋은 와인을 사발에 콸콸 붓는 여유. 책 속 한 구절을 인용하자면 이는 ‘얼마나 새로운 낭만’인지! 누구에게나 공평한 사실로, 날은 빛을 만나 열리고 빛과 이별하며 닫힌다. 그도 마음을 굳이 오래 두지는 않는다. 딱 오늘만큼만 여물고 내일을 맞는다. 긴긴 애정은 아마도 의지의 영역일 것이어서, 이 책에서는 오직 하루치의 애정을 진심이라 여겼다. 그렇게 ‘하루’라는 시간의 마디 안에서 그는 계절과 사귀듯 물건과 숨 쉬듯 자신만의 시선으로 오늘의 서정을 발견한다. 연둣빛 이파리, 보드라운 신발, 어머니의 꽃버선, 미끈한 실크 쿠션, 잘 닦인 마룻바닥, 맑게 비치는 유리병……. 충만한 계절 풍경과 마음에 꼭 맞는 물건들 앞에 문득 선량해지면서, 급기야 이대로 완벽하다고 자축하는 순간들을 포착했다. 날짜별 사진과 글에 더불어, 페이지 하단에는 음악, 시, 책, 영화 등 그가 좋아하고 또 오늘 당신이 듣고 읽고 보았으면 하는 작품들을 실었다. 이윽고 다음 계절로 건너갈 때에는, 어울리는 시 또는 수필과 함께 다양한 계절 꽃나무를 황나경 작가의 일러스트로 수록했다. 글마다 제목처럼 달아 둔 ‘몇 월 며칠’ 하는 날짜. 이것은 그가 당신과 나누어 갖는 최소한의, 그러나 실은 무엇보다 커다란 공통분모다. 물론 우리는 완벽한 타인이겠으나, 같은 날짜와 계절을 살며 비슷한 경험을 안고 가므로. 애써 정다울 건 없지만, 공통의 날들을 지나며 서로의 선(線)이 묽어지고 잠시 뜨듯해지거든 분명 썩 괜찮은 기분일 것이다. “어차피, 당신이 꼭 가져야 하는 물건, 꼭 먹어야 하는 음식, 꼭 가 봐야 하는 여행지, 그런 건 없지 않을까? 다만 불러 보는 이름과 간직하려는 계절이, 하여 오늘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들이, 여기 내 방에 그리고 당신의 그곳에 이미 놓여 있지 않을까.” -서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