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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시인과 묵호 | 노란 불빛이 비추는 곳마다, 삶
함민복 시인과 강화도 | 당신은 누구십니까 권정생 선생과 안동 | 새벽종 울리는 차가운 손 한하운 시인과 소록도 | 아무도 모르게 울고 싶을 때마다 이성부 시인과 지리산 | 산길을 걷다가 문득 뒤돌아보면 백석 시인과 통영 |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이유 박노해 시인과 벌교 | 맛이 건네는 위로 서정주 시인과 고창 | 그 마을 전설이 일렁이는 보리밭 김용택 시인과 섬진강 | 일상 같은 강물이 흘러간다 이중섭·김영갑 선생과 제주 | 먼 곳에서 꾼 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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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시인의 시를 읽으며 문득 시란, 시인이 그리는 마음의 지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고향도 아닌 동해 마을 묵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치 그 마음의 여정을 따라가는 듯한 지도를 그렸다. --- p.37
그는 가난이 자신을 불편하게 할지라도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가난으로 휘둘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시 한 편이 쌀 두 말이 되거나 시집 한 권이 국밥 한 그릇이 되고, 시집 한 권의 인세가 굵은 소금 한 됫박이 된다는 시인의 긍정이 온기가 되어 시를 읽는 사람들 밥상에 내려앉은 것은 아닐까. --- p.51 겨울밤 추운 거리에서 언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이다가 아무런 기척도 없이 손가락이 떨어진다. 이것은 마치 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병에 걸린 것과 같아 시인으로서는 더 이상 슬퍼할 일도 아니다. 다만 떨어진 손가락을 아무렇게나 버리는 대신 따스한 날 양지 어딘가에 묻어야겠다는 독백은 의연하기까지 하다. --- p.109 시인이자 언론인이었던 그는 고향 사람들이 총탄에 무수히 쓰러져 갈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때 새겨진 깊은 죄의식은 고된 산행마저 “매맞는 즐거움”이 되어 집에 돌아가 쉬고 싶을수록 점점 더 깊은 산속을 헤매게 만들었다. 누구에게조차 꺼낼 수 없던 서러움과 외로움은 평생 그가 가져가야 할 몫이었다. --- p.117 여전히 활기차고 바다 빛이 고운 이 고장에서 실연한 젊은이가 지었을 표정을 내내 상상해 보았다. 옛 장수가 공을 세우고, 유려한 바다 빛에 온갖 예술혼이 살아 숨 쉰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사랑을 잃고 정처 없이 떠도는 신세는 저문 달 아래 나룻배와 같은데. --- p.159 그렇게 문인으로서 영예로우면서도 굴곡 깊은 생애를 보냈던 시인이 노년에 이르러 떠올린 곳은 고향 질마재였다.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던 세상살이를 내려놓으며 지금껏 살아온 생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질마재 언덕에 눕고자 한 것도 시인의 마지막 뜻이었다. --- p.198 시인은 땅을 일구듯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를 썼다. 청년기에 접한 문학 전집은 소소한 비료일 뿐, 그가 일궈 낸 글들은 보다 단단한 땅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하나 자연에 빚지지 않은 계절이 없다고 말하며 강과 산, 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시인의 일상을 채워 아이들을 가르치는 밑거름이 되었다. --- p.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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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시를 읽는다는 건
삶을 온전히 껴안는다는 것 그의 시는 늘 사유하기 전에 먼저 냄새를 맡거나 맛을 본다. 그리고 말로 옮기기 전에 주위를 빙 둘러본다. 그렇게 눈과 귀, 혀에 차곡차곡 쌓인 이미지와 맛의 기억은 먼 시간과 공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주 친숙하게 되살아난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수군거리듯 가깝게 들리는지도 모르겠다. _ 본문 「백석 시인과 통영」 중에서 마지막으로 시를 읽은 게 언제였을까. 학창 시절에 시험을 위해 밑줄 쫙쫙 그으며 읽은 것 말고, 시집을 읽다 공연히 마음이 벅차올라 창밖 너머 먼 하늘을 바라본 적이, 가로수 늘어선 길을 서성거려 본 적이 도대체 언제였는지. 그러고 보면 ‘시를 읽는다’는 행위는 비단 눈으로 글자를 읽는 데 그치지 않고 구절 속에 담긴 풍경과 이야기를 고개 숙여 들여다보고, 손을 뻗어 만져 보고, 귀를 기울여 들어 보고, 걸음을 옮겨 찾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이기에 시는, 그토록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며 두고두고 회자되는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배낭 하나 둘러메고 시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이 책은 ‘시’라는 기차를 타는 데 꼭 어울리는 티켓이다. 그가 그린 섬진강의 평화로운 나날에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번번이 찾아오는 처연함이 강에 드리운 산 그림자처럼 숨어 있었다. 어쩌면 그 그림자가 때로는 강물 깊이보다 더 짙을 때도 있더라고 나직이 읊조리는 시인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떠들썩하던 사위가 잔잔하게 가라앉곤 했다. 이처럼 시는 그가 일상에서 일군 구원이었다. _ 본문 「김용택 시인과 섬진강」 중에서 『시인의 마을』이라는 티켓을 쥐고 닿는 마을을 살펴보자. 아주 낯익은 마을도 있고, 어렴풋이 들어 본 마을도 있으며, 전혀 낯선 마을도 있다. 읽는 이마다 마을에 대한 첫인상은 다를 테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모든 마을은 저마다의 색깔과 방식으로 우리 마음을 ‘쿵쿵’ 울린다는 점이다. 이동순 시인이 풍물화첩을 그리듯 써 내려간 묵호, 함민복 시인의 오만 가지 상상이 깃든 강화, 평화를 노래한 권정생 선생의 안식처였던 안동 조탑리, 한하운 시인의 처절한 삶과 찬란한 꿈이 담긴 소록도, 이성부 시인을 다시 세상으로 이끈 지리산, 청년 백석이 절절히 사랑한 통영, 사람만이 희망이라 외치던 박노해 시인의 고향 벌교, 한국 현대 문학사의 빛과 그림자인 서정주 시인이 묻힌 고창 질마재, 김용택 시인 손끝에서 시로 피어난 섬진강, 그리고 한 편 시 같은 삶을 살다 간 이중섭, 김영갑 선생의 유토피아였던 제주가 그렇다. 하지만 시를 고스란히 품고자 떠난 이 여정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어쩌면 ‘시’가 아닐지도 모른다. 지리산에 오르고, 섬진강을 따라 걷고, 사라오름에서 서성거리며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광부의 안전모에 달린 전조등이 비추는, 그 희미하지만 절실한 노란 빛이 닿는 ‘삶’이다. 그리고 살포시 책을 덮으며 생각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네 삶 순간순간이 시 한 구절구절이고, 그 삶을 살아 내는 우리 모두가 시인일지도 모른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