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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홍성우
프롤로그 대담을 시작하면서 제1부_1970년대 인권변론 1971년 사법파동과 변호사 개업 사법부 옥죄기와 법관들의 사표 민청학련 사건으로 인권변론의 길로 들어서다 법정에 울려퍼진 애국가 “인권변호사” 진용의 형성 이돈명, 조준희, 황인철, 홍성우의 결합 민주회복국민회의 결성과 이병린 변호사의 수난 “눈물도 얼을싸하여 손수건에 담노라” 백낙청 교수 파면처분 취소소송 유신반대가 ‘정치활동’이라면 유신지지는… “법정에 칼이 섰던” 김지하사건 법정에 울려퍼진 ‘타는 목마름으로’ 명동사건 (3·1민주구국선언사건) 재야민주세력의 구심점을 만들어내다 인권변론을 지원한 NCC와 선교자금사건 사법부의 부끄러운 자화상 리영희 교수 필화사건 공소장과 똑같은 판결문 양성우 시인 필화사건 문학작품을 두고 사실왜곡죄가 가당키나 하냐 긴급조치 제9호 위반 사건들 5·22사건과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 서울의대 간첩단사건 어머니의 구명활동 한국일보 기자노조사건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받아내다 동아투위의 민권일지사건 언론자유의 강연장이 된 법정 동일방직 노조에 대한 탄압 “우리는 똥을 먹고 살 수 없다” 청계피복노조사건 장기표-이소선-청계노동자들의 연속 재판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사건 유신말기의 극단처방, 그러나…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 독서써클 만들었다고 국가보안법으로 처벌 오원춘사건 기차간에서 변호사들이 통곡한 사연은? 제2부_1980년대 인권변론 1980년 변호사 휴업과 김수환 추기경의 은고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부산 대구 오가며 피고인을 살려내기 재일동포 유학생에 대한 간첩조작사건 윤정헌, 조일지 사건 송씨 일가 간첩단 조작사건 유죄와 무죄를 오간 7차의 핑퐁재판 원풍모방 노동조합 탄압사건 항소이유서를 그토록 공들여 쓴 이유는? 여성에 대한 정년차별 시정 소송 김영희사건, 여성정년의 장벽을 깨다 서울대 “학원푸락치” 사건 온순한 인간들을 열렬한 투사로 만드는 시대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위)사건 양심범의 소신을 지켜주는 게 변호사의 역할 삼민투사건 학생운동은 민주화운동의 주류 서울 미문화원 점거사건 정치변론과 인권변론, 재판거부의 차이 김근태에 대한 고문과 재판 고문의 고통과 증거를 외면한 검찰과 법원 정법회의 결성 장년층과 청년층 변호사의 결합 영천기름집 살인사건, 무죄판결 받아내다 대우자동차사건 “위장취업”한 대학생들, 노동운동의 주역으로 대우어패럴 사건 혹은 구로연대파업 20명의 변호사들, 연대변호의 효시를 열다 훼어차일드 회사의 노동운동가 해고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 인권변론 역량의 최대치를 구현 민중교육사건 교사들 법정에 서다 녹두출판사사건 사회주의권 책자의 번역은 이적인가 이돈명 변호사, ‘범인은닉’사건으로 구속수감 ‘민족이 당하는 수난에 변호사만 예외일 수 없다’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사건 김문수·심상정·유시민의 인연 제헌의회사건 및 반제동맹사건 혁명론의 분출과 운동권의 분화 유성환 의원, “국시” 발언으로 옥살이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의 한계는 어디인가 민중미학연구소(민미연)사건 소장 인문학자들을 족쇄 채우다 보도지침사건 “불낸 자는 놔두고 119 신고한 자를 잡아가다니” 남북접촉 시도와 전민련사건 공개적인 남북접촉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탄압하다 민변의 결성과 조영래 추모모임 민중의 삶과 연대하는 변호사의 자세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사건 변론의 바톤 넘겨줄 때 전두환·노태우를 내란죄로 고소하다 공소시효에 대한 해석의 전기를 마련 | 에필로그 | 마치면서 | 발문 | 인권변론의 전설을 기록화하기/한인섭 인권변론연보 인명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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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시대, 탄압받고 수난받는 이들의 인권옹호에 헌신했던 홍성우 변호사!
몇십년의 세월을 뚫고 그 때의 진실을 온전히 되살려낸다. “우리 양심범들의 정의로운 싸움이 훗날 역사의 법정에서는 떳떳하게 무죄로 밝혀지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우리는 절망하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인권변호사는 고난의 길이었지만 우리는 서로 격려하면서 서울은 물론 부산 대구 광주 전국으로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외면하지 않고 달려가고자 했다” _홍성우 변호사의 서문 중에서 4만6천쪽의 변론자료, 100시간의 증언과 함께 되살아나는 한국현대사 어두운 시대의 등불이었던 “인권변호사”의 존재를 기억한다. 유신과 5공의 “사법 암흑기”에 우리는 인권변호사의 존재를 기억한다. 그 중에서 조영래(1990), 황인철(1993) 변호사가 아깝게 돌아가시고, 올해 이돈명 변호사가 타계하였다. 인권변론의 역사가 하나의 전설처럼 사라지려는 이 때, 홍성우 변호사가 그 때의 진실을 온전히 되살려내는 증언을 책으로 낸다. 홍성우 변호사는 인권변호사의 상징이요, 사실상 중심축이었다. 당시, 인권변호사가 아무리 노력해도 당시의 사법부는 피고인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 판결들은 최근에 들어서 겨우 재심으로 무죄판결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절망에 맞서 인권변론을 끝없이 끌어갔던 인권변호사 홍성우는 몇 십년동안 변론자료를 버리지 않고 보관해두었다. 그 인권변론자료는 현대법제사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던 서울법대 한인섭 교수가 인수하여 전산화를 완료했다. 자료는 1207종, 4만6천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홍성우 변호사와 한인섭 교수, 정확한 증언과 고증을 위해 한 자리에 앉다. 이 자료를 토대로, 홍성우 변호사(73세)와 한인섭 교수(52세)는 한 자리에 앉았다. 100시간 이상의 홍성우의 증언을 한인섭은 대담하며 기록했고, 당시 활동했던 이들의 보완을 받았다. 그리하여 780쪽에 이르는 방대한 인권변론의 전모를 복원해냈다. 사법사와 민주화 역사의 살아있는 증거 이 증언은 인권변론을 위해 고투해온 변호사들의 활동 궤적을 담은 것이다. 아울러 형사재판을 거쳐야 했던 독재시대의 민주화운동 전모를 상세하게 증언한다. 이제까지 가려져있던 수많은 일화와 야사들이 도도하게 펼쳐진다. 사법부의 암흑기에 인권변호사의 존재는 우리의 법치주의를 빛나게 해주는 빛과 희망이었다. 또한 홍성우의 증언을 통해 한국현대사의 기록되지 않는 측면이 온전히 되살아난다. 민주화의 스타와 이름없는 희생자들로 쓰여진 현대사의 기록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1974년부터 1995년의 학생, 지식인, 노동자, 조작간첩, 기자, 군인 등 다채롭다. 현재에도 각계각층에서 활약하는 대표적 인사들의 한 세대 전의 열정어린 활동기록이기도 하다. 현직 정치인들의 청년시절의 열정을 읽을 수 있다. 당시의 산업화의 그늘에서 희생되었던 노동자들의 신음소리, 당시의 억압적 정권하에서 유린당한 사법부의 짙은 그늘, 그리고 재심사건의 원심에서 공안권력에 의해 간첩의 누명을 썼던 억울한 이들의 한숨이 들어 있다. 그러한 열정, 신음, 그늘, 한숨에 대한 세세한 증언을 읽을 수 있다. 숨은 이야기들의 흥미진진한 나열 이 책에서 처음 밝혀지는 이야기거리들은 이 책을 읽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김수환 추기경과 인권변호사들의 관계가 여러 모로 밝혀진다.(아래 사진은 본문 344쪽 참조) 김지하의 양심선언과 법정투쟁에 얽힌 복잡한 이야기도 처음으로 전모를 드러낸다. 오원춘 사건에서 변호사들이 대성통곡한 사연도 처음으로 밝혀진다.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였던 시절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판사들이 나름대로 노력한 사연들도 처음으로 공개된다. 인권변호사와 정치변호사와의 차이점도 흥미있는 대목이다. 무려 7심을 오간 핑퐁재판으로 유명했던 송씨일가 간첩단사건(최근 재심무죄로 판명됨)의 진실을 밝히려 온갖 노력을 다한 사연도 공개된다. 이와 같이 다른 기록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풍성하다. 그것만으로 독서하는 재미가 배가될 것이다. “대학원생들과 함께 먼지 가득한 서류를 정리하면서 우리 현대사를 수놓은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전율도 하고 감동도 받고 그랬습니다. 한마디로 한 시대의 문서이자, 당시의 재판과 법 적용에 대하여 살아있는 기록이라 생각했습니다. 당시 민주화운동은 모두 형사재판의 대상이 되었던 만큼 민주화운동사의 내용을 풍부히 하는데도 이 자료의 가치는 비할 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한인섭 교수의 대담 중에서) 변론요지서, 항소이유서를 그렇게 공들여 써봤자, 당시 판결에 전혀 반영이 안되잖아요. 그럼에도 그렇게 열심히 쓴 이유는 뭘까요? 읽어라도 보라는 거지요.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어요. 나 혼자라도 진실을 밝혀놓지 않으면 나 자신을 용납할 수 없다는 심정이었죠. 또 그렇게 해서라도 피고인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고 싶었어요. 변호사의 가장 큰 역할이 그거에요. 양심범들의 소신을 보호해주자, 소신을 꺾지 않는데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자 이것이 나의 주된 역할이라 생각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