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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시집
개정판
김영랑
종합출판범우 2011.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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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희곡 top10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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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어덕에 바로 누워
쓸쓸한 뫼 앞에
제 야除夜
가늘한 내음
사개 틀린 고풍의 툇마루에
아파 누워 혼자
마당 앞 맑은 새암을
뉘 눈결에 쏘이었소
내 마음을 아실 이
꿈밭에 봄마음
황홀한 달빛
눈물에 실려 가면
청 명
불지암佛地菴
5월
내 홋진 노래
연(1)
수풀 아래 작은 샘
바람 따라 가지 오고
끝없는 강물
'오-매 단풍 들것네'
함박눈
물 보면 흐르고
내 옛날 온 꿈이
땅거미
빛깔 환히

2.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그대는 호령도 하실 만하다
낮의 소란 소리
강선대降仙臺 돌바늘 끝에
두 견杜鵑
독毒을 차고
연 (2)
한줌 흙
언 땅 한 길


묘비명
5월 아침
망 각
행 군
겨레의 새해
천 리를 올라온다
바다로 가자
춘 향
금호강
우 감偶感
새벽의 처형장處刑場
어느 날 어느 때고

3. 사랑은 깊으기 푸른 하늘
사랑은 깊으기 푸른 하늘
님 두시고 가는 길
좁은 길가에 무덤
풀 위에 맺어지는 이슬
저녁 때 외로운 마음
향내 없다고
애닯은 입김
숲향기 숨길
다정히도 불어 오는 바람
무너진 성터
어덕에 누워
푸른 향물
허리띠 매는 시악시
그 색시 서럽다
산골 시악시
못 오실 님
빠른 철로에 조는 손님
외론 할미꽃
구름 속 종달
밤 사람 그립고야

해설 / 찬란한 슬픔의 의미
김영랑 연보

저자 소개 1

영랑令郞, 윤식

시인, 본명은 김윤식이며 아호는 영랑(令郞)이다. 1903년 전라남도 강진에서 태어났다.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휘문보통고등학교를 거쳐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 학원 영문학과에서 수학했다. 그 후 1930년 3월 창간한 [시문학]을 중심으로 박용철, 정지용, 정인보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정인보,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허보 등 여러 시인과 더불어 아호인 영랑(令郞)으로 활동했다. 1935년에 첫 번째 시집인 『영랑시집』을 시문학사에서 간행했다. 『영랑시집』에는 총 53편의 시가 실려 있으며, 각각의 시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의 제목을 쓰지 않고 일련번
시인, 본명은 김윤식이며 아호는 영랑(令郞)이다. 1903년 전라남도 강진에서 태어났다.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휘문보통고등학교를 거쳐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 학원 영문학과에서 수학했다. 그 후 1930년 3월 창간한 [시문학]을 중심으로 박용철, 정지용, 정인보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정인보,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허보 등 여러 시인과 더불어 아호인 영랑(令郞)으로 활동했다.

1935년에 첫 번째 시집인 『영랑시집』을 시문학사에서 간행했다. 『영랑시집』에는 총 53편의 시가 실려 있으며, 각각의 시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의 제목을 쓰지 않고 일련번호를 붙여 시집에 실었다. 이후 김영랑은 1949년에 중앙문화사에서 『영랑시집』을 출간했다.

김영랑은 조국 해방이 이루어질 때까지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및 삭발령을 거부했으며, 광복 후 신생 정부에 참여해 당시 중앙행정부인 공보처의 출판국장으로 일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유탄을 맞아 부상을 당해 9월 서울에 위치한 자택에서 4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현재 묘지는 서울 망우리에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사랑은 깊으기 푸른 하늘」 등 한국적 정서가 담긴 서정시를 많이 발표했다. 대표 시집으로 『영랑 시집』, 『영랑 시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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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1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65쪽 | 204g | 128*188*20mm
ISBN13
9788963650418

출판사 리뷰

1985년 중고교생 독서권장도서(서울시립남산도서관 선정)
1985년 출판협회 청소년도서 선정

김영랑(본명 김윤식)의 시는 1930년《시문학》이 창간되던 시기부터 우리 시문학사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 후 그는 많은 작품을 내지는 않았지만 주로 박용철과 함께 활동하면서 30년대 순수문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나갔다. 서구 문학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전통적인 시형을 현대시 속에 끌어들여 전통적인 것과 현대 서구적인 것과의 접목작업에 성공함으로써 그의 시는 대중적인 공감을 얻어왔다. 특히 호남지방의 토착적인 언어를 탄력적으로 구사하여 언어 예술로서의 시의 참맛을 살려나간 공적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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