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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아름다운 산수풍광에 성리학적 이상을 실현한 원촌마을
2장 원촌마을과 진성이씨 3장 원촌마을 가학의 전승과 양상 4장 원촌의 규방가사 5장 원촌의 제례문화, 지혜로운 계승 6장 이육사와 원촌마을 독립운동가들 7장 원촌의 신문화 수용: 이원영 목사의 기독교 활동 8장 이육사의 문학과 현대문학 9장 원촌마을에서 자란 문학평론가 이원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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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촌마을, 사라짐 속에서도 이어진 정신
곳곳에 배어 있는 안동의 여러 마을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며 과거와 전통을 통해 내일을 기약하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는 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의 ‘유교문화권 전통마을 총서’ 그 여덟 번째 자리를 차지한 마을은 바로 안동의 원촌마을이다. 이번에 대상이 된 원촌마을은 앞서 소개된 하계마을과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1970년대 안동댐의 준공으로 하계와 함께 마을 대부분이 수몰되어 사실상 사라진 마을이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원촌마을은 옛 예안지역이었던 안동의 북동, 낙동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는 강가마을로, 진성이씨 동성마을이다. 퇴계의 손자 이영도의 후손이 퇴계의 묘소 바로 아래인 하계에 정착한 다음 단사마을로 들어갔다가 원대처사 이구 대에 이르러 다시 원촌으로 옮겨와 살기 시작하였다 하니 지금으로부터 근 300여 년이 되었다고 하겠다. 조선시대 원촌마을은 백여 호도 되지 않는 조그마한 동네였지만, 그 어느 마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많은 과거 합격자와 관직자를 배출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유학은 치인治人 이전에 수기修己를 그 무엇보다도 중시했기 때문에, 많은 원촌사람들은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 열중하여 스스로 자득적인 삶을 살았다. 그렇다고 세상사에 무관심했다거나 외면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온몸을 던졌다. 퇴계라는 가학을 계승해 온 원촌사람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야 말로 사람 된 도리라고 생각했다. 이 규범과 도리는 일제강점기에 더욱 빛을 발하였다. 저항시인이자 민족시인 이육사로 상징되듯이 원촌사람들은 일제하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원촌사람들은 독립운동이라는 대의를 실천함으로써 원촌이라는 이름 위에 문화적 정신적 존재감을 더욱 무겁게 하였다. 그러나 원촌마을은 1970년대 안동댐의 건설로 하계마을과 함께 마을 대부분이 수몰되어 버렸다. 지금은 황량한 들판 산기슭 아래 몇 집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을 뿐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을을 떠났다. 혈족이 흩어져 버린 원촌마을은 삶의 터전뿐만 아니라 조상 대대로 이어 내려온 전통적 삶의 방식까지 상실하는 경험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촌마을을 연구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게 하는 것은, 원촌은 하계, 단사마을과 함께 강한 혈연적 연대의식과 퇴계가 남긴 정신적 유산을 공통의 정체성으로 하여 마을의 규범을 만들었고, 그것을 충실히 지켜나간 사람들의 정신과 역사적 자취가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실체는 사라져 버렸지만, 원촌마을과 사람들의 숨결, 그 후손들이 끝까지 지키고 있는 정신을 생생하게 복원해 낸 것은 이 책의 커다란 성과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