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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코아빛의 성으로
2. 배수구 3. 메갈로톤과 그란덱사크루스토푸스 4. 의문의 주방 5. 두 번째 해자를 지나 6. 스튜분리실 7. 빨강 방 8. 살아 있는 무덤의 방 9. 드림엔진 10. 위기에 빠진 북친 11. 드림엔진을 멈춰라! 12. 붉은남작과 공주의 재회 13. 이미지의 원천 14. 부활하는 잠꿈나무 15. 풍선 외계인? 16. 끝나지 않는 이야기 17. 지하의 어둠 속에 18. 사라진 어항 19. 돌아온 아빠 20. 이상한 구슬 21. 시간의 가지 에필로그 - 모래톱 |
한가을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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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와 북친은 코코아빛 성을 지키는 수많은 괴물들과 꿈꿈족들을 물리치고 드디어 열두 사제가 갇힌 A-1홀에 도달한다. 드까오르는 열두 사제의 꿈을 증폭시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드림엔진을 본격적으로 시험하기 직전이다.
드까오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바다 속 모든 꾸니들을 다스리기 위한 얼음의 제국을 지구의 해안에 건설하는 것. 드까오르의 의지대로 된다면 감정의 배출 수단인 꿈이 흐르지 않는 인간들은 지구상에서 점점 괴풍선으로 변해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잠꾸니들은 더 이상 인간의 꿈으로부터 태어나지 않게 된다. 그것은 잠꿈족의 종말과 동시에 인간의 종말을 의미한다. 루미는 드까오르의 의지를 막기 위해 붉은남작과 북친의 도움을 받아 드까오르를 물리치려 한다. 마침내 드까오르는 최후를 맞이한다. 하지만 드까오르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이는 또 다른 제3의 인물이고 이들 사이에 놓인 싸움과 갈등의 세계는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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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깊고 깊은 바다 속엔 인간 각자의 꿈 정보들로 이루어진 지적 생명체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의 운명은 사람들 각자의 꿈에 달려 있다! 제3회 <한국안데르센상> 수상 작가들이 호흡을 맞춘 장편 환상동화 아이들에겐 아주 재미있지만, 어른들에겐 재미로만 그치지 않는 이야기 동화에 등장하는 세 종족들은 인간의 이성과 잠재의식(또는 무의식), 그리고 둘 사이의 경계 지대인 표면의식을 상징한다. 책을 읽다 보면 이 이야기가 만만찮은 상징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어린이들은 단순히 세 종족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라 느끼며 끝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조금 의식 있는 독자라면 이야기의 이면을 곧 발견할 수 있다. 조나단 스위프트의『걸리버 여행기』는 한낱 동화로만 끝나지 않았다. 인간을 심도 있게 풍자한 동화라는 것쯤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잠꾸니 루미』또한 상징성이 농후한 동화이다. 작가는 미리 주제와 상징을 염두에 두고 이 이야기를 쓴 듯하다. 긴 글의 전체적인 구성과 결말, 은유와 상징성 등에 수학적인 계산과 엄밀한 잣대가 가해졌다. 이미 쓸 때부터 결말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큐빅을 맞추거나 바흐의 음악처럼 철저하게 계산된 음악을 듣는 듯하다. 조직적인 구성에 바탕을 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꿈꿈족은 인간 뇌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인간의 이성을 대변한다. 잠꿈족은 빙산의 하부인 아직 탐구되지 않은 무한한 잠재의식의 보고인 뇌의 깊은 무의식을 대변한다. 잠꼬대족은 그 중간을 의미한다. 잠꼬대는 사실 인간이 깊은 꿈에서 옅은 꿈으로 이동할 때, 또는 겉잠에서 깊은 잠으로 이동할 때 주로 많이 하기 때문이다. 잠꼬대족은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떠오를 때 하는 하품 같은, 가벼운 종족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 세 종족들은 서로 소통하며 ‘누리’를 받치고 있는 세눈박이 괴물의 세 눈과 뇌를 드나들었다. 하지만 영겁의 세월이 흐르며 서로 소통이 단절되었다.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한다. 꿈꿈족(꿈꾸니)이 잠꿈족(잠꾸니)을 침범하면서 바닷가에 ‘죽은 꿈들(잠꾸니들)’이 밀려온다. 그 결과 인간들 사이엔 빅뱅바이러스라는 전염병이 나돈다. 마침내 인간들은 큰검정물렁볼링공병에 걸려 커다란 연체 괴물로 변해 공중으로 떠오른다. 이는 이성이 반이성을 침해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성과 과학, 논리와 합리주의적 세계, 곧 로고스적 세계가 디오니소스적인 세계에 제약을 가하는 인류 역사를 상징화한다. 또는 에토스가 파토스를 침범하는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프로이트나 칼 융을 떠올리게 할 때는 이 이야기가 한국적이기라기보다는 서구인의 취향에 더 맞는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작가는 국지적인 이야기보다는 보편적인 주제를 선택했다. 지명이나 인명을 살짝 바꾸면 어느 나라 작가가 쓴 것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다. 모노톤으로 그려진 그로테스크하고 강렬한 일러스트 또한 한국 작가가 그린 그림 같지 않고 이국적이다. 하지만 곳곳에 발견되는 상징성이나 복잡한 주제 의식 등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읽기 능력이 뛰어난 초등학생 3학년 이상이면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딱히 어느 장르나 범주에 넣기가 어려운 이 이상한 장르의 환상 동화는 풍부한 이미지와 유머, 상징성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