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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감사의 글 추천사 가계도 1. 에글렌타인 상상하기 | 2009 ~ 1876 2. 에글렌타인의 가족 | 1876 ~ 1894 3. 주변의 문제 풀기 | 1895 ~ 1898 4. 모성애 시험하기 | 1898 ~ 1900 5. 행복한 나날 | 1901 ~ 1902 6. 사회 문제에 대한 짤막한 조사 | 1902 ~ 1910 7. 사랑 편지 | 1907 ~ 1913 8. ‘야만적인 발칸 지역’에서의 구호활동 | 1913 9. 죽은 사람과의 대화 | 1914 ~ 1915 10. 행동에 앞서 건강을 회복하다 | 1914 ~ 1916 11. 번역으로 진실을 알리다 | 1917 ~ 1919 12. 세이브더칠드런 | 1919 13. 마음의 태도 | 1919 ~ 1920 14. 초국가주의 | 1920 ~ 1923 15. 어린이의 권리 | 1922 ~ 1925 16. 파란색 명판 | 1920 ~ 2009 에필로그 : 인생의 진실 에글렌타인의 앨범 세이브더칠드런 연맹 |
Clare Margaret Mu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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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글렌타인에 대한 작가의 설명
- 에글렌타인은 강박적으로 글을 썼지만 자신의 소설 중 한 권도 출간하지 못했다. 간혹 현실과 상상을 혼동한 것 같기도 하다. 에글렌타인은 그 시대의 모든 여학생처럼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직장을 다녔지만 두 번 모두 일 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또한 사랑에 거듭 실패하고, 이른 나이에 건강을 잃었으며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기도 한 것 같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몇 가지 아주 흥미로운 의문이 든다. 에글렌타인은 어떤 동기로 어린이를 위해 싸우게 되었을까? 똑똑하고 눈에 띄게 아름다운 여성이 왜 한 번도 결혼을 하지 않았을까? 에글렌타인은 자신의 자녀를 원했을까? 에글렌타인이 한 번도 아이를 둔 적이 없어서 자신의 이상에 열정을 쏟게 된 걸까? 아니면 아이들에 대한 에글렌타인의 관심이 개인적인 사연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던 걸까? 만일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병과 감정적인 기복은 에글렌타인의 일에 없어서는 안 될 풍부한 상상력과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그리고 에글렌타인은 왜 그런 우중충한 옷을 자주 즐겨 입었을까? 갈색 카디건을 입고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이 독신녀는 누구이며 정확히 어떤 생각을 한 걸까? 그동안 출간된 에글렌타인의 책은 에글렌타인의 인격보다 에글렌타인이 했던 일에, 에글렌타인의 ‘존재’보다는 에글렌타인의 ‘활동’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었다. 설령 에글렌타인의 존재에 대해 다루는 글일지라도 에글렌타인을 자신의 이상을 위해 희생하다가 겨우 쉰두 살에 미혼으로 자녀도 없이 죽은 사람으로 그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램지 맥도널드는 세이브더칠드런 10주년 기념일을 축하하는 연설에서 에글렌타인을 이렇게 칭송했다. “에글렌타인은 자신의 이상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 에글렌타인의 사망 기사도 그런 맥락으로 쓰였다. 에글렌타인을 ‘성인’, ‘인류의 양심’으로,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행성에서 살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질질 끌리는 신발을 신고 형편없는 소설을 쓴 에글렌타인은 분명히 우리와 같은 행성에 살았던 사람이다. 나는 ‘업적이라는 굴레’에서 에글렌타인을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본문 중에서 - - 선천적으로 상상력이 풍부한 에글렌타인은 성장 과정에서 사회적 책임에 자연스럽게 눈을 떴다. 또한 결혼하지 않은 몸으로 자주 아픈 데다 가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기 때문에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그런 과정에서 형성된 개인적인 철학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일을 찾았다. 에글렌타인은 개인과 세상 사람들 사이에 인위적인 긴장이 흐르고 있다고 믿었고, 그 안에서 서서히 자신만의 ‘진실’을 찾아냈다. 에글렌타인은 마음이 여린 여자는 아니었지만 굉장한 인도주의자였다. 그러한 사실을 증명하듯 친구들은 이런 말을 했다. ‘에글렌타인이 어린이에게 보이는 관심은 개인적인 애정보다는 늘 이론이 깔려 있었어요.’ 결국 에글렌타인은 인류가 같은 줄기에서 뻗어 나온, 뿌리가 같은 한 덩어리라고 여겼다. 에글렌타인은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개인의 생명을 구하는 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인도주의적 정신을 함양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그 일환으로 어린이의 보편적인 권리와 책임을 강조했다. 에글렌타인은 그 시대의 전형적인 여성이라는 점에서는 평범하다. 그러나 허용되는 사상의 경계를 전 방위적으로 뛰어넘었다는 점에서는 비범한 여성이었다. - 에필로그 중에서 - ▶ 서문 버킹엄궁에서 온 편지 에글렌타인 젭은 제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를 위해 발 벗고 나선 투사였다. 1919년에 에글렌타인과 그녀의 여동생 도로시는 굶주리는 유럽의 어린이를 위해 국제 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을 설립했다. 세이브더칠드런 연맹은 현재 어린이를 위한 세계 최대의 독립 기구이다. 수천 개의 지역 기관과 손잡고, 갖가지 방식으로 수백만 명에게 지원을 받아 120여 개국 어린이에게 좀 더 나은 삶과 생명의 기회를 주기 위해 일하고 있다. 하지만 에글렌타인의 유산은 그뿐 아니다. 에글렌타인은 1923년에 어린이의 권리와 책임을 명시한 어린이 인권 선언문 초안을 작성했다. 이어 국제연맹이 선언문을 채택하도록 힘썼다. 어린이 복지를 세상의 의제로 올려놓은 에글렌타인의 업적은 인류의 위대한 승리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에글렌타인이 사망한 이후 전 세계에서 에글렌타인을 기리고 있지만, 그녀의 놀라운 이야기는 지금 거의 잊혀 있다. 마침 세이브더칠드런 창립 90주년과 유엔 아동 권리 협약 20주년 기념일을 맞아 출간된 이 전기는 에글렌타인의 이야기를 다시금 세상 사람들에게 환기시킨다. 그리하여 상상력과 결단력을 적절히 갖춘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세이브더칠드런은 교육과 건강 같은 어린이의 기본적인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래서 에글렌타인에 대한 기억이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는 것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이 할 일은 아직도 많다. 전 세계 7천 5백만 명의 어린이가 학교에 가지 못하고, 1분에 한 명 꼴로 산모가 출산을 하다가 죽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한 훌륭한 여성의 일대기를 다룬 이 책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세이브더칠드런이 하는 일을 지원해주는 여러분에게 감사한다. - 영국 세이브더칠드런 회장 앤 공주 ▶ 한국어판 추천사 1919년 한 40대 여성이 영국 트라팔가 광장에 서 있다. 그녀는 자기가 체포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깡마른 아이들의 사진을 실은 전단지를 돌린다. 적국의 아이들을 아사 지경으로 내몰고 있는 영국의 봉쇄정책을 비판하는 전단지다. 예상대로 그는 기소됐고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100년 뒤 29개 회원국이 120여 개 국가에서 수백만 아동을 살리고 있는 국제 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의 시작이다. 이 세상에 선의는 있는가, 국적과 인종을 넘는 인류애는 가능한가, 하루치 뉴스에만도 절망에 빠지기 충분한 근거들이 넘친다. 그럴 때 이 책을 펼치면 다시 느끼게 된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여기 한 여성, 자주 우울에 빠지고 질병에 시달렸으며 자기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 자신의 가치를 회의하기도 했던 에글렌타인 젭이 있다. 그는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짓까지 할 수 있는지, 제1차 세계대전의 광기를 목격했다. 그럼에도 특정한 국가나 인간이 아니라 전쟁 자체가 악이란 것을 간파했으며, 우리가 뿌리를 함께 나누는 하나의 인류라는 걸 믿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회의가 당신을 집어삼키려 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 우리 안의 사랑을 믿을 때 우리도 에글렌타인 젭처럼 이런 유언을 남기며 인생을 마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요즘에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생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행복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요.” -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이사장 김노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