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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것
알프스의 화가 조반니 세간티니의 예술과 사랑
201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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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것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옮긴이주

저자 소개 1

아스타 샤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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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ta Scheib

1939년 7월 27일 라인란트 베르크노이슈타트에서 태어났다. 1980년대에 소설가로 데뷔했으며, 전기소설인 '집안의 장식품: 오틸리에 폰 파이버-카스텔 이야기'로 작가적 명성을 얻어 현재 독일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손꼽힌다. 작품으로 '느리게 가는 날들'(1981), '뚱뚱한 기사들'(1982), '불순종의 아이들'(1996), '마음의 정원에서: 레나 크리스트의 열정'(2002), '말 없는 남자'(2004), '모든 인간은 예술작품이다'(2006), '서리와 태양'(2007) 등이 있다. 현재 가족과 함께 뮌헨에 살고 있다.
역자 : 박광자
충남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는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쓴 책으로 '치유의 문학 페터 한트케', '독일의 소설가 20인', '괴테의 소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셰에라자드', '벽', '토끼와 함께한 그해',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공역) 등이 있다.
역자 : 이미선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대학에서 독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존넨알레', '별을 향해 가는 개', '불의 비밀', '막스 플랑크 평전', '불순종의 아이들' 등이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6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544쪽 | 654g | 140*205*35mm
ISBN13
9788981339487

책 속으로

조반니는 자신이 이 그림을 어떤 방식으로 그릴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오랫동안 시도했던 방식, 즉 빛 부분과 그림자 부분이 벌이는 놀이, 이것이 고원 지역이 주는 무한성과 공허한 느낌을 화폭에 담아낼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이 세계를. 조반니는 젊은 목동의 피곤함 속에 자연의 무감각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고원의 목초지에 가차없이 내리쬐이는 숨 막히는 더위 속에서 식물과 동물들이 얼마나 힘든지 사람들이 봐야만 한다. 모든 풀 한 포기, 작은 돌 하나, 땅바닥을 뒹구는 가지들이 유리처럼 맑은 빛과 고원의 희박한 공기의 강렬함을 견뎌내도록 조반니는 하나하나를 표현하고자 했다. 고독함과 완벽한 정적이 장엄한 경치를 지배해야만 했다.---p.351

저는 고산 지대를 그리는 화가로 세상에 알려져 있습니다. 저의 예술은 이미 젊은 시절에 시작되었고 브레라 미술학교, 브리안차와 사보닌에서 계속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산들의 장엄함 속에서 저의 예술은 좀 더 높은 형태로 상승되었습니다. 제 선조들은 산골 사람이었습니다. 알프스의 정신은 저에게 전승되었습니다. 저의 정신은 알프스의 정신을 곧바로 움켜잡아 그것을 캔버스에 재현했습니다. 예술계의 사람들은 제 작품 속에 담긴 이 새로운 정신을 느끼고, 그것을 이해하며, 그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작품은 자연의 정신이며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자연의 충실한 통역자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작품 하나를 소개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산들의 아름다움이 제게 영감을 불어넣어주어 탄생한 작품입니다. 오늘날 미술계에서 제가 누리는 지위는 바로 이 산들이 가져다준 것입니다.---pp.425~426

팔레트에서 색들을 섞으면 색이 어두워집니다. 캔버스에 칠하는 색이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그림을 빛, 대기, 현실에 보다 더 잘 접근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모든 뛰어난 화가들에게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극소수만이 팔레트에서 색을 혼합하는 것과 캔버스에다 간단히 색을 칠하는 것 사이의 커다란 차이를 분명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pp.432~433

세간테, 모든 능력을 다해 이 그림을 그렸군요! 축하합니다! 저녁의 이 여명, 이 빛을 계곡 위에 어떻게 퍼지게 했는지, 정말 귀신같은 재주요! 그리고 어두운 형상들이 얼마나 선명하게 대비되는지 놀랍군요! 이 감동적이고 무겁게 내리누르는 고요함. 사람들은 그림 속의 이 사람들이 전혀 움직임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선생은 느끼지요, 이 사람들에게 이 길이 얼마나 비통한지. 그런데 자연은 정반대야. 화려하고 장엄하고 완전히 냉담해!”---p.455

비체, 내 사랑. 우리의 삶은 점술가가 예언한 것처럼 그렇게 오래 지속되어야만 해. 내가 아흔아홉 살이 되면, 당신은 아흔다섯 살이 되지. 그때도 여전히 당신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것일 거야. 비체, 이 말은 프리드리히 니체가 엥가딘에 대해서 한 말이라는 것 나도 알아.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것!’ 나한테는 당신이 그래, 비체.(……)
나의 비체, 잠시 쉬면서 주변의 바위들이나 시냇물, 빛나는 햇살을 보려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면, 그러면 그곳에는 뭔가 절대적으로 낯선 것, 냉혹함이 있어. 당신의 확고한 입, 당신의 작지만 때로는 고통스러운 미소가 없으면 세계는, 나에게 그렇게 많은 것을 주는 이 풍요로운 산속의 세계 역시도 이상할 정도로 차갑게 느껴져.

---pp.498~498

출판사 리뷰

“예술은 사랑이다. 아름다움이라는 옷을 입은 사랑이다.”
알프스의 정신, 풍경화의 완성자 조반니 세간티니
거장의 뜨거운 예술혼과 완전한 사랑을 소설로 만난다.


불행했던 어린시절에 대한 기억, 무국적자로 당국의 추방에 쫓기는 삶, 무신론자라는 세간의 몰이해. 조반니 세간티니는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고난을 그림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과 열정, 그리고 한 여인을 향한 열렬한 사랑으로 뛰어넘었다. 예술 때문에 살고 예술을 위해 살지만 사랑이 없다면 이 풍요로운 세계도 차갑기만 하다고 했던 화가의 뜨거웠던 삶이 아름다운 알프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알프스의 화가, 풍경화의 거장 조반니 세간티니
스위스 알프스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장크트모리츠(생모리츠)에 있는 세간티니 미술관이다. 우리에겐 조금 낯선 이름이지만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세간티니(Giovanni Segantini, 1858-1899)는 알프스 고원 지대에 터를 잡고 알프스의 삶과 자연을 그린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눈부시게 빛나는 장엄한 산군, 깎아지른 봉우리와 협곡, 형형색색의 꽃들이 가득한 천상의 화원 또는 끝없는 설원. 그 사이로 들어서 있는 작은 마을, 가축을 키우고 농사를 짓는 시골사람들. 아름답고 평화로운 만큼 가혹하고 위협적이기도 한 알프스의 자연 속에서 세간티니는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거대한 꿈을 꾸었고, 누구도 하지 않은 방식으로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평생의 연인 비체와의 사랑은 그 속에서 더욱 견고해졌다. 고흐, 고갱, 세잔의 뒤를 이어 풍경화의 위대한 전통을 완성한 화가로 평가받는 그의 예술 세계와 격정적인 사랑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처음으로 우리에게 찾아왔다. 독일에서 전기소설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작가 아스타 샤이프는 세간티니에 대한 수많은 자료를 섭렵하고 관련 인물들을 취재하여 화가의 일생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보기 드문 감동을 선사한다.

비참한 유년시절, 빛이 되어준 그림
세간티니의 유년은 비참했다. 1858년 이탈리아 북부 산간마을 아르코에서 태어난 그는 알코올 중독 아버지와 병약한 어머니 밑에서 정부보조금으로 근근이 살아갔다. 일곱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세간티니를 밀라노에 사는 이복누이에게 맡기고 사라지고, 이복누이의 미움과 멸시에 시달리던 조반니는 집을 나가 부랑자로 떠돌다 재활원에 강제 입소된다. 우여곡절 끝에 재활원을 나와 장식화가 테타만치 밑에서 조수로 일하게 되는데, 그의 추천으로 이탈리아 최고의 미술 아카데미인 브레라 미술학교에 입학한다. 그때까지 세간티니는 글을 읽고 쓸 줄 몰랐지만 그림에 대한 놀라운 재능과 독창적인 시각으로 교수와 동료들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브레라 미술학교 학생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식의 르네상스 회화의 전통에 반기를 들고 프랑스 화가들이 사용하는 자연스러운 원근법의 새로운 원칙을 배우고자 했다. 1860~70년 밀라노에서 일어난 전위운동인 ‘스카피글리아투라’의 영향도 있었다. 조반니 역시 당대의 혁신적인 화풍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기만의 표현을 찾고자 했다. 어느 날 그는 성당의 성단소로 쏟아져 들어오는 눈부신 빛에 감동해 그 가슴 벅찬 빛을 화면에 붙잡아둘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새로운 기법을 찾아냈다. 그것은 팔레트에서 물감을 혼합하지 않고 캔버스에다 색을 하나씩 바르는 방법으로 색채분할기법(일명 점묘법)이라고 하는 신인상주의 표현법이었다. 세간티니는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이 기법을 스스로 발견해냈다.

물감을 팔레트에다 섞는 순간 그런 식으로는 느낌이나 빛을 그림에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림을 캔버스에서 긁어냈고 많은 실패를 거친 후에야 물감을 깔끔하고 깨끗하게 바르는 법을 발견해냈다. 예전 방식과 달리 물감을 혼합하지 않고 캔버스에 하나씩 바르는 식이었다. 물감이 서로 섞이도록 하는 일은 그림을 보면서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눈에게 맡겼다. 그러자 그림에 움직임이 드러나고 빛의 분위기, 느낌, 자연스러움이 저절로 생겨났다. 조반니는 행복했다. 완전히 개인적인 표현 방식을 발견해낸 것이다. (164쪽)

이렇게 완성한 「성 안토니오의 성단소」는 교수와 동료들의 감탄 속에 브레라 춘계 전시회 일등상의 영예를 안았다. 버림받고 굶주리던 소년의 인생에 서서히 밝은 빛이 비쳐들기 시작했다.

평생의 연인 비체와의 만남, 불안하지만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

조반니 세간티니는 스물두 살에 브레라 미술학교의 동료 카를로 부가티의 여동생 루이지아와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밀라노의 양갓집 딸인 그녀 역시 조반니를 사랑하고 그의 예술을 숭배했다. 조반니는 소설 속 여주인공 이름을 따 루이지아를 ‘비체’라 불렀고, 이것이 그녀의 새로운 이름이 되었다. 두 사람은 정식 결혼 없이 부부가 되어 알스프 기슭 브리안차에 집과 화실을 마련하였고, 조반니는 밀라노의 화랑주인 비토레 그루비치와 계약을 맺고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선다.

두 사람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세간티니는 고향인 아르코가 오스트리아에 점령되어 오스트라아 국적을 포기하고 새로 이탈리아 국적을 취득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이복누이가 이를 방치하여 무국적자가 되고 말았다. 국적 문제로 인해 그는 늘 당국의 추방 압력에 시달렸고, 그만큼 이들의 삶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관습을 벗어난 이들의 삶은 공동체에 순조롭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사는 예술가 부부는 사람들에게 낯섦 자체였고,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은 결정적인 결격 사유가 되어 사악한 무신론자로 배척받았다. 이런 세간의 시선에도 세간티니와 비체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며, 자신들만의 행복을 찾았다. 비체는 언제나 조반니의 예술에 감탄하고 존경을 보냈다. 그녀는 종종 남편이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릴 때 곁에서 책을 읽어주었으며, 전문가는 아니지만 남편의 그림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했다. 조반니는 그런 비체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바쳤다.

위대한 풍경화의 시작, 알프스의 빛에 매혹되다
세간티니는 이웃이나 집주인과의 불화, 마음 편히 그림에 몰입하지 못하는 환경,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집과 화실을 자주 옮겨다녔다. 소설은 세간티니 가족이 살았던 지역을 따라가며 그의 그림이 달라져가는 과정과 대표작들의 탄생 배경을 세밀하게 보여주며, 그림 하나하나의 형태와 색채와 기법을 마치 눈앞에서 보듯이 상세하게 묘사한다.

브리안차에서 카렐라, 코르네노, 카글리오, 나비글리오로 옮겨다니던 이들은 여행 중에 마음을 뺏겼던 알프스의 고원지대 사보닌에 정착한다. 비체와 함께 알프스 산지를 여행하던 세간티니는 산들의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당장 이곳을 그려야 한다는 전율을 느낀다. 그를 매혹시킨 것은 알프스의 빛이었다. 차갑고 맑은 대기로부터 비롯된 강렬한 빛은 경건했고, 그를 도취시켰다. 전통을 간직한 오래된 마을과 소박하지만 자긍심에 차 있는 농부들의 모습도 그를 사로잡았다. 자연의 파노라마와 강렬한 빛은 새로운 기법을 요구했다. ‘빛과 그림자의 놀이’를 통해 고원지역의 무한성과 공허성을 담아내려 한 그는 「샘가의 그라우뷘덴 여인」 「숲에서 돌아옴」 「알프스 산맥의 한낮」 「알프스의 방목장」 「쟁기질」 등 많은 대작을 이곳에서 그렸다.

화가로서의 절정기, 필생의 역작 「삶」-「자연」-「죽음」
세간티니는 오버엥가딘에서 화가로서 절정기를 맞는다. 1900년 파리 세계 전시회 스위스관에 전시할 대형 파노라마 제작을 맡은 것이다. 이는 알프스 엥가딘 전체를 거대한 스케일로 웅장하게 재현하는 것으로 그에게는 일생일대의 대작업이었다. 이와 함께 브뤼셀 미술협회는 연례 전시회의 전시장 전체를 세간티니에게 제공했고, 언론과 평단은 그를 집중 조명했다. 각지의 예술가와 지식인이 세간티니를 만나기 위해 엥가딘을 찾았고, 그와 친분을 나누려 했다. 일찍이 이 지역에서 요양하며 엥가딘을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며 사랑했던 니체의 뒤를 이어 그는 지역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조작가로 잘 알려진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아버지인 조반니 자코메티는 세간티니를 직접 찾아와 제자가 되었다. 이탈리아 분할파 화가들이 그의 고유한 표현에 경의를 표했고, 빈 분리파, 뮌헨 분리파들도 그를 대가로 존경했다. 당대 가장 유명한 화가였던 클림트가 그를 방문했고, 오스트리아 황제의 후원이 이어졌다.

세간티니는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고지대 샤프베르크에 오두막을 세워두고 밤낮으로 엥가딘 파노라마 작업에 몰두했으나 막대한 자금이 투여되어야 하는 프로제트는 후원에 차질을 빚어 결국 무산되었다. 대신 그는 파리 세계 전시회에 출품할 필생의 역작으로 「삶」 「자연」 「죽음」 3연작을 준비한다. 3연작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그의 철학과 세계관을 응축한 작품이었다. 그는 매일 새벽 대형 나무틀에 고정시킨 캔버스를 이끌고 고산지역의 악천후와 싸워가며 풍경을 연구했다. 색채분리기법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켰으며 고산의 햇빛과 바람에 견딜 수 있는 물감을 구하고 눈을 피로하지 않게 하는 캔버스를 제작했다.
그는 알프스를 그리기 위해, 위대하고 압도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고산에 올라간 화가였다. 풍경화가는 많지만 일찍이 그와 같이 작업한 화가는 없었다. 그는 자연을 사실적으로 재현하지 않았다. 정확한 관찰과 상상, 빛을 강화하여 자연을 이상적 형상으로 고양시키는 것, 이것이 자연을 대하는 그의 방식이었다. 3연작은 대자연의 신성(神性)과 그 순환 속에 있슴 인간의 삶을 장엄하게 표현한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때 이른 죽음, 영원한 사랑
세간티니는 3연작을 모두 완성하지 못하고 「죽음」을 작업하던 도중 마흔한 살의 나이에 복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분할파를 대표하는 화가로 명성을 얻고 당대의 여러 예술가들과 친분을 쌓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오직 미래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성공과 유명세에도 그는 본질적으로 늘 가난한 예술가였고, 평생 한 여인을 사랑하며 행복한 가정을 꿈꾼 인간적인 가장이었다. 비체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매일 그의 무덤에 꽃을 바쳤다. 그리고 생전에 그가 남긴 편지를 매일 열어보았다.

사랑하는 비체. 내 사랑, 이 보잘것없는 꽃을, 커다란 사랑의 징표로 이 제비꽃을 받아요. 오직 당신을 생각하면서 이 꽃을 꺾었다오. 언젠가 내가 당신에게 이런 선물을 건네지 않는 봄이 오게 된다면, 당신은 살아 있는 사람들 속에서는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거야. (……) 그리고 당신은 매년 봄마다 당신에게 첫 번째 제비꽃을 가져다주던 그 사람을 생각하겠지. (522쪽)

아스타 샤이프는 세간티니의 드라마틱한 인생과 예술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 아내와 가족에 대한 사랑을 세간티니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이탈리아 북부와 알프스 지역을 광범위하게 취재하고 후손들의 증언을 얻어가며 정밀하게 형상화했다. 마치 캔버스에 색점을 찍어 빛을 표현하는 화가들처럼 그녀는 당대의 시공간과 인물들을 섬세하게 되살려내 하나의 장대한 풍경화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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