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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산이 오라 하네 대나무 숲 이발하는 나무들 담쟁이덩굴 초승달 연 과천 곰돌이 돼지 저금통 풀숲에서 산골 여름 하늘 폭설 꽃송이의 바람 제2부 별 놀부 동네 흥부 동네 자유 우리 집 휴일은 귤 따기 체험 봄 동산 감기 별님 사는 하늘 가을 오는 길목 불구경 가을 산 파란 하늘 눈썰매장에서 제3부 배려 궁금해요 삼남매의 하루 뜨개질 텃밭 은하수 대보름 달맞이 산새 일기 호숫가에서 달그림자 졸려요 쌍둥이 자매-가야금 가수 가야랑 제4부 경칩 매화꽃 개나리꽃 봄날 푸른 산 비 갠 어느 여름날 별난 더위 사냥 한여름에 고추잠자리 가을비 내린 후 가을 첫눈 눈 내린 아침 |해설| 고향 말, 대지의 노래 / 임동확|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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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시인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되도록이면 나와 세계를 하나로 보려는 시인과 그 둘 사이의 끝없는 긴장과 갈등에 주목하는 시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니까 자신 밖에서 일어난 일이나 사건들을 모두 자신의 마음속으로 끌어들여 보려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나와 타인 사이의 불화와 불일치를 통하여 개인의 절대적인 고통이나 아픔을 노래하는 작가들이 있다. 정종연 시인은 앞의 경우이다. 그는 세상과 단절되고 고립된 한 개인의 정서에 주목하기보다 가능한 한 그 둘 사이의 소통과 화해를 추구한다. 세상과 나 사이의 행복한 동감이나 아름다움 만남의 추구가 정종연 시인이 추구하는 동시적 세계의 원형을 이룬다.
할아버지 때부터 우리는 연인처럼 별을 사랑했다 별을 노래하고 별을 부러워하고 그리워 밤새우며 하나 둘 세면서 별을 우러러 별을 보면서 속삭이던 달콤한 사랑 ―「별」부분 여기서 ‘별’은 단순히 대자연의 순환과 운행을 표상하는 사물들의 중의 하나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연인처럼 사랑’한 ‘별’은 ‘우러러’ 보는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할 터지만, 그야말로 각기 인간들과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던’ 사이. 즉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친교를 맺었던 자연물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 ‘별’은 우리와 격리된 채 저 멀리 반짝이는 숭배와 경외의 대상에 아니다. 단지 그것들은 우리들 삶의 현장 또는 삶의 방식과 결코 분리되지 않은 채 더불어 살아가는 그 어떤 것일 뿐이다. ‘별’ 역시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갖고 있으며, 그러기에 그걸 마음 한구석으로 두려워하면서도 성스럽게 대했던 것이 우리네 ‘할아버지’들의 삶의 역사였던 것이다. 유난히 그의 시들에서 ‘달’이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별’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달’은 태양력 보다 태음역. 커졌다 작아지고, 작아졌다가 커지는 달의 생성 주기에 그의 무의식적 생체 리듬이 맞춰져 있음을 뜻한다. 직장인으로서 부득이 몸이야 태양력의 주기에 따라 활동하며 생활해 가고 있지만, 언제나 그의 마음은 저도 모르게 ‘구름 사이로 숨바꼭질하는/둥근 달’(「대보름 달맞이」)에 가 있거나 ‘한가위 불빛 아래/홀로 걷는 달님’(「달그림자」) 곁에 가 있다. 현실적으로 ‘달’의 질서에 맞춰 살 수 없는 형편이지만, 그의 내면은 ‘아파트 창가’에서 ‘만두’로 보이는 ‘달’을 ‘손’(「초승달」)으로 만질 만큼 대자연과 천체와 가까이 다가와 있다. ‘글과 사람이 다르지 않는’ 정종연 시인의 동시들은 단연 그렇다. 그의 동시들은 심리학적으로 무슨 유아적인 잔재나 고착의 산물이 아니다. 정작 인간에게 날로 발전해 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격이 중요하며, 그것은 다름 아닌 제 내면세계 속에 이미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침묵으로 웅변한다. 앞으로 더 많은 노력과 연마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동시들은 언어적으로나마 자신의 고유성을 지키는 방도의 하나로 고향 찾기뿐만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비로소 자신의 고유함을 여는 역사성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아주 겸손하고도 은밀하게 말해 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