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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퉁이 어디에 아이들이 옹기종이 모여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아이들은 땅에서 뭔가를 파내 맛있게 먹고 있었다. 다가가 살펴보니 그건 진흙이었다. 밥을 놔두고 진흙을 파먹고 있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아이들은 사색이 된 나를 보고 겸연쩍었는지 ‘쫀드기(황토)’ 맛만 보고 금방 가려고 했다고 어물거렸다.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던 아이들이라 먹을 게 생기면 아무거나 입에 넣고 보았다. 황토도 아마 그렇게 먹기 시작한 것일 게다. 아이들에겐 그게 일종의 별미였던 모양이다. 희한한 건 진흙을 먹고 탈이 난 애들을 한 명도 못 봤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앞세워 식당으로 가면서 생각했다. 난 이런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야 한다. 아니, 이 아이들에게 진짜 ‘뭉치’가 되어줘야 한다. 그렇게 되길 기도했다. 내 나이 스물넷, 그해 여름에. ---p.33, 「스물넷, 누나 이모 혹은 엄마」 그런데 순간 팍, 하고 불이 나갔다. 원래 빛이 없는 곳이어서 사방은 일시에 완전한 어둠 속에 잠겨버렸다. 부대장님부터 공연을 지켜보던 군인들이 다들 웅성거렸다. 빨리 조치를 취하라는 말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 소리들은 곧 잦아들었다. 합주부의 연주가 어둠 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빠르게 휘몰아치는 선율이 어둠을 가르고 달려와 우리를 휘감았다. 하늘에는 아까 조명이 있을 땐 보이지 않던 별빛이 반짝거렸다. 순간 불안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마치 축복을 받은 것만 같은 기분이 되었다. 우리 합주부라서가 아니라 이건 정말 천상의 소리였다. 예기치 않은 사고가 최고의 연주를 낳은 밤이었다.---pp.133~134, 「어둠 속에서도 연주는 멈추지 않는다」 아이들은 내가 나타나자 잠시 입을 다물었다. 침방 입구에 악장인 대희가 보였다. 나는 대희에게 어떻게 이 시간에 침방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물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내 말투가 다정하고 차분할 리 없었다. 대희는 나를 노려보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수녀님 아들들이 우리한테 덤비잖아요.” 순간 내 머릿속 필라멘트가 탁 끊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성을 밝혀주는 인자가 망가지자 눈앞이 깜깜해졌고 평정심은 수챗구멍에 쏟아진 물처럼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pp.189~190, 「26기의 지울 수 없는 상처」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조율 그리고 하모니가 무엇보다 중요한 게 오케스트라다. 연습하는 과정에서는 감정적으로 격해질 때도 있고 선후배간에 날카로워질 때도 있지만 그 순간에도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의 역할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은 한 무대에 서야 할 사람들이다. 준비할 때는 치열해도 무대에 오를 땐 서로를 신뢰하고 격려하며 의지가 돼주어야 한다. 그건 어쩌면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할 존재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삶의 태도이기도 할 것이다. 후배의 넥타이를 매주는 선배의 손길이나 선배의 머리 모양을 봐주는 후배의 눈길에서는 그런 동료애가 배어 있었다. 오늘 연주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pp.270~271,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축복이었네」 그렇게 개인적인 어려움을 뒤로하고 다녀온 카네기홀 공연은 그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오랜 세월 합주부와 함께 생활을 해온 사람으로서 한 가지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날, 그곳에서 보여준 연주는 최고였다. 그렇게 뜨겁고 그렇게 자신감 넘치는 연주는 내가 합주부를 맡은 이래 본 적이 없었다. 그 순간의 마음가짐을 기억하는 한, 삶을 허투루 사는 일은 없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누군가 어떻게 그런 연주가 가능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자기를 한 줌씩 덜어놓을 수 있어서 우린 오케스트라가 된 것이라고. ---pp.281~282 「카네기홀 공연 그 뒷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