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이 어두워질 즈음이었다. 갑판 승강구에서 보초를 서던 어업노동자가 구축함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서둘러서 ‘똥통’으로 뛰어들었다.
“아뿔싸!” 학생 하나가 용수철처럼 뛰어 올라왔다. 차츰 얼굴색이 변해갔다. “착각하지 마.” 말더듬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여기 우리의 상태와 처지, 그리고 요구 등을 사관들에게 자세히 설명하여 도움을 받으면, 오히려 이 파업은 유리하게 해결할 수 있다. 당연한 거야.” 다른 사람도 ‘그건 그렇다’고 동의했다. “우리나라의 군함이다. 우리 국민의 편일 게 분명해.” “아니야, 아니야…….” 학생은 머리를 흔들었다.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말조차 더듬었다. “국민의 편이라고? 아니 아니야.” “바보처럼 굴지 마! 국민의 편이 아닌 우리나라 군함이라는, 그런 이치에 안 맞는 일이 어디 있겠어.” “구축함이 왔다!” “구축함이 왔다!” 모두의 흥분이 학생의 말을 우격다짐으로 깔아뭉갰다. 다들 어디어디 하면서 ‘똥통’에서 갑판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한목소리로 난데없이 ‘우리 군함 만세’를 외쳤다. 뱃전사다리 앞쪽에는 얼굴과 손에 붕대를 감은 감독과 선장이 마주하고, 말더듬이, 시바우라, 뻐기지 마, 학생, 선원, 보일러공 등이 서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구축함에서 작은 함선 세 척이 나와서 본선 옆으로 붙었다. 첫 번째 함선엔 열대여섯 명쯤 수병이 가득 타고 있었다. 그들이 한꺼번에 뱃전사다리를 올라왔다. 아! 착검을 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모자의 끈을 턱에 걸고 있지 않은가! ‘당했다!’ 말더듬이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 p.174 |
|
88만 원 세대, 비정규직, 양극화, 워킹 푸어(Working Poor)……
혹시 이 현상이 『게 공선』 아닌가요? 『게 공선』은 일본 계급주의 소설의 대표적 명작으로 꼽힌다. 이 소설은 캄차카 바다로 나가서 게를 잡아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배 안의 어업노동자를 다룬다. 게 공선은 ‘선박’이 아닌 ‘공장선’이기 때문에 항해법이 적용되지 않고, 또 순수한 ‘공장’이긴 하지만 공장법에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러한 법의 사각지대에서 혹사당하고 학대받는 어업노동자들이 그 가혹한 노동조건에 분노를 느끼며 맞서 싸우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은 지옥 같은 ‘게 공선’에서 일하는 막장 인생의 노동자를 한 축으로, 그리고 그 반대편에 자본권력에 충견 노릇을 하는 감독과 일본 해군을 세워서, 이 대립 구조를 통하여 지배 권력들이 어떻게 서로 결탁하여 자본주의적 착취를 자행하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게 공선』에서 드러난 그 권력 관계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써 여전히 현실에서 그 힘을 휘두르고 있다는 진실을 우리에게 아프게 일깨워준다. 고바야시 다키지는 『게 공선』에서 개인을 내세우지 않고, 각 개인의 성격과 심리를 없앤 ‘노동의 집단’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처음 이 작품을 읽다보면 느껴지는 어떤 낯섦 혹은 당혹감은, 무엇보다도 이 ‘집단묘사’라고 하는 소설기법에서 비롯된다. 이 소설기법을 통하여, 작가는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에 대항하는 수단으로써의 ‘집단 연대’에 대한 뜨거운 신뢰를 보여준다. 최근의 몇몇 신문기사에 따르면, 요즈음 일본에선 『게 공선』이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올해 들어 벌써 30만 명 이상의 독자들이 이 소설을 찾았다고 한다. 일본 매스컴이 일본 사회의 빈곤 현상을 ‘워킹 푸어’(아무리 일해도 최소한의 생활조차 꾸려나가지 못하는 빈곤층)와 『게 공선』의 작품세계를 연결해 보도한 것이 『게 공선』의 인기몰이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런데 『게 공선』을 구매한 독자층의 대다수가 이삼십 대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러한 『게 공선』 열풍은 현재 일본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지금 일본은 9년 연속 봉급생활자의 소득이 줄어들고, 비정규직의 비율이 전체 고용인구의 1/3을 넘어선 상황이라고 한다. 일하기는 하지만 비정규직으로, 정규직과 똑같은 노동 강도에 시달리면서도, 상대적으로 무척 낮은 임금 탓에 안정된 생활을 꾸려갈 수 없는, 이른바 ‘일하는 빈곤층’인 워킹 푸어는, 현대판 ‘게 공선 어업노동자’라고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다. 항해법에도, 공장법에도 적용받지 못하는 ‘게 공선’에 어쩔 수 없이 값싼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어업노동자가 곧 지금의 비정규직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만 일본 사회의 문제일 뿐이라고 할 수 없다. 88만원 세대, 이태백, 장미족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실상은 일본보다도 더 심각한 수준임을 생각할 때, 이 땅의 젊은이들도 날마다 조금씩 절망에 길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 작품 첫머리에 나오는 이 말은 ‘게 공선’의 작품세계를 암시한다. 또한 현대판 ‘게 공선’의 현실세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그러나 『게 공선』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절대적 빈곤이 아닌, 문화적 허기에 시달려야 할 젊은이들에게 『게 공선』은 말한다. 이 잘못된 현실은 너희 탓이 아니라고, 이 잘못된 현실은 너희가 바꿀 수 있다고, 즉 ‘좌절 금지’에서 “응, 그래 다시 한 번 더!” ‘희망의 연대’로 나아가자고 용기를 북돋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