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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동양학술총서 간행사ㅣ21세기에 다시 쓴 간행사
책머리에 제1부 제1장 동아시아의 정체성과 지역연대 1. 지역 정체성의 주요 요소: 지리와 인종, 문명 2. 세기 전환기 한국과 중국에서 지역연대의 구상과 제안 1) 한국에서의 논의 2) 중국의 경우 3. 일본에서 아시아연대의 흐름 4. 동아사아의 현재적 인식 제2장 아시아 연대의 유형과 양상 1. 타루이 토오끼찌 2. 오까꾸라 첸신 3. 윤치호 4. 안중근 제2부 제3장 태평양회의와 태평양문제연구회(IPR) 1. 회의의 조직과 경과 2. 조선인의 참가와 대표권문제 3. 동아시아 지식인의 국가, 민족과 미국 4. 동아시아 국가들의 IPR인식과 반응 제4장 아세아 민족회의와 아세아 연맹 1. 회의의 구성과 성격 2. 회의의 경과와 쟁점 3. 아세아 민족대회와 대아세아 협회 4. 조선인의 참가와 국내에서의 반응 5. 동아시아와 태평양 국가들의 반응 제3부 제5장 동아신질서와 동아공동체 1. 동아신질서와 동아협동체, 동아연맹 1)동아협동체혼 2)동아연맹론 2. 일본제국과 조선민족 1)급진적, 자발적 민족동화론 2)민족문제의 옹호자들 3)절충적, 중도적 입장에서의 민족문제 3. 동양과 서양, 특수와 보편 1)실체로서의 동아시아: 특수주의의 유혹 2)보편의 일환으로서의 동아시아 3)절충적, 중도적 입장에서 본 동아시아 제6장 대동아 공영권과 아시아의 정체성 1. 대동아공영권 형성의 국제적 맥락 2. 대동아공영권 정의와 이념 3. 대동아공영권 목표와 일본주의 4. 대동아공영권에서의 민족문제 5. 대동아공영권과 아시아주의 6. 일본의 아시아 정책과 아시아의 정체성 1)대동아성의 설립 2)대동아회의의 개최 맺음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
Kim Keong-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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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연대의 이상과 현실
지난 100여년간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그러했듯이 대부분의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상호교류와 이해를 위한 수평적 연대의 필요성을 입을 모아 제기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의 반대편에는 동아시아 내부에서 성립된 근대 민족국가와 아울러 외부에서 등장한 서구유럽이 존재해왔다. 민족과 국가에 대한 몰입과 헌신은 근대에 들어와 출현한 현상이지만, 그에 대한 물신성과 민족지상주의/국가중심주의는 오랫동안 동아시아의 고유한 속성의 하나로 이해돼왔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나 정부 차원이 아닌 민간 차원에서의 상호교류와 연대를 위한 시도는 동아시아에서 특히 어려운 과제가 되었다. 1920~30년대 태평양회의에 참가한 지식인들이 국가로부터 독립적 가치를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지식인들조차 국가권력에 실질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던 사실은 이와 관련하여 시사적이다. 동아시아 삼국 중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에서조차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의 출현을 기대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적어도 1945년 이전 동아시아의 주인공은 민족과 국가, 그 일원으로서의 개인들이다. 동아시아 연대에 대한 이들의 이상은 흔히 민족국가의 수립과 회복, 강화라는 동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각각의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 그리고 서구와의 조우시점 같은 여러 요인들의 결합에 따라 동아시아의 세부 지역들은 동아시아의 이상과 민족국가의 현실 사이에서 다양한 선택을 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가장 혹독한 시련에 들었던 것은 일찍이 근대화에 성공하여 민족국가 체제를 갖춘 일본이었다. 세계체제의 국제관계 현실에 효율적으로 적응했던 것만큼이나 동아시아 삼국 중 일본에서는 연대에 대한 전통적 이상이 일찍이 정형화된 형태로 출현했고 또 그와 동시에 훼손되어갔다. 메이지 시기 이래 일본에서 등장한 아시아주의와 삼국연대론, 동양평화론 등의 담론은 그에 대한 동아시아인들의 일시적인 지지와 환호에도 불구하고 점차 불신과 배척이라는 현실과 직면해야 했다. 20세기로 넘어오는 세기 전환기를 전후하여 아시아 연대에 대한 일본의 배신과 그에 대한 비난은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서구에 대한 타자로서의 동아시아 vs 변혁과 해방의 동아시아 동아시아론에 대한 역사적 검토는 애초에 서구에 대한 타자로서 자신의 외부로부터 출현한 동아시아 개념이 근대 민족국가라는 내부의 장벽과 오랜 시간에 걸쳐 상호대면, 경합 그리고 절충하는 것을 통해 자의식을 획득해가는 과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동아시아는 서구에 대한 타자로서 스스로를 인식하면서 고정성과 불변성, 배타성 그리고 때때로의 공격성을 가질 수밖에 없기도 했으나 점차 가변성과 유동성 그리고 타자성을 극복한 보편성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는 아시아에 대한 두가지 상반되는 이미지가 공존한다고 본다. 하나는 최초에 아시아가 서구에 대한 타자로서 등장하면서 가지게 된 인종주의와 식민주의, 아시아주의의 편린들이고, 다른 하나는 아시아가 스스로 타자성을 해소하면서 쟁취한 개방성과 능동성 그리고 세계성과 보편주의에 대한 지향으로서의 아시아다. 이 둘은 이론적 범주이면서 동시에 역사적 범주이기도 하며 현실에서는 두가지가 서로 착종된 형태로 발현되었다. 중국 신좌파를 대표하는 왕 후이(汪暉)가 “일본제국의 식민 계획을 대표로 하는 아시아주의와 아울러 약소민족의 민족해방운동으로 표현된 피압박민족의 민족자결 요구”라는 상이한 두 아시아상을 제시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저자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근대 아시아의 역사를 전제와 정체의 아시아로부터 해방과 변혁의 아시아라는 대조적인 이미지로 이행해온 역동의 과정으로 파악하고 이를 내재적 시각에서 다시금 아시아란 무엇인가를 모색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가 파악하는 동아시아 연대에는 피압박민족의 항일운동, 예를 들어 약소민족동맹이나 반파시스트연맹 같은 시도로 가장 극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에 가려져 나타나지 않았던 비제국주의 주류국가인 중국이나 인도 같은 국가의 민족주의적 동기에서 발현된 연대의 구상도 있으며, 국가적 차원에서 ‘표방된’ 동아신질서운동이나 대동아공영권 같은 국가주의적 성격의 연대운동도 포함된다. 제국의 시대의 동아시아 연대론 한국의 윤치호(尹致昊), 안중근(安重根), 중국의 쑨 원(孫文)과 리 따자오(李大釗), 일본의 타루이 토오끼찌(樽井藤吉)와 오까꾸라 텐신(岡倉天心) 등은 그 주장이나 행보가 상이할지언정 서구제국주의에 대항하여 ‘하나의 아시아’라는 상을 그렸던 대표적 인물들이다. 근대를 가장 먼저 완성한 일본에서 발의된 아시아주의 담론은 서구에 대한 대항논리로서의 성격이 강했으며 조선이나 중국 지식인들의 아시아담론은 일본의 아시아주의에 대한 대답이거나 비판인 경우가 많았다. 1)한국의 경우 윤치호의 경우 지역과 인종 그리고 문명을 공동의 요소로 하여 동아시아 아이덴티티와 연대의식을 발전시켰던 역사적 국면에서 인종이나 문명과 같은 요소가 어떤 방식으로 동아시아 연대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일본의 신학문을 접하고 서구문명을 동경하게 된 윤치호가 이후 미국 유학기간에 인종차별을 겪고 난 뒤 구상하게 된 아시아연대론은 인종과 문명이라는 요소가 아시아연대운동에 끼친 영향이 어떤 것인가를 잘 알게 해준다. 한편 이또오 히로부미 암살이 크게 부각되어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인종적, 문명적, 국가주의적 담론을 벗어나 열린 민족주의에 기반한 세계성을 띤 아시아연대론이라는 점에서 다시 재평가되어야 한다. 이 시기 대부분의 문명개화론자들이 민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고 한국의 자주적인 개화역량에 회의를 보내면서 일본을 문명의 전범으로 하는 전략을 채택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안중근은 문명개화론을 수용하면서도 한국의 개혁역량을 신뢰하면서 한국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의 민중까지를 고려하는 독자적인 사상을 발전시켰다. 문명개화론자 대부분이 이 시기 의병항쟁에 반대한 것과 달리 자신은 이를 지지하면서 직접 참여했던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2)중국의 경우 리 따자오의 경우 서구열강의 침략과 일본의 대아시아주의에 반대하며 약소민족의 해방과 민족자결주의를 바탕으로 한 신아시아주의를 제안했으나 그 역시 “중국이 없으면 아시아가 있을 수 없다”며 자국 중심의 사고를 기저에 둔 한계를 보였고 이러한 점에서 쑨 원의 아시아주의도 중·일 공동영도론을 주창했던 만큼 한국이나 타이완, 베트남 등을 아시아주의 논의에서 배제시켰다는 점에서 마찬가지 한계를 보인다. 3)일본의 경우 애초에 아시아주의는 일본이 서구문명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서구의 아시아를 바라보는 시각까지도 받아들여 만들어질 수 있었던 하나의 대항논리였고, 따라서 아시아주의는 일본에서 가장 먼저 확립되었고 중국이나 한국의 아시아담론은 그에 영향을 받아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대동합방론』으로 잘 알려진 타루이 토오끼찌는 일본, 한국, 중국의 삼국연대를 주장했다. 조선과 중국의 지식인에게 매우 큰 영향을 끼친 그의 이상주의적 연대론은 이후 인종주의적 성격과 일국 이기주의의 토대를 제공하여 일본의 아시아 침략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뼈아픈 한계를 지닌 것이기도 했다. 동서양의 문명에 깊은 조예가 있었던 오까꾸라 텐신의 아시아주의는 아시아 자체의 문화적 동질성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더 급진적이고 근원적이었으나 서구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성격이 강한 만큼 자민족 중심주의의 편견으로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대동아공영권을 여론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사용되는 비극을 겪게 된다. 동아시아 연대의 현재 동아시아 연대의 근거로서 주장된 지리적 근접성이나 인종, 문명 등은 19세기 후반 이래의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그 자명성의 기초를 점차 상실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동아시아란 무엇인가를 둘러싸고 그것을 단순한 지리적 고정물이나 문화적 구성물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견해는 이미 1920년대에 강력한 도전에 직면했다. 100여년의 역사를 거쳐 오늘날 동아시아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합의를 모아가고 있으나 여전히 그 실체를 보는 입장은 여전히 여러 갈래다. 그러나 냉전의 종식과 민주화의 진전, 그리고 지구화?정보화를 배경으로 한 수평적 의사소통 수단의 발달은 이제 수직적 위계질서에 의한 이 지역의 재편이 더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 아시아인의 독립과 해방을 위한 연대를 지향했던 조직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주의와 아세아민족회의, ‘동아신질서’ 그리고 대동아공영권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연대’를 표방한 실험들은 아시아의 각지역과 민족에게 역사적 반면교사로서의 역할을 했다. 아세아민족회의나 대동아회의에서 단편적으로 표출된 아시아 각지역과 국가들에 의한 상호소통과 대화를 향한 열망은 이제 비로소 개화할 장을 마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세기 말부터 진행되고 있는 지구화를 배경으로 그것은 일본제국주의 지배시기와는 달리 아시아 자체의 역량에 못지않게 세계적 차원의 동력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가까운 미래에 어떠한 모습의 동아시아가 출현할지는 우선적으로 아시아 각 지역의 시민, 민중의 자각과 실천의 정도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냉전체제의 붕괴와 함께 양극 중심의 세계질서가 다극 구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재편, 또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공존과 연대의 모색이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되어왔다. 지구화로 인해 아시아의 고유성을 구분하는 것이 점차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고는 하더라도, 아시아 고유의 전통과 아이덴티티를 기반으로 그 단일성과 연대를 추구하고자 하는 시도는 일찍부터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아왔다. 그러나 연대의 열망은 엄연한 국제관계에서 자국 이기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냈고, 이것은 20세기 전반기 동아시아를 좌절로 몰고 갔다. 이 책은 그러한 열망과 시도들이 왜 좌절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역사적으로 밝혀 새로운 세기, 새로이 모색되는 동아시아 연대가 극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면밀히 보여준다고 하겠다. |